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92
392화
진무의 앞을 막은 북리도평은 이학성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참 이상하군요. 마종지로의 관문 시험을 주관하는 것은 육가의 몫일 터인데. 장로부와 원로원에서 도우러 왔을 리도 없고.”
“…….”
“그런데 나도 모르게 교주님께서 따로 명을 내리신 거요? 아니면 교주님의 명이 없었는데도 움직인 거요?”
북리도평의 말에 말문이 막힌 이학성이 침음과 함께 미간을 찌푸렸다.
“그만하고 물러가시오. 이곳은 우리 북리가의 관문이니, 권좌에 오르려는 자는 우리가 시험토록 하겠소.”
싸늘하게 내뱉으며 그에게서 몸을 돌린 북리도평이 진무를 바라보았다.
“그대도 그만 힘을 거두라. 저들은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
생각지 못한 전개에 진무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북리도평을 쏘아보았다.
이 새끼…… 지금 뭐 하는 거지?
같은 편이 분명할진대, 설마 지금 나를 안심시킨 다음 갑자기 공격하려는 건가?
“여기서 모든 힘을 허비할 참인가? 이미 교주님께서 한참 전부터 기다리고 계신다. 그만 힘을 거두고…….”
“북리 문주!”
“…….”
북리도평이 진무를 달래려 말을 건네는 사이 이학성이 크게 외치며 끼어들었다.
“……교주님의 명이 아니오. 이것은 우리의 의지요.”
“의지라…….”
다시 이학성 쪽으로 몸을 돌린 북리도평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명백한 조소였다.
“원로원주께서는 안 본 사이에 간을 꺼내 놓고 다니는 방법을 익히신 모양이오.”
“…….”
“교주님께서 권좌에 도전하는 이를 맞이하기 위해 직접 마종지로의 여섯 관문을 해하셨음인데 그쪽의 의지로 그 관문에 오르는 자를 막는다?”
비꼼이 가득한 목소리에 이학성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어 번 두드리며 항변했다.
“이는 화 문주와 양 문주도 동의한 일이오. 우리는 더 이상의 치욕을 우리의 역사에 남기고 싶지 않소.”
“…….”
그의 항변에 담긴 뜻이 언짢았음일까?
이전까지만 해도 여유로운 기색을 유지하던 북리도평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와 함께 서릿발 같은 기세가 어렸다.
“원로원주.”
“……?”
“무엇이 치욕인가?”
“…….”
“마교가 가진 자긍심을 무너뜨리고, 홀로 고난을 넘어와 자신을 증명하려 하는 자에게 다수를 끌어들여 핍박을 가한 것만큼이나 더한 치욕이 또 있단 말인가?”
차갑게 질타한 북리도평의 목소리가 문득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화 문주와 양 문주의 동의를 얻어 움직였다면, 그들의 권위가 교주님의 위에 있다는 말인가?”
말투가 공대에서 하대로 바뀌었으나 이학성은 그걸 문제 삼을 겨를이 없었다.
그의 말을 긍정하는 순간 교주의 권위를 무시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 그것이 아니라…….”
“닥쳐라. 마교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교주님의 뜻에 반하는 의지는 있을 수 없다.”
“…….”
“너는 지금 세 치 혀로 반역을 말했음이다.”
“북리 문주!”
이학성이 날카롭게 외치며 한 발을 내딛자 북리도평이 본신의 힘을 개방했다.
마치 적을 대하는 듯한 살기가 마기에 뒤섞여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더는 내딛지 않기를 권하지.”
“…….”
위협조의 짧은 한마디와 동시에 관문에서 염인 북리가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말할 것도 없는 북리가의 정예.
이학성은 속으로 깊이 탄식했다.
망할, 일이 어찌하여 이렇게 틀어졌단 말인가?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충분히 진무를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북리도평이 그들을 막아선 이상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뒤는 청화 여가의 무인들이 공격해 오고 있고 앞은 염인 북리가에 의해 막혀 버렸다.
화불유와 양춘백이 무너진 상황에서 육제의 둘이 진무를 두둔하고 나섰으니…….
