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27
427화
순천부 외곽의 한 객점.
평소 손님이 없었기에 접객대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노인 미평은 야밤에 문 열리는 소리에 기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옵……시…….”
파락호 같은 행색의 잘생긴 청년, 어쩐지 냉혹해 보이지만 아름다운 중년 여인, 그리고 두 명의 젊은 도사?
“뭐가 이렇게 좁아?”
“…….”
와중에 사람 하나를 들쳐 멘 뚱뚱한 도사가 한쪽만 열린 문에 투실한 살집이 걸려서 낑낑거렸다.
“휴, 청우야. 메고 있는 사람을 내려놓든지, 문을 둘 다 열든지 하고 들어오면 될 것을…….”
“아! 그런 좋은 방법이.”
“…….”
청상의 말에 청우가 대단한 것을 깨달은 것처럼 웃으며 어깨에 멘 복면인을 바닥에 내려놓고 양쪽 문을 활짝 열었다.
“진작 이렇게 할걸.”
“…….”
청우야. 둘 중 하나로도 충분했단다.
하지만 굳이 가르쳐 주려 하지 말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청운데.
청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진무가 앉은 자리 옆으로 다가갔다.
“어르신.”
“……예!”
어깨에 칼까지 걸치고 아무렇게나 머리를 묶은 불량한 행색이 딱 무뢰배인 진무의 부름에 객점 주인 미평이 재빨리 다가왔다.
아무리 치안 좋기로 소문난 수도라고 해도 저런 독버섯 같은 놈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오랜 삶의 경험상 이런 경우 항상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저런 부류의 놈들은 조금만 거슬려도 객점을 부수고 개지랄을 떠는 법이니까.
“시원한 냉수 한 바가지랑 술 몇 병, 고기 안주 좀 내주십시오. 그리고 잠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가게 좀 비워 주시고요.”
“가게를…….”
쩔거럭.
의아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던 미평은 탁자 위에 무거운 소리를 내며 올려지는 전낭에 급히 허리를 숙였다.
“……속히 준비하겠습니다.”
“…….”
역시 나이는 그냥 먹는 것이 아니다.
허리를 숙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전낭을 채어 물러난 미평이 잠시 후 혼신의 힘을 다해 술과 음식, 그리고 물이 담겨 찰랑거리는 바가지를 가져왔다.
“이 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객점 뒤편의 깊디깊은 우물에서 이제 막 퍼 올린 것으로…….”
“가게는 저희에게 맡기고 잠시 놀다 오시죠.”
짤랑.
“감사합니다!”
진무가 동전 몇 닢을 더 내놓자 미평이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고 기분 좋게 물러났다.
올해는 횡재수가 있으려나?
처음 건네받은 전낭이 묵직한 것이 한 달 장사한 만큼은 족히 될 것 같은 데다, 나중에 건넨 동전은 무려 은자였다.
역시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행색 때문에 파락호인 줄 알았더니 예의 바르기가 함께 온 도사 뺨칠 정도가 아닌가?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공손하게 인사한 미평이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사라졌다.
진무는 만족스럽게 입가를 쓸었다.
자, 이제 장소는 마련되었고. 복면을 쓴 저놈이 뭐 하는 놈인지 좀 알아볼까?
“청상아, 깨워.”
“예, 사숙!”
촤아악!
명을 받은 청상이 진무에게 물바가지를 건네받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자의 복면을 벗겨 얼굴이 드러나게 했다.
푸우!
“으음…….”
능서현의 수고로 시퍼렇게 부어오른 복면인의 얼굴에 청상이 입 안 가득 물을 머금었다가 뱉어 냈다.
그런 정갈한 외모로 저런 더러운 짓거리라니. 그냥 바가지째로 뿌리면 될 것인데.
“으음.”
그래도 효과가 있었음인지 복면인이 앓는 소리와 함께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깨어났다.
그러곤 이내 눈을 끔벅이며 상황을 파악한다.
자신의 앞에 물바가지를 들고 선 잘생긴 도사 차림의 사내와 앉아서 무언가를 열심히 퍼먹고 있는 뚱뚱한 두 번째 도사. 그리고…….
“……!”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던 중년 여인과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맞았던 볼이 화끈거리며 숨이 턱 막힌 복면인이 눈을 부릅뜨고 버둥거리려 했다.
“멍청하긴. 괜한 수고 말아. 점혈도 안 해 놓고 깨웠을까?”
“…….”
