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66
366화
“허억, 허억…….”
쉴 새 없이 휘두르던 검이 겨우 땅바닥을 향한다.
땀으로 흠뻑 젖어 버린 청상은 고개를 돌려 상황을 살폈다.
제 반대편으로 갔던 청우는 마지막까지 버틴 흑립 무인의 멱살을 잡고 그간의 분풀이를 해 대는 중이었다.
퍽, 퍽퍽.
그만해도 될 텐데.
이미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청우가 주먹을 멈췄을 때, 청상의 시선은 주변을 향했다.
모두가 지쳤다.
흑립을 쓴 무인들 중 몇몇은 도망쳤으나 대부분이 죽었고, 삼동천의 무인들은 지쳐 주저앉거나 아예 드러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전쟁은 승리로 끝났지만 너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무인들뿐 아니라 힘없이 끌려가던 민초들마저 싸늘한 시신이 되어 사방에 널리니 이내 곳곳에서 귀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사방에 흥건한 핏물 속에서 서로서로 오들거리는 몸을 얼싸안고 두려움을 겨우 버텨 내고 있었다.
전쟁은 언제나 그랬듯 참혹한 풍경을 그려 낸다.
이를 악다문 청상이 검에 흐르는 핏물을 떨어내고 돌아서자 진무의 등이 보였다.
참혹한 전투의 현장에서 오롯이 우뚝 선 존재.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그 믿음직한 등을 보고 있으면 절로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야!”
별안간 진무가 호흡을 고르며 쉬던 공생을 불렀다.
“……예?”
손으로 사람을 찢어 죽이고, 발길질에 머리를 터트려 버린 진무의 잔인한 손속을 본 공생이 퍼뜩 자세를 가다듬고 존대로 대답했다.
“이 새끼가, 뭐 하고 처앉아 있어?”
“……예?”
“수하들을 시켜서 전장을 수습해. 민초들을 대피시키란 말이다.”
“……”
“빨리 안 움직여?”
진무가 눈을 세모로 뜨며 소리치자 공생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움직였다.
삼동천의 무인들은 공생의 독려하에 두려움에 떠는 민초들을 달래 피난 행렬을 꾸리게 했다.
그들이 떠날 준비를 마치자 진무가 삼동천의 무인들에게 빠르게 명을 내렸다.
“지금부터 두 개 조로 나눈다. 한 개 조는 나를 따라서 적들의 선발대를 처리하고 나머지 한 개 조는 민초들의 도주로를 호위해 곧장 사동천 쪽으로 가라.”
“……?”
“삼동천의 본성으로는 안 돼. 무조건 사동천이 있는 남쪽이야. 알겠어?”
“아, 알겠습니다.”
서슬 퍼런 기세에 일단 대답은 했으나 공생은 너무나 궁금했다.
자신들을 구해 준 것은 고마우나 정체도 알 수 없는 이의 명령을 무턱대고 따를 수는 없지 않은가?
“저어…… 대체 뉘신지?”
눈치를 살피며 묻는 공생의 말에 진무가 짧게 대답했다.
“동천 연맹주 무진.”
“동…… 예에? 당신이 그 소문의!”
“알아들었으면 빨리 움직여. 도망친 놈들이 있으니 후속이 있을지 모른다.”
“…….”
진무의 명이 떨어졌음에도 공생은 멍하니 굳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홀로 육동천에 나타나 괴뢰를 무너뜨린 뒤 동천주에 오르고, 이어 서열전을 신청해 능서현을 꺾고 네 명의 동천주를 죽여 버린 인물.
중원과의 교역에, 민가에 대한 수탈 금지에…….
차기 교주로서 권좌에 도전한다는 그에 대한 소문은 이미 만방을 떨쳐 울리고 있었다.
이런 젊은 사내였다니…….
공생이 연신 눈만 끔벅거리면서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안 하자 진무가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다가왔다.
짜아악!
분명 볼이 화끈하니 고개가 돌아갔는데…….
“이런 미친 자식이! 정신 안 차려!”
“예? 옙! 부온지부장 공생! 동천, 아니 연맹주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공생이 무릎을 꿇고 곧바로 고개를 숙여 외쳤다.
전 동천주였던 나관수를 죽인 인물이었다.
대리자가 있기는 했으나 그는 마교의 율법상 삼동천의 주인이나 다름없었다.
“예의나 차릴 시간에 서둘러 움직여. 지금부터 곳곳에서 습격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자면 쉴 틈이 없을 테니까.”
“예!”
