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83
83화
하긴 지금으로서는 느낄 수가 없겠지. 저런 상태라면 내공은커녕 무인이 가진 예민한 감각조차 둔해졌을 테니까.
진무가 걸음을 떼자 백표가 그 뒤를 힘겹게 따랐다.
한 발 한 발 바닥을 끌면서 걷는 그는 너무 느렸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진무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행인들의 발길이 드문 으슥한 골목이었다.
진무는 일부러 높다란 담벼락에 가려 달빛조차 들지 않는 곳을 골랐다.
“여긴?”
“여기?”
진무가 피식 웃고는 어둠에 그늘이 더해진 담벼락을 바라보았다.
“이런 곳이지.”
발을 뗌과 동시에 별안간 진무의 신형이 쭉 늘어났다.
그리곤 어둠을 향해 손을 뻗어 넣었다.
그런데.
취릿!
그늘 속에서 한줄기 섬광이 쏟아져 나왔다.
“어딜!”
땅!
쇳소리가 났으나 진무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섬광을 지워 버린 태청산수가 곧바로 무언가를 움켜쥐었다.
“켁!”
억눌린 신음과 함께 진무의 손에 모가지를 잡힌 흑의인이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그리고.
콰드득!
“끅!”
무릎뼈를 짓밟아 으깨 버렸음에도 흑의인은 짧은 신음 이외에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되레 뼈가 으스러진 소리가 더욱 컸다.
“참는 거 보게. 꽤 아팠을 텐데?”
진무가 사악하게 웃는데.
퓻!
다리가 으스러졌음에도 흑의인이 입을 오므려 무언가를 쏘아 내었다.
팅!
그쯤은 예상하고 있다, 이놈아.
시도는 좋았으나 그저 휘젓듯 손을 떨친 것만으로 비침이 바닥에 떨어졌다.
진무는 곧장 흑의인의 턱을 움켜쥐었다.
뿌드득!
턱뼈가 으스러졌다. 혹시나 자결을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진무는 그에 그치지 않고 그의 양팔을 잡아 역으로 꺾어 버렸다.
“끄으…….”
이번에는 좀 더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완전한 제압.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음에도 진무의 시선은 자신이 쓰러뜨린 흑의인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전각의 지붕 위에 머물렀다.
또 다른 흑의인.
골목을 한 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그가 진무를 응시하다 사라졌다.
‘새끼.’
진무는 피식 웃었다.
그 사이 백표가 팔다리가 모두 부서져 땅바닥에서 버둥거리는 흑의인을 향해 다가갔다.
“이자는?”
“삼살당 소속이겠지. 집 나간 개를 찾으러 온.”
“아.”
백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삼살당에 대해 아는 것은 전무했다. 기억이 온전치도 않아서도 있었으나 살욕에만 취해 있었기에 딱히 관심도 없었다. 중요한 건 죽일 사람을 정해 주는 청부뿐이었다.
그가 삼살당에서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살주와 가끔씩 찾아오는 커다란 덩치의 죽립인, 일살 초립.
그 둘뿐이었다.
흑의인을 바라보던 백표가 진무를 향해 물었다.
“하면 이제 이자를 심문해 삼살당에 대해 알아내실 겁니까?”
“뭐? 왜?”
“예?”
그럴 생각은 없었다.
살수란 게 원래 이런저런 내용을 발설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굳이 고문 등으로 힘을 빼지 않아도 어차피 알아서 다시 찾아올 놈들이다.
좀 전에 지켜보던 놈도 있었으니 분명 밤새 계속해서 찾아와 귀찮게 할 게 틀림없었다.
진무가 원한 것은 전투 불능.
죽이기는 좀 그렇고 찾아오는 족족 하나씩 박살 내서 놈들의 전력을 줄여 놓을 생각이었다.
놈들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때까지.
그다음에는 그저 자신이 유리한 장소에서 그들이 찾아오는 것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어이, 백표.”
“예?”
“지금부터 꽤 바빠질 것 같거든? 자네의 도움이 좀 필요해.”
“……?”
혼자서도 충분할 것 같은데?
“그 몸으론 힘들겠지?”
“…….”
옳은 말이다. 지금의 몸으로는 살수의 공격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살수야. 나쁜 놈들이란 말이지. 그러니까 죄책감도 가질 필요 없어.”
백표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진무가 히죽 웃었다.
“빨어.”
“……예?”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돼야지.”
“아!”
그제야 의미를 이해했다.
