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73
473화
“뭐? 다른 곳은 공격받지 않았다고?”
“그렇습니다. 천주님.”
진무의 물음에 적생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동의 전쟁이 벌어지던 시점, 무당을 떠난 진무는 사패천이 지키는 하북으로 향했다.
대동에서 있었던 전투는 개방의 전서구를 통해 곧장 마교와 사패천이 포진한 지역에 알려졌다.
하지만 그 사실에 모두가 의아함을 품고 있었다.
여섯 개의 경로로 나누어졌다는 궁의 무인들.
귀비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필시 동시이든 순차적이든 다른 곳에도 공격이 있어야만 했다.
당장 여기만 해도 피난민들의 행렬이 끝을 모르고 늘어져 있지 않은가.
그런데 없다.
공격을 받은 것은 산서의 대동과 섬서의 유림뿐이었다.
“암황께서 가 계시는 유림의 경우, 함께 편성된 오대세가가 초반에 고전하긴 했지만 당가가 암기와 폭약을 막대하게 쏟아부은 덕분에 피해가 적었습니다. 비록 광호 어른이 부상을 당하긴 했으나…….”
“그 괭이 놈이 다쳐?”
“예. 하지만 움직일 정돈 되는 모양입니다.”
“창천, 그 자식은 참가하지 않은 건가?”
“에…… 그분께선 아직 부상에서 회복이…….”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일전에 처맞은 일로 여태 자리보전 중이로군.
젠장,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조금 약하게 팰걸.
진무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다시 물었다.
“대동은?”
“그쪽의 피해가 상당합니다. 검혜께선 한동안 전투에 나설 수 없을 정도이고…….”
적생의 보고에 따르면 선두에 배치되었던 구파의 전력 삼 할이 날아가 버린 그 전투에서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본 것은 화산이었다.
그마저도 검성과 무풍개, 백로가 용봉관과 정무맹의 주력을 이끌고 지원에 나서지 않았다면 피해는 오 할 이상이 되었을 것이고, 검혜와 화산의 장로들은 목숨을 잃었을 터였다.
“검혜께선 월도의 무향이라는 자에게 당했다고 합니다.”
“흐음…….”
진무는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검혜를 죽음까지 몰고 갔다는 고수, 월도의 무향.
궁에 아직도 그만한 놈들이 더 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하지만 백 년을 준비했다고 했으니…….
어쨌든 적생의 말을 들어 보면 지금도 대동과 유림은 계속해서 밀고 당기는 격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개자식들이…….”
“…….”
진무의 인상이 더욱 험악해지자 회의장 분위기가 덩달아 가라앉았다.
“암향(暗香)이라고 했다지?”
“예.”
“…….”
암향,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
그 이름 그대로였다.
그들은 피난민들의 틈에 숨어들어 독을 살포하며 방어선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에 대비해 당가와 효독가가 우선 마련된 해독제를 시급히 전장으로 실어 날랐다.
하지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은 무인들이 아니라 힘없는 백성들이었다.
그 때문에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정무맹에서 운암 도장이 포획하신 왕삼이란 자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궁주가 새로 정착할 기름진 땅과 금은보화를 약속했다는군요.”
“씨발, 집도 절도 없는 나부랭이 주제에 황제나 할 약속을 하고 앉았어? 아주 가지가지로 처돌았군.”
적생의 말에 진무가 코웃음을 치며 신랄한 욕설을 내뱉었다.
정말 돌아도 단단히 돈 놈이 아닌가?
보상? 대가?
그것도 제 놈이 지금의 나라를 무너뜨리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아직 있지도 않은 허황된 것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죽음이라는 절망으로 밀어 넣은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더욱이 그다음 상황은 가관이었다.
궁의 주력인 홍건의 무인.
정무맹에 의하면 그들의 태반이 일반 백성들이었다고 했다.
폭약을 들고 방어선으로 뛰어든 아이와 창을 든 노인에 여인들까지.
정말이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을 열 받게 하는 놈이었다.
“세찬.”
“예?”
“정무맹과 마교에 연락을 보내. 일단 독을 먼저 잡아야 한다고. 만들어진 해독제를 백성에게 우선적으로 뿌리라고 하고, 당가와 효독가에 용독술을 가진 이를 전선에 급파하라고 해.”
“예? 하지만 지금 추가로 해독제를 만드는 것도 힘겨워하고 있는데…….”
“이런 쌍! 어떤 새끼가 그딴 말을 지껄여! 지금 상황 몰라?”
“…….”
“그동안 사람들 세금 받아 처먹었으면 약초를 뜯어 먹어 가면서라도 날밤을 새우고 만들어야 할 거 아냐!”
벼락같이 터져 나온 진무의 짜증에 명세찬이 입을 꾹 다물었다.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해결하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테니까.
어쨌든 자신이 지나치게 흥분한 것도 사실이었기에, 진무는 호흡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하려 애썼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고 냉정해져야만 했다.
“하아, 세찬아.”
“…….”
