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67
367화
사마도의 얼굴이 더는 주름지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졌다.
벌써 세 번째.
오 조, 삼 조에 이어 추격조로 편성했던 사십 명의 무인들이 몰살당했다.
그리고 이번엔 죽은 무인을 발가벗기고 그 가슴 살결에 글귀를 새겨 놓았다.
겨우 이 정도인가?
“이…… 개자식이…….”
평정을 유지하려야 할 수가 없다.
분명 놈들은 도망치고 없건만, 마치 귓가에다가 속삭이며 약을 올리는 듯한 기분에 사마도는 분노가 치밀어 머리가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무려 삼백이나 투입해 구축한 포위망이었다.
그런데 수하들 사십을 시체로 만들어 놓고 유유히 빠져나갔다.
이번에도 셋만 남기고.
처음에 놈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뒤쫓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수십이었던 것이,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 어느새 백을 훌쩍 넘었었다.
그런데 본격적인 추격이 시작되자 그 많은 숫자가 갑자기 증발하듯이 사라져 버리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놈들은 정확히 넷이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네 놈에게 묵검대의 무인들이 죄 도륙을 당했다고 했다.
시신에 남은 상흔들도 다양했다.
칼에 당한 시신, 주먹에 당한 시신, 화살에 꿰인 시신…… 그리고 짐승에게 당한 듯 갈가리 찢어져 고깃점이나 진배없어진 시신.
와중에 보란 듯이 흔적까지 남겨 놓았다.
추격술을 익히지 않은 놈도 금세 도망친 방향을 예측할 법한 진한 발자국에, 지나간 자리마다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놓질 않나.
사마도는 정말이지 약이 오를 대로 올랐다.
놈들은 대놓고 흔적을 남기는데 삼백이나 되는 묵검대는 꼬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진숙…….”
“예?”
“묵검대를 두 패로 나눈다. 나는 일 조와 이 조를 이끌고 놈들이 도주한 경로를 우회한다. 너는 사 조와 육 조를 이끌고 흔적을 쫓아 놈들을 몰아라.”
사마도의 명령에 진숙은 바로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대주님, 이럴 때 전력을 나누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놈들의 유인책일지도 모릅니다.”
“…….”
“남겨진 쪽지와 대놓고 남긴 흔적, 게다가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만약 함정을 파고 기다린다면…….”
“그래서?”
“예?”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그…… 일단 물러나 대열을 정비하고 놈들의 계략을 파악한 뒤에 싸우는 것이…….”
슈아악!
한 줄기 섬광의 끝.
어느새 뽑혀 나온 사마도의 묵검이 진숙의 목덜미에 검은 독니를 드러냈다.
“겁이라도 집어먹어야 한단 말이냐? 고작 동천의 잡졸들 따위가 벌이는 수작질에?”
“대, 대주님.”
“유인? 함정?”
“…….”
“놈들이 계책을 쓰는 것은 스스로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면 승부가 어려우니 꼼수를 써서라도 이겨 볼 참이겠지.”
사마도의 눈에서 사나운 안광이 번득였다.
“진숙, 내가 누구냐?”
“…….”
“나는 묵검 사마도다. 아무리 강대한 적을 마주해도 물러나 본 적 없는 전장의 사신이다. 함정이든 유인이든 상관없다. 우리의 전술은 하나. 전진이다. 놈들이 무엇을 준비하든 모조리 부순다.”
진숙은 더 이상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없었다.
악귀가 지옥에서 막 올라와도 저런 눈빛은 아닐 터다.
“적을 두려워하는 놈은 우리 묵검대에 있을 자격이 없다.”
“…….”
“네놈이 묵검의 명예를 더럽힐 생각이라면 결정하라. 지금 베어 줄 테니.”
눈을 희번덕거리며 살기를 내뿜는 사마도의 앞에 진숙이 급히 엎드려 답했다.
“따, 따르겠습니다.”
그 모습을 싸늘하게 내려다보던 사마도가 검을 회수하지도 않은 채 다시금 명을 내렸다.
