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64
364화
진무는 검혜와 정사의 추격대가 사동천의 영역으로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우양진을 함께 보냈으니 무사히 관문을 넘어 감숙으로 갈 것이고, 천웅방에 연락을 취하라 했으니 귀환도 문제없을 것이다.
“…….”
한참을 응시하던 진무가 옆의 인물들을 슬쩍 쳐다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궁이야 연락책으로 쓰기 위해 남으라고 한 거지만…….
먼 길 배웅하듯이 정사의 추격대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드는 뚱땡이 청우.
언제라도 전투로 돌입할 듯 검을 허리춤에 단단히 여미고 옷매무새를 가지런하게 바로잡는 청상.
“니들은 왜 안 가냐?”
“…….”
“…….”
청상과 청우가 멀뚱하니 진무를 돌아보았다.
“사숙을 도와야지요.”
“왜애?”
주먹까지 불끈 쥐며 결연하게 말하는 청상을 어이없는 눈길로 쳐다보자 말문이 막힌 둘이 서둘러 이유를 찾았다.
“……그…… 에…… 혼자는 위험하시니까요.”
“혼자 아니라니까?”
“그래도 걱정이 돼서…….”
미친놈들, 니들이 지금 날 걱정할 실력이냐?
“가.”
“싫습니다.”
“…….”
단호한 대답에 주먹을 슬쩍 흔들자 눈을 질끈 감으며 목을 움츠린다.
표정을 봐서는 차라리 맞더라도 돌아가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청상아, 니들 잘못하면 죽어.”
“괜찮습니다. 사숙의 옆이라면.”
“싸움이 어찌 될지 모른다니까? 걔들 강해. 봤잖아?”
“압니다.”
“일일이 니들 챙겨 줄 여력이 없어.”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하여간 대가리가 굵은 자식은 부모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다더니…….
무당에서 도사 놈들 고집만 배웠지, 아주.
“그럼 너라도 가라. 청우야.”
청상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한 진무가 청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만요?”
“그래.”
“하지만 저는 청상 사형과 떨어져 본 적이 없는데요?”
“…….”
떨어져…… 니가 세 살 먹은 애새끼냐? 청상이 니 보모야?
“그냥 옆에 있을래요. 사숙께서 아무리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리신다 해도 절대로 안 떨어질 겁니다.”
“…….”
이 자식이 내가 언제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렸다고. 누가 들으면 맨날 맞는 줄 알겠다, 어?
어쨌든 이 두 녀석이 하는 짓을 봐서는 강제로 떼 놓는다고 해도 몰래 뒤따라올 게 분명하다.
그러다가 마교의 무인이라도 만나게 되면 이놈들의 허접한 실력으로는 객사, 비명횡사…… 또 뭐 있지? 아무튼.
망할, 그럼 나중에 스승님 뵐 때 뭐라고 말씀드린단 말인가?
따라오겠다는 것을 떼 놔서 죽었습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하아…… 이런 짐 덩어리 같은 것들이 진짜.”
때려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는 법이다.
진무는 고집스러운 사질들의 설득을 포기해 버렸다.
“됐다, 됐어. 말을 말자.”
진무가 깊은 한숨을 내쉬자 자신들의 우격다짐이 통했음을 깨달은 청상과 청우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밝게 웃었다.
“좋아. 그럼 약속해라. 내 명령이 있기 전까지 싸움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선기를 함부로 드러내서도 안 되고.”
“예!”
힘차게 대답하는 두 녀석의 모습에 진무가 완전히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궁.”
“예, 천주님.”
“몸은 좀 어때?”
“괜찮습니다. 청상 도장이 선기로 치료해 준 덕에 치유가 빠릅니다.”
빠르기는…….
팔이 아직 온전치 못한 것 같구만.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팔의 혈도를 눌러 통증을 억제해 두었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사패천의 무인이라면 그 정도 깡은 있어야지. 암.