“인력이 부족하면 관에 요청해서 중원 전역의 의원이라도 동원하면 될 거 아니냐? 필요하면 황가의 태의들이라도 붙여.”
“아,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것이, 딱 봐도 터지기 직전인 게 분명한 진무의 명에 명세찬이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직접 전서구를 전하기 위해 뛰어나갔다.
“젠장, 태자와 곽 도독 놈은 대체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거야? 상황이 이렇게 개판인데!”
괜스레 군과 태자에게도 화가 났다.
물론 그들이라고 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소집된 군이 출병을 시작했고, 각지에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그 수가 아직은 너무 적은 것이 문제였다.
궁이 동원했다는 무인의 수는 대략 삼만, 여섯 곳으로 나눈다 해도 길목당 오천이 넘는다.
무인들의 수만 그러하니, 놈들을 따르는 백성까지 합하면 각기 일만은 족히 될 터.
“적생.”
“예.”
“대동을 공격한 적이 얼마라고?”
“현재 추측하기로는 선발대가 약 삼천에서 사천 정도였다고 합니다.”
“삼사천…… 백성들이 섞여 있다고 했으니 아직 주력은 아니란 말이군.”
“그렇습니다.”
“어떻게 생각해?”
“……?”
“이상하지 않아?”
“무엇이 말입니까?”
“다른 건 제쳐 두더라도 어째서 섬서와 산서냔 말이야. 그만한 선발대를 보낼 정도면 적의 역량이 엄청나게 집중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겠어?”
“그렇습니다. 군이 동원되면 일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저들도 알 테니까요. 마땅히 속전을 노리는 것이 정석이죠.”
“그래. 동시에 여섯 곳을 칠 생각이 아니라면 누가 봐도 하북으로 왔어야 해.”
타당한 지적에 적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진무가 다른 곳이 아니라 하북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하북의 경계를 넘으면 자금성까지 고작 삼백 리 길.
대병력이 여유를 부린다고 해도 이틀이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에 반해 지금 그들이 쉼 없이 공격하고 있는 산서의 대동부터는 무려 천 리. 다섯 배나 더 걸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도무지 궁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직 진무가 신경을 쓰고 있는 본대와 대궁주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시점이었다.
무턱대고 움직였다가 다른 곳에 놈이 나타나면 낭패를 당할 수 있었다.
해서 가장 최우선이라 생각했던 하북으로 온 것인데…….
전선이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하다못해 흑살서의 독을 사용한다는 암향들의 공격조차 없지 않았는가.
“보기에는 딱 기본적인 성동격서(聲東擊西)에 조호이산(調虎離山)인데…….”
“…….”
적생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같은 말이긴 했다.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공격하는 성동격서와 반대편 산에서 위협해 호랑이를 불러내고 빈집털이를 시전하는 조호이산.
“하지만 설마하니 그만한 병력을 가지고 모두가 예측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전략을 쓸 리도 없고요.”
“…….”
곰곰이 생각하던 적생이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어쩌면 하북의 방어가 너무 튼튼함을 염두에 두고 우회를 한 것이 아닐까요?”
“…….”
일리 있는 말이었다.
놈들이 여섯 개의 길목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할 생각이 없다면 필시 한 곳을 선택해야만 했다.
마교가 있는 신강은 길목을 뚫는다고 해도 거리가 너무 멀기에 제외하고, 하북은 지금 사패천뿐 아니라 황궁 수비대까지 방어선에 투입되어 있었다.
공격해 온다면 저들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하면 그래서 산서를 뚫는다? 하북에 비해 무려 다섯 배의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그건…… 일단은 추측입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하기에.”
“…….”
적생의 대답에 진무가 초조한 듯 탁자를 빠르게 두드렸다.
똑똑하기로 따지면 제갈 얌생이를 상회할 정도로 뛰어난 적생조차도 추측만 할 뿐, 적의 의도를 쉬이 파악하지 못했다.
적생은 전장에서 빛을 발하는 현장형 군사.
싸움에 임하면 누구보다 빠르게 가장 적합한 전술을 만들어 냈지만, 책상머리에 앉은 채로 결론을 내리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젠장,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당장에 산서로 달려가 적들을 쓸어 버리고 싶지만, 적생의 말처럼 놈들이 성동격서를 노린다면 큰일이 아닌가?
산서에 도착하기도 전에 자금성이 떨어지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정말 미치겠네.”
“죄송합니다.”
“죄송은…… 휴, 됐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놈들의 노림수를 파악하는 거야. 가용 수단을 모조리 동원해서 알아내. 전쟁을 빨리 끝내지 못하면 피해가 계속해서 늘어날 테니까.”
“알겠습니다.”
“…….”
연신 송구스러워하는 적생의 모습에 진무가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어딜 가십니까?”
“앉아서 머리만 썼더니 답답해서. 우명이랑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머리를 식혀야겠다.”
진무가 휘적휘적 걸어서 회의장을 나가자마자 적생은 군사부에 소속된 이들을 불러들였다.
* * *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철검단이 편성된 방어진을 찾아간 진무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물끄러미 꼬나보았다.
“야! 한 수만 물려!”