공생이 감읍하며 답했다.
구원자가 나타났다. 다른 이도 아니고 앞으로 마교의 주인이 될지도 모를 인물이, 괴물이 이끄는 잔혹한 놈들로부터 자신들을 구해 주기 위해서.
삼동천 무인들의 호위를 받고 떠나는 민초들은 겁에 질린 와중에도 진무를 향해 저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떠났다.
공생을 비롯한 스무 명의 무인들만이 남아 진무 일행에 합류했다.
“좋아. 아직은 적은 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대궁!”
“예!”
전쟁이 끝난 뒤에도 활을 쏴 도망치던 자들의 등줄기를 꿰뚫으며 후속되는 무인들이 있는지 살피던 대궁이 나무에서 내려왔다.
“몇 놈 정도 도망치게 뒀겠지?”
“예, 모두 셋입니다.”
“좋아.”
진무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애초에 대궁에게 놈들 몇을 살려 주도록 명령해 두었다.
그들은 전령이나 다름없다.
도망친 놈들이 분명 지금의 상황을 자신들의 본진에 알릴 터. 그리되면 놈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릴 테니 민가를 습격하는 이들은 조금씩 줄어들게 될 것이 분명하다.
“놈들이 상황을 파악하면 반드시 추격대를 보낼 것이다. 흔적을 남겨 둬라. 소규모로 쪼개져 있는 놈들의 선발대를 처리하는 한편, 찾아오는 놈을 유인해서 하나씩 없애 나간다.”
진무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어렸다.
“이봐, 공생이랬나?”
“옙!”
“적들이 습격한 다른 곳을 확인할 수 있겠지.”
“그…… 있습니다. 본성에 연락을 취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걸로 충분해. 이곳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부터 찾아라. 이쪽저쪽에서 피해를 입으면 열 안 받고는 못 배기겠지.”
“…….”
“가자!”
진무가 빠르게 몸을 날려 자리를 이탈하자 청상, 청우, 대궁이 따르고 공생을 비롯한 삼동천의 무인들이 허겁지겁 움직였다.
* * *
싸늘한 눈동자가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무인들을 내려다본다.
이궁주 노국태 휘하의 가장 강한 무인이자 오백의 전력을 보유한 묵검대의 주인 묵검 사마도.
그의 앞에 부복해 있는 자들은 모두 셋.
저마다 심하게 부상을 입은 데다, 한 놈은 옆구리에 철시 하나까지 당당하게 박고 돌아왔다.
서른 명씩 다섯 개 조로 나눈 습격조 중 하나인 묵검 오 조의 생존자들이었다.
“철후가 죽었다고?”
“…….”
“갑자기 증원군이 나타났는데 단 네 명이었고? 그러고는 조원 서른이 다 죽었다?”
“그, 그렇습니다.”
“그래서 도망쳤다?”
“죄, 죄송합니다. 알려야 한다 생각했기에…….”
“죄송? 그래, 죄송해야지. 다 죽었는데 니들만 살아남았으니까 말이야.”
“……!”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담긴 섬찟함이 목덜미를 스치는 순간, 꿇어 엎드려 있던 무인 셋의 목이 한 번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묵검의 명예를 더럽힌 것들.”
사마도가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몸을 돌려 외쳤다.
“진숙!”
묵검대의 부대주 진숙이 곧장 대답했다.
“예, 대주님.”
“철후가 습격한 곳은?”
“삼동천 부온지부입니다.”
“철후와 서른이나 되는 조원을 죽일 정도라면 보통 놈은 아니겠지.”
“적어도 의기 이상은 될 터입니다.”
“의기라…… 제법이군. 고작 동천의 지부에 그런 무인이 있다니 말이야.”
“제가 묵검 육 조를 이끌고 이동해 모조리 썰어 놓겠습니다.”
진숙의 호언장담에 사마도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아니, 내가 직접 간다. 묵검에게 치욕스러운 패배를 안겨 준 놈들이니 그만한 대우는 해 줘야지.”
“알겠습니다. 하면 즉시 본대가 이동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진숙의 대답에 사마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근자에 무척이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망할…… 상관평.”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각 궁은 서로 불가침의 관계였다.
대궁주의 명 이외는 따르지 않는 것이 그들 사이의 암묵적인 규율이었건만, 상관평이 한승에게 붙은 이후로 그를 싸고돌며 제가 마치 주인인 양 행세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한승의 뒤치다꺼리도 모자라 이궁의 주 전력인 자신들이 선발대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더욱이 한승의 허기를 달래 줄 포로들을 확보하는 임무까지 맡게 되었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날 수밖에 없었다.
