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52
452화
납작 엎드려 보고를 올리는 서창 멸살조장 어탁수의 모습을 귀비가 부릅뜬 눈으로 내려보았다.
“……급히 뒤쫓았으나 원체 신출귀몰한 놈들이었던지라.”
“…….”
“하지만 심려 마십시오. 놈들이 순천부 외곽으로 도망치긴 했으나 황성에 남아 있는 관원들을 모조리 풀어서 추적하고 있으니 곧 잡아들일 것입니다.”
어탁수가 호언을 하며 이마를 바닥에 처박았다.
“그놈들이 순천부 외곽까지 도주했다고? 하…… 아하하하!”
“……?”
갑자기 귀비가 대소를 터트리는 것이 의아했으나, 함부로 고개를 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위정필의 사가는 확실히 살펴보았느냐?”
“예?”
“강도가 무엇을 노렸는지 제대로 조사를 해 보았어?”
“놈들은 돈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각종 패물이며 문서들을 뒤진 흔적이 가득했습니다. 대태감을 납치해 간 것은 아마도 차후 협상이나 잡혔을 때를 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탁수가 조사한 내용에 자신의 판단을 더해 고했다.
“그래? 강도가 확실하단 말이지?”
“…….”
“다른 흔적은 없었고, 황성에 남아 있는 서창 관원들을 모조리 동원해 놈들을 뒤쫓게 했고?”
“그렇습니다, 마마!”
어탁수가 더욱 고개를 조아리자 귀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하였구나. 아주 잘하였어.”
“……?”
“내 이리도 장한 네게 어찌 상급을 내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귀비의 말에 고개를 조아린 어탁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어탁수는 서창의 일개 조장에 불과했다.
멸살조라는 이들을 이끌고 있으나, 고작해야 적의 숨통을 끊어 놓는 망나니와 다를 바가 없었다.
때론 이유 없이 죽여야 하는 자들도 있었기에 그들은 언제나 어둠 속에 숨어 살아야만 했다.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그림자. 그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참으로 오묘하다.
서창 제독 왕직이 비리에 연루되어 그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왕직 이하 열 명의 조장 중 한 명에게 다음 제독 자리가 돌아갈 것은 뻔한 일이었다.
현재 감숙에 대부분이 파견되어 남은 것은 자신을 포함한 세 명.
고로 지금의 상황은 출세의 기회였다.
어탁수는 반드시 귀비의 눈에 들어 새로운 제독이 되리라 다짐했다.
“자, 고개를 들고 이 술을 받거라. 더욱 충성을 다하라는 뜻에서 내리는 술이니라.”
“마, 마마!”
귀비가 시비에게 받은 술잔을 직접 다가와 건네자 어탁수가 황송함을 금치 못했다.
“괜찮다. 어서 마시거라.”
“속하, 마마께서 내리신 귀하디귀한 술 남김없이 마시겠나이다!”
“암,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말고.”
귀비가 고개를 끄덕이자 어탁수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고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다가선 것이다.
다른 이들보다 한 걸음 빠르게 제독의 자리를 향해서…….
“멸살조장 어탁수.”
“……예, 마마?”
귀비의 물음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바로 한 어탁수는 불현듯 느껴지는 이질감에 흠칫 놀랐다.
이런 얼굴이었나?
이리도 싸늘한 미소였나?
“위정필이 강도에게 납치를 당했다고?”
“그, 그렇습니다.”
“이상하지 않으냐?”
“…….”
“위정필의 사가는 순천부의 중심부에 있다.”
점점 더 싸늘해지는 귀비의 표정에 어탁수는 더럭 불안해졌다.
그녀의 눈빛에 스치는 저 차디찬 살기는 도대체……?
“통령이 파면되었다고는 하나 순천부를 지키는 군사의 수가 일만을 헤아린다. 밤새 순찰을 도는 군병만도 이천이니라. 하물며 순천부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의 높이가 십여 장에 달하는데 강도가 들어?”
“…….”
“하물며 그 많은 군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경계를 뚫고 성벽을 넘어 순천부 외곽으로 도주했다고?”
“마, 마마?”