말을 건 것은 중년 여인이 아니었다.
그의 앞에 다리를 쩍 벌리고 쪼그려 앉아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양아치?
순간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그 무지막지한 따귀…… 이후에 잡혀 왔다면?
이건 납치다.
자신은 지금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에게 납치를 당한 것이 분명했다.
놈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절대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모두 넷.
이전의 경험을 되새겨 봤을 때, 중년 여인을 상대하는 것은 자신의 실력으로는 힘들다.
대충 느껴지는 기운으로 봤을 때 바가지를 든 잘생긴 도사 놈과 게걸스럽게 음식을 처먹고 있는 돼지 도사 놈도 만만하지 않다.
즉, 자신을 향해 재수 없게 쪼개는 이 놈이 도주의 열쇠다.
다행히도 그리 강한 기세가 느껴지지 않는다.
어째서 앞선 이들과 일행이 된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평범한 것이, 도무지 불량스러움밖에 느껴지지 않는 놈이었다.
젠장, 점혈당하지 않았다면 눈앞에 있는 놈을 방패 삼아서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데.
“독단 같은 게 없는 것을 보면 자결할 생각은 없는 것 같으니 점혈을 풀어 주마. 잘 생각하고 묻는 말에 대답해. 알았어?”
“……?”
점혈을 풀어 준다고?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것처럼 내뱉는 말에 복면인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의아한 와중에 놈의 손끝에서 뜨끔한 느낌이 전해지는가 싶더니, 막혀 있던 기운이 사지백해로 퍼져 나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하더니.
놈의 실력이 모자란 탓에 아혈만 풀어야 할 것을 마혈까지 풀어 놓은 것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한 줄기 빛처럼 찾아온 기회.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멍청한 놈.”
“……?”
슈아악!
조소를 날림과 동시에 섬전처럼 손을 뻗은 복면인은 단숨에 양아치를 제압해 낡은 벽을 뚫고 도망가려…….
후욱!
“……?”
하지만 그의 예상은 물론 뻗었던 손마저 보기 좋게 빗나가며 허공을 갈랐다.
야, 양아치 따위가 어떻게?
자신이 펼친 수법은 일 장의 공간 안에 모든 것을 가둔다는 철쇄압수(鐵鎖壓手)라는 고절한 무공인데 어찌 피한 거지?
운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고절한 수법의 하나인 철쇄압수를 이딴 놈이 피해 낼 리 없었다.
다행히 중년 여인과 도사 놈들이 움직이지 않은 시점.
서둘러 다음 수를…….
“이거 아주 질 나쁜 새끼네? 처음 보는 사이에 죽이려고 살수를 펼쳐? 와중에 반말까지?”
“……?”
처음 보는 사이에 납치한 데다 반말도 지가 먼저 해 놓고 피식 웃는 놈의 목소리에서 언짢음이 역력하게 느껴지는 순간, 중년 여인이 섬전처럼 움직였다.
퍼억! 쿠당탕탕!
“크억!”
발길질에 차여 벽에 거칠게 부딪힌 복면인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꼬꾸라지며 신음을 토했다.
턱, 스으윽.
그러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곧장 능서현에 의해 끌려와 진무의 앞에 꿇려졌다.
“크으윽! 네, 네놈!”
“거참, 또 반말을…… 이해력이 청우만큼이나 떨어지는 놈일세.”
퍼억! 쿠당탕탕!
두 번째 발길질.
끌려온 복면인은 다시 벽에 부딪혔다가 숨을 컥컥거리며 신물을 토해 냈다.
발길질이 뭐가 이리도 아프단 말인가?
온몸에 힘이 빠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장육부가 모조리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도주할 생각이 싹 달아나 버렸다.
“…….”
다시 꿇려 앉혀진 복면인이 양아치, 아니 진무를 이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바라봤다.
촵촵. 으적으적.
간간이 새어 나오는 복면인의 신음을 제외하고는 고요하기 그지없는 객점 마당에 청우의 식탐 넘치는 소음이 가득 울려 퍼졌다.
“청우! 그만 처먹든가 조용히 처먹든가 해라! 시끄러워 죽겠네.”
“…….”
진무의 핀잔에 잘생긴 도사 청상이 퍼뜩 뛰어가서 뚱뚱한 도사 청우의 머리를 쥐어박아 식탐을 자제시켰다.
복면인은 그제야 자신을 납치한 자들의 서열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반말한다.
양아치가 언짢아한다.
