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64
464화
진무의 수련은 오룡궁을 넘어 무당 팔궁 전체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다시 열흘이 지났을 때, 무려 절반에 달하는 삼대제자들이 파문을 청해 왔다.
통상적인 경우, 파문이라 하면 내공을 폐하고 근맥을 잘라 무당이 전한 모든 것을 거두어야만 했다.
잔인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절차였다.
하지만 삼대는 달랐다.
그들은 아직 무당의 기초공만을 수련한 상태였고, 도적에도 완전히 이름이 올라가지 않았기에 원한다면 언제든 떠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도망치듯이 떠나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침까지 뱉고 두 번 다시 무당산 방향으로 오줌도 싸지 않겠다 하는 그들을 탓할 수도 없었다.
다만 삼대제자들이 확 줄어든 탓에 손에서 떠났던 일거리가 도로 돌아와 쌓이기 시작한 이대제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지금 궁이 문제가 아니었다.
천재(天災)를 능가하는 인재(人災)가 평온했던 일상을 파괴한 것이다.
고작 한 달여 만에.
하지만 장로들도 일대제자들도 대놓고 말하진 못했다.
진무가 아니었다면 무당이 지금 같은 고민을 할 수조차 없었을 테니까.
어쨌든 제자들 사이에서 여론이 너무나 악화되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장로들이 청원했고, 명현은 결국 진무를 불러들였다.
* * *
“하아…….”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쉰 명현이 진무를 쳐다보았다.
장로들도 마찬가지였다.
진무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니, 사람을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왜 쳐다만 보고 있어.
기껏 대답 준비한 사람 답답하게.
지루함에 진무가 몸을 조금씩 뒤틀 지경이 되어서야 명현의 입이 열렸다.
“진무야.”
“왜요?”
“…….”
왜냐니.
이 사태를 초래한 당사자가 제일 상황을 잘 알 것 아닌가.
뻔뻔…… 아니 당당한 것도 정도가 있지. 당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 동그랗게 뜨고 대답하면…….
“하아…….”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누구보다 무당을 위해서 헌신해 온 진무가 아니던가?
그가 아니었다면 고작 삼 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무당이 다시금 무림의 중심으로 성장하는 일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을 터였다.
그런 진무에게 수련을 좀 심하게…… 아주 심하게 패기도 해 가면서 시켰다고 야단을 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무당파의 무리한 확장에 따른 문제점은 명현도 인지하는 부분이었으니까.
무릇 도가의 깨달음과 무공이라는 것은 하루 이틀 수련한다고 성취를 보이지 않는다.
오랜 참선과 고행을 거치고 나서야 결실을 맺는 법이다.
하지만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진무로 인해 무당이 다시 명성을 회복하면서 세력권이 급속도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무당과 함께 단강구를 양분하던 제갈분가가 철수했고, 단강구 이외 지역에서까지 무당에게 기대려는 이들이 매일같이 해검지에 줄을 잇고 있었다.
하지만 무당이 기존에 보유한 제자들로는 그 많은 지역을 관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그래서 제자가 늘어나는 것을 막지 않았던 것인데…….
“진무야.”
“예.”
“수련 방법이 심히 과하기는 하였다만 네게도 생각이 있었을 터. 네 생각을 말해 보거라.”
“……예?”
명현이 한숨을 멈추고 차분히 말을 건네자 따끔한 질책을 기대했던 진무가 당황했다.
아니, 갑자기 그렇게 부드럽게 나오면 어쩌냐?
수련 방법이 어쩌고 할 것을 대비해서 세세히 따져 물을 말도 다 생각해 뒀는데.
“어떤?”
“허허, 이 녀석아. 내 너의 마음을 모를 것 같으냐?”
“……?”
“우려한 것이겠지.”
명현의 말에 불만이 가득했던 장로들이 하나같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무분별하게 제자를 늘려 무당이 모래성을 쌓을까 걱정이 되었던 게야.”
“…….”
명현의 말에 진무가 눈만 끔벅거렸다.
오해다. 그냥 돈이 아까웠다.
