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98
398화
푸른빛 검광이 유려한 호선을 그렸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모두가 시선을 빼앗긴 순간, 갑자기 나타난 일 획의 선이 북리도천의 신형을 반으로 갈랐다.
“헛!”
연무장 주위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그들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 정도였다.
방금의 공격으로 허리가 잘리고 피가 솟구치는 불안한 미래.
하지만 순순히 당할 북리도천이었다면 진무가 과거에 그리 고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좌우지간 빌어먹을 노인네.
속으로 짧게 욕을 뱉은 진무는 새하얀 미소와 함께 시선을 사선으로 들어 올리며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
콰드득! 콰앙!
아무리 강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연무장 따위가 북리도천의 힘을 이길 리가 없다.
열기를 머금은 붉은 강기가 진무가 서 있던 자리에 다발로 내리꽂혔다.
사방을 울리는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잔해에서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퓨윳!
허공에 넘실대는 먼지를 꿰뚫은 한 줄기 검은 빛이 붉은 화염을 품고 섬광처럼 진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적염제(赤炎帝) 북리도천.
명호가 말해 주듯 쉼 없이 타오르는 불이었다.
강기에 고유의 기운을 담아 사용하는 경지, 함강.
북리도천이 강기에 담은 것은 만년한철마저도 녹여 내는 지독한 열양의 기운이었다.
아직 모든 것을 보이지 않은 지금이니까 화염 정도지, 완전히 드러난 북리도천의 불은 지옥의 겁화보다도 뜨겁다.
과거에도 저 망할 열기가 얼마나 성가셨던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너는 나의 검을 피했으나 나는 피하지 않겠다.
내가 너보다 우위에 있음을 만천하에 보여 줄 것이다.
우우웅! 번쩍!
진무의 손을 떠난 일휘가 진한 검명을 뿌리며 북리도천을 향해 낙뢰처럼 떨어져 내리는 순간, 그의 단전에서 선기와 사기가 치환되었다.
츠츠츠.
푸른빛을 머금었던 진무의 손이 검게 변함과 동시에 응축된 강기가 회오리처럼 모여들더니, 이내 구슬 형상을 띠었다.
묵룡혼원공 천교열.
화염? 까짓것 찢어 주마.
쿠우우우.
용음과 함께 합쳐진 두 개의 강기 구슬이 북리도천이 뿜어낸 화염을 향해 포악하게 쏘아졌다.
쿠아악!
묵룡이 아가리를 벌리고 송곳니를 드러내더니, 이내 불을 집어삼켰다.
불의 강기는 사그라지지 않으려 발악했고, 묵룡은 꽉 다문 입을 절대로 벌리지 않았다.
콰아앙!
폭발하는 불에 묵룡의 몸뚱어리가 찢어졌다.
검은빛을 갈가리 찢으며 드러난 화염의 열기가 사방으로 휘몰아치듯 퍼져 나가고, 이내 세상이 검붉은빛으로 변했다.
쩌저적, 콰아앙!
연무장이 터져 나갈 정도로 강력한 충격파에 멀찍이 떨어져 관전하던 무인들의 몸에 하나둘 상처가 생겼다.
“피, 피해라! 물러나!”
누군가의 외침.
하나 이미 위협을 느낀 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슈아앙! 쩌어엉!
지켜보는 것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싸움이었다.
자아를 가진 듯 살아 춤추는 일휘의 공격에 수세에 몰려 물러나기에 급급해진 북리도천의 눈이 놀란 듯 크게 뜨였다.
천교열.
혁련무강의 독문비기인 저것을 어찌 모를까?
하지만 놈은 제 스승을 뛰어넘고 있었다.
혁련무강조차 튕겨 내는 것이 고작이었던 자신의 화염 강기를 완전히 무력화하다니.
와중에 이기어검까지 펼쳐?
정말이지 밑도 끝도 없는 기괴한 놈이 아닌가.
슈아악!
검붉은 기운을 뚫고 쏘아져 들어온 진무가 지면에 닿을 정도로 낮게 날아와 하단을 노렸다.
상체는 검이, 하단은 놈이.
긴장감에 털이 곤두서고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발끝부터 치고 올라오는 전율.
그래, 이것이다.
