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65
365화
덜거럭, 덜거럭.
“…….”
저벅, 저벅, 저벅.
“…….”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청상, 청우와 함께 산을 내려온 진무는 희한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진…… 피난 행렬?
아비의 손을 잡은 아이, 어미의 등에 업힌 젖먹이, 수레에 탄 힘없는 노인들.
벌써 삼동천의 영역에 전쟁이라도 난 건가?
“청상.”
“예!”
말을 하지 않아도 진무의 뜻을 잘도 알아채는 청상이 피난민 중 한 사람에게 뛰어갔다.
“이보시오.”
“……?”
청상의 부름에 아이를 손에 잡고 걷던 중년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전란이라도 터진 것이오?”
“전란? 전란이지. 전란이고말고.”
중년 사내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대답했다.
전란이라니. 마교의 땅에서 전쟁이 있는 상황이라면 진무가 불러들인 동천 연맹과 이동천의 전쟁뿐일 터인데?
“어디서 온 분들인지는 모르지만 서둘러 피하시는 것이 좋을 게요.”
“……?”
“북쪽에서 괴물이 오고 있다고 하더이다.”
“괴물요?”
“암, 괴물이지. 사람 잡아먹는 괴물.”
“…….”
청상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자 진무가 냉큼 중년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그 개자식이다.
이동천을 점령했다는 그놈이 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자세히 들어 봅시다.”
“자세히고 자시고 할 것도 없소. 그게 다니까.”
“……?”
“겨우 살아온 이가 전하길 이미 북쪽은 쑥대밭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민가고 무인이고 닥치는 대로 죽어 나가는 통에 괴물이 지나는 길마다 피로 물들고 산 자들의 씨가 마르고 있다 하오.”
“허면 이동천이 삼동천을 향해 남하를 시작했단 말이오?”
“그것까진 모르겠소.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이야 교의 세력 다툼이 어찌 진행되는지는 알 도리가 없으니까.”
“…….”
“교주님께서도 무심하시지. 수탈이야 일상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이리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다니.”
사내는 허망하다는 얼굴로 연신 한숨을 내쉬면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분도 늙으신 게야. 이젠 만사가 귀찮아질 때가 되었지.”
“…….”
북리도천이 늙어서 방치한다고?
그럴 리가 없다.
그 꼬장꼬장한 놈이 병에 걸렸다는 소문도 없는데 나이 탓이나 하면서 손 놓고 물러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건 세력 다툼의 문제가 아니다.
동천의 주인이 바뀌는 것과는 명백히 다른 문제였다.
북리도천은 마교의 신이자 신강의 왕이다.
마교의 무인뿐 아니라 그 영역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그의 백성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규모로 죽어 나가는 이 상황을 모른 척한다고? 이 망할 노인네가 대체 무슨 생각이지?
진무는 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턱 언저리를 어루만졌다.
“어쨌든 당신들도 서둘러 피하는 게 좋을 게요. 남쪽의 사동천이 주인이 바뀌고 살기가 좋아졌다 하니 그곳으로 가시오. 우리도 그리 가는 중이니.”
“…….”
“지긋지긋하던 수탈도 없애고 돈도 벌게 해 준다는 그 양반이 이 난리통까지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구만…….”
중년 사내는 그 말을 끝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서둘러 피난 대열에 합류했다.
한옆으로 비켜나 물끄러미 행렬을 바라보던 중에 청우가 감탄하는 어조로 부산을 떨었다.
“역시 사숙은 대단하세요. 저 사람들마저 사숙을 믿고 있네요. 정파에서도, 사파에서도, 이제는 마교에까지도 그 명성을 떨치시다니. 저는 정말 사숙이 존경스럽습니다.”
“…….”
진무가 그런 청우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청우야, 청우야.
넌 언제까지 그렇게 뇌가 깨끗할래? 이게 지금 똥인지 된장인지 몰라?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잖니. 평판이 문제가 아니라.
여하간에 피난은 피난이고, 정말로 북리도천이 이 사태를 방치하는 것인지에 대한 확인 또한 나중의 문제였다.
일단 대궁을 만나 동천 연맹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아야 했다.
그들이 일찍 도착한다면 모를까 시일이 지체된다면 북쪽이 급하다.
머뭇대는 사이에 죄 없는 이들이 짐승의 먹잇감이 되어 죽어 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청상, 청우!”
“……?”
“일이 급하게 되었다. 서두르자.”
“예!”
* * *
피난 행렬이 오는 방향을 거슬러 올라간 진무 일행은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대궁과 합류했다.
그는 은위단 소속답게 이미 지금의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이동천이 삼동천을 집어삼킬 모양입니다.”
“전쟁을 시작한 것이냐?”
“예. 들리는 말로는 그들의 선발대가 삼동천의 북쪽 경계를 넘었고, 본대가 반나절의 거리를 두고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선발대는 어떤 놈들이냐?”