중년 여인이 발길질한다.
양아치가 미소 짓는다.
중년 여인이 발길질하지 않는다.
또한, 언짢은 말 한마디에 두 명의 도사들이 잔뜩 쫄은 모습으로 눈치를 살핀다.
고로 양아치가 지금 이곳에서 서열이 가장 높고 무시무시한 놈이다.
무너진 하늘 사이에서 발견한 솟아날 구멍인 줄 알았던 양아치야말로 지옥의 아가리였던 것이다.
젠장…… 높은 놈이면 좀 비싼 옷을 처입든가. 불량스러운 표정이나 짓지 말든가.
상황을 단단히 잘못 파악했던 복면인이 스스로를 자책하며 물었다.
“누, 누구신지?”
한껏 예의 바르게 누그러진 복면인의 말투에 진무가 빙긋이 웃었다.
“진작에 그랬어야지. 어쨌든 좋아. 이제 대화할 준비가 된 모양이니까.”
“…….”
“에헤이, 뭘 그리 긴장하고 그래? 몇 가지 묻는 말에 대답만 잘하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씨익 하고 웃으며 어깨를 두들겨 주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인자한데 어찌하여 소름이 돋아 오르는지 복면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통성명부터 해 볼까?”
“…….”
“이름 말이야. 네 이름.”
복면인은 얼굴을 찡그리며 머뭇거렸다.
도주는 실패했으나 몇 대 맞았다고 묻는 말에 곧바로 대답하기에는 은신자의 마지막 자존심이 용납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참…… 분명히 대답만 잘하면 아무 일도 없다고 말했는데.”
“……!”
진무가 언짢은 표정을 떠올리자 복면인이 급히 중년 여인을 쳐다봤다.
역시 주먹을 움켜쥐고 자신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됐어. 내가 하지 뭐. 너도 저쪽에 가서 요기나 좀 해.”
“예?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 가끔은 몸도 좀 풀어야지.”
“음, 알겠습니다.”
진무의 말에 능서현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 청우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복면인은 청상과 청우의 눈동자에 스쳐 가는 감정에 의아함을 품었다.
심문이 시작되면 함께한 동료로서 응당 무언가 더 알아내기 위해 매섭게 째려보며 위협해 분위기를 달궈야 하는 거 아닌가?
어째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자신을 동정한단 말인가?
꽈악, 휙!
“큭!”
머리 가죽이 통으로 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고개가 젖혀진 복면인이 진무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진무의 눈동자에 담긴 흉포한 광기에 어째서 그의 동료들이 자신을 그리 보았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눈빛만으로 충분하다.
굳이 찍어 먹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지금이라도 대답하지 않으면 자신은 필시 한 줌 똥이 되어 거름으로 쓰일 것 같았다.
“제…….”
짜아악!
“크아악!”
“어어, 반항하지 마. 턱 나간다.”
자상하게 걱정해 주는 말과는 달리 진무의 손은 쉼 없이 움직였다.
짜악, 짝짝짝, 짜아악!
“크어억!”
아프다.
고통스럽다.
자신의 정신을 잃게 했던 중년 여인의 따귀?
지금의 아픔에 비하면 그딴 건 산들바람이 스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놈이 손바닥으로 따귀를 후려칠 때마다 고통이 볼을 타고 온몸의 구석구석까지 펴져 나갔다.
심지어 정신을 잃기는커녕 더욱 또렷해지니 몇 배로 아프게 느껴졌다.
은신자들은 통상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고문에서 견디는 훈련을 수도 없이 한다.
극한까지 몰아붙임으로써 인내력을 기르고 타인에게 절대로 비밀을 발설하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복면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짜악, 짝짝짝짝, 짝짝!
“크에엑!”
그가 오랫동안 받아 왔던 훈련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분근착골보다 고통스러운 따귀질에 견디는 훈련 따윈 겪어 본 적이 없으니까.
“어허! 이 새끼가! 움직이지 말라니까 왜 자꾸 움직여? 손 치워 손!”
빠가각!
“크아악!”
머리카락을 잡은 진무의 손을 뿌리치려던 복면인의 손바닥 뼈가 박살났다.
“이 자식이 그냥 좀 처맞지. 자꾸 다리 움직일래!”
으저적!
진무의 손에 발버둥 치던 무릎 뼈도 힘없이 으스러진다.
이 잔인한 자식아.
이럴 거면 차라리 점혈을 해라. 아프니까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거잖냐, 아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