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06
6화
운천이 떠난 뒤.
“…….”
지붕 위에 퍼질러 앉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즐기던 진무가 문득 못마땅하다는 듯 한쪽 눈을 살짝 찌그러트렸다.
이틀 전 청상이 보낸 잔소리 빽빽한 서신이 생각난 탓이었다.
어찌 그리 궁의 일에 관심이 없냐, 제자들이 그립지도 않으시냐, 사숙이 그러고도 사람이시냐…….
거기까지만 해도 귀엽다 귀엽다 하고 대충 흐린 눈으로 넘겼건만.
뭐?
이번 신입 수련생이 정식으로 도명을 받는 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면 무당지검을 때려치워?
이 새끼가 언제 이렇게 대가리가 굵어졌지?
당장 오룡궁에 쳐들어가서 과거의 기억을 되새겨 주려다가…… 귀찮아서 참은 그였다.
등선하는 방법 찾는답시고 오 년을 허송세월하고 나니 매사 의욕도 안 생겼고…….
그리고 말이야 바른말이지, 무당지검을 때려치우는 것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가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하여간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투정은 오지게 부려요, 쓸데없이.
심드렁하게 투덜거리던 그를 끝끝내 일으켜 세운 것은 서신의 말미였다.
명진 사숙조 참석.
……이 망할 놈.
원로원에 계신 스승님까지 끌어들여?
청상이 놈이 어지간히 졸라 대기야 했겠지만, 스승님도 너무하신다.
뒷방에 나앉았으면 그냥 소일거리나 하실 일이지, 뭐 하러 애들 노는 델 구경하러 나오신단 말인가?
이놈의 팔자.
도동 놈의 기억이 떠나간 지가 한참이 된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스승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다시금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찬 진무는 아래에서 벌어지는 싸움 구경에 눈을 돌렸다.
그나마 당세령을 피해 뒷길로 온 게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이 좋은 구경조차 놓칠 뻔하지 않았는가.
한데, 지금은 즐거움보다 의아함이 앞섰다.
진무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네 사람이 있었다.
운현, 운산, 운효.
그리고 그 세 명의 도사에게 둘러싸인…… 처음 보는 놈.
“……하, 요곳 봐라?”
진무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모처럼 눈요깃거리가 생겨 자리를 잡은 것인데 꽤 특이한 놈을 발견한 것이다.
대략 스물?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면 필시 오룡궁을 선택한 신입 수련생일 터였다.
그런데 어째서?
“분명히 묵룡안과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입술을 살짝 벌려 송곳니를 드러낸 진무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묵룡안도 그렇고 어찌 그의 몸에서 은은하게 퍼져나오는 기세에서 묵룡기 비슷한 느낌이 나는 거지?
그럴 리가 없는데…….
묵룡기를 쓰자면 채기법이 기본이 되어야만 하고, 그것을 쓸 수 있는 것은 지금 무림에 오직 셋뿐이었다.
진무 본인.
광서 계림 백가장의 백표.
그리고, 진무가 등선하겠다며 은거한 뒤로 놀 사람이 없어져 중원 유랑을 떠나 버린 천우명.
이상하지 않은가?
그 세 명 외에 또 다른 이가 묵룡기를 가진다는 것이…….
“…….”
묵룡기를…….
“아!”
생각났다.
지금에서야 자신의 무공을 모르는 이가 없지만, 당시에는 묵룡혼원공이 소실되는 것이 안타까워 화산 금룡협 밑바닥에 비동을 만들고 벽면에 채기법을 새겨 두었다.
하지만 채기법은 금룡협 아래 묵룡동을 발견하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체질이 맞아야 했다.
확률도 희박했다.
천에 하나? 아니, 만에 하나?
그게 아니라면 괜히 익히다가 혈맥이 터져서 골로 가기 딱 좋은 무공이었다.
말이 연자이지, 따지고 보면 발견한 놈에게 꼬장을 부렸다는 말이 더 정확하리라.
한데 쟤가 그걸 익혔다고?
진무의 눈매가 한층 가늘어졌다.
그건 더 이상하다.
분명 자신이 묵룡혼원공을 얻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화산이 금룡협을 통제했다.
건너 듣기로는 채기법이 새겨진 벽면을 파괴했다고 했는데…….
대체 어떻게 익힌 거지?
설마하니 내가 잘못…… 느꼈을 리도 없는데.
태극(太極)을 이룬 새로운 경지에 도달해 버린 진무였다.
그놈의 등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선인(仙人)의 경지까진 아니겠지만, 그래도 대강 그 언저리?
하여 흐르는 바람만으로도 일정 거리에 있는 이의 기맥을 살필 수가 있었다.
그가 본 게 정확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퍽! 퍼퍽!
눈여겨본 수련생이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맞고 있었다.
염병, 뭐라도 할 줄 알았더니…….
김이 팍 새서 투덜거리던 진무의 눈이 문득 커졌다.
저 움직임…….
“하! 저 새끼 보게?”
