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04
4화
“크흑흑흑.”
충허암의 뒷간 근처에 쭈그려 앉은 야율성은 사발에 담긴 삶은 닭 다리를 찢어 물고 서럽게 흐느꼈다.
“앗 따거…… 흐흐흑. 으흐흐흑.”
뜨끈한 국물이 입 안 상처에 닿았기 때문일까?
쓰라림에 잘 씹지도 못하고 삼켜야 했다.
“망할 년, 죽일 년. 으흐흑.”
앞으로 천하의 정점에 서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신분을 세탁해 무당에 잠입(?)한 자신이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정말 죽도록 맞았다.
하마터면 암기처럼 날아와 부서진 채소와 함께 다져질 뻔한 것이다.
뭐 저런 게 다 있단 말인가?
그냥 밥이나 짓는 녀…….
순간 흠칫 놀란 그가 고개를 홱 돌렸다.
자신을 팰 때는 지옥에서 갓 올라온 악귀 같았던 여인이 지금은 다른 도사들에게 해맑게 웃으며 술과 고기를 나눠 먹고 있었다.
다행히 눈치를…… 챌 리가 없지.
속으로 욕한 건데.
젠장, 자신이 고작 여인 하나에게 이리도 쫄게 될 줄이야.
어쨌든 그저 밥이나 짓는 여인이 아니었다.
뼛속까지 사무치는 고통을 느끼게 할 정도라면 필시 무당의 숨겨진 고수가 틀림없으리라.
새삼 분하고 원통했다.
어쩌다 자신이 이리되었단 말인가?
‘장하십니다.’
장하기는 개뿔…….
‘소공자께선 비록 내기는 부족하지만 깨달음만큼은 의기의 수준에 이른 무인과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염병하네…….
틈만 나면 자신을 치켜세우던 상관평의 말은 죄 거짓말이었다.
깨달음?
그게 대체 뭔 소용인가?
기초 체력부터가 부족한데.
묵룡기? 양의 익히기 전까진 애물단지나 다름없다.
와중에 혹시나 해서 남겨 두었던 충기 정도의 내공조차 산공향 때문에 무소용이었다.
고된 수련에…… 지옥 돼지에…….
이제는 식당 미친년에게까지 처맞고 뒷간 향기를 느끼며 궁상맞게 밥 먹어야 하는 제 처지가 너무나도 서러웠다.
“으흐흑.”
콧물과 뒤섞인 눈물이 닭고기와 함께 입 안에 들어와 짠맛을 더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죽을 것 같은 허기를 면하자면 서러워도, 분해도 먹는 수밖에 없었다.
“꺼어억.”
어느덧 배가 차오른 야율성이 용의 포효와 같은 소리를 내고는 곁에 있던 술병을 들이켰다.
피로에 찌들어서였을까?
고작 한 모금에 목구멍이 홧홧해지며 취기가 올랐다.
그래, 뒷간 옆이면 어떤가?
풀때기가 아닌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냔 말이다.
일인 일 닭. 거기에 술 한 병.
얼핏 듣기로 원로원에 있다는 명진자가 만든 오룡궁의 전통이라 했다.
착한 전통 인정한다.
이 얼마나 자비로운가?
자고로 닭은 한 마리를 통으로 먹어 줘야 제맛 아니겠는가?
입가심하라고 술도 주니 참으로 다행이다.
이 지옥 같은 곳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간간이 무당 도사 놈들은 아침에 먹던 풀때기를 후식으로 먹는 것 같았지만, 자신은 딱히 생각이 없었다.
배가 부르니 겨우 정신이 차려진다.
“……두고 보자.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부숴 버릴 거야.”
야율성이 독기를 품은 눈으로 청우의 등을 두들기며 호탕하게 웃는 여인을 노려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운현, 지옥 돼지에 이어 미친년을 살생부의 세 번째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운현은 조각내고, 지옥 돼지 놈 머리는 고사상에, 그리고 미친년은 반드시 채소 대신 솥에 넣고 삶아 버릴 것이다.
반드시!
꼬로록.
“…….”
아, 젠장.
한 마리로는 조금 부족했나?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여인과 그 주위의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자니 뱃속의 아귀 놈이 또 신호를 보내온다.
수련이 너무 힘들었나 보다.
조금 더 먹고 싶은데…….
“이거 드세요.”
“……?”
남들이 먹고 있는 것을 처량하게 보고 있던 그에게 누군가 다가와 닭 한 마리가 통으로 담긴 그릇을 내밀었다.
“이런 감사할 데……?”
냉큼 손을 내밀었던 야율성이 차마 그릇을 받아들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들었다.
누구?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청의를 입은 게…… 운자 배다.
아니, 그것보다도 이자, 어딘가 낯이 익은데…….
가만히 지나간 기억을 더듬다 보니 한 인물이 떠올랐다.