채기법. 상대의 생기를 빨아들이는 무공.
진무의 말에 따르면 백표는 이제 그것밖에 사용할 수가 없다.
그는 이제 남은 인생 여름철 극성맞은 모기처럼 남의 생기를 빨아먹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눈앞에 있는 것은 살수였다.
“……알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백표가 굳은 얼굴로 흑의인에게로 다가갔다. 결심이 선 것이다.
“대신 조금만 빨아. 죽이지 않을 정도로만.”
“……예.”
백표는 비실거리는 몸으로 다가가 흑의인의 손목을 잡았다.
맥이 뛰는 자리.
가장 생동감이 넘치는 곳.
쫘아악!
“끄으으으!”
흑의인의 왕방울만 하게 커진 눈에 경악이 어리고 백표의 눈동자에는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좀 사악한데?
* * *
우두둑!
“크으윽!”
뼈마디가 뒤틀리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는 흑의인.
이걸로 여섯. 백표가 생기를 흡수한 삼살당 살수의 숫자였다.
처음에는 두 놈이 곧장 공격을 해 오더니 다음에는 네 놈이 찾아왔다.
물론 그들의 은신을 눈치채지 못할 진무가 아니었다. 나타난 자들은 어김없이 진무에게 팔다리가 부러졌고 백표의 먹잇감이 되었다.
채기를 한 덕분인지 백표의 움직임이 꽤 빨라졌다.
하지만 아주 잠시였다.
채기법으로 받아들인 내공은 체내에 쌓이지 않는다. 두 시진이 지나면 흩어지고 만다.
‘흠.’
진무는 막 채기를 끝내고 눈동자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 백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찌해야 하나. 내일이면 분명 내공이 사라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텐데.
“이봐. 백표.”
“예! 은공!”
힘이 생기니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또한 눈빛에는 사이함이 배어 나왔다.
“채기법으로 얻은 내공을 단전에 가두는 방법이 있어.”
“예?”
묵룡혼원공.
진무는 그것의 기초를 전할 생각이었다.
물론 기초다.
채기법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일단 그 하나로는 흡수한 모든 내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었다.
그러니 흡수한 기운을 연단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이는 정파의 심법으로 내공을 연단하는 과정과 비슷했다.
채기를 통해 얻은 힘에서 순수한 기운만 흡수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그리고 연단을 한다고 해도 계속해서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채기법으로 빼앗고 연단을 통해 쌓은 내공은 일정 단계가 지나면 더 이상 늘지 않는다. 최대한으로 쌓아도 탄기?
절대의 경지로 가기 위해서는 그다음 단계가 필요했다. 깨달음이 아닌 다른 방법이기에 기본공을 안다 해도 전수되지 않으면 절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진무만이 알고 있었다. 진무가 알려 주지 않으면 절대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진무는 도움을 주기로 결정한 이상 확실하게 도와줄 생각이었다. 남이 싼 똥이기는 하지만 기왕 치우기로 한 거 흔적이 남아서야 되겠는가. 치우고 물청소까지 깔끔하게 해 줘야지.
그래. 어차피 자진할 놈, 잠시 즐기다 가게 해 주자.
“하지만 은공께선 분명 부작용이 있다고.”
“그건 불완전한 방법일 때 그렇지.”
“…….”
채기법은 생기를 빼앗되 대상을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하여 사기를 배제하고, 빼앗은 기운을 정제하기만 하면 일정 경지까지 가장 빠르게 오를 수 있는 더없이 좋은 무공이었다.
하지만 그 수련법에 맞는 체질이 있었기에 아무에게나 전하지 않았다.
남의 기운을 뽑아 사용하는 것이 어디 몸에 좋겠는가?
천우명에게 채기법을 가르친 것은 체질이 그에 적합했기 때문이었고, 백표가 강제로 익히고도 죽지 않은 것은 운이 억세게 좋은 경우였다.
부작용을 겪으면서도 채기법을 사용했다. 즉, 그 또한 익히기에 알맞은 체질이란 뜻.
“잘 들어. 채기법으로 흡수한 기운을 단전에 쌓는 방법이니까.”
“……!”
진무의 말에 백표의 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혼원(混元)은 모든 기운의 원형이자 근원. 모든 것이 정제되기 전의 어둠. 처음이 곧 끝이고 끝 또한 처음이며, 둘이 아닌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니 어지러움 속에 질서가 만들어지고 이는 곧 혼원공이라…….”