“안 됩니다!”
“이 자식이! 너 진짜 치사하게 이럴 거야!”
“치사하다니요? 저의 고매한 수를 읽어 내지 못한 단주님을 탓해야지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뭐? 이 자식이! 너 지금 내가 멍청하다고 한 거지!”
얼굴이 벌게져서 길길이 날뛰는 천우명과 팔짱을 끼고 버티는 철검단 부단주 모원려.
그들 사이에는 초한의 싸움을 형상화해 만든 장기판이 놓여 있었다.
정말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아무리 적의 공격이 없기로서니 이 시국에…….
진무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그들을 손수 응징할 작정으로 소매를 걷어붙이며 다가갔다.
“야!”
“아, 천주님. 잘 오셨습니다.”
“…….”
천우명이 벌떡 일어나 인사하자 진무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툭 불거졌다.
아, 잘 오셨습니다? 그게 할 말이냐?
“이것 좀 보세요. 이놈 이거 아주 돼먹지 못한 놈이라니까요?”
“…….”
천우명이 씩씩거리며 일러바치자 모원려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닙니다.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단주님이 자꾸만 생짜를 부리신다고요. 이거 원, 아무리 직급이 깡패고 무공 센 놈이 갑이라지만 해도 너무하십니다.”
“이런 망할 놈이! 그 입 다물지 못해? 천주님 제 말을……!”
“…….”
서로 잘났다고 지껄이는 둘의 말에 진무가 입을 살포시 벌리며 흉흉한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래, 들어 보자.
말하고 죽은 귀신 때깔도 좋지 않겠느냐?
일단 씨불일 대로 씨불이고 처맞아야 억울함도 없겠지.
진무가 팔짱을 끼고 가만히 쳐다보자 천우명과 모원려가 침을 튀겨 가며 상황을 설명했다.
“이놈이 아주 얄팍한 수를 쓰지 뭡니까? 좌측에서 차(車)와 상(象)을 가지고 공격하길래 열심히 막았더니 갑자기 마(馬)로 우측을 공격해 오지 뭡니까?”
“나 원 참, 정말이지 전술의 전 자도 모르신다니까? 성동격서(聲東擊西)도 모릅니까! 이건 아주 기본적인 빈집털이라고요!”
“성동격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걸 확 그냥!”
“이것 봐, 이것 봐, 또 힘으로 하려고 하시지.”
“이 자식이!”
천우명이 주먹을 움켜쥐는 모습에 고개를 내저으며 장기판을 일별한 진무의 안색이 문득 어두워졌다.
장기판의 상황이 꼭 지금 중원의 형세 아닌가?
성동격서와 조호이산.
좌측을 공격하는 척하면서 우측을 공격한 모원려에 휘둘린 천우명이 외통을 당해 버렸다.
그 모습을 보니 아까의 고민이 다시금 고개를 쳐든 것이다.
놈들이 정말 그런 수를 쓴다면 진무는 절대로 하북을 떠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마냥 기다리다가 산서와 섬서가 뚫리기라도 하면 중원이 입을 피해는 감히 머리로 추산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진무가 깊이 고심하던 그때였다.
“에라이!”
“……?”
분을 참지 못한 천우명이 장기판을 뒤집어 버렸다.
“치사해서 안 한다 이놈아!”
“…….”
엎어진 장기판.
사방으로 비산하는 장기알.
“아니, 뭐 하시는 거예요!”
“뭐 하기는. 장은 안 잡혔고, 네놈 머리로 복기할 수는 없을 테고. 이걸 어쩌냐? 깽판이다, 이 새끼야!”
“이런 비열한!”
설마하니 판을 뒤집어 버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모원려가 황당한 듯 입을 벌리자, 천우명이 낄낄 웃으며 어울리지 않게 혀를 쏙 내밀었다.
톡, 토도독, 떼구르르.
“…….”
아.
이거네.
“하! 나 이런 씨발…….”
“…….”
생각해 보면 너무도 간단한 문제였다.
내가 언제부터 전술 어쩌고를 고민해 가면서 적을 상대했다고…….
“저어, 천주님? 왜?”
진무가 갑자기 욕설을 내뱉자 모원려와 천우명이 지레 뜨끔해서 눈치를 살폈다.
“우명!”
“예?”
“잘했어!”
“…….”
뭘? 장기판을 엎은 게?
“좋아! 그래, 그럼 되는 거야.”
“……?”
천우명과 모원려는 신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진무를 멀뚱하게 쳐다보았다.
“우명, 지금 즉시 회의장에 사패천의 수뇌부를 모조리 불러들여라!”
“……아, 예.”
“원려!”
“예?”
“철검단을 하나도 빠짐없이 소집해라.”
“…….”
“하하, 으하하하!”
갑자기 대소를 터트리며 몸을 돌리는 진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천우명과 모원려는 받은 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급히 움직였다.
그래, 니들 머리로 내 생각을 어찌 알겠냐?
하지만 잘했다.
오늘 니들은 목숨을 구한 게야.
니들뿐 아니라 수많은 목숨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