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을무반의 수업이 중지되고 모든 무생들에게 대연무장으로 모이라는 소집령이 떨어졌다.
“무슨 일이지?”
“글쎄. 혹시 불시 평가가 아닐까?”
“또? 어제 종합 평가가 있었는데?”
무생들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 채로 수군거리며 대연무장으로 향했다.
미리 도착한 이들은 여덟 명의 교두들에 의해 열을 지어 늘어서 있었고, 모두가 모였을 때 용봉관주 등여평과 정무칠성의 한 사람인 무풍개 양소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양소방이다.”
“와아아아!”
그의 이름이 주는 의미.
무생들 중에는 이름만 들어 보았을 뿐 양소방을 처음 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정파 무림에서 가장 강한 일곱 명의 무인 중 하나이자 가장 신출귀몰한 그의 모습에 함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내가 온 이유를 대충 짐작하리라 믿는다.”
꿀꺽.
무생들이 침을 삼키며 결의에 찬 눈으로 양소방을 바라보았다.
양소방이 고개를 끄덕이자 총 교두 백천성이 앞으로 나섰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순서대로 지명된 교두들 앞에 서도록. 화산의 현선!”
“예!”
현선이 처음으로 호명되었다.
그리고 일 조를 맡은 천검(天劍) 여옥상 교두에게 배정되었다.
“다음은 무산파의 귀칠!”
차례로 호명된 무생들이 다시금 열을 짓기 시작했다.
팔십 명의 무생들의 절반이 각자의 자리를 차지할 무렵.
“무당의 청상!”
“예!”
“칠 조.”
청상의 조가 정해졌다.
쾌검술로 이름이 높은 소요검객 담평익 교두의 조원이었다.
제갈산산은 오 조에 배정이 되었고 아직 청우의 이름은 나오지 않은 참이었다.
“석문장 단우진!”
“예!”
“팔 조. 이상 끝!”
백천성은 그를 마지막으로 무생들의 이름이 적힌 서류철을 덮고 등여평의 뒤로 물러났다.
“어? 저, 저기 전 안 부르셨는데요?”
마지막까지 이름이 불리지 못하고 덩그러니 남은 청우의 모습에 모두가 시선을 집중했다. 무생들 중 일부는 킥킥거리며 웃었고, 교두들은 눈을 찌푸렸다.
“저 아이는 분명?”
안면이 있었던 양소방이 묻자 등여평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약간의 문제가 저 아이입니다.”
“응? 뭐가 말인가?”
“무공의 재능은 을무반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데…… 나머지에서 죄다 낙방하는 바람에.”
“흠.”
양소방이 청우를 바라보았다.
분명 진무를 따라다니던 무당의 이대제자가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자신이 어떻게든 엮어 보려던 진무가 정무맹주 철지량과 비무를 마친 다음 곧바로 표주를 떠났다 들었다.
‘고얀 놈. 나랑 할 때는 제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지도 않더니.’
진무를 떠올린 양소방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머지가 다 무슨 소용인가? 일단 시험 대상에 포함하게. 이번 시험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을 걸세.”
“흠, 알겠습니다. 하면.”
등여평이 잠시 고심하다 백천성의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 백천성이 청우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다가 외쳤다.
“무당의 청우!”
“예!”
“칠 조. 이상 끝!”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청우가 뒤뚱거리며 뛰어가 칠 조의 맨 뒷자리에 섰다. 제 딴에는 후다닥이었겠지만.
그리고.
“지금부터 을무반 시험을 시작한다. 각 조는 교두들과 함께 중원을 여덟 곳으로 나누어 이동하며 시험을 치른다! 출발 시간은 내일 묘시(卯時) 초! 이번 시험을 통해 각 조별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은 이들이 갑무반에 선발될 것이니! 모두 최선을 다하라!”
“예!”
등여평의 말에 무생들의 대답이 연무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시험이 시작되었다.
또한, 그들은 시험과 더불어 ‘궁’이라는 자들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결연한 표정이 참으로 듬직하구만그래.”
떠날 준비를 위해 흩어지는 무생들을 보며 양소방이 흐뭇하게 웃었다.
