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63
463화
무당으로 돌아온 진무 일행은 충허암에 거처를 잡았다.
명진이 여전히 그곳에 기거하기 때문이었다.
원래의 충허암이라면 일행 전부가 묵기에는 다소 비좁았을 것이나, 오룡궁이 지어진 이후 충허암 또한 증축되어 다 들어가고도 오히려 공간이 남았다.
모처럼 돌아온 진무로 인해 밤새 술을 마셨기에 충허암에 기거하는 이들은 새벽이 되어서야 잠을 청했다.
그리고 어슴푸레하게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
송송송, 탁탁탁.
촤아악, 지글지글.
도마 위를 현란하게 누비는 칼 소리가 울려 퍼지고, 커다란 철판 위에서 기름기를 한껏 뽑아낸 고기가 야채와 어우러지는 향이 새벽 안개를 타고 충허암 전체를 휘감았다.
“킁, 킁킁…….”
세상모르고 자던 청우가 잠결에도 본능적으로 코를 벌름거렸다.
꿀꺽.
군침이 절로 돌게 하는 냄새에 청우는 몽유병 걸린 사람처럼 자던 그대로 몸을 벌떡 일으켜 멍하니 걸음을 옮겼다.
향은 점점 더 짙어지고, 귓가에 들리는 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그리고 드디어 그 근원에 다다르자.
따악!
“아극!”
불이 번쩍 나는 느낌에 청우가 양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눈을 부릅떴다.
“이게 어디서 꼬나봐?”
“…….”
그럴듯하게 앞치마를 두르고 한 손엔 식칼, 또 한 손에는 제 팔만 한 국자를 든 당세령이었다.
“침 안 닦아? 이걸 확!”
“네, 넵.”
당세령의 말에 청우가 급히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냄새가 너무 맛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침을 흘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가?
아직 해도 안 뜬 새벽부터 그녀가 요리를 준비하다니……?
“아침은 오룡궁에서 준비할 텐데 뭐 하러 직접……. 그런데 요리는 할 줄 아십니까?”
청우가 맹하게 묻자 당세령이 식칼을 슬쩍 들어 올리면서 서늘하게 웃었다.
“우리 청우가…… 쓸데없이 말이 많으면 일찍 뒈진다는 걸 아직 잘 모르는구나?”
“…….”
다른 건 모르겠고 나는 일류 숙수급으로 요리당할 수도 있겠구나.
소름이 바싹 돋은 청우는 몸을 부르르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사숙모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알고 있다. 본인 입으로 아니라 했으니까.
그런데 정말 변화막측한 여인이 아닌가.
얼마 전까진 요조숙녀 같더니만 지금은 또 처음 만났을 때의 미친 성격 그대로니, 대체 뭐가 진짜 모습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음식 떠 놔라. 나는 가서 명진 사부님 모셔 올 테니까.”
“……”
아니, 명진 사조님이 언제부터 당신 사부?
그리고 왜 당신이 모셔 와?
라고 묻고 싶었으나 더 물었다간 왠지 자신에게 크나큰 불행이 닥쳐올 것만 같은 기분에 청우가 잽싸게 철판 앞으로 가 그릇에 음식을 담기 시작했다.
그사이 명진의 방 앞으로 다가간 당세령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사부님, 기침하셨는지요.”
“…….”
세상 고운 목소리로 예를 갖춘 부름에 의관을 정제한 명진이 방문을 열었다.
“당 소저께서 이른 시간에 어쩐 일이시오?”
“아침을 준비하였습니다.”
“허허, 당가의 금지옥엽께서 직접 말이오?”
“예, 사부님. 밤사이 과음을 하신 듯하여 위에 부담스럽지 않도록 준비하였습니다.”
곱게 웃으며 답하는 당세령은 또다시 예의 요조숙녀로 돌아가 있었다.
“호오!”
밖으로 나온 명진이 충허암을 가득 채운 음식 냄새와 열심히 식사 준비 중인 청우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청우 네가 벌써 일어났느냐?”
“예, 저를 도왔습니다. 모처럼이라 그런지 아주 열심이더군요.”
“허허, 그래요.”
“…….”
냉큼 선수 친 당세령의 대답에 명진이 따뜻한 눈길로 청우를 바라보았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소. 본산을 찾아온 손님께 대접을 하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받게 되었으니…….”
“괘념치 마시고 자리하시지요. 모처럼 준비한 음식이 식습니다.”
“허허, 그럽시다.”
공손하고 다소곳하기 그지없는 당세령의 모습에 명진이 흐뭇하게 수염을 쓸며 자리에 앉았다.
“다른 아이들은?”
“진무 도장이 아침 일찍 훈련을 지도한다며 오룡궁으로 올라간 탓에 청우 도장을 빼곤 모두 따라갔습니다.”
“허허, 벌써 말이오? 원, 녀석도. 이 사부를 깨우지 않고. 어찌 그리 사문을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한지……. 하루를 채 쉬지 않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명진이 청우를 불렀다.