물론 무리하게라도 싸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이 마교를 외환(外患)이 아닌 내부의 싸움으로 무너지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물며 교주의 명을 어겼으니 반역이라는 오명까지 쓸 것 아닌가.
이학성은 긴 한숨과 함께 내디뎠던 발을 무겁게 물렸다.
“모두…… 무기를 거두어라.”
“원로원주님!”
목등여가 반발했지만, 이학성은 그저 고개를 내저으며 진무를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하늘의 뜻이 너에게 있구나.
“물러나세. 북리 문주의 말이 맞아. 여기서 더 나아가면 우리는 교주님의 진노, 아니 마교의 체계를 스스로 무너뜨리게 됨이야.”
“…….”
나지막한 말에 목등여와 장로들, 원로원의 마인들이 입을 다문 채 얼굴을 굳혔다.
이학성의 결단에 사방에서 솟구치던 살기와 마기가 가라앉고, 진무를 뒤쫓았던 이들은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천산은 패배했다.
약관밖에 되지 않는 단 한 사람의 무위에.
하지만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진무의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은 해결되었다.
다만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의 몸 상태를 봐서는 응당 감사히 받아들여야만 할 상황인데도 가슴 깊숙한 곳에 딱딱하게 자리 잡은 자존심이라는 녀석이 자꾸만 짜증을 부추겼다.
그는 손을 내미는 사람이지, 손을 잡고 부축받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도 이제 그만하지.”
“…….”
마교의 무인들을 물린 북리도평이 진무를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왜?”
“뭐?”
불퉁한 대답에 북리도평은 살짝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진무를 찬찬히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고집스러운 자군. 하지만 그대의 상태를 생각해라. 다른 것은 둘째 치고 그 팔은 서둘러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만.”
“이거?”
북리도천이 시선이 닿자 진무가 시퍼렇게 변해 버린 자신의 팔을 들어 보였다.
비릿한 미소.
진무는 독기에 얼얼해진 주먹을 힘주어 움켜쥐었다.
잔뜩 부어올라 동작 하나하나가 어색할 지경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팔은 내가 알아서 해. 너한테 걱정해 달라고 한 적 없어. 그리고 나는 나의 의지로 걷는다. 너의 도움은 필요 없어.”
“…….”
그 단호한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북리도평은 실소를 지우고 한 발짝 물러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군.”
“…….”
젠장할 놈.
사과가 뭐 이렇게 빨라? 재수 없게.
“하지만 마교의 무인들이 물러난 것은 그대와는 상관없는 문제다. 저들은 마땅히 지켜야 할 교주님의 명을 어긴 것이니, 그대가 도움받았다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군.”
저렇게까지 나오면 할 말이 없어진다. 여러 가지로 짜증 나게 하는 놈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먼저 사과했으니 이쪽도 한발 물리는 수밖에 없다.
허탈해진 마음과 함께 한계까지 끌어 올렸던 선기가 서서히 가라앉아 그 빛을 감추었다.
그리고 멀리 청화의 가문과 함께 진무 일행이 달려왔다.
“사수-욱!”
청상과 청우.
“천주님!”
황신과 아이들.
대궁, 그리고 능서현과 동천주들.
그들은 순식간에 마교 무인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진무의 앞을 막아섰다.
“이놈들! 감히 우리 사숙님을 떼거리로 겁박해?”
청우가 두툼한 주먹을 움켜쥐고 당장에 결전을 치를 듯 가는 눈 사이로 흉흉한 빛을 토했다.
넝마로 변한 옷과 몸 곳곳에 생겨난 상처가 고된 싸움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청우야…….”
“사숙, 물러나 계십시오. 제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저딴 놈들, 사숙께서 가르쳐 주신 칠성권으로 모조리 패대기를 치겠습니다!”
“…….”
청우야, 그게 아니라.
진무의 손길을 뿌리친 청우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마교의 고수들을 향해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이 자세를 낮췄다.
야, 청우야. 제발 좀…….
“뭣들 하느냐! 어서 덤비지 못할까!”
이젠 안 되겠다.
쿵!
“아극!”
참다못한 진무의 주먹이 청우의 머리를 힘껏 쥐어박았다.
“끝났다고, 이놈아.”
“……에?”
“늦게 와서는…… 왜 패악을 부리고 지랄이야.”
