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627
97화
허공이 거대한 망치에 때려 맞은 것처럼 갈라졌다.
거미줄처럼 퍼져 나간 균열이 더해지고 더해져 더는 나누어질 수 없을 만큼 갈라졌을 때.
쩌어엉!
천지를 뒤흔드는 소음과 함께 공간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잘게 쪼개진 얼음 조각과도 같은 균열을 뚫고 나온 진무가 몸을 뒤틀며 신목의 가지를 휘두른다.
휘도는 궤적이 회오리를 만들며 깨진 조각들을 모조리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콰우우우!
극대화된 회전력의 끝자락에서 신목의 가지가 한 곳을 향해 뻗어지는 순간, 빨려들었던 공간의 조각들이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빛줄기가 공간 너머를 향해 쏘아지는 광경은 눈을 떼기 힘들 정도의 장관을 연출하며 세상을 환히 밝혔다.
[하압!]그러나 곧바로 거친 일갈과 함께 공간의 너머에서 밀려든 시커먼 기운이 세상을 잡아먹었다.
거대한 벽처럼 사방을 에운 어둠을, 빛줄기가 세차게 강타했다.
파각! 파가각!
하지만 부서진 빛의 파편이 별처럼 어둠을 수놓은 것이 전부였다.
“쳇!”
공격이 통하지 않자 진무가 다급하게 몸을 뒤로 물렸다.
고작 한 걸음 만에 그의 신형이 거리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멀리 나아갔다.
쿠우우…….
그리고 깨진 공간 저편에서 미증유의 힘을 가진 괴수가 비로소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본모습을 드러낸 귀모였다.
하나 형태로 규정지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어둠이었다.
먹구름처럼 하늘을 가득 채웠고, 땅거미가 되어 대지를 잠식해 나갔다.
신목의 가지를 곧추세우고 귀모의 존재감을 찾던 진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위치를 특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존재감은 하늘을 메운 먹구름에 있었고, 대지에 드리운 땅거미에 있었으며, 흐르는 대기 안에도 있었다.
어째서?
그리고 한참 만에야 진무는 비로소 깨달았다.
젠장할 귀모…….
이제 알겠다, 어째서 그녀가 마왕들만 보내고 직접 인계로 오지 못했던 것인지……. 또한 어째서 지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알 수 있었던 것인지.
그녀의 진체(眞體)가 지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약을 바짝 올려서, 그녀의 전력을 확인하기는 했는데…… 이렇게 되면 이제 어쩌지?
“하아, 빌어먹을…… 이건 정말 예상도 못 했네.”
진무의 짜증 섞인 중얼거림에 눈앞에 있던 대기가 아지랑이처럼 꿀렁이며 투명한 형체를 만들어 냈다.
[놀란 모양이구나. 니가 말하는 태초의 땅에 있다는 신목이 나에 대해서는 이야기해 주지 않았던 모양이지?]“…….”
투명한 주제에 조롱과 비웃음을 표현하다니. 아주 연기파 나셨네.
“그러게나 말이야, 이런 중요한 것도 안 알려 주고……. 가지만 잘라 왔는데, 나중에 찾아가서 진짜로 불태워 버려야겠어.”
진무가 이를 갈며 투덜거리자 투명한 형체가 제 모양을 자랑하듯이 꿀렁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누구라도 똑같은 반응이겠지. 이 모습을 보여 준 것은 내가 귀모가 된 이후로 처음이니까.]“처음? 그럼 마왕들도 몰랐던 건가?”
[알 턱이 없지 않으냐? 나에 대한 것은 옥황조차도 모를 것이다.]“…….”
하긴, 북리도천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자신에게 미리 언질을 주었을 것이다. 옥황도 그렇고…….
아니, 그런데 옥황과 귀모는 혼례를 치렀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옥황이 그녀의 진체를 보지 못했다고?
“혼례까지 치른 주제에 잘도 감췄네.”
[혼례? 큭, 이미 너 또한 신의 반열에 올랐음인데, 인간의 작디작은 개념으로 우리를 규정하는 것이냐?]“…….”
[옥황과 만난 것은 신진철에 어둠의 힘을 불어넣어 만든 나의 우(偶: 인형)였다.]“사념체(思念體)라는 소리냐?”
[비슷하지.]“젠장, 누가 귀신들 대장 아니랄까 봐. 그래도 좀 너무한 것 아니냐? 혼례는 인륜지대사라 불릴 만큼 중요한 일인데.”
