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25
425화
“진무 도장.”
“…….”
제갈협진이 갑자기 무언가 염원을 가득 담고 자신을 바라봤다.
“자네가 영왕 전하를 만나 주게.”
“……제가 왜요? 맹주님도 접견이 거절당했다면서요.”
“우리는 만나 주지 않으나 자네라면 만나 줄 것이네.”
“…….”
“그는 이상하리만치 자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네. 해서 자네가 순천부로 자신을 찾아와 주기를 바랐었지.”
호감은 염병.
비록 진무가 싼 똥이기는 했으나 청상과 청우, 황신과 아이들 등만 입을 다물면 누가 쌌는지 아무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냥 어떤 미친놈이 싼 똥에 불과할 뿐.
그렇다는 것은 애써 나서서 범인이 나요! 라고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런 와중에 똥을 치워 달라고 부탁한다는 것은…… 그냥 부려 먹겠다는 거잖아?
영왕에게 정무맹이 토끼 잡는 개듯이 정무맹도 자신을 사냥개로 쓰려는 것이다.
“자네가 가서 그를 설득해 금군을 움직이는 시기를 늦춰 주게. 그사이 우리는 모든 전력을 동원해 태자를 확보하겠네.”
제갈협진의 말에 진무가 미간을 좁히며 얼굴을 찡그렸다.
모든 전력을 동원한다고?
“천라지망이라도 펼칠 생각입니까?”
“당연하네. 감숙 인근에서 시작해 범위 내에 있는 모든 문파를 동원해야지. 필요하다면 자네의 이름을 이용해서 사패천과 마교도 동원할 생각일세.”
“…….”
이 얌생이가 지금 내가 뼈 빠지게 굴러서 발아래에 둔 애들을 돈 한 푼 안 들이고 써먹겠다고 하는 건가?
젠장, 소정의 사용료도 못 받는 것이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일단은 그리해 주마.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는 판이라 정확하게는 모르겠다만 한 가진 더욱 확실해졌다.
무림이 풍전등화이니 뭐니 하는 건 내 알 바 아니고, 결국 태자를 확보하는 놈이 승자가 되는 것이다.
그럼 더더욱 넘겨줄 수 없지. 위험과 이문은 언제나 정비례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아직까지는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자신이 가장 우위에 있었다.
지들이 쫓고 있는 것이 가짜라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돕는다고 해도 니들이 원하는 방향은 아닐 게다.
상황이 변했으니 계획도 바뀌어야지.
“좋습니다. 그리하지요. 미리 연통을 보내 놓고, 저는 그사이에 영왕을 만나 보겠습니다.”
“저, 정말인가?”
제갈협진과 철지량의 얼굴에 그간의 수심이 씻은 듯 사라졌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자네야말로 우리 정무맹의 희망일세.”
“…….”
저, 저 징그럽도록 벅찬 눈깔 좀 봐라.
무슨 마음인진 아는데 안으면 죽여 버릴 거야.
어쨌든 영왕을 만나 금군이 움직이는 것은 막아 주마.
잘못하면 양진과 그 호위도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진짜 태자를 찾아서 정사마에 이어 황가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설 사람은 다름 아닌 나다.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벌써 가 볼 생각인가?”
“일이 시급을 요하게 되었으니 머뭇거릴 틈이 없군요.”
“그럼 즉시 자네를 도울 사람들을…….”
“필요 없습니다.”
“뭐?”
“저 혼자 갑니다. 언제나처럼.”
“…….”
니들이 숟가락 올리게 놔둘 성싶으냐?
철지량은 몰라도 제갈 얌생이 놈은 절대로 안 된다.
나중에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밥에 국까지 말아 먹으려 할 것이 분명하니까.
검성 철지량. 너와의 승부는 일단 조금 더 미뤄 두마.
찻잔을 단숨에 비우고 일어난 진무는 누가 잡을세라 곧장 맹주의 거처를 빠져나왔다.
“저런…… 저 친구는 언제나 맹을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군요.”
“그러게 말일세. 마교의 일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쉬지도 못하고.”
“지금은 오직 그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지요.”
“뭐라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철지량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제갈협진이 나지막하게 의견을 냈다.