“이제 어쩌실 생각입니까? 잠시 머무르며 쉬시지요.”
“그럴 수야 있겠는가?”
“예?”
“저 아이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네. 나도 살펴봐야지.”
“하면 바로 떠나실 겁니까?”
“그럴 생각일세. 혹 지나는 길에 고약한 놈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고.”
“예?”
“그런 게 있네.”
의아한 등여평의 표정에 양소방이 싱긋이 웃었다.
그는 떠나는 길에 진무도 한번 찾아볼 생각이었다.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게 뭔 상관이겠는가? 그저 총타에 일러 찾아보라 하면 될 일이었다.
‘요놈, 요 고얀 놈. 얼굴이나 보고 떠날 것이지.’
* * *
“야!”
“왜요?”
진무의 고함에 사악한 기세를 풍기며 육중한 체구의 덩어리(?)들을 조져 놓고 있던 백표가 고개를 돌렸다.
“너 속으로 내 욕했지?”
“제가요?”
“뭐 고얀 놈 이딴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절대로 아닙니다.”
백표가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하지 마! 이 새끼가 고기 좀 맛나게 썬다고 오냐 오냐 했더니.”
빡!
진무가 성큼성큼 다가가서는 백표의 대갈통을 후려쳤다.
“아니라니까 왜 때리십니까, 은공!”
반항을 해? 이 새끼가 미쳤나?
진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백표를 쳐다보았다.
지난 한 달간의 여정.
동정호를 떠난 진무와 백표는 수로에 이어 마차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광서성의 동북단 관문인 흥안(興安). 백가장이 있다는 계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오는 길에 세 곳의 산채를 털었고 두 곳 마을에서 시비를 걸어 온 흑사방 지부를 박살 내 놓았다.
그 때문에 둘에 대한 이름이 중원의 서남부 사파에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서남쌍괴(西南雙怪).
별 거지 같은 명호였다.
딱히 밝히고 다닌 적은 없지만 무당의 제자에게 기이할 괴(怪) 자를 붙이다니. 그리고 쌍괴라니?
당연히 천신과 그의 수하. 혹은 정의의 사도와 떨거지 정도가 되어야지.
어디 묶을 게 없어서 이런 사악한 놈과 쌍으로 묶는단 말인가?
격 떨어지게시리.
어쨌든 선하디선한 사파의 무인(?)들을 공격하는 질 나쁜 놈들이라는 소문이 난 뒤로는 습격이 잦아졌다. 지금 백표의 발아래 쓰러진 덩어리들도 사파의 습격자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백표는 당연히 채기법으로 기운을 모았고 이제는 제법 건장해진 몸을 자랑하고 있었다.
퀭했던 눈동자가 부리부리해지고 근육까지 썩 알차게 생기니 이제야 좀 무인다운 외양으로 보인다.
거기에 내력이 더해진 난파풍도는 공기 가르는 소리도 나지 않을 만큼 예리해졌다.
문제는 몸과 함께 성격도 변했다는 것이다.
정신이 돌아온 직후에는 좀 벽창호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명문 정파의 자식처럼 예의를 지켜 대하더니 채기법으로 기운이 쌓여 갈수록 눈빛은 물론 성격마저 사악해진다.
“이게? 눈 안 깔아?”
“…….”
“잘하면 칼질이라도 하겠다?”
“칼질이라니요! 은공께 그딴 마음 품어 본 적 없습니다!”
“그런 놈 눈빛이 그래?”
살기를 띠며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진무를 바라보던 백표가 기세에 눌려 슬며시 고개를 돌린다.
대체 뭐 이딴 부작용이 있단 말인가?
지나치게 도전적이다.
꼬박꼬박 은공이라고 부르며 말은 참 잘 듣는데 저놈의 눈빛이 문제인 것이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혼잣말처럼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귀에 정확하게 꽂혔다.
“이 새끼가?”
진무가 주먹을 움켜쥐고 눈을 부라리자 입을 꽉 다문 백표가 신경질적으로 돌부리를 걷어찼다.
“진짜 확……. 어휴, 말을 말자.”
괜스레 자신의 말투를 나무랐던 진허와 진궁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열 받았을 만했다.