대신 전투에는 절대로 참여시키지 말아야겠다.
“넌 지금 즉시 마을로 내려가서 전서구를 구해 사동천의 황신에게 내 명령을 전해라.”
“하명하십시오.”
대궁이 휴대용 지필묵을 꺼내 명을 받아 적었다.
“십이동천 전체에 무진의 이름으로 이동천을 토벌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동천 연맹은 지금 즉시 세력 병합을 멈추고 전투 준비를 갖춰서 삼동천으로 이동하라고 해.”
“무진…… 알겠습니다.”
“나는 삼동천에서 기다린다고도 전하고.”
“예. 그럼 먼저 이동해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밑에서 보자.”
명을 받은 대궁이 인사를 함과 동시에 바람처럼 몸을 날려 산자락을 내려갔다.
대궁마저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진무와 두 사질뿐이었다.
굳이 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어졌다.
홀로 이동천을 공격할 생각은 접었고, 세력이 모이기를 기다려야 한다.
최소 진무 휘하에 있는 세 개의 동천이 움직일 것이다.
운이 좋으면 연락을 받은 다른 동천들까지 도우러 올지도 모르고.
어쨌든 연락을 받은 그들이 준비를 갖춰 삼동천까지 오자면 아무리 빨라도 닷새.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나흘 동안 천산설초를 뜯어 먹으며 선기와 사기의 균형점을 찾고 난 뒤 하루를 쉰다.
전투를 치르기 전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해 줘야 하니까.
혹시 또 모르지.
운이 좋으면 그 나흘의 시간 안에 태극합일을 이루게 될지도.
꼬르르르륵.
태극합…… 응?
진무가 마음속으로 결의를 다지며 이런저런 계획들을 머릿속에 정리하는데 어디선가 허기진 아귀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리니 청우가 해맑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해가 중천이다.
망할 청우 놈. 정말 확고한 몸뚱어리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 밥 시간을 아는 것이 해시계보다 정확하단 말인가?
“배고프냐?”
“예!”
청우의 우렁찬 대답에 진무는 피식 웃고 말았다.
변함이 없다는 것은 좋은 거다.
“그래. 먹자, 먹어. 먹고 죽은 도사는 때깔도 좋다더라.”
진무의 허락에 청상이 매서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청우야. 모처럼 사숙과 함께하는 식사이니 나뭇가지를 충분히 주워 오거라.”
“예!”
“사숙, 서둘러 가서 멧돼지라도 한 마리 잡아 오겠습니다.”
“…….”
멧돼지?
얘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청상아.”
“예?”
“고기 먹는다는 말은 한 적이 없는데?”
“……예?”
진무의 말에 청상과 청우가 나란히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아니, 도사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이 산중에 먹을 게 어디 있다고.
“사숙, 그럼 산 아래 객점으로 가실 생각입니까?”
“…….”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지 못한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다.
객점? 그사이에 돈맛을 알더니 눈이 많이 높아졌구나.
“그럼 서둘러 가시죠. 청우가 낸 소리를 들었기 때문인지 저도 시장합니다.”
얘들아. 나의 사질들아. 충성스러운 부하 일, 이 호야.
니들이 무슨 큰 오해를 하는 모양이구나.
객점? 고기? 지금 니들이 그딴 거나 먹을 때가 아니란다.
보아라. 뜯어 먹을 것이 지천이 아니더냐.
진무가 손가락으로 눈 쌓인 산자락의 한곳을 가리키자 청상과 청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살폈다.
“……저어, 사숙.”
“응?”
“무얼 가리키신…….”
“저거, 저기 풀. 잎사귀 세 개 달린 저거.”
“…….”
“…….”
청상과 청우는 자신들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눈을 끔벅이며 되물었다.
“푸, 풀이요?”
친절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는 진무.
청상과 청우는 의아하기만 했다.
아니, 사숙께서 못 뵌 사이에 식성이 바뀌신 걸까?