자신이 원했던 것.
한 치의 틈만 보여도 목이 달아날 것만 같은 치열한 긴장감이 주는 흥분.
사신의 칼날에 목을 들이민 듯한 그 위험한 상황이 북리도천을 더욱 미소 짓게 만들었다.
놀란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오르고 숨이 가쁜 지금의 위기가 너무도 좋았다.
이런 맹랑한 놈.
아주 기뻐서 춤추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구나.
따아아앙!
적염의 강기를 휘말아 일휘를 후려친 소리가 기쁨의 탄성처럼 울려 퍼지는 순간, 북리도천은 자신의 품 안으로 파고들려는 진무를 향해 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화르륵.
순식간에 북리도천의 발에 모여든 강기가 엄청난 열기를 발산하며 붉게 타올랐다.
염옥(炎獄), 분형보(焚刑步)
콰아악! 쿠우웅!
발이 대지를 짓밟음과 동시에 강렬한 열기를 머금은 화염이 원을 그리며 피어올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거대한 화염이 모든 곳을 불태워 넘실거리고, 불씨를 머금은 잔해가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른다.
북리도천은 순식간에 연무장을 불의 지옥으로 바꾸어 놓았다.
불태워 죽이는 형벌, 분형.
그 안에 갇힌 진무의 모습은 재가 되어 버린 것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북리도천의 얼굴은 조금도 밝지 않았다.
놈의 기운은 여전히 선명하다.
그것도 자신의 곁에.
파앗!
“……!”
무언가 바닥을 뚫고 솟구치는 소리에 다급히 고개를 꺾은 북리도천의 눈동자에 진무의 잔인한 미소와 검게 물든 주먹이 비쳤다.
치이익!
“큽!”
재빨리 고개를 뒤로 꺾었으나 예상치 못한 공격에 반응이 느렸다.
진무의 주먹이 스치고 지나간 턱에 쓰라린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북리도천은 그리 녹록한 상대가 아니었다.
일격을 허용하고서도 집중의 끈을 놓치지 않은 그가 곧바로 진무를 향해 발을 올려 차는 순간.
진무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스쳤다.
후웅!
“……!”
북리도천의 발이 허공을 갈랐을 때, 갈빗대가 으스러지는 것만 같은 묵직한 통증이 찾아들었다.
쩌어어억!
“커억!”
이 순간만큼은 북리도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입을 벌리고 토해 낸 신음으로 진무의 공격에 화답해야만 했다.
그 짧은 고통의 순간에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혁련무강이 그러했던 것처럼 북리도천도 묵룡혼원공을 파훼하기 위해 수없이 노력해 왔다.
놈이 사용하는 것은 투사체라는 기괴한 운신법일 터다.
내공을 사용해 몸의 유연성을 극도로 끌어 올려 인간의 신체가 만들어 낼 수 없는 움직임을 끌어내는 방법.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방금 진무의 움직임이 설명되지 않는다.
초식에 대한 깨달음이나 체술의 뛰어남의 문제가 아니라, 놈은 마치 자신이 어찌 움직일지 예측한 것처럼 대응해 왔다.
어찌 된 일일까?
진무, 그는 분명 자신보다 강하다.
썰매라는 것을 이용해 수련하던 그 모습을 보고 분명히 깨달았다.
자신과 같은 함강의 경지를 이루었으나 내공의 깊이와 그 운용만큼은 자신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승패가 결정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라 할지라도 경험의 한계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했기에.
그 한계는 무공의 고하로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무공이 낮다고 해도 더 많은 전투를 치르고, 생사의 경계를 더 자주 넘어 본 이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전, 진무는 자신의 그 오랜 경험치를 뛰어넘은 움직임을 보였다.
설마 상황에 대한 초식의 응용력이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그럴 리가. 아무리 많은 싸움을 경험해 왔다고 해도 약관의 무인이 팔십 년 이상 살아온 자신의 경험치를 단번에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인데.
“뭘 그렇게 고민해?”
“…….”
생각은 많았으나 그 시간이 길었던 것은 아니었다.
찰나지간에 물러나면서도 북리도천은 다음에 이어질 진무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무는 공격하기는커녕 오히려 멈춰서 자신을 향해 웃고 있었다.