“참으로 멍청하구나. 어떤 미친 강도가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
“네놈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알 수 있었을 것인데…….”
귀비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스르릉.
그녀가 뻗은 손이 어탁수의 허리춤에 매어져 있던 검을 뽑았다.
하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몸이 꿈쩍도 하지 않는 탓이었다.
어째서? 평생 무공을 수련해 온 내가……. 설마 조금 전 마신 술에?
“상급은 염라대왕에게 받거라.”
“…….”
귀비가 양손으로 들어 올린 어탁수의 검이 햇살을 받아 섬뜩하게 빛났다.
제기랄…….
푸욱!
자신이 내디딘 한 발자국이 출세가 아닌 저승의 입구로 향하는 걸음임을 몰랐던 어탁수는 그렇게 죽었다.
자신의 검에 목이 찔려, 귀비의 발치에 고꾸라진 채.
어탁수의 시신에서 흐른 피가 바닥을 적시는 모습을 감상하듯 내려다보던 귀비의 눈에 살기가 들끓었다.
“진무…….”
놈이 분명했다.
영왕과 결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속인 채 자신에게 접근한 뒤, 그동안 황궁에 깔아 둔 자신의 수족을 모조리 잘라 내었다.
육부, 내각, 왕직에 이어 이제는 위정필까지.
자신을 압박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더불어 섣부른 행동을 유발할 속셈이겠지.
왕직이 잡혔다면 황자들의 죽음에 관련된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고, 거기에 위정필까지 확보하면 환관과 시비를 통한 수많은 증거까지 손에 쥘 수 있을 테니.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꼬리는 잘라 버리면 그만이다.
왕직이나 위정필이 무엇을 토설한들 자신과 관련된 증거는 모두 지웠다.
그 때문에 영왕조차도 의심을 했을 뿐, 자신에게 올가미를 씌우지는 못했던 것 아닌가.
영왕과 결탁했다면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
놈이 지금까지 해 온 것은 대체 무엇을 노리기 위함일까?
그들의 목적.
수족을 모조리 잘려 버린 자신이 취할 행동.
고심을 거듭하던 귀비의 눈가가 씰룩거렸다.
“이런 맹랑한 놈. 내가 황제를 이용하기를 기다리는구나.”
정황상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었다.
놈은 위기에 처한 자신이 황제를 움직여 대전 회의를 열기를 기다리는 것이 분명하다.
그 자리에서 자신을 옭아매려는 것이다. 그만한 무언가를 찾아내었다는 뜻이고.
“그렇단 말이지. 오냐, 네놈의 뜻대로 움직여 주마. 하나 알아야 할 것이다. 네놈이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황가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귀비의 눈동자에 새파란 독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 * *
“대전 회의라고요?”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영왕이 꺼낸 말에 진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귀비가 예상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정필을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은 지 불과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위정필이 진무의 수중에 있다는 사실은 영왕도 알고 있었다.
이미 위정필의 사가에 강도가 들었고, 그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이 순천부에 파다하게 퍼졌으니까.
속일 수는 없었다.
진무는 그 모두가 귀비를 내쫓기 위함이라 설명했고, 영왕은 두말없이 받아들였다.
물론 진무의 손에 태자도 같이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지만.
“폐하께서 직접 명을 내리셨다고 하네. 만조백관 모두를 불러들이셨네. 이번에 비리 감찰을 통해 공적을 세운 자네와 자네의 수하들까지 말이야.”
“…….”
영왕이 신이 난 얼굴로 말했지만 진무는 침착했다.
귀비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빨랐다. 한 열흘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어쨌거나 자신의 노림수에 완벽하게 걸려들었다고 봐야겠지.
이로써 끝났다.
스스로 내가 만들어 놓은 함정으로 걸어 들어왔으니 어디로든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네년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 주마.
“알겠습니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아주 후련하네. 황실을 어지럽히던 귀비와 그 일파를 쳐 낼 수 있게 되었으니……. 어떤가, 황자들의 죽음에 관련하여 왕직과 위정필이 토설하던가?”
영왕이 무척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지만, 그에게 모든 것을 보여 줄 필요는 없었다.
태자가 자신의 손에 있는 이상, 귀비를 치고 나면 그 역시 같은 운명이 될 테니까.