“전의 그 흑립을 쓴 자들입니다.”
흑립, 노국태와 함께 왔던 그 거무튀튀한 놈들이다.
“놈들은 반항하는 자를 모조리 죽이고, 투항한 자들은 애며 어른이며 가리지 않고 후방으로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짐승 놈의 먹잇감을 확보하는 모양이군.”
“예. 저도 그리 추측하고 있습니다.”
“망할 놈들…….”
진무는 콧등을 찡그리며 치를 떨었다.
“삼동천의 움직임은?”
“무인들을 보내 선발대와 싸우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듣기로 그 흑립 무인들을 이끄는 자의 무공이 보통이 아니라고 합니다. 막는 족족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군. 피난민들의 피해는?”
“다소 남쪽에 있는 자들은 이미 짐을 싸서 움직이고 있으나 미처 떠나지 못한 자들과 소식을 접하지 못한 이들은…….”
대궁이 굳은 표정으로 뒷말을 삼켰다. 모두 죽었거나 잡혀갔다는 말일 터였다.
“황신에게서 연락은?”
“사동천, 육동천, 칠동천의 무인들이 삼동천의 경계를 넘었고, 일, 오, 십이, 십일동천이 금지된 마공을 익힌 놈에 대한 소식을 듣고 연맹에 합류하기 위해 이동 중에 있다고 합니다.”
“호!”
그 정도면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제 막 경계를 넘었다면 지금 진무가 있는 곳과는 하루 차이. 하물며 대규모의 숫자가 이동하고 있으니 그보다 더 걸릴지도 모른다.
하루…… 망할.
그사이에 발생할 민가의 피해는 예측조차 되지 않았다.
진무, 청상, 청우, 대궁.
고작 넷으로 저들과 정면으로 부딪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지만, 일단 민초들을 구해야 한다.
“대궁.”
“예.”
“황신에게 연락을 보내라. 정예들을 선발해 본대보다 먼저 삼동천으로 투입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럼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저희는 일단 후방으로 물러나는 것입니까?”
“아니, 적의 선발대를 공격해 저들의 시선을 민가가 아닌 우리에게로 집중시킨다.”
“예? 그건 너무 위험…….”
만류하려던 대궁은 진무의 무시무시한 눈빛에 입을 닫고 말았다.
“정면으로 싸우려는 게 아니다. 소규모 국지전으로 놈들의 시선만 돌리려는 거야. 그 사이에 삼동천의 무인들을 합류시켜 세력을 키우면 어느 정도 방어막은 구성할 수 있을 게다. 무인들은 몰라도…… 죄 없는 사람들은 구해야지.”
으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빨을 갈면서도 빠르게 명을 내리는 진무의 결기 어린 얼굴을 본 대궁과 청상, 청우가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 *
삼동천 북쪽 아래, 부온 현 인근.
검은 바람처럼 나타난 흑립의 괴인, 묵검대라 불리는 이들에 의해 살육이 자행되고 있었다.
“크악!”
묵빛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대항하던 삼동천의 무인들이 쓰러졌고, 그 틈에 도망치던 민초들은 던져진 그물과 포승에 묶여 끌려갔다.
슈가가각!
막 묵검대 무인 중 하나가 끌어당기던 그물이 어딘가에서 날아온 도기에 잘렸다.
“어서 피해라!”
간결한 외침에 그물에 갇혀 있던 이들이 사력을 다해 도망치고, 또 다른 삼동천의 무인들이 묵검대를 막아섰다.
“지켜라! 놈들에게 지부를 내줘서는 안 된다! 이곳이 무너지면 곧바로 본성이다!”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하는 와중에도 수하들을 독려하며 칼을 휘두르는 자는 삼동천 부온지부장 공생이었다.
적들이 북쪽에서부터 공격해 오고 있다는 전보를 받고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음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렸다.
이미 지부의 무인들 중 반 이상이 적의 검에 쓰러졌고, 남은 이들은 전의를 상실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있었다.
“망할! 대체 지원은 언제 온단 말이냐!”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놈들의 선발대가 사방으로 분산해서 공격해 오고 있는 탓에 그쪽도 운용이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런 젠장! 그걸 말이라고……. 다시 연락을 보내라! 어서!”
“알겠습니다.”
공생의 명령에 수하가 전서구를 날리기 위해 재빨리 물러났다.
슈우욱!
그사이 정면에서 날아온 검에 공생이 재빨리 몸을 피하며 칼을 횡으로 그었다.
스거걱!
공격해 온 묵검대 무인의 목이 잘리고, 핏물이 확 번져 공생의 얼굴을 물들인다.
“으악! 살려 줘!”
“크악!”
끊이지 않는 비명.
잡혀가던 이들이 반항하다가 검에 베여 나가는 소리였다.
