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41
11화
지계로 가기 위해 우물 속 회오리치는 어둠으로 뛰어들었으나,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은 물이 아니라 그저 흐름이었다. 도통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흐름.
다만 평안하니 신비로울 따름이다. 방향을 알 수 없는 흐름에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씻겨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흐름이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흡입력에 버틸 새도 없이 몸이 빨려 들어갔다.
버티려 했으나 버텨지지 않았다. 흐름인지라 잡을 곳조차 없으니 버둥거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옥죄인다.
거대하던 흐름이 급속도로 좁아지며 온몸을 짜부라뜨릴 기세로 짓눌렀다.
“끄으……!”
아이가 어미의 산도(産道)를 지나는 느낌이 이러할까? 온몸의 뼈가 흐물흐물해지는 것 같다.
자신이 이러할진대, 청상은?
진무가 찡그린 눈으로 뒤따른 청상을 찾았다.
“끄아아아아아!”
“…….”
역시나 개발광을 하고 있군.
상선과 초짜 신선이 기나긴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질 즈음이었다.
풍!
둘의 몸이 다 먹고 뱉은 복숭아씨처럼 쑥 빠져나가 어디론가 툭 떨어졌다.
콰아아앙!
그리고 무언가에 부딪쳤다.
곧이어 등줄기가 아스러지고 골이 빠개지는 듯한 충격이 찾아왔다.
“으으…….”
이런 빌어먹을 옥황.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미리 말해 줬으면 대비라도 했을 거 아냐!
하지만 더 욕할 새도 없었다.
다시금 정신이 혼미해지는 게, 그러고 보니 마치 그때 같았다. 혁련무강으로 죽었다가, 도동의 몸으로 환생했던…….
하지만 질쏘냐? 내가 상선의 경지에 오른 북방칠수의 우두머리 두장군이다! 이까짓 육체의 고통! 정신으로 이겨 낼 것이드아!
진무는 이를 악물고 양팔에 힘을 주어 땅을 밀어 냈다. 뼈마디와 근육이 비명을 질러 대는 게 귓가에 똑똑히 들려왔지만, 죽어라 버텼다.
그리고 드디어 상체를 일으켰다. 이제 일어나기만 하면…….
슈우우우!
“……?”
그 순간 귓가에 섬뜩한 소음이 들려왔다.
자, 잠깐만. 그러고 보니 청상이…….
진무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끄아아아아!”
“…….”
세찬 비명과 함께 떨어져 내리는…… 청상이네.
진무는 점점 커지며 시야를 덮는 청상을 보며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 빌어먹을, 피할 힘도 없는데…….”
빠가가각!
하필이면 대가리부터 떨어지……냐, 청상아.
겨우 상체를 들어 올린 것이 무색하게, 진무는 낙하하는 청상의 박치기로 인해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자꾸만 웅얼거리며 몸을 흔든다.
냅 둬라, 좀. 조금만 더 자……면 안 되지!
번쩍!
자신이 있는 곳이 지계라는 사실을 깨달은 진무가 눈을 번쩍 떴다.
“괜찮으십니까?”
“…….”
“사숙! 사숙!”
“…….”
몸을 세차게 흔드는 손길에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청상?”
“예, 접니다. 이제 정신이 드십니까?”
“으음…….”
정신은 드는데, 아까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탓에 골이 지끈거렸다. 진무는 인상을 찌푸리며 반색하는 청상에게 물었다.
“여긴?”
“모르겠습니다. 저도 조금 전에 깨어났습니다. 사숙께서 정신을 잃고 계시기에…….”
청상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희한하지요?”
“…….”
“바위가 다 저런 모양입니다. 마치 커다란 바늘들을 땅에 촘촘히 박아 놓은 듯하달까요?”
“음…….”
청상의 감상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그들이 있는 곳은 사방이 끝이 바늘처럼 뾰족하게 솟구친 바위가 즐비한 산자락이었다.
만약 떨어진 곳이 바위 쪽이었으면?
“운이 좋았네. 한 치만 빗나가서 떨어졌어도 꼼짝없이 죽었겠어.”
“예. 끝이 날카롭더군요.”
“망할 옥황, 이런 위험이 있으면 예고라도 해 줄 것이지.”
한차례 옥황의 뒷담화를 씹어뱉곤, 진무는 얼굴을 찡그리며 청상을 살폈다.
“넌 괜찮냐?”
“버틸 만합니다. 그런데 이제 어쩌죠?”