하지만 명현의 말은 진무의 본심과는 다르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릇 하나의 세력이 성장할 때 사람만 늘어난다 하여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놈 저놈 받아들이고 나면 오히려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 그 뒤치다꺼리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또한, 완숙한 경지의 무인이 아니라면 외부에서 오히려 무당이라는 이름을 더럽힐 수도 있는 일이고.
“네 걱정을 안다. 하나 나나 장로들 역시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단다.”
“…….”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닌가? 이리 무턱대고 제자들의 수만 늘린다 하여 무엇이 달라지는가? 하지만 찾아온 기회를 모른 척해야 하는가?”
일파의 장문인으로서의 고뇌가 깊이 느껴지는 말에 진무가 쓴웃음을 지었다.
말하라고 해 놓고는 지가 고민하고 지가 전부 답한다.
진무가 봐 온 명현과 장로들은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니 무욕하기로 치면 중원제일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그들도 도사이기 이전에 인간이었다.
오랫동안 봉문하다시피 해 온 무당이었기에 손을 내밀어 오는 이들의 관심과 바람에 부응하고 싶었을 것이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무당의 가르침으로 세속적인 마음을 가리운 채.
“허허, 내가 눈앞의 이득에 탐심이 동했던 것이지. 아직 갈 길이 먼 것이야. 무량수불…….”
“무량수불…….”
명현의 선창에 장로들이 자책하듯이 도호를 뇌까렸다.
젠장, 왜 그렇게 씁쓸하게 웃는 거냐. 다들…….
사람 마음 약해지게시리.
이럴 때는 차라리 매를 들고 야단을 쳐야지.
“지금까지도 네게 기댄 바가 컸는데 또다시 짐을 지웠구나. 미안하다.”
“…….”
하아, 정말이지 세상 살기 힘든 양반들이다.
도사라는 건 언제나 올바른 품성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수련을 하기도 하지만, 주변의 시선이 ‘도사라면?’ ‘도사니까.’ 하는 뜻을 품고 그들에게 품성을 강요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찌 그런가?
한 무리를 이끄는 자들은 때론 마음을 감추어야 하고, 또 때론 남을 속일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그러질 못하고 있었다.
그래, 이쯤 하자.
어차피 쓸모없는 삼대제자들의 절반 정도는 떨어냈고, 남은 건 그 지옥 같은 한 달을 견딘 놈들이다.
적어도 식충이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놈들이라는 소리다.
또한 파문당한 제자들이 알아서 무당 제자 생활의 험난함에 대해 소문도 내 줄 것이니 당장에 지원자가 늘지는 않을 터였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으니 이제 궁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휴식을 끝낼 때가 된 것이다.
진무는 태자의 부탁을 기억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의 백성이니 힘이 되면 그들을 용서하고 포용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해서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가서 대궁주라는 작자를 만나 볼 생각이었다.
말은 건네 보겠다고 태자와 약속을 했으니까.
어쨌든 애초에 쉬려는 목적으로만 찾아온 길은 아니었지 않은가.
시작이 그러했기에 어쩔 수 없이 도사의 행세를 하고 있으나 언제까지 그 안에 머물 수는 없음을 알고 있었다.
본시 태생이라는 것은 쉽게 바꿀 수 없는 법이다.
감추려 해도 언젠가 드러날 것이고, 분명 자신은 그로 인해 손가락질을 받을 터였다.
비록 자신과 무당의 관계를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사람은 없으나 자신이 무당의 대표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했다.
그렇기에 무당을 찾아왔다.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일을 행하기 위해.
“장문인.”
“응? 왜 그러느냐?”
진무의 부름에 명현이 잔잔히 웃으며 답했다.
“제가 좀 과했습니다.”
“아니다. 아니야. 어찌 너를 탓하기만 할까? 안 그래도 신경 쓸 것이 많은 네게 수련을 청하여 괜스레 부담만 얹었느니. 다만 수련의 강도는 조금 낮추거라.”
“…….”
자꾸 그런 표정 짓지 마라.
뭔 도문이 끝도 없이 물러 터져서는 자꾸만 사람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한다.
“실은 곧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태자에게 궁을 막아 달라 부탁을 받았으니까요.”
“음, 그렇긴 하구나.”