그가 처음 운현의 안내를 받아 오룡궁에 도착했을 때, 다른 제자들과 달리 외따로 떨어져 홀로 수련하던 인물이었다.
“운천입니다.”
“운……? 예. 한데 어찌 이걸 제게?”
자신을 운천이라 밝힌 이의 미소에 야율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고로 웃음과 친절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 하지 않던가?
“더 필요해 보여서요.”
“…….”
야율성은 잠시 머뭇거리다 운천이 떠넘기듯 내미는 그릇을 받아 들었다.
그가 그릇을 받자마자 곁에 붙어 앉은 운천이 물었다.
“힘드시죠?”
“……뭐, 조금.”
“그럴 겁니다. 오죽하면 모두가 오룡궁의 수련 과정을 등선로(登仙路)라 부를까요.”
“…….”
눈을 휘어 웃는 운천의 부드러운 미소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뒈지러 가는 길이라니, 정말 딱 맞는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대단해요. 첫날인데 한 번도 낙오하지 않았다면서요? 대부분 새벽 수련에 팔다리가 마비되어 쓰러지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하지만 오후 수련은 하지 않았습니다.”
야율성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운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후 수련은 그리 힘들지 않아요.”
“예?”
“오후 수련은 청상 사부님께서 주관하시거든요.”
“…….”
“육체적으로 힘든 건 청우 사숙께서 주관하시는 오전 수련까지예요.”
“아…….”
운천의 말에 끄덕이던 야율성이 문득 고개를 삐뚜름하게 꺾었다.
청상 사부, 청우 사숙.
그럼?
“운천 도장께선 청상 도장의 제자이신 겁니까?”
“예. 부끄럽게도 운자 배에서는 유일한 직계제자예요.”
“아!”
운천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리자 야율성이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무로부터 직접 그 지위를 물려받았다는 현 무당지검 청상자.
그의 제자였다니…….
“하면 청상 도장께 무공을 사사하시겠군요.”
“뭐, 꼭 그런 건 아니구요. 예전엔 대사부님께 수련을 받기도 했죠.”
“대사부님이요?”
“예.”
“…….”
뜬금없는 존재가 튀어나오자 야율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청상을 사부로 두었는데 대사부라 부르는 자가 또 있다고?
흠, 장문인을 말하는 건가?
“들어 보셨죠? 진무 대사부님.”
“……!”
순간 야율성의 눈이 커다래졌다.
설마 이자가?
“우, 우양지인?”
“어? 제 속명을 어찌?”
“…….”
야율성은 순간 제 실수를 깨닫고 흠칫했다.
상관평에게 하도 들어 진무와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 외다시피 하고 있었다 보니 그 이름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엿 됐다.
막 입도한 제자가 일개 일대제자 속명까지 알다니 얼마나 의심스러울까?
운천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야율성이 침을 꿀꺽 삼키며 눈치를 보았다.
어쩌지?
어떻게 알았다고 하지?
“신기하네요. 막 입도하신 분이 제 속명을 알다니…….”
“…….”
의심하고 있다.
말로는 신기하다고 하지만, 속으로 의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젠장, 이런 실수를 하다니…….
“하, 하하하. 시, 실은 제가 입도를 꿈꾼 게 무림의 대영웅이신 진무 도장을 존경하는 마음에서였는지라…… 그, 그분에 대해서라면 뭐든 조사를 해서…….”
“흠, 그럴 수도 있군요. 그래도 신기하네요. 다른 분은 몰라도 제 속명은 아는 사람이 드문데…….”
“…….”
턱까지 어루만지며 본격적으로 의심스러워하는 모습에 야율성은 목까지 타들어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워, 원체 진무 도장이 유명해서…….”
“뭐, 하긴. 대사부님이 성격은 좀 그러시지만 꽤 유명하시긴 하죠.”
“…….”
휴우…….
야율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젠장. 더 실수하기 전에 서둘러 화제를 돌려 버려야지.
“저, 저 여인은 누굽니까? 하마터면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
운천이 고개를 돌려 야율성이 급히 뻗은 손가락 끝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아! 사모님이요?”
“사모……요?”
“예. 오 년 전부터 충허암에 기거하고 계신 분이지요. 존함은 당…….”
“당……? 아! 진무 도장의 내자시라는?”
“응? 와! 대단하세요. 야율 공자는 정말 모르시는 게 없네요. 그건 또 어찌 알았대요?”
“…….”
제기랄.
왜 자꾸 이렇게 실수를 연발한단 말인가?
“맞아요. 대사부님의 내자시죠. 물론, 본인 주장이기는 하지만…… 일단은 사모(師母)님으로 부르고 있어요. 그리 부르지 않으면 갑자기 화를 내시는 통에…….”
“…….”