어조는 침착했으나, 청상은 불안한 기색이었다. 진무는 청상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익숙지 않을 것이나 자신은 아니다. 이미 한 번 했던 경험에다, 새로운 세상까지는 아니어도 새로운 삶에 적응해 본 적도 두 번이나 있지 않은가? 다시 말해 산전수전 다 겪어 본, 경력자 중의 경력자라 이거야.
“일단 몸을 숨기자. 도착하자마자 발각되면 곤란하니까.”
“예, 사숙.”
진무는 청상의 부축을 받아 서둘러 촘촘한 바늘 바위 쪽으로 이동해 몸을 숨겼다. 삐죽이 돋은 바늘 바위가 서로 겹쳐 하늘을 가리고 휘돌아 둘러친, 아주 적당한 장소였다.
자, 대충 몸은 숨겼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청상, 기척을 지워라. 신력은 안 된다.”
“예.”
옥황이 길을 잘못 열었을 리는 없으니, 이곳은 틀림없는 지계이다. 하니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진무는 자충의 기운을 운용하는 청상을 바라보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도 신력을 갈무리했다.
현생에서도 늘 해 왔던 일이기에 식은 죽 먹는 것보다 쉬웠다.
꾸우욱.
몸에 힘이 돌자 고통이 서서히 옅어지고, 깨질 듯하던 머리도 맑아진다. 주먹을 움켜쥐어 본 진무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렸다. 다행히 가진 힘에 차이는 없군.
이제 다음 단계. 정보를 얻어야만 한다.
적진의 한가운데나 다름없는 곳을 무턱대고 활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지계를 찾아온 목적을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그다음이다.
청상은 아직 기운을 치환하는 데 서투르다.
귀모의 검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신력을 완벽히 갈무리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청상, 기운을 좀 더 가다듬고 있어라. 나는 주변을 살펴보고 오마.”
“괜찮으시겠습니까?”
“…….”
걱정이 가득한 청상의 물음에 진무가 빤히 쳐다보다가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 자식이,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죄송합니다.”
“몸 추스르고 있어.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절대로 이곳을 벗어나지 말고.”
“예!”
청상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곤, 진무는 세심한 눈길로 주변을 살피며 임시로 마련한 안식처(?)를 벗어났다.
휘이이이.
“…….”
뭐라도 있을까 하며 살폈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바늘처럼 생긴 바위뿐이었다.
진무는 몸을 살짝 떨었다. 바위들 사이를 휘도는 바람은 귀신의 울음소리처럼 음산한 소리를 냈고, 무엇보다 찼다. 마치 겨울의 초입에 있는 것 같달까?
“과연 지계인가? 한서를 느끼지 않은 지가 꽤 되었는데…… 찬 바람에 소름이 돋을 정도라니.”
옷깃을 여미곤, 진무는 기척을 죽이고 주변을 살피는 행동에 박차를 가했다.
얼마쯤 갔을까? 바위산의 끝에 도착하자, 그 너머로 펼쳐진 황량한 사막이 보였다.
“염병, 정말 개떡 같은 곳이네. 풀이나 나무가 하나도 없는 게 말이…… 어?”
그 순간 그의 귓가에 바람 소리에 섞인 이질적인 소음이 들려왔다.
사박, 사박…….
발소리다.
진무는 잽싸게 몸을 숨긴 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탁, 타다다닥!
“……?”
갑자기 발소리가 빨라졌다. 쫓기는 기색이 역력한 발소리였다.
그리고 이내 검은 형체 하나가 사막 쪽으로 툭 튀어 나가더니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어? 사람?”
진무의 눈이 동그래졌다.
사람은 아니겠지만, 비슷한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게 어쨌든 생명체가 분명했다.
재빨리 주위를 훑어 주변에 ‘그’ 이외에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음을 확인한 뒤, 진무는 곧바로 형체를 뒤쫓기 시작했다.
이런 반가울 데가 있나? 정보를 얻고자 했더니, 말이 통할 만한…… 아니, 안 통하면 통하게 하면 될 그런 사람이 나타나다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을 잡아야 한다. 무언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다행히 빠르진 않으니, 금세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점점 더 거리를 좁혀 가는데, 순간 진무의 기감에 섬뜩한 느낌을 주는 무언가가 잡혔다.
뭐지? 이건?
고개를 휙휙 돌려 봤지만, 보이는 것은 사막뿐이었다. 달리던 중에 혹시 몰라 고개를 들어 봤지만, 먹구름으로 꽉 찬 것처럼 보이는 검은 하늘에는 달리 떠 있는 것도 없었다.
그럼 설마 땅?
머리를 굴리는 사이, 기척은 점점 더 ‘그’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와중에 살기까지 가득 담고.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목표로 삼은 놈을 노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염병할! 다 잡은 고기를!”