고기, 술……. 그 외에는 음식 취급도 하지 않던 분이 푸울?
“사숙…….”
“왜?”
“혹여 몸에 이상이라도 생기신 건?”
청상이 무척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따아악!
물론 돌아간 것은 엄청난 위력의 딱밤이었다.
이 고기에 환장한 자식들 같으니.
“잔말 말고 빨리 가서 안 처먹어?”
“……!”
진무의 서슬 퍼런 호통에 청상과 청우가 부리나케 산자락으로 달음질했다.
겨우 남게 되었는데 괜히 성질 건드렸다가 제대로 쫓겨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그렇게 셋의 자연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무려 나흘 동안…….
* * *
“후우……. 후우…….”
안정되고 고른 호흡.
눈이 가득 쌓인 설원 한가운데 좌정한 진무가 눈을 감고 자신의 몸을 관조한다.
임맥과 독맥에 쌓인 두 개의 기운.
선기와 사기.
균형점을 찾는 것에만 나흘을 내리 허비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했기에 진무는 몸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한숨도 자지 않았고, 미세하게 선기를 조절할 천산설초 이외에는 물 한 모금 먹지 않은 덕에 일 푼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맞추는 것에는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합일(合一)인데.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양의심공의 전반부 주해본은 상세하기 그지없었으나 후반부의 태극요결은 도통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청성에서 얻었던 첫 번째 구절.
무극이태극, 양동하면 음정하라.
그리고, 풍환자의 기억에서 끄집어냈던 두 번째 구절.
오행이 서로 보하고 상하며 천양하고 곤음하라. 천은 백회니 뜨겁고, 곤은 곧 회음이니 차가우라. 고저는 그저 구분이며 마음에 음양이 닿아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니 이는 곧 태극이라.
“…….”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완전히 이해되지 않은 채 합일을 시도해서는 안 될 일이다.
청무 조사처럼 마성에 빠질 수도 있는 일이고, 잘못하면 영원히 설산 지킴이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자, 그럼 천천히…….
무극이 곧 태극.
무극이라 하면 끝이 없으니 나누어지지 않은 처음의 상태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태극이라면?
태극은 구분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하나로 뭉쳐지는 것이 틀림없다.
분명 합일된 상태를 일컫는 말일 테니 잠시 접어 두고 다음 구절.
양동하면 음정하라.
이는 무당의 수많은 비급에도 여러 차례 언급된 내용이다.
하나였던 태극이 둘로 나뉘어 양의라 하고 따뜻하고 바른 것을 양(陽), 차갑고 음험한 것을 음(陰)이라 하는 법이다.
우우웅!
진무가 음의 기운, 즉 묵룡의 사기를 멈추어 가두고, 양의 기운인 육양의 선기를 단전으로 쏟아 넣자 그의 몸이 저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세 번째, 오행이 서로 상하고 보한다.
천지간의 다섯 기운을 오행이라고 하니 음양의 이치에 오행이 모두 들어 있다.
도가에서 말하길 오행에 상생과 상극의 이치가 있으니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이라.
상극이 되어서는 안 된다.
충돌은 폭발을 만들고 폭발은 내상, 혹은 주화입마에 빠지게 할 수 있음이었다.
진무는 단전에 자리 잡은 선기에서 다섯 가지 특성을 찾아내어 목, 화, 토, 금, 수의 순으로 임독의 다섯 자리를 골라 단단히 자리를 잡게 한 후 양의심공을 운용했다.
단전을 채운 육양의 선기가 혈도에 자리 잡고 사기가 단전에 흘러든다.
양이든 음이든 오행은 공통의 속성이라 묵룡의 사기 역시 같은 방법을 써 다섯 곳의 혈도에 나누어 담았다.
이제 네 번째, 천양곤음.
천은 백회, 곤은 회음. 여기서부터가 난제(難題)다.