명현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전에 제 부탁 하나를 들어주십시오.”
“부탁? 무슨 부탁?”
명현의 얼굴에 의문과 불안이 동시에 떠올랐다.
어째서 진무가 말하는 부탁에 불안함이 느껴진단 말인가?
더욱이 평소와 달리 진무의 표정이 너무나 담담하지 않은가?
자신을 바라보는 명현의 흔들리는 눈빛을 뒤로한 진무가 청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청상은 내 옆으로 오너라.”
“……예?”
청상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어째서 사숙께서?
무엇보다 어울리지 않는다.
따스함을 머금은 눈길과 온화한 목소리 따위는.
하지만 사문의 어른들이 전부 모인 자리였기에 의문을 잠시 접은 청상이 쭈뼛거리며 다가와 앉았고, 바라보는 이들은 궁금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장문인, 그리고 사숙님들.”
“…….”
“저는 이제 전장으로 가야 합니다.”
안다. 그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어쩌면 돌아올 수 있을지조차 막막한 싸움입니다.”
“…….”
모두의 눈동자가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아직 본론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어찌 이리도 불안한가?
귀를 막고 듣지 말아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전에 진무가 입을 떼었다.
“청상에게 무당지검의 신분을 인계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뭣이!”
“그게 무슨!”
“진무야!”
“사, 사숙!”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무의 말에 사방에서 우려 가득한 목소리와 탄식이 쏟아졌다.
장문인과 장로들은 떡하니 벌린 입을 다물지도 못했고, 일대제자들마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사자인 청상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진무를 응시했다.
하지만 오직 진무의 스승인 명진만은 담담하게 눈을 감고 도호를 외었다.
“무량수불…….”
언젠가 닥쳐올 것이라 생각하며 불안해했던 일.
진무가 마교로 떠나기 전 무당을 찾았을 때 알았다.
진무는 이미 천하였고, 자신은, 그리고 무당이라는 작은 그릇은 그를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결국 보내 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안 된다!”
하지만 명현과 장로들은 명진과는 달랐다.
“무당지검의 신분을 인계하겠다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온화하기만 했던 명현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장문인의 말씀이 옳다! 그 무슨 해괴한 소리란 말이냐!”
“다시는 그 같은 말을 입에 담지 말라!”
“네놈이 또 무당의 계율을 무시하려는 것이냐!”
이곳저곳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진무는 꿈쩍도 않고 담담히 듣기만 했다.
“진무야.”
수염까지 떨며 소리를 질렀던 명현이 차분히 숨을 고르고 설득하려 들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이냐. 무당지검으로서 네가 짊어진 것이 그리 무거웠더냐?”
“아닙니다.”
진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면 무당이 네게 섭섭하게 하였더냐? 불편하게 했더냐?”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하였지요.”
“한데 어찌 그리 경솔한 말을 입에 담는단 말이냐?”
“…….”
“혹, 근자에 힘든 수련으로 인해 떠나간 아이들 때문이냐? 아니면 뒤에서 너를 욕하며 불만을 쏟아 내는 이대제자들 때문이냐? 네 잘못이 아니라 하지 않더냐? 내가, 그리고 장로들이 잠시나마 욕심으로 판단이 흐려져 무당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야단치기는커녕 도리어 스스로를 자책하는 명현의 말에 진무는 하마터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호통치는 목소리에, 고개를 저어 대는 표정에 서려 있는 것은 가없는 따스함이었기에.
아씨, 별것도 아닌데.
이 무당에 망할 놈의 정(情)이라는 것이 너무 깊이 쌓여 버린 것인가?
하지만 진무는 애써 담담함을 유지했다.
이미 뜻을 정한 뒤였고, 꺾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니까.
“제 뜻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고집이 가득히 느껴지는 진무의 한마디에 명현이 이를 악물었다.
그때, 가만히 도호를 외고 있던 명진이 진무의 곁으로 다가섰다.
“진무야.”
“……예, 스승님.”
“나는 너의 뜻을 이해한다.”
“사형!”
“사제!”
“사숙!”
명진의 말에 곳곳에서 외침이 터졌다.
하지만 명진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진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조용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