그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맞는데…… 맞고 있지 않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치명타를 피해 약한 공격에만 몸을 가져다 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주먹이 닿는 찰나에 비틀어 흘린다.
그러곤 충격을 받은 듯이 휘청이며 공격권에서 물러나, 은근슬쩍 합공까지 피해 내고 있지 않은가?
저게 가능한가?
수련생 따위가?
상대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허 참, 실력도 실력인데 연기가 출중한 놈이네.”
진무가 턱까지 괴고 바라보는 사이, 싸움은 끝나 가고 있었다.
물론 야율성의 패배였다.
어디까지나 본인이 의도한 결과였지만.
“허억, 허억…….”
땅바닥에 쓰러져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야율성을 보며 운현 일행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이 새끼…… 난 또 뭐 있는 줄 알고 괜히 쫄았네.”
“…….”
“헉헉, 어쨌든 경고했다. 다음부턴 아예 팔다리를 부러뜨려 놓을 거야, 알겠어? 헉헉.”
“알았다. 명심하지. 그런데 니들은 이름이 뭐냐?”
“뭐?”
“……앞으로 조심하게.”
“새끼, 운산과 운효다. 똑똑히 기억해 둬라.”
야율성의 물음에 운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운산, 운효……. 알았다. 새겨 두지.”
야율성이 둘의 이름을 살생부에 추가하는 사이, 운현 일행이 겨우 숨을 고르며 째려보고는 연무장으로 돌아갔다.
위에서 그 촌극을 지켜보던 진무는 혀를 찼다.
쯧쯧, 저런 머저리들을 봤나.
맞은 놈보다 지친 주제에 끝까지 이겼다고…….
하긴, 저놈 연기가 배우 뺨치게 출중하긴 했지.
당장에 뛰어 내려가서 신입을 칭찬해 주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 진무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흠…… 자릴 비운 새에 오룡궁이 개룡궁이 됐네.”
청상과 청우에게 맡겨 둔 게 잘못이었나?
너무 잘나서, 너무 뛰어나다는 이유로 핍박을 가하다니.
잘난 놈이 있으면 뒤쫓을 생각을 하지 않고, 떼거리로 협박을 가해?
한심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렇다고 직접 나서기도 뭐했다.
전 무당지검이자 구국의 영웅 체면이 있지, 젠장.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것들 상대로…….
진무가 고민하는 사이, 야율성이 뒤늦게 몸을 일으켰다.
“에휴, 휴식 시간만 날렸네.”
옷을 털고 떠나는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진무가 벌떡 일어났다.
“신, 출, 동보.”
나지막한 부름.
쉬이이익.
언제나 그랬듯 바람 소리와 함께 황신과 아이들이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진무의 곁에 나타났다.
“신이는 연무장에 가서 기다리고.”
“예.”
“동보는 가서 청우랑 청상한테 지금 즉시 충허암으로 오라고 해. 내가 면담 좀 했으면 한다고.”
“예!”
“각출아.”
“예?”
“너 아직 개방 비선이랑 끈 닿아 있지?”
“……그, 그럴 리가요? 요전에 이중 첩자 짓 한다고 천주님께 개 맞듯이 맞고 나서는 싹 끊었습니다. 맹세합니다!”
“…….”
이 새끼야.
눈깔 떨리는 거 다 보인다.
진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차라리 개가 똥을 끊는다고 해라.”
“……지, 진짠데.”
“각출아, 오랜만에 맞을래? 다 같이 수련 좀 할까?”
“……!”
진무가 송곳니를 슬쩍 드러내며 웃자 위기를 감지한 황신의 손바닥이 거세게 각출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빠악!
“이런 쌍놈의 새끼가! 천주님 앞에서 어디 약을 팔아? 뒈질래? 배때기를 따서 창자로 실뜨기하는 거 한번 보여 줘?”
“저도 봤습니다. 각출이가 몰래 밤마다 전서구 날리는 거요!”
“…….”
황신이 욕을 난사하며 닦아세우고, 소동보가 잽싸게 증좌를 내밀었다.
배신자들, 입 다물어 달라고 거지 살림에 그 비싼 술을 처먹인 게 한두 번이 아닌데…….
하지만 저러는 심정도 이해는 갔다.
다 지들도 살자고 저러는 건데…….
무엇보다 자신도 진무의 수련만은 절대로 피하고 싶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각출이 냉큼 바닥에 엎드려 용서를 구했다.
“살려 주십시오. 천주님! 다신 그러지 않겠습니다! 전 그저 방주님과 봉공께서 천주님 소식이 궁금하다고 하셔서…….”
“……지랄하네.”
“…….”
“뭐, 간간이 노인네들한테 내 소식 전하는 것까지 뭐라 할 건 아니고. 가서 소방 어른께 내가 부탁이 있다고 전해. 내가 비선을 좀 썼으면 한다고.”
“예? 봉공께요?”
“어.”
“…….”
진무의 말에 각출이 멀뚱한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렸다.
“왜?”
“그게 실은…….”