이리되면 어쩔 수 없다. 들키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속히 ‘그’를 포획해서 도망칠 수밖에.
“겨우 무언가를 얻어 볼 기회를 잡았는데, 이대로 빼앗길 것 같아?”
어금니를 까득 소리가 나도록 깨문 뒤, 진무는 단번에 힘을 발출했다.
파앙!
발길질에 사막 모래가 폭발하고, 이내 진무의 신형이 한 줄기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 * *
“헉, 헉…….”
뛰고 또 뛰었다.
그는 지계의 여섯 세상 중 하나인 도산옥(刀山獄)에서 형벌을 받는 망자들을 관리하는 괴의 하나로, 이생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찰귀였다.
한데 그가 어찌 도망치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는 지금 도산옥 외곽 사막에 존재한다는 천지간의 틈을 찾고 있었다.
오랜 나찰귀 생활을 통해 똑똑히 들었다.
과거 천지간의 전쟁이 있었을 때, 도산옥이 그곳을 통해 괴(怪)들을 천계로 침투시켰다는 것을.
그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은밀하게 의심 가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일부러 죄지은 망자를 몰래 탈출시켜 사막을 유랑하게 한 것이다.
대부분 사막 모래 아래 사는 대사충(大沙蟲)에게 잡아먹혔지만, 일부는 사라졌다. 똑똑히 봤다. 틈이 확실했다.
이후 몇 번이나 확인 과정을 거쳤고, 의심 가는 곳을 셋으로 압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
도산옥주가 판관들과 함께 귀모의 부름에 응해 자리를 비운 틈에, 이생은 탈출을 감행했다.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반드시 틈을 발견해 천계로 갈 것이다.
그리고 지계의 모든 이가 꿈꾸는 소멸을 맞이할 것이다.
죽음…… 아, 얼마나 희망으로 가득한 말인가.
이 지긋지긋한 지계의 삶을 끝내고, 천계로 가서 소멸당해 다시 한번 환생하는 것이다.
망자들이 도산옥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나찰귀였던 그였기에 탈출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대사충들이 득실거리는 사막만 남은 참이었다.
그놈들이 있어서 도산옥에서는 굳이 사막을 지키지 않는다. 판관 정도의 힘이 아니라면 절대로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없다. 칼바위에 숨어 대사충이 잠드는 찬 바람이 부는 시간까지 기다리지 않았던가?
귀음을 내며 바람이 차가워진 순간, 이생은 자신이 정한 목표 지점을 향해 사막으로 뛰어나갔다.
그런데…….
콰콰콰콰!
섬찟한 소음과 함께 모래가 세찬 급류처럼 흘러오기 시작했다.
“대, 대사충?”
어째서, 어째서 잠들어 있어야 할 대사충이 깨어 있단 말인가?
다급해진 이생은 미친 듯이 속도를 높였다.
콰아아아!
하지만 뿌리칠 수 없었다. 모래가 솟구치고, 이내 떡 벌어진 거대한 아가리와 함께 대사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곧장 이생을 덮쳐 왔다.
빌어먹을…….
대사충이 내뿜는 포효와 그 거대한 위용에 짓눌린 이생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얼어붙었다.
단숨에 삼켜질 것이다. 놈의 몸속으로 들어갈 것이고, 위액에 녹으며 죽지도 못한 채 고통받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체념한 이생이 양팔을 축 늘어뜨리며 눈을 질끈 감은 그때였다.
쩌어어엉!
“……?”
살며시 눈을 떠 보니, 사막을 진동시키는 소음과 함께 대사충이 저만치 날아가고 있었다.
저 거대한 놈이…… 날아가?
이생의 얼굴에 자리한 황당함이 사라지기도 전에,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모래 벌레 따위가 어디서 내가 찜한 걸 노려?”
“…….”
이생은 멍하니 자신을 구한 이를 바라봤다.
은은한 금빛을 뿌리는 봉을 어깨에 턱 걸친…….
“파, 판관?”
“누가? 내가?”
“…….”
아닌가?
하긴, 판관이면 나찰귀였던 자신이 몰라볼 리가 없다.
확실히 그의 몸에 느껴지는 위압감은 도산옥의 판관들과 비슷했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그럼 누구?”
“널 무척이나 필요로 하는 사람?”
“……사람? 사람이 어찌 지계에? 와중에 저 큰 대사충을?”
“…….”
이생의 얼빠진 질문에 진무가 살짝 벌린 입술 새로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럼 이 자식아, 신선이라고 하리? 지계인데? 잠입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