와중에 자신들의 수장인 노국태는 체면 상하게시리 고작 중원의 떨거지를 추격하는 임무나 수행하느라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묵검대의 무인을 오십이나 끌고 갔으면서도…….
뿌드득.
사마도가 턱 언저리에 근육이 잡힐 정도로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떤 놈들인지 두고 보자.
안 그래도 울화가 치밀어 환장할 지경인데 묵검 오 조를 몰살시켜?
싸그리 죽여 주마, 싸그리.
그들에게 자신의 분노를 모조리 토해 내리라 작정한 사마도가 시퍼런 안광을 빛내며 허리에 맨 묵빛 검을 움켜쥐었다.
“가자!”
삼백여 명에 달하는 묵검대의 본진이 부온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부온까지의 거리는 고작해야 오십여 리.
말을 타지 않아도 한 시진이면 쉬엄쉬엄 가도 도착할 거리였다.
검은 피풍의를 날리며 떼 지어 달리는 그들은 마치 밤바다에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 같았고, 이내 부온을 포위했다.
그리고 사마도가 을씨년스러운 그곳에 천천히 발을 들이밀었다.
“…….”
시신을 쪼아 먹던 까마귀 떼가 푸드덕거리며 나무 위로 날아오르자 내부의 전경이 드러났다.
곳곳에 널린 흑립의 무인들은 묵검 오 조가 확실한데, 어째 상황이 묘하다.
묵검 오 조를 몰살시킬 정도라면 마땅히 주변에서 방어막을 형성하고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죽은 이들이 흩뿌리는 귀기와 까마귀 떼가 내지르는 울음만이 가득했다.
“이놈들이…….”
놈들이 지부를 버리고 이동한 것이다.
닭 쫓던 개가 되어 버린 심정에 미간을 구긴 사마도의 시야에 멀리서 날아드는 전서구 한 마리가 보였다.
“……?”
어째 받아 읽은 진숙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대주님.”
“……?”
“삼 조가 몰살당했습니다.”
“……!”
사마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오 조에 이어 삼 조까지 몰살을 당했다고? 이 무슨 개 같은 경우란 말인가?
“생존자는 셋. 나머지는 삼동천의 지부와 싸우던 중에 갑자기 나타난 인물에 의해 모조리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
진숙이 시신들 틈에서 찾아 온 피 묻은 천 쪼가리.
그 안에 적힌 글귀를 본 사마도의 볼이 푸들거리며 떨리기 시작했다.
니들도 곧 죽여 주마.
“…….”
오 조와 삼 조의 몰살.
갑자기 나타난 놈들에 의해 모두가 죽고 세 명씩만 살아남았다.
그러고는 약 올리듯 친절하게 남긴 쪽지까지.
“삼조를 습격한 놈들은 몇이라더냐? 또 넷이라더냐?”
“그것까지는 전서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
사마도의 눈동자에 핏발이 솟구쳐 올랐다.
어떤 놈인지 모르겠으나 자신을 대놓고 희롱하고 있지 않은가?
“죽었다는 나관수 말고도 삼동천에 다른 놈이 있던 모양이구나. 실로 대담한 놈이 아니냐? 감히 나 사마도를 이렇게까지 화나게 하다니.”
“…….”
진숙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사마도의 몸에서 진득하게 뿜어져 나온 칼날 같은 예기에 숨이 턱 막혔기 때문이다.
“진숙!”
“예.”
“지금 즉시 습격조를 모조리 불러들여라.”
“예? 하지만 선발대의 임무가…….”
반문하려던 진숙은 사마도의 살벌한 눈빛에 급히 입을 다물었다.
더 말했다가는 자신의 목이 성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묵검대를 모조리 투입해 놈의 흔적을 쫓는다.”
“알겠습니다.”
그 흉흉한 기세에 진숙이 급히 복명하고 습격조들에게 전서구를 날렸다.
까악, 까악, 까악.
식사를 방해받은 까마귀 떼들이 언짢은 울음을 토해 내고, 싸늘한 묵빛 검광이 세상을 가득하게 채운다.
“반드시 찾아 주마. 어떤 놈인지 찾아서, 껍데기를 벗겨 줄 것이다.”
찰칵.
어느새 빠져나와 있던 사마도의 묵검이 제자리를 찾았을 때, 까마귀 떼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툭, 투툭.
그저 잘게 조각난 까마귀의 사체들이 사방에 널려 귀기를 더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