진무의 말은 기다림 없이 이어졌다.
백표는 서둘러 좌정을 하고 그의 이끌림에 따라 운공을 시작했다.
“단전에서 시작한 기운이 회음(會陰)을 지나 독맥(督脈)과 임맥(任脈)을 흐르고 다시 단전으로 돌아오나 멈추지 아니하며 그 기운의 순수함이 남을 때까지…….”
구결의 주해(註解)였다.
혹여 백표가 알아듣지 못할 것을 우려해 진무는 구결을 상세하게 풀어서 설명했다.
그래도 천우명보다는 훨씬 더 잘 알아먹어서 가르치기가 쉽다.
그의 설명은 반복되었고 백표는 점점 더 운기에 빠져들었다.
한동안 주해를 읊조리던 진무는 백표가 구결에 익숙해진 듯이 보이자 말을 멈추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팔자에 없는 호법을 서게 생겼군. 어디 객점이라도 잡고 가르쳐 줄 걸 그랬나?”
피식 웃은 진무는 기운을 퍼트려 주위를 면밀하게 살폈다.
혹시나 찾아올지도 모를 적에 대비해서.
* * *
“모두 죽었다고?”
“죽은 것은 아닙니다만 모두가 팔다리뼈가 부서져서 전투 불능이 되었습니다.”
“…….”
“백표와 함께 있는 자의 무공이 가벼이 생각할 수준이 아닙니다.”
거한 초립의 말에 삼살당의 주인 범용의 얼굴에 주름이 더해졌다.
불안감의 정체.
이살 현묵으로 하여금 백표를 찾게 했다. 그런데 마치 보란 듯이 길거리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살이 그를 감시하기 위해 보낸 하급 살수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죽이지도 않고, 싸울 수 없을 정도로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살의 말에 따르면 그가 자신을 보았다고 하더군요.”
“뭐라고?”
“분명 그리 말했습니다. 지켜보는 자신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쳐다보았다고.”
“이런…….”
범용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 무슨 뜬금없는 일이란 말인가? 설마 누군가 삼살당을 노리고 일부러 이 같은 짓을 벌였단 말인가?
“누구인가? 그는? 백표와는 어떤 관계인가?”
“아쉽게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뭣이?”
“처음 보는 자인데 십 장(30m) 이내로 접근을 불허하였습니다.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조리 그의 손에 당했다고 합니다. 희한하게도 당한 자들은 팔다리가 부러진 것은 물론, 온몸에 힘이 빠진 것처럼 무력한 표정이라고 하더군요.”
“음.”
기감이 십 장이나 되는 무인.
살수는 무인이되 무인이 아니다. 오직 죽이기 위해 훈련된 자들이다. 그렇기에 정면 승부보다는 암습을 하는 것에 익숙하다.
암습을 하기 위해서는 청부 대상이 자주 가는 장소, 만나는 사람, 행동 양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분을 조사한다.
죽일 때도 절대로 서두르지 않는다. 적을 자신이 원하는 장소로 끌어들이고,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결행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모습과 기운을 감추는 은신 능력이 절대로 필요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은 삼살당의 특급 살수 셋뿐이었다.
그 와중에 살수들의 은신을 귀신같이 파악하는 능력을 갖춘 것도 모자라, 그 너머의 이살까지 목격했다면 보통 껄끄러운 상대가 아님이 틀림없었다.
도대체 누굴까? 어째서 그런 자가 백표의 옆에 있는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결론은 하나다.
“백표를…… 버린다.”
“……!”
초립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친다.
“알겠습니다.”
“단 초립, 너는 나서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라. 이살에게 맡겨.”
“현묵에게만입니까?”
“그래. 청부금은 금 한 냥이다.”
“알겠습니다.”
적은 돈이 아니다. 돈으로 목숨값을 매길 수야 있겠느냐마는 금 한 냥은 최상위 청부에 들어가는 금액이었다.
삼살 백표. 삼살당에 들어온 지 고작 다섯 해가 조금 넘었다.
그럼에도 특급 살수로 인정받아 삼살당을 대표할 정도로 뛰어난 고수 중의 고수였다.
그를 버린다는 것은 죽음을 선고하는 것과 다름없었고, 청부금이 내려졌으니 초립을 제외한 삼살당의 살수 전부가 움직일 것이다.
그는…… 절대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초립이 고개를 숙이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범용은 청부를 내렸음에도 자꾸만 커져 가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쌓인 경험이 그에게 자꾸 경고했다.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