“오늘 밤 안으로 놈들을 찾는다. 포로는 필요 없다. 찾는 즉시 죽여라. 부대주 진숙은 사 조와 육 조를 데리고 놈들을 추격하고, 나머진 나를 따른다.”
“예!”
묵검대의 외침이 사방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가자!”
두 패로 나누어진 묵검대가 사십여 구의 시신을 남기고 피풍의를 휘날리며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잠시 뒤.
스윽.
외따로 쓰러져 있던 묵검대의 무인 하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죽은 게 아니었나?
“거, 새끼들 추격할 시간도 없을 텐데 더럽게 말 많네.”
삐뚤어진 흑립을 정돈하기 위해 벗은 구(舊) 시신의 정체는 진무였다.
“어쨌든 대충 원하는 대로 되어 가는구만.”
비열하게 웃은 진무가 주변에 쓰러져 있는 시신 몇 구에 지풍을 날렸다.
퓻! 퓨퓻!
가벼운 위력의 지풍에 들썩거리던 시신들이 갑자기 살아나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시체처럼 누워 있던 이들이 막혔던 숨을 급하게 토해 내며 헐떡거렸다.
청상과 청우, 그리고 부온지부장 공생이었다.
“대충 운기조식부터 하는 게 좋을 거야. 강제로 혈도를 막아 둔 터라 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을 테니까.”
“예!”
청상과 청우는 곧바로 좌정하고 앉았으나 공생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뭐 해? 시간이 없다니까?”
“예? 예!”
진무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공생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저앉아 운기에 집중했다.
동천 연맹주, 참으로 희한한 사람이다. 설마하니 혈도를 제압해 강제로 귀식대법을 펼치게 할 줄이야.
묵검대의 추격조 사십을 모조리 도륙한 뒤, 그들은 시체로 위장했다.
적을 유인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활을 든 대궁.
그는 은위단의 조장이다. 그리고 은위단의 주 임무는 적진을 살피고 정보를 파악하는 것.
그들에게 숨어드는 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적진을 이탈하는 법이었다. 혼자서 도망치는 방면으로는 도가 트다 못해 등선을 할 지경이다.
명세찬의 지옥 훈련을 제대로 거쳤다면 적을 도발하는 능력 또한 출중할 터. 고로 절대로 잡히지 않고 약만 있는 대로 올리며 목표한 지점까지 유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진무가 구한 백여 명의 삼동천 무인들은 모종의 장소로 이동해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청상과 청우, 공생이 운기조식을 하는 동안 진무는 묵검대가 사라진 두 곳 방향을 바라보면서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진숙이라는 놈이 물러나야 한다고 했을 때, 귀식대법을 시전 중인 와중에도 벌떡 일어나서 따귀를 때릴 뻔했다.
하마터면 고심해서 세운 회심의 계책이 깡그리 날아갈 뻔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다행히도 대장 놈이 멍청했다.
제 입으로 이름을 말하면서 전장의 사신이라고 하다니…….
손발이 다 말릴 뻔했네.
이전에 찢어 버린 노국태보다도 약한 새끼가 겉멋만 들어서는.
어쨌든 그저 추격만 해 줬으면 했는데 고맙게도 전력을 둘로 나누어 주기까지 했다.
이것이 바둑이었다면 놈들은 돌이킬 수 없는 악수(惡手)를 둔 것이다.
귀식으로 기운을 죽이고 잠시 시체 놀이를 하는 동안 대략의 전력 파악은 끝났다.
대강 삼백여 명.
그것도 조금 전 딱 반으로 나누어졌으니 한쪽에 백오십 정도.
우회한 대장 놈은 오글거리는 성격과는 별개로 제법 실력이 있고 대궁이 만든 흔적을 쫓아 이동한 놈들은…… 그저 그런 머저리들뿐이다.
적생처럼 체계적인 전략 전술을 구사할 수는 없으나 비열함으로 따지면 천하제일인 자신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사냥을 시작할 차례다.
숨이 멎을 때까지 조금씩 목줄을 움켜쥐어 주리라. 위기에 빠진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이 새끼들아.
진무가 사악하게 웃는 와중에 운기조식을 끝내고 체력을 회복한 청상과 청우, 공생이 일어났다.