“평소엔 명진 증사조께서 계신 원로원이나 대사부님이 돌아오실 때마다 기거하시는 천주봉의 암자에 계시는데, 오늘처럼 충허암에 행사가 잡히면 마실 겸 오시곤 해요.”
“아, 그, 그렇군요.”
야율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짝 말라 버린 입술을 적시려 술을 벌컥였다.
“참, 사모께서 화를 내시면 대사부님이나 원로원의 증사조님들 외에는 아무도 못 막아요. 아까처럼 그러시면 절대로 안 돼요. 알겠죠?”
“예.”
그건 이미 깨닫고도 남았다.
어쩐지 채소에 실린 경기가 매섭다 했더니 그 당세령이었구나.
진무의 동료 중 가장 미친…….
그러고 보니 유독 그 여자에 관해서는 미쳤다는 말 말고는 들은 게 없었다.
젠장, 그러니까 바로 못 알아봤지.
“그리고 운현 때문에 청우 사숙께 꾸지람을 들었다면서요?”
“…….”
꾸지람?
그냥 처맞았는데?
복날 개 맞듯이?
“제가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공자가 이해해 주세요. 운현이가 성격이 못된 건 아닌데…… 아직 어려서.”
“……어리다고 잘못이 용서되는 건 아닙니다.”
운현의 이야기가 나오자 이미 그에게 감정이 상해 있던 야율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맞아요. 용서되진 않지만…… 휴, 이게 다 어느 순간 생겨난 악습 때문에 그래요.”
“악습이요?”
“예. 일종의 신고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
“공자도 겪어서 아시겠지만 오룡궁의 수련이 수련이다 보니 대부분 하루를 버티지 못해요. 최장으로 버틴 게 열흘 정도? 그러다 보니 제자들 나름대로 시험을 해 보게 된 거예요. 고난 속에서 견디며 친해진 사람이 버티지 못하고 나가 버리면 아무래도 그 빈자리가 훨씬 크게 느껴지니까……. 아마 하루를 잘 견뎌 냈으니 이제 다들 야율 공자를 인정했을 거예요. 곧 친해지려 들겠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운천의 설명이 원체 다정다감하고 조곤조곤해서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역시 자신이 처맞은 걸 생각하면…….
“그래도 청우 사숙이라 다행이에요. 저기 있는 오룡궁의 제자들은 대사부님께서 직접 훈련을 시켰거든요. 그땐 정말 매일 곡소리가 울렸는데.”
“아…….”
지나간 일을 회상하며 빙긋이 웃는 운천.
그런데 이자…… 참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가졌다.
보고 있노라니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마치 책에서 본 진짜배기 도사 같다고 해야 할까.
역시 괜히 천하제일인의 제자가 된 것이 아니구나.
“열심히 해 봐요.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요. 수련 과정이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제가 항상 야율 공자를 뒤에서 응원할게요.”
“…….”
“언젠가 제 사제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자상하게 말하며 격려하듯 어깨에 손을 얹는 그의 미소에 야율성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의 따뜻함이 심연에 감추어 둔 나약함을 자극한 탓이었다.
아비조차 버린 자식.
형제에게 천대받았던 사생아.
더러운 핏줄.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아야 했던 그에게 단 한 번도 전해지지 않았던 온기.
형이라는 존재가 이런 느낌일까?
이 새끼…… 사람 맘 약해지게시리.
그래.
무당에 있는 개미 새끼 한 마리까지 남김없이 죽이더라도, 너는 살려 주마.
“대사형! 궁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아, 그래?”
도사 하나가 와서 부르자 운천이 손을 떼고 일어났다.
야율성은 미련이 철철 넘치는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보내기 싫었다.
좀 더 아까의 온기를 느끼고, 그와 친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궁주의 부름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야율성은 그의 옷깃을 붙잡는 대신, 아쉬운 마음을 가득 담아 불렀다.
“운천 도장!”
“예?”
야율성의 부름에 운천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수련 과정! 반드시 이겨 내고 오룡궁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운천 도장처럼요.”
“…….”
다짐과도 같은 야율성의 말에 운천이 고개를 살짝 꺾고 바라보다가 빙긋이 웃었다.
“그래요. 반드시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야 수련 과정을 겪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야율 공자라면 반드시 해낼 것 같아요.”
“예……에?”
“전 무당에 오기도 전부터 대사부님의 제자였어서…… 저 수련 과정을 거치지 않았거든요.”
“…….”
거, 거치지 않았다고?
안 맞아 봤어?
“그럼, 힘내요.”
웃으며 응원을 건네곤, 이내 부르러 온 도사와 함께 자리를 뜨는 운천.
점차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야율성의 입가에 천천히 일그러진 미소가 떠올랐다.
아…… 안 겪어 보셨구나.
그러면서 참 잘도 이해한다는 듯 응원을 해 줬구나.
“…….”
개새끼…….
넌 네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