“원체 소박한 친구라 따로 상급을 내려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무당에 포상을 내리는 것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네. 이 기회에 지원금도 대폭 늘리고, 정무맹에 지원하는 무당의 제자들에게 특별 가산점을 부여하도록 하세.”
“옳습니다. 과한 특혜라고 사료되긴 하지만 진무 도장의 업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음.”
“어쨌든 진무 도장 덕에 한시름 놓게 되었으니 저희는 최선을 다해 태자를 확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개로 돌릴 참인가?”
“예.”
“알겠네. 그리 전하게.”
진무가 사라진 뒤에 이루어진 철지량과 제갈협진의 논의 끝에 무당은 더욱더 부를 쌓게 되었고, 가짜 태자로 분한 우양진과 마강의 염왕대는 원하지 않게 더 큰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물론 무당의 청년 가장(?) 진무가 알면 땅을 치면서 후회할 일이었지만.
* * *
정무맹을 빠져나온 진무는 일행들을 향해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서현, 마교에 연락을 보내. 정무맹의 연락에 응해 육가는 물론 동천의 무인들까지 모조리 내보내라고.”
“알겠습니다.”
언제나처럼 능서현은 진무의 명령에 토를 달지 않았다.
“황신, 사패천도 마찬가지다. 천우명과 철검단을 비롯해 사패천의 주력을 모조리 감숙 인근으로 보낸다.”
“…….”
“다만 마교와 사패천 모두 정무맹이 계획한 천라지망의 축을 담당해서 돕는 척만 하고, 실제로는 태자로 분한 양진과 그 일행의 도주를 돕는다.”
“예!”
다소 황당한 명령이었으나 황신 역시도 되묻지 않고 대답했다.
“대궁.”
“예?”
“세찬에게 따로 연락을 보내라. 내가 달포 안에 태자의 얼굴을 봤으면 한다고. 그러니 하오문과 삭월천은 물론 산서상회까지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찾아내라고.”
“다, 달포요?”
대궁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진무를 쳐다봤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북경에서 왕서방 찾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전 중원을 뒤져서 열다섯 먹은 꼬맹이 찾는 일을 뭐 저리 쉽게 말한단 말인가?
일 년을 줘도 부족할 판에 고작 달포, 아니 그보다 빠를수록 좋다니.
하지만 명을 내린 진무가 이미 북동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으니 명을 받은 대궁은 부리나케 뛰는 수밖에 없었다.
“사, 사숙, 어디로 가십니까?”
“순천부.”
청상의 물음에 진무가 짧게 대답했다.
성도로 간다고? 갑자기?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르면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따라와라.
그리고 영왕이든 귀비든 제갈 얌생이 놈의 생각대로기만 해 봐라.
감히 내가 먹으려고 찜해 놓은 먹잇감에 손을 대려 해?
황실의 종친이든 후궁이든 곡소리 좀 나야 할 거다.
* * *
뿌드득.
이 가는 소리가 조용한 전각을 울리자 반은 비웃고 반은 얼굴을 찡그렸다.
일흔두 개의 기둥이 거대한 지붕을 지탱하며 그 내부가 휑하니 뚫려 있는 전각.
자금성의 봉천전(奉天殿).
마땅히 조회가 한창이어야 할 그곳에는 대신들만이 가득했고, 옥좌는 비어 있었다.
“영왕 전하, 폐하께옵서 금일의 조회는 불참하실 모양이니 그만 돌아가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
야비하게 생긴 대신 하나가 조금 전까지 무자비하게 이를 갈았던 영왕을 향해 조소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영왕은 잡아먹을 듯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면서도 달리 입을 떼지 않았다.
빌어먹을 놈들.
몇 번이나 읍하여 얻어 낸 입시이건만, 황제가 귀비의 치마폭에 싸여 자신과의 약속을 잊고 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의도가 뻔했지만 귀비의 거처인 곤녕궁을 찾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록 황제의 진의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태감 위정필이 전한 바에 의하면 아무도 들이지 말라 했다지 않는가?
망할……. 궁에 들어온 지 고작 삼 년밖에 되지 않은 년이 황제의 성은을 입었을 때, 그때 막았어야 했다.