“정신을 똑바로 챙겨라. 지금부터는 아차 하는 순간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니까.”
“예!”
대답과 동시에 세 명의 무인들이 진무를 따라 자리를 떠났다.
* * *
묵검대의 부대주 진숙은 사마도의 명령을 따르는 중에도 찜찜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모든 상황에서 냉철하게 판단을 내려야 할 수장이 분노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백오십, 적은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많은 숫자도 아니었다.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도주하고 있는 네 놈이 아니라, 사라진 삼동천의 무인 백여 명이었다.
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하지만 뭐가 어찌 되었든, 고민해 봐야 답을 내릴 순 없었다.
이왕 시작된 추격을 멈출 수도 없었거니와, 자신이 물러나면 사마도와 나머지 백오십의 묵검대가 적진에 고립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부대주님, 흔적이 남쪽으로 향해 있습니다. 부러진 나뭇가지의 상태로 보아 약 이각 전에 지나갔습니다.”
이각, 거리를 줄였다.
조금만 더 가면 따라잡을 수 있다.
“이각이면…….”
“객랍입니다.”
“좋다, 우회하신 대주님께 연락을 보내라. 놈을 그곳에서 무조건 잡아야 한다. 놈들은 우리를 함정으로 유인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 전에 차단한다. 서둘러라!”
“예!”
전서구가 날아오르고 진숙의 명령이 각 조장을 거쳐 휘하로 하달되었다.
“어디로 간대?”
“……객랍이라는데?”
묵검 사 조의 맨 뒷줄에서 대기 중이던 무인 목당이 옆에서 물어 오는 동료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분명 같이 들어 놓고 묻기는.
응? 근데 내 뒤에 다른 무인이 있었나?
그러고 보니…… 흑립 아래 드러난 턱이 너무 앳되다. 묵검대에 이렇게 젊은 무인은 없는데?
“흐음, 잘 따라가고 있군그래.”
“응? 뭐?”
“뭐긴.”
푸욱!
“이런 거지.”
“……!”
목당은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자신의 심장을 파고든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
뿌드득.
이어 목줄기를 잡은 손이 가볍게 꺾이자 목당이 눈을 감지도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다.
목당의 명줄을 끊어 버린 것은 다름 아닌 진무였다.
자, 대열에는 합류했고. 일단 혼란을 만들어 적들을 분산시킨다.
일명 ‘늑대가 나타났다.’ 전략.
묵검대에 숨어든 진무가 곧장 전방의 대열 안으로 파고들며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적이다! 적이 대열에 숨어들었다!”
“……!”
그 한마디의 외침이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크악!”
“으악!”
외침이 신호가 된 것처럼 갑자기 좌우에서 비명이 들려오고, 공격을 감행했던 청상과 청우, 공생이 대열을 이탈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놈들이 도망친다! 쫓아라!”
“와아아!”
효과는 훌륭했다.
객랍으로 막 출발하려던 백오십여 명의 대열이 한 번의 공격과 두 번의 외침에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기습적인 공격은 적에게 당황스러움과 혼란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고, 무인들은 도망친 흉수들을 쫓아 갈라졌다.
“이, 이게 무슨?”
각 조의 조장은 조장대로, 무리를 이끄는 부대주 진숙은 진숙대로 당황했다.
“누가 추격을 명했단 말이냐! 명이 있기 전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말라 했거늘! 추격을 멈추고 어서 대열을 정비해라!”
진숙이 다급히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대열이 완전히 흩어져 버린 뒤였다.
벌써 반수 이상이 좌우로 찢어져 숲속으로 사라졌다.
“망할! 조장들은 뭘 하고 있느냐! 어서 병력을…….”
다급히 휘하를 안정시키던 진숙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어느 순간 검은 섬광이 그의 앞에 번쩍하고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혈우(血雨)가 내렸다.
그리고 악마가 찾아왔다.
자신들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똑같은 흑립에 얼굴을 가린 사내.
수하들을 잘라 내고 피와 시신의 길을 만들어 버린 그가 흑립을 벗으며 진숙을 향해 씨익 웃었다.
“이제부터…… 사냥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