“왜? 허를 찔린 것 같아서 당황스러워?”
“…….”
진무의 말에 북리도천의 눈가가 씰룩거렸다.
멍청한 표정하고는.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지.
진무는 지난 열흘간 썰매를 통해 내공만을 완숙하게 다듬은 것이 아니었다.
북리도천이 육제와 대련을 통해 싸움에 대비해 예리함을 다듬는 동안, 진무는 머릿속으로 과거의 북리도천과 행해진 수많은 싸움을 일일이 되짚어 이기기 위해서 수련했다.
북리도천에게 진무는 새로운 사람이었으나 진무에게 북리도천은 이전에 경험한 사람이니까.
무인에게는 누구나 습관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익숙한 방법으로 행해지는 대처.
그 습관이라는 것을 뛰어넘었을 때 비로소 고수라 불린다.
물론 북리도천 정도 되면 상황마다 다른 대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무공에 대한 깨달음이 깊다.
하나 그는 조금 전 자신의 화염이 찢어짐으로 당황을 맛봤고, 그 당황은 진무를 불태우려 했던 일보가 무력화되었을 때 배가 되었다.
그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고질적인 습관이 나와 버린 것이다.
조금 전의 일격은 그 차이에서 비롯된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북리도천은 아직 제 힘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았다.
말하자면 봐주고 있는 것이다.
“어이, 북리도천.”
“…….”
“적당히 하지?”
진무의 오만한 미소에 북리도천의 얼굴이 더욱 찡그려졌다.
“내가 지금 손발이나 맞춰 보자고 찾아온 것 같아?”
“…….”
“사방에서 지켜보는 놈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힐끗이는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을 때, 둘만의 세상이었던 곳에 주변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부서지고 불타는 연무장의 모습.
그리고 원래 있던 자리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경악한 표정의 무인들.
꽤 먼 거리였음에도 그들의 눈동자에 떠오른 감상이 여실히 느껴졌다.
패배?
모두가 자신의 패배를 점치고 있는 것인가?
북리도천은 떨리는 눈으로 다시 진무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대지에 두 발을 딛고 서서, 어느새 도로 잡은 일휘의 검신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긴 생에 자신의 몸에 상처라는 것을 입힌 두 번째 인물.
“설마하니 그 힘을 꽁꽁 숨겨 둔 채로 아직도 나를 가늠해 보고 싶은 건가?”
“…….”
“대충 보여 줬다고 생각하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상대라는 걸 말이지.”
씩 웃는 진무의 얼굴에 찡그려졌던 북리도천의 얼굴에도 마찬가지로 미소가 번졌다.
“……오만한 놈.”
하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놈.
“내 너를 잘못 보았구나.”
“지금이라도 눈 뜨고 자세히 봐. 내가 누군지.”
“…….”
북리도천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점차 짙어졌다.
놈은 혁련무강이 아니다.
이미 혁련무강을 뛰어넘었다.
“인정하지. 너를 후계자가 아닌 최강의 상대로.”
“…….”
“그리고 마음을 바꾸었다. 나는 너에게 내 자리를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너를 죽여 다시 한번 내가 최강임을 증명할 것이다.”
북리도천이 심연 같은 눈동자에 붉은 화광을 담으며 웃었다.
쿠르르.
“…….”
대지가 떨려 온다.
검은 먹구름이 몰려든 것처럼 하늘이 쿠르릉거리며 울음을 토하고 대기가 괴성을 지르며 비틀렸다.
지상 최강의 괴물이 이제야 비로소 그 큰 눈을 뜨고 자신을 직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피보다 붉은 안광을 토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 모습에 살결이 바늘에 찔리는 것이 따끔거렸다.
그래, 이것이다.
북리도천의 진면모.
진무가 기다렸던 과거의 그 모습.
모든 힘을 이끌어 낸 그는 더 이상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내쉬는 숨으로 대기를 불사르고, 걸음마다 산천을 불태우며 손길에 하늘마저 까맣게 그을리는 존재.
불의 신 축융(祝融).
그것이 바로 그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네가 불의 신이라면, 나는 그 불 속에서 태어나는 주작이 되어 너를 쓰러뜨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