설마하니 황후를 내치고 곤녕궁까지 차지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영왕이 대궁이라는 놈들을 막기 위해 잠시 떠나 있던 사이에, 귀비는 왕직을 이용해 황궁을 조금씩 제 세력으로 갈아 치웠다.
서창을 이용해 충신들에게 반역의 오명을 씌워 내쳤고, 자신에게 협조한 이들을 문무 대신의 자리에 들어앉혔다.
뒤늦게나마 영왕이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면 황궁은 진즉 그녀의 수중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녀를 내치기 위해 영왕이 무수히 많은 의혹을 제기했으나 황제의 비호와 물갈이된 대신들의 두둔으로 제대로 된 조사는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위 태감.”
“예, 전하.”
영왕의 부름에 황제의 명을 전한 대태감 위정필이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언제쯤이면 폐하를 만나 뵐 수 있겠소?”
“제가 그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원하시면 여쭈오리까?”
“그래 주겠소?”
“예, 그리하겠습니다. 하면 돌아가시는 겝니까?”
“더 기다려야 무엇하겠소. 폐하께 긴히 드려야 할 말이 있다 전해나 주시오.”
“알겠습니다, 전하.”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는 위정필을 응시하던 영왕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생겼다.
사례태감 위정필.
황실과 가장 가깝게 지내 왔던 그대만은 믿고 있었는데.
누구보다 황가에 충성을 바쳤던 그대마저 귀비의 수족이 되다니.
귀비에게 이미 간이며 쓸개까지 빼다 바친 그가 곧이곧대로 영왕의 뜻을 전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더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영왕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봉천전을 빠져나갔다.
“전하, 어찌 이리 물러나십니까? 귀비의 생각이야 뻔하지 않습니까?”
“안다. 하나 폐하께서 만나지 않겠다 하신 것을 무턱대고 찾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게 어디 폐하의 진의겠습니까? 지금이라도 곤녕궁으로 가셔야 합니다. 귀비 그년이 무슨 농간을 벌일지도 모르는데.”
휘하의 대신이 투덜거렸지만, 영왕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진의든 아니든 관계없다. 우리마저 황제 폐하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
“걱정 마라. 그년의 뜻대로 흘러가게 두진 않을 것이다.”
영왕이 황제를 만나고자 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오랫동안 찾고 있던 태자의 등장.
은밀해야 할 일이 수면 위로 드러났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것은 귀비의 농간으로 눈과 귀가 가려진 황제뿐이었다.
소문을 듣자마자 금군을 움직이기 위해 입시를 청했는데 한발 늦어 버리고 말았다.
귀비가 이토록 빠르게 움직일 줄이야.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정무맹이었다.
은밀하게 찾아 달라 자신이 그토록 부탁하였음인데 어찌 이리도 부주의하단 말인가?
역시나 무림인들은 믿지 못할 자들이다. 한씨의 무리를 막고 그 세가 약해지면 반드시 처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후의 일. 당장 태자의 문제를 해결하자면 황제의 승인이 꼭 필요했다.
자신의 휘하에 있는 사병들을 움직일 수도 있는 일이나 그리되면 귀비에게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지금은 동창과 서창만이 움직이고 있으나 자신이 움직이면 귀비가 보고만 있지는 않을 터.
귀비 역시 반대의 경우를 염두에 두기에 자신과 황제를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는 자신처럼 황제에게 금군을 청할 수도 없다.
그리하자면 죽은 것으로 처리되어 장사까지 지냈던 태자의 생환 소식을 황제에게 밝혀야 한다.
당연히 황제는 명을 내릴 것이나 명을 받는 이가 영왕의 수족 같은 오군의 좌도독이다.
만에 하나 그 자리에서 그동안 묻혀 있던 황가의 의문사에 관련된 의혹이 불거지기라도 하면 난처해지는 것은 그녀일 터였다.
해서 귀비는 기다리는 중일 터였다. 좌도독을 회유할 때까지.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황제의 눈과 귀를 가릴 것이 분명하다.
“좌도독을 만나야겠다.”
“예, 전하. 행로를 잡겠습니다.”
“음.”
영왕을 태운 교자가 좌도독이 있는 장군부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 그늘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그림자 하나가 전서구를 하늘로 날린 후 은밀하게 따라붙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