“…….”
진무의 짜증에 청우가 제 머리를 움켜쥐고 한껏 억울한 얼굴을 했다.
“사숙, 손이…….”
청상이 걱정스럽게 다가와 진무의 팔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이거? 괜찮아.”
“…….”
괜찮을 리가 없다.
한시라도 빨리 치료를 해야 했지만,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쪽팔리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도 없고.
애써 웃을 수밖에 없었던 진무를 향해 한 줄기 전음이 날아왔다.
[효독가에 해약이 있을 것입니다. 구해 올까요?]“…….”
실로 시기적절한 전음에 진무가 헛기침과 함께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능서현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물러났다.
능서현 이 녀석. 내가 수하 하나는 참으로 잘 얻었다.
“자, 그만 안내하지. 북리 교주께서 이 나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의연히 내딛는 걸음을 따라 천산의 정상을 향하며 혹자는 천산에 도전한 젊은 무인의 몰락을 기원했고, 또 혹자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 * *
천산의 정상.
마교주 북리도천이 오랜 세월 은거했던 거처.
구름이라는 경계에 가려 보지 못한 자들에게 한없는 신비감을 품게 하는 그곳.
하지만 사실 대단할 것 없는 거대한 공터에 불과했다.
마의 하늘이라 불려 온 그 대단한 자가 머물기에는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이는 풍경이었다.
거대한 전각 대신, 몸 하나 뉠 수 있는 한 칸짜리 초옥이 전부였고, 금강석을 반듯하게 깔아 만든 연무장이 아닌 눈이 가득히 쌓여 있는 너른 마당이 있었다.
“이게 마교의 정상?”
“하늘이 머무는 곳?”
오랫동안 품고 있던 신비감을 여지없이 박살 내는 풍경에 청상을 비롯한 중원인들이 저마다 허탈한 감상을 내뱉었다.
“……어서 오시오.”
그리고 어딘가 언짢아 보이는 표정의 사내가 진무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오랫동안 북리도천의 칼로 불려 온 희대의 무인, 염왕대주 마강.
육제와 대등한 힘을 가졌음에도 북리도천의 곁을 단 한 번도 떠나지 않았던 충성의 표상 같은 사내가 바로 그였다.
원한다면 마교의 어떤 이들보다 귀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수수한 검은 무복에 치장조차 하지 않는 저 모습마저 여전했다.
진무의 주위에도 충성을 바치는 이들은 많았으나 원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남의 떡은 커 보이는 법.
특히나 욕심이 남다른 진무는 그를 가진 북리도천을 한동안 질투했었다.
“교주께서 기다리시오.”
“…….”
옆으로 물러난 자리의 끝.
훅 불면 날아갈 듯, 있으나 마나 한 초옥의 담벼락.
싸릿대를 대충 엮어 만든 그 담 안쪽에 놓인 평상 위에 붉은 수염을 기른 노인이 앉아 있었다.
망할 노인네.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춥지도 않냐.
“북리도천…….”
그저 멀리서 시선을 맞춰 오기만 하는데도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재수 없는 눈빛.
저 노인네도 여전한 모양이다.
지금쯤 산공이 왔어야 정상 아닌가? 아니면 병을 얻든가.
빌어먹을 하늘 같으니. 사람의 명을 똑같이 줘야지.
이건 너무 편파적인 거 아닌가?
자신은 팔십 언저리에서 병을 얻어 죽음을 경험했는데.
몸에 좋지도 않은 마기를 둘둘 처감고 있으면서 어찌 저리 팔팔하기가 막 잡힌 생선 같단 말인가?
피부 때깔도 불그스름한 게 한 십 년은 더 살고도 남겠네.
“청하신 것은 그대뿐이오.”
진무가 언짢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동안 마강이 진무의 뒤를 따르는 이들을 막자 어느새 나타난 염왕대의 무인들이 그의 양옆으로 늘어서며 경계를 지었다.
“가시지요.”
마강이 길을 내주자 떨떠름한 표정을 한 진무가 걸음을 내디뎠다.
전 생애 유일한 숙적이여.
내가 왔다.
너를 무너뜨리고 마교의 권좌를 계승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