“아직입니다. 하나 대전 회의가 열릴 때까지는 모든 것을 명명백백하게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자네만 믿겠네.”
영왕이 진무의 손을 굳게 잡았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진무는 거처를 나서는 영왕을 문밖까지 배웅했다.
그리고, 영왕이 떠난 자리에 은위단의 부단주 외목이 위정필과 태자를 데려왔다.
“자, 이제 시작이군요. 대태감과 전하께서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할 것입니다.”
“…….”
진무가 환하게 웃었으나 태자와 위정필은 어딘가 불편한 듯 표정이 밝지 않았다.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진무 도장.”
“예?”
위정필의 무거운 부름에 진무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 그 대전 회의에 전하를 앞세우실 생각이오?”
“그야 당연히…….”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위정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태자의 얼굴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것들이 갑자기 왜 이러지?
지들 목숨을 노렸던 귀비를 쳐 낼 수 있다는데 기뻐서 춤이라도 춰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진무 도장, 내 듣기로 이미 돌아가신 황자들의 사인이 밝혀졌다 들었소.”
“…….”
“그 모든 죽음에 귀비와 왕직이 관련되어 있고, 궁이라는 세력까지 관련되었음이 명명백백하니 그것만으로도 그들을 단죄할 수 있지 않소.”
“…….”
“필요하면 내가 가진 정보까지 내드리겠소. 원한다면 내가 직접 대전 회의에 참석하여 귀비의 잘못을 밝히는 증인이 되겠소.”
어째 분위기가 요상하다.
위정필이 자신을 설득하려는 것 같지 않은가?
“전하에 대해 알고 계시오?”
“…….”
침울함이 뚝뚝 흘러내리는 표정과 목소리에 진무가 태자를 슬쩍 바라보았다.
“모후의 죽음을 목도하고도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분이시오. 삶을 연명하기 위해 그 습한 곳에서 몇 년을 숨죽여 살아오신 분이라오.”
“…….”
“목숨을 노리는 귀비, 숙부이면서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영왕. 전하께선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들에게 이용만 당하시는 꼴이오.”
“아니, 그래서 지금 그들을 모두 처단할 계획을…….”
진무가 차분히 반박하려 했지만 위정필이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전부인 것 같소?”
“……뭐?”
“제이, 제삼의 영왕과 귀비가 나타날 것이오. 결국 전하는 황궁이라는 닭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겠지.”
“…….”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래서 다 된 밥에다가 재를 뿌려야겠다, 뭐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그대를 선택한 것은 전하를 보위에 올리려 한 것이 아니었소.”
“…….”
“그대라면 전하를 자유로운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오.”
설득을 넘어 애원하듯이 말하는 위정필의 모습에 진무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전하께서도 원하고 계신다오. 형제자매, 아니 부모조차도 외면해야 하는 이 삭막한 황궁에서 벗어나기를…….”
“…….”
“부탁이오. 전하를 데려가 주시오. 혈육조차도 의심해야 하는 권력자들의 전장을 떠나 천하를 자유로이 활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묵묵히 듣기만 하던 진무가 태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안 그래도 제대로 먹지 못하여 앙상한 그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왜소해 보였다.
또한 그의 눈에는 처음 만났을 때의 정광이 아니라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떠올라 있었다.
같은 마음인 것이다.
하긴, 아니라면 위정필이 저딴 말을 내뱉을 때 화를 내었어야 했다.
태자라는 위치.
양진과 같은 나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이 짊어지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운명.
안다, 아는데.
“지랄하고 있네.”
“……?”
진무는 입술을 비틀며 원색적인 욕설을 내뱉곤, 무섭게 치켜뜬 눈으로 위정필이 아닌 태자를 쏘아보았다.
“도망치게 해 달라고? 떠나고 싶다고?”
“…….”
“아주 지랄이 풍년이야. 그딴 녀석인 줄 알았으면 데려오지 않아도 될 뻔했네.”
“그, 그게 무슨?”
별안간 태도가 바뀌어 버린 진무의 모습에 위정필과 태자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야, 너 하나에 목숨을 거는 놈들이 몇인 줄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