“청우야.”
“예?”
“먼저 손님께 감사를 드리거라. 마땅히 대접을 받아야 하실 분이 우리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셨지 않느냐?”
“…….”
청우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당세령이 부끄럽다는 듯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거렸다.
“별말씀을요. 그저 먼저 일어났기에…….”
“원, 마음씨까지 이리도 고울꼬. 암황께서 자식 교육을 참으로 잘하신 게지.”
“과찬이세요, 호호.”
“…….”
둘을 지켜보던 청우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체 이건 무슨 해괴한 짓거리란 말인가?
그녀의 개또라이 같은 성격은 일행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욕설은 심지어 황신에게도 뒤지지 않는 그녀 아니던가.
조금 전만 해도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눈을 부라리더니…….
“사조님. 무슨 오해가…….”
“어맛! 청우 도장, 부족하지 않으세요? 제가 더 많이 드려야 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청우가 명진에게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데 당세령이 퍼뜩 끼어들어 명진을 등지고 섰다.
[야, 돼지. 아가리 닥쳐라. 확 가로세로로 찢어 버리기 전에.]“…….”
귓가를 강타하는 당세령의 표독스러운 전음과 당장에 누구 하나 죽일 것만 같은 눈빛에 청우가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청우야? 방금 그게 무슨 소리냐?”
“예? 뭐, 뭐가요?”
“아니, 아까 분명 무슨 오해가 있다고…….”
“제가요? 언제요? 그럴 리가요?”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고개를 맹렬히 내젓는 청우를 바라보던 명진이 피식 웃으며 당세령에게 자리를 권했다.
“원, 녀석. 싱겁기는. 당소저도 이리 앉으시오. 함께 듭시다.”
“그럴까요? 호호호.”
냉큼 대답한 당세령이 명진의 옆에 앉았다.
너무나도 다소곳하게…….
“아니 이런! 허허, 이거 참, 이런 맛을 내다니. 요리를 참으로 잘하시는군요. 내 오늘 입이 호강하겠소이다.”
“과찬이세요, 호호!”
“…….”
저 가증스러움의 끝은 어디일까.
청우는 당세령이 대체 왜 저러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민은 잠시. 누가 뭐래도 식욕 지상주의인 그답게 서둘러 입에 음식을 욱여넣기 시작했다.
당세령은 그런 둘을 바라보며 속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당가에 잡혀간 뒤 자신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깨달았다.
진무를 직접 노려서는 안 된다.
그 개떡 같은 성격을 자신이 맞출 수 있을 리도 없다.
해서 생각했다.
진무 공략법.
일단 주변부터 찬찬히 살펴 올가미를 만든다.
해서 다시 만났을 때 최대한 참하게 굴면서 주변인들에 대해 파악했다.
도움이 될 놈들과 되지 않을 놈들.
하지만 자신에게 도움이 될 가장 유력한 인물이라 생각했던 청상은 가만 보니 순 개털이었다.
그래서 결국 가장 먼저 선택된 것이 항상 붙어 다닌다는 황신이었다.
그리고 무당에 왔을 때 알게 되었다.
진무의 스승, 명진.
세상 잘난 척을 해 대는 진무가 유일하게 예의를 다하는 그의 마음을 얻으면 진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궁과의 전쟁?
그딴 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제부터 무당에 머물며 무조건 그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시간은 좀 걸릴지도 모르지만, 결국 승리는 자신의 것이 될 터였다.
“스승님, 이것 좀 더 드셔 보세요.”
당세령이 명진의 그릇이 비자마자 새로운 음식을 잽싸게 채웠다.
“허허, 당 소저께서는 배려심도 많구려.”
“별말씀을요. 좋아하시는 차도 우려 놓았으니 식사가 끝나는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헛헛헛! 감사히 들겠소이다.”
명진의 너털웃음과 함께 당세령의 음모는 조금씩 승리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 * *
“뭐지? 왜 오한이 들지?”
이른 새벽부터 오룡궁에 오른 진무가 한기가 드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새벽 공기가 쌀쌀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런가?”
하긴, 그럴지도.
딱히 내공으로 추위를 막지 않는 진무였다.
만독불침에는 올랐으나 아직 한서불침까진 아닐지도.
어쨌든 불 꺼진 오룡궁을 바라보던 진무가 한심하다는 듯 인상을 팍 찡그렸다.
“하! 이 새끼들이…… 무당의 미래? 이 시간까지 처자빠져 자는 놈들이 무슨 놈의 미래야?”
“…….”
진무의 빈정거림에 뒤에 있던 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시간이라니?
아직 새벽닭이 홰도 치지 않았으니 자는 것이 당연한데.
하지만 진무가 그렇다는데 감히 반박을 시도할 미친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청상!”
“예!”
진무의 부름에 청상이 자신의 손에 들린 징을 높이 쳐들고 힘차게 때렸다.