양의심공은 두 가지 기운을 몸 안에 담게 했지만, 이를 동시에 운용할 수는 없었다.
다섯으로 나누어진 양의 기운, 육양의 선기를 백회로 보내고 음의 기운인 묵룡의 사기를 회음으로 보내려면?
음…… 설마 백회라는 것은 상단전의 개방을 말하는 것일까?
상단전에 선기를 담고 하단전에 사기를 담는다라……. 그럼 어째서 단전이 아니고 회음인가?
이상하다.
무릇 사람의 몸에 존재하는 단전의 세 곳.
통상 단전이라 부르는 것이 하단전, 가슴의 오목한 곳을 중단전, 그리고 머리 부분을 상단전이라 한다.
하지만 상단전의 개방은 이제까지 누구도 이루어 본 적이 없는 경지였다.
진무 역시도 혁련무강의 삶에서 중단전을 개방한 것이 고작이었다.
흠, 여기서부터는 누구도 겪은 적 없는 경험이다. 도가에서는 상단전이 열리면 등선을 한다고 하던데…….
진무의 머릿속에서 다양한 가설들이 세워졌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위험천만한 일이다.
잘못해서 두 기운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부딪힌다면?
이미 청성에서 완전하지 못한 태극요결로 합일을 시도했다가 그대로 골로 갈 뻔한 적이 있지 않던가?
아니야, 괜히 목숨 걸 필요 없지.
일단 다음 구절. 고저는 구분이며 마음에 음양이 닿으면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마음…… 마음이라…….
진무는 깊은 고민 끝에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그래, 급히 가지 말자.
함부로 상단전에 도전해서는 안 된다.
참오하고 또 참오하자.
그리고 완전히 준비되었을 때, 그때 조금씩 만들어 보는 거다.
이미 몸 안에 모든 준비를 끝냈으니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충분하다.
운기를 마친 진무가 눈을 떴을 때, 호법을 선다며 지키고 있던 청상과 청우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왜?”
“아니, 그게…… 막 빛무리에 나무, 돌 뭐…….”
“……?”
청우가 말을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무언가 얻으셨습니까?”
“아주 조금……. 근데 청우가 뭔 말을 하려는 거냐?”
진무의 질문에 청상이 자신이 보았던 상황을 정리해 말했다.
“허공에 떠오르시더니 맑은 빛무리를 토하시더군요.”
“빛?”
“예. 열기가 되었다가 차갑기도 했다가…… 뭔가 자연에서 느껴지는 그런 기운 같았달까요? 어쨌든 그랬습니다.”
“…….”
흐음.
음양을 나누고 이를 다시 오행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생긴 기운이 외부로 표출된 건가?
어쨌든 이상하게 몸이 가볍다.
진무는 기운을 일으켜 손을 뻗어 보았다.
자연스럽다. 합일은 이루지 못했지만 선기와 사기가 어딘가 정순해진 느낌이었고, 이전에는 강제력에 의해 움직이던 기운이 지금은 그저 생각만 품어도 자연스럽게 원하는 곳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양의심공을 운용해 선기와 사기를 바꿀 때 생겼던 잠시간의 공백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 상태라면 사기와 선기를 무리 없이 번갈아 가며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내려가자.”
“예, 사숙.”
진무의 말에 청상이 짧게 대답하는 사이 청우가 무언가를 주섬거리며 챙기고 있었다.
“…….”
입고 있던 겉옷을 펼쳐 천산설초를 뽑아 담고 보자기처럼 묶는 청우.
“너 뭐 하냐?”
“싸 가려구요.”
“…….”
“이젠 이것만 먹을래요. 이렇게 몸에 좋은지 몰랐어요. 막 선기가 쌓이는 게…….”
어째서 고기가 아니고 풀때기냐고 투덜거리던 놈이 천산설초가 머금은 선기의 효능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이 간사한 뚱땡이.
고기만 주야장천 외치던 놈이 언제부터 생식을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