[큭큭, 또 인간의 개념이냐? 하나 어디 나만 그러했을까. 옥황도 마찬가지다. 그놈 또한 제 영체만을 보냈을 뿐, 진체를 보여 준 적은 한 번도 없다.]“뭐? 그럼 옥황도 천계냐?”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빌어먹을, 부부라면서 서로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어도 되는 거야?”
[부부? 그리 부를 수도 있지. 하지만 음과 양의 극점에 오른 우리가 어찌 서로의 진체를 보이며 교류할 수 있겠느냐? 낮과 밤이 공존하지 못함과 똑같은 이치인 게지.]“…….”
그 말에 진무는 그만 픽 웃음을 터트렸다.
음과 양이 교류치 않아? 놀고 있네.
니들은 그래서 안 되는 거다.
한쪽에만 치우쳐져 있으니 이렇게 삐뚤어진 게지. 멀쩡한 인계도 막 공격하고…….
“혹, 인계에 직접 오지 못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
[넘겨짚어 묻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만, 답은 해 주마. 네 말이 옳다. 지계 전체를 옮기지 않는 이상 내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가 없다. 사념체를 보낼 수밖에 없지.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사념체가 소멸당하면 나로서도 충격이 큰지라.]“그랬군. 젠장…….”
진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런 줄 알았으면 지계로 오지 않았을 텐데…….
귀모만 오지 않으면, 장기전으로 끌고 갔어도 충분했다.
마왕? 마귀?
그딴 놈들이 백날 찾아와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오는 족족 때려잡으면 그만이고, 통로는 신령들을 모아다가 봉인해 버리면 되는 일이니까.
황폐해진 세상도 신목에게 가지를 뺏어다가 무당산처럼 만들면 언젠가 예전처럼 푸르게 변할 것 아닌가?
실수였고, 오판이었다.
이래서야 스스로 귀모의 뱃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저리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도 자신감이 차고 넘쳐서일 것이다. 자신이 지계로 온 이상 절대로 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이렇게 되면 어찌 싸워야 하는 거야?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줘 패려 해도, 특정한 형체가 없는 놈이랑 싸워 본 적이 있어야 뭐라도 해 보지.
이건 뭐, 세상아 덤벼라도 아니고…….
결국 허공에 대고 주먹질하는 미친놈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저런…… 몹시도 실망스러운 얼굴인걸?]“……안타깝게도 그러네.”
“이 마당에 회유를 하겠다고?”
[원한다면 네게 인계를 주마.]어째 곧바로 공격해 오지 않는다고 했더니…….
[네 조건대로 인계는 더 이상 건들지 않겠다, 나의 편에 서서 천계와 싸워 준다면. 어차피 내 목적은 약하디약한 인계 따위가 아니라 천계였으니까.]“흠…….”
[깊이 생각하고 결정해도 좋다. 시간은 충분하니까.]“…….”
귀모는 인계를 천계를 공격할 길목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뭐, 나쁘지는 않다.
인계만 무사할 수 있다면 천계가 이기든 지계가 이기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쁘진 않은데.
“젠장, 거절한다.”
[뭐?]“마음에 안 들어.”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냐? 원하는 조건이 있다면 말해 봐라. 네가 무엇을 말하든 들어줄 것이다.]“그래? 그럼 니가 내 밑으로 와라.”
[…….]“내가 사람이었을 때부터 남 밑에 있어 본 적이 없거든.”
[…….]“내가 혁련무강일 때 어떻게 사패천주까지 오른 줄 아냐? 잘난 놈 배신하고, 못난 놈 짓밟고, 도와준 놈 등에 칼…… 어쨌든 단 한 번도 남 밑에 끝까지 있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되살아나서 도사의 길을 걷긴 했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곧 무림이 되었지. 황제도 발아래 고개를 조아리게 만들고 말이야. 말하자면 인계에선 나만큼 성공한 놈이 없단 뜻이다. 하긴 지금도 마찬가지지. 천계에 몸담았으나, 결국 지금 나의 위치는 니들과 동등해졌어. 태초의 신 마고의 아들이라, 이 말이야.”
지난 과거를 회상하듯 이어진 진무의 말에 귀모의 투명체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물론, 니 밑에서 찬찬히 힘 쌓아 가면서 나중에 등짝에 칼 꽂으면 그만이기는 하지. 그런데 니가 그냥 둘 거란 생각이 들지 않거든. 필시 종속시키고자 하겠지.”
[당연한 수순이다.]“그래. 그러니까 협상 결렬이다. 난 내 방식대로 해야겠어.”
[네 방식?]“어.”