죽은 이는 버리고 팔다리가 잘린 이들은 숨만 붙어 있으면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인면수심의 짐승 놈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공생이 시퍼런 도기를 뿜어내며 잡혀가는 사람들을 구하려 전투의 중심을 향해 뛰어들었다.
의기에 근접한 공생의 무위는 묵검의 무인 한둘 정도는 압도할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개개인의 실력 이전에 따로 합격술을 수련하는 것인지, 묵검대의 무인들은 마치 한 몸에서 나온 쌍둥이처럼 연계가 뛰어났다.
그리고.
차라라락! 따아앙!
한 줄기 검광이 맹렬한 속도로 공생을 향해 날아들었다.
“크윽!”
겨우 몸을 틀며 검으로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공생은 짧은 신음과 함께 뒤로 쭉 밀려났다.
“모두 물러나라! 다른 곳을 지원해!”
“…….”
공생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흑립의 무인.
복색은 같았지만 다른 이들과는 달리 묵검의 혈조가 특이했다.
“그대가 대장인가 보군.”
“네놈은 누구냐?”
“묵검 오 호.”
“…….”
“그대의 목을 가져갈 사람이다.”
흑립 아래 드러난 입이 비릿한 미소를 지음과 동시에 그가 몸을 날려 왔다.
공생은 직감적으로 이자가 습격자들의 수장임을 깨달았다.
놈을 잡으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어떻게든 놈을 잡아야 한다.
취리릿!
적의 수장을 잡기 위해 전력을 남김없이 다하기로 한 공생이 칼에 내공을 가득 담아 거세게 휘둘렀다.
쩌어엉!
사선으로 맞부딪친 쇠붙이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는 것을 시작으로 공생과 묵검 오 호의 개인전이 시작되었다.
사방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둘은 오직 자신들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검과 칼을 주고받았다.
검기와 도기에 몸에 생채기가 생기고 피가 튀었지만 둘 중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작은 상처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다. 죽음에 이르게 할 단 한 번의 공격이면 충분했기에 둘은 짐승처럼 눈을 빛내며 칼과 검을 부딪쳤다.
하지만 수십 초를 넘어가자 서서히 묵검 오 호의 검이 공생의 칼을 앞서기 시작했다.
수세에 몰린 공생이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밀려날 때마다 묵검 오 호의 검이 칙칙한 기운을 뿜으며 따라붙었다.
퍼억!
휘둘러져 온 검을 막느라 신경 쓰지 못했던 묵검 오 호의 발.
피풍의에서 빠져나온 그것이 중심을 무너뜨린 탓에 땅바닥에 쓰러진 공생을 향해 수십 가닥의 묵빛 검기가 쏟아져 내린다.
제길…… 끝인가?
공생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물드는 순간, 그의 귓가에 미세한 파공성이 들려왔다.
쐐애애액!
순식간에 그 소리를 키우며 허공을 꿰뚫고 온 무언가가 묵검 오 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따아앙!
위급한 상황에 급히 검을 후려친 묵검 오 호가 반탄력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확 뒤로 물렸다.
쩔거럭.
“……?”
반쯤 몸을 일으킨 공생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얇은 철시였다.
대체 누가?
공생이 고개를 돌리자 무언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이, 이토록 빠른?
공생이 눈을 채 부릅뜨기도 전에 다가온 인물의 손에 시커먼 기운이 어렸다가, 휘젓는 손을 따라 긴 호선을 그렸다.
쓰아아아.
그리고 세상이 잘리는 듯한 착각과 함께 물러났던 묵검 오 호의 머리가 허공에 떠올랐다.
“청상 좌측, 청우 우측, 대궁은 후방에서 지원해!”
명령에 대한 답은 없었지만, 그의 뒤를 따라 뛰어든 세 명의 무인들이 제각기 흑립의 괴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퍼어엉!
공 같은 체구의 사내가 주먹을 후려치자 흑립 괴인 하나가 땅바닥에 처박히며 뭉개지고.
슛! 슈슈슈슛!
새하얀 백광을 뿜으며 유려하게 흐르는 검에 흑립을 쓴 무인들의 몸이 잘게 쪼개진다.
핑! 피피핑!
뒤에서 빠른 속도로 그들을 엄호하는 화살이 위기에 처한 삼동천 부온지부 무인들의 숨통을 틔워 놓았다.
“뭐 해? 앉아서 놀고만 있을 거야?”
“…….”
나타나자마자 수강(手罡)을 날려 묵검 오 호의 목을 날려 버린 젊은 사내가 공생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일어나서 사람들을 구해!”
“…….”
그러곤 흑립 괴인들을 향해 뛰어들어 마구잡이로 때려 부수고 패대기를 치며 찢어 댔다.
“다, 다들! 저들을 도와서 놈들을 공격해라!”
퍼뜩 정신을 차린 공생이 벌떡 일어나 달리며 외쳤다.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든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딱 봐도 썩은 동아줄은 아님이 분명하니 있는 힘껏 잡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