“…….”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리는 각출.
“벌써 산 아래 와 계십니다.”
“응?”
“제가 이틀 전에 천주님께서 무당으로 향했다고…….”
“…….”
아!
허허, 우리 각출이가 간간이 소식만 전한 건 아니었구나.
아주 내 일정에 위치까지 소상하게 가져다 바쳤어.
“각출아?”
“…….”
진무의 다정한 목소리에 각출은 뒷골이 섬뜩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인간이 아닌데…….
“가서 오시라고 해. 나머진 그 뒤에 이야기하자. 이야기가 꽤 길어질 것 같으니까.”
“……네에.”
진무가 툭툭 두드릴 때마다 각출의 어깨 관절이 빠진 듯이 아래로 늘어졌다.
“다들 서둘러 다녀와.”
“예!”
파파팍!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어느새 지붕 위에는 진무만이 남아 있었다.
“묵룡이라…….”
오룡궁의 수련장을 향해 시선을 돌린 진무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뭐든 간에 모처럼 흥미가 동하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등선할 방법을 도통 알아낼 수가 없어서 고민이었는데…… 때마침 할 일이 알아서 굴러와 준 셈이었다.
어찌나 고마운지.
“자, 그럼 이제 어떤 놈인지 찬찬히 알아 가 볼까?”
* * *
이상하다.
벌써 시작할 시간이 지났는데 남은 아침 수련을 주관해야 할 청우가 오질 않았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더 이상한 건 연무장 끝자락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소년?
그래, 소년이다.
대략 열다섯?
많이 쳐줘야 그 정도였다.
키도 딱 그 정도고…….
무엇보다 귀엽다.
오룡궁에 저런 소년도 있었나?
딱히 기세가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도관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한다는 도동(道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누구도 저 귀여운 소년 곁으로 다가서질 않는다.
열 걸음?
아니 스무 걸음도 넘게 떨어져 있다고 해야 하나?
소년을 한참이나 쳐다보던 야율성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렇구나.
저 소년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구나.
필시 그러할 것이다.
망할 도사 놈들.
분명 우월함으로 똘똘 뭉쳐서 도동 따위는 상대하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겠지.
자신들과는 신분이 다르다고…….
그를 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사생아랍시고 기피당했던 시절.
모두가 멸시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가까이하면 병이라도 옮는 것처럼 멀찍이 떨어진 채 그를 대하곤 했었다.
필시 저 소년도 그러할 것이 틀림없었다.
갑자기 측은함이 든 야율성이 소년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소년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야율성에게 다가왔다.
불쌍한 녀…….
“뭘 꼬나봐?”
……서…… 응?
“기분 나쁘게 뭘 꼬나보냐고, 이 의뭉스럽기 짝이 없는 망둥이 새끼야. 눈깔에 먹물 충분하냐? 쪽 빨아서 바닥에 산수화 한 폭 그려 줘?”
“…….”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귀엽고 앳된 소년의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신랄한 욕설이 아닌가?
와중에 산수화? 먹물이 뭐 어째?
“이걸 확 그냥! 오장육부를 줄줄이 엮어 줄넘기를 할 수도 없고 진짜.”
“…….”
주, 줄넘기?
야율성은 당황스러움에 차마 대꾸도 하지 못하고 눈만 끔벅거렸다.
“야! 차 가지러 간 새낀 왜 안 와? 찻잎 따러 갔냐? 차나무 심으러 갔어? 어?”
와중에 고개를 홱 돌린 소년이 이번에는 도사들에게 윽박질렀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발끈해야 정상일 도사들이 겁이라도 잔뜩 집어먹은 것인지 목을 최대한 움츠리면서 시선을 피하기 급급했다.
“제, 제가 한번 가 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뭘 하고 앉았어? 생각났으면 뛰어, 이 새끼야!”
“예, 옛!”
파파팍!
우렁차게 대답한 도사가 쏜살같이 몸을 날렸다.
“너, 의뭉스러운 새끼. 조심해. 눈깔 뽑히기 싫으면.”
“…….”
가슴을 툭 치고 서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소년의 모습에 야율성은 어안이 벙벙했다.
도동이 아니었던 거냐?
그럼 도대체?
그리고 의뭉스럽다는 것은 대체 무슨 말일까?
그의 정체와 마지막 말에 야율성이 혼란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였다.
“모두 주목!”
청우가 투실한 살집을 흔들며 연무장에 도착했다.
이어 무당지검이라는 청상까지.
소년에 대한 의문이 아직 풀리지 않는 와중에도 야율성은 도사들을 따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운현!”
“예!”
“운산, 운효!”
“예!”
“나와!”
청우가 아닌 청상이 나서서 호명했고, 이름이 불린 도사들이 벌떡 일어나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왜지?
저들은 자신과 문제가 있었던 이들인데…….
설마 청우는 물론 청상까지 알아 버린 걸까?
“야율성! 너도 나와.”
“…….”
젠장, 곤란하게 됐구만.
이럴까 봐 그냥 맞아 준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