[……?]“처음엔 그냥 너만 줘 패서 설득하려고 했는데, 지계 자체가 너라는 것을 알았으니…… 어쩌겠냐? 지계를 부숴 버려야지.”
[지계를 부숴?]“그래야 뒈질 거 아니냐? 뭐, 그 과정에서 균형이 비틀리기야 하겠지. 하지만 천계도 무너뜨려 버리면 그만이다.”
진무의 눈동자가 시퍼렇게 빛나기 시작했다.
“천계와 지계. 경계를 나누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둘 다 부숴 버리고, 태초가 그랬듯 인계부터 다시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니들 둘 다 인계에서 떨어져 나간 놈들인 거잖아?”
한동안 멍하니 쳐다보던 투명체가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다.
[미친놈이구나.]“어, 미쳤어. 내가 원래 그래. 남들도 다 손가락질하더라, 너 같은 미친놈은 없을 거라고……. 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진무가 늘어뜨렸던 신목의 가지를 허리로 당겨 발검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그거 아냐?”
[……?]“나한테 욕하던 놈들이 어떻게 됐는지?”
진무의 입꼬리가 천천히 솟구치더니, 이내 싸늘한 미소를 그렸다.
“그 새끼들…… 다 죽었다!”
파앙!
진무의 발이 허공을 탄탄한 대지처럼 밟았다.
슈아아악!
허리에 놓였던 신목의 가지가 당기는 손을 따라 반월 모양의 궤적을 그렸다.
스걱.
투명체가 반으로 잘렸다.
하지만 애초에 대기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던가? 쏟아지는 폭포가 그렇듯, 잘렸다 다시 합쳐진 투명체가 싸늘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어리석은 놈.]“…….”
콰아아아!
열기로 지글지글 끓던 대지가 푸학 솟구치는 수증기와 함께 창처럼 쏘아져 나왔다.
피할 곳은 없다.
지계 전체가 귀모인지라, 아예 빠져나가지 않은 이상 모든 곳에서 공격받을 터.
차라리 부순다!
콰드드득! 콰아아앙!
수직으로 그어진 신목의 가지가 솟구치는 땅을 힘껏 찍어 눌렀다.
뭉쳤던 대지가 잘게 부서진다.
하나 잠시뿐이었다.
대기가 칼날처럼 변해 쏘아져 들어오는 것을 막는 사이 부서진 흙더미가 다시금 하나로 뭉치고, 이내 거대한 장벽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빌어먹을…….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린 진무가 토벽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오행, 토기(土氣).
파사삭!
장벽이 푸석거리며 부서져 하늘에 흩날렸다.
하지만 대지는 귀모의 육신과 다를 바 없기에 잠시의 틈을 만든 것이 전부였다.
부서진 흙들이 알알이 나누어져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마, 만천화우?”
순간 그렇게 보였다.
아니, 그보다 더 심했다.
하늘을 가득 채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신의 무덤이라도 만들어줄 요량으로 덮쳐 오고 있으니까.
와중에 망할 투명체…….
웃어?
마치 장난감이라도 가지고 노는 양?
“이런 쌍!”
잔뜩 열 받은 진무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신목의 가지에 조화의 기운을 모조리 담아 넣었다.
“하아아압!”
그리고 거친 기합성과 함께, 있는 힘껏 지면에 내리꽂았다.
꾸우우우웅!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뒤흔들렸다.
충격파가 원형의 칼날처럼 퍼져 나가며 닿는 모든 것을 부숴 버렸다.
“하악, 하악…….”
과도한 힘을 사용한 탓인지 진무가 무릎을 꿇고 가지에 몸을 지탱한 채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화풀이를 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땅은…… 어?
순간, 진무는 투명체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뭐지, 저 꿀렁거림은?
어째 무척이나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
그리고 순간, 뭔가가 번뜩 떠올랐다.
그래, 그런 거였나?
지계는 곧 귀모.
달리 말하자면 대지는 그녀의 육신이며, 흐르는 강물은 그녀의 피와 같다.
즉, 자신이 있는 곳은 그녀의 몸속…… 이라는 거잖아?
“큭, 어째 산과 강을 가지고 마고의 살점이니 피니 하더니…… 그렇구만, 그런 거였어.”
진무가 사악한 웃음을 머금었다.
귀모…… 내가 지금 니 몸속에 있다, 이거지?
그럼 지금부터 똑똑히 알려 주마.
어른들이 어째서 아무거나 주워서 처먹지 말라고 그리 잔소리를 하는 건지.
물론 니가 원해서 처먹은 건 아니겠지만.
단언컨대, 너는 오늘 사상 최강의 기생충에 대해 알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