징! 징징징! 지이이잉!
연거푸 울리는 징 소리와 그에 못지않은 청상의 우렁찬 외침이 오룡궁의 새벽을 깨웠다.
“새벽 수련을 시작한다! 오룡궁의 제자들은 속히 연무장으로 나오너라!”
제법 웅혼한 목소리에 진무가 흐뭇하게 웃었다.
우리 청상이가 그사이 내공이 제법 늘었구나.
그래, 너 같은 녀석들이 우리 무당의 미래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만고의 진리도 모르는 저 게으른 것들은 그저 식충이지. 쌀벌레야. 암, 그렇고말고.
무당을 위해서라도 내 반드시 저 무익한 것들을 쫓아낼 것이다.
“하나, 둘…….”
진무는 첫 징이 울린 순간부터 나지막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사이 목소리를 듣고 일어난 몇 놈이 잠이 덜 깬 표정으로 쭈뼛거리면서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열.”
진무는 딱 열까지만 세었다.
옷 입고 튀어나오는 데 그 정도면 충분했다.
“각출아.”
쉬이이이!
몸에 새겨진 습관이란 무서운 법이다.
천산설묘의 뼈다귀를 움켜쥔 각출이 엄청난 속도로 오룡궁을 향해 달렸다.
“황신아.”
“예!”
“제대로 조져.”
뒤이어 황신의 모습이 사라지고…….
“서현. 죽이진 말고, 음…… 탈골 정도는 괜찮다.”
“……!”
파팍!
능서현이 뛰어들었다.
그 후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콰직, 콰지직! 퍽퍽.
“꾸에엑!”
“꾸에에엑!”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쏟아지는 구타에 곤히 잠들어 있던 오룡궁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먼저 튀어나왔다가 눈이 휘둥그레진 제자들에게 다가간 진무가 스산하게 말했다.
“자, 수련을 시작하지.”
“…….”
* * *
지옥 같은 열흘이 지났다.
오룡궁에서 수련이 시작되었다는 일을 무당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효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파문해 주십시오!”
“…….”
잔뜩 모여들어 무릎을 꿇은 오룡궁 제자들의 비장한 외침에 명공이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왜 갑자기 잘 있던 제자들이 새벽 댓바람부터 영웅궁에 찾아와서 파문 타령을 한단 말인가?
원래 파문이라 함은 무인에게 엄청난 오점이 되는 일이었기에 당하는 쪽에서 요구하는 일은 없었다.
“대관절 무슨 일이란 말이냐? 어찌하여?”
평소라면 엄히 꾸짖어 오룡궁으로 돌려보냈겠지만,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필경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긴 명공이 설명을 요구했다.
“더는, 더는 못 견디겠습니다. 어흐흑!”
“…….”
“정말 죽을 것 같습니다, 엉엉……!”
순식간에 영웅궁 앞마당이 통곡으로 가득 찼다.
“이게 대체 무슨…….”
“사부님.”
“응?”
“보아하니 근래 오룡궁에서 행해지고 있는 수련 때문인 모양입니다.”
“수, 수련?”
“이미 들어 보셨지 않습니까? 아침마다…….”
“아! 들어 보긴 했다만…… 아무리 그래도 수련인데.”
진무가 직접 삼대제자들의 수련을 지도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은 뒤였다.
이미 장문인과 장로들이 허락한 일이기에 아무도 오룡궁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무리 수련이 가혹하다 한들 다른 이도 아니고 무당지검이 직접 수련을 한다는데 누가 그 일에 왈가왈부한단 말인가?
“어허, 이놈들 수련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이리 떼로 찾아오면 어찌한단 말이냐?”
“…….”
“무당지검이 다 생각이 있어서 너희들에게 시련을 내릴 터인데.”
명공이 짐짓 꾸짖듯이 말하자 가장 앞에 있던 삼대제자가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애처롭게 말한다.
“……팹니다.”
“응? 패?”
“예. 패요. 늦게 일어난다고 두들겨 팹니다.”
“아니, 그럼 좀 더 빨리 일어나면 될 일…….”
“시간이 자꾸 당겨집니다.”
“…….”
“밥을 빨리 안 먹는다고 패고, 초식이 틀렸다고 패고, 뭐든 걸리는 족족 패고 봅니다. 도저히 못 버티겠어요. 너무 아픕니다. 이러다간 도사가 되기도 전에 죽을 것 같습니다. 으흐흑…….”
제자의 말에 명공이 미간을 찌푸렸다.
수련에 허투루 임하거나 따르지 못하면 합당한 선에서 체벌을 가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지, 진무가 직접 팬단 말이냐?”
“아니요.”
제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했다.
“뼈다귀 든 놈이랑, 욕하는 놈이랑, 탈골 전문가가요.”
“……?”
뼈다귀랑 욕은 그렇다 치고…….
무, 무슨 전문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