아니, 하지만 입장이 다르지 않은가?
외적으로 보이는 것만 약관이었지 실상 팔십이 넘은 진무였다. 그런 자신에게 저따위 싸가지 없는 말투라니.
고기 잡는 솜씨가 좋아서 데리고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씻겨져 내려간다.
그래. 백가장까지만이다.
거추장스럽게 달고 다니면 귀찮기만 할 뿐이었다.
벌써 생각이 몇 번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뱉은 말은 무조건 지켜 왔던 진무는 이제 성격을 바꾸어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까지 하는 참이었다.
하지만 팔십 년이나 이어 온 그 강박에 가까운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야! 쫑알대지 말고 빨리 정리해.”
“예, 잘 알겠습니다! 은공!”
이 새끼 봐라, 들으란 듯이 목소리를 높여?
정말 진심을 담아서 곡소리 나도록 패 봐?
“자기는 꼼짝도 안 하면서. 맨날 이래라저래라…….”
또 구시렁거린다.
씨발, 그냥 죽여 버릴까?
치밀어 오르는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 낸 진무는 속으로 연신 무량수불을 외워 댔다.
딱히 도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으나 마음을 다스리는 데 이만한 게 또 없었다.
“화병 나겠네. 화병.”
진무가 도호를 외며 마음을 다스리는 동안 백표는 쓰러진 덩어리들에게서 채기를 시작했다.
“으으으…….”
기 빨린 놈들의 신음이 이어지고.
“자요.”
“…….”
백표가 놈들의 품에서 전낭을 수거해 진무에게 내밀었다.
이럴 땐 참 마음에 든다. 몇 번 보여 주었더니 곧잘 따라 하지 않는가? 이런 건 이제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잘 물어 왔다.
“제법 묵직하네.”
전낭 다섯 개의 무게가 느껴지자 조금 전까지 언짢았던 기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자, 그럼 돈도 생겼고, 가서 고기나 좀 먹을까?”
“그러시죠, 은공.”
순식간에 표정이 바뀐 백표가 환하게 웃는다.
희노애락의 부작용은 아직 유효한 모양이었다.
“자, 그럼 오늘은 늑대 새끼를 먹을까? 저번에 맛이 좋던데.”
“…….”
순간 진무의 뒤를 따르던 백표가 걸음을 멈추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왜? 뭐?”
“설마? 지금 또 포 떠 달란 말입니까?”
“왜? 무슨 문제 있어?”
당연하지.
돈도 생겼고 고기도 먹어야 한다면 당연히 돈을 쓴다고 생각하는 쪽이 정상 아니던가.
“아니, 봐 봐요. 저기, 저기, 저기.”
백표가 짜증이 잔뜩 서린 표정으로 불이 켜진 몇 곳을 가리켰다.
“널린 게 주루요, 객점입니다.”
“그래서 뭐?”
“뭐라니요? 돈이 생겼으니 주루나 객점에서 산해진미를 처먹어야겠다, 뭐 이딴 건설적인 생각은 안 합니까?”
“흐음.”
잠시 고민하던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주루와 객점을 잊다니.”
그 말에 백표가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못 볼 수도 있어. 아무리 은인 같은 고수라도 다른 데 신경이 팔려 있다 보면 못 보고 지나가는 것도 있겠지.
“자.”
“…….”
짤랑.
진무가 백표의 손에 전낭에서 꺼낸 동전 몇 개를 떨어뜨렸다.
“가서 술 사 와. 젤 맛난 걸로. 오늘은 특별히 너도 한 병 사 줄게.”
“…….”
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밝게 웃는 진무의 표정에 백표의 얼굴이 와장창 일그러진다.
“서둘러 가자. 배도 고프고 밤이 되면 한층 사나워지는 게 늑대란 놈이거든.”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왜 하필이면 이딴 놈을 은인으로 만났단 말인가?
대부분 나쁜 놈들에게서 빼앗은 것이기는 하지만 돈이 생기면 쓸 줄을 알아야지.
모은다.
한 푼도 안 쓰고 모은다.
동림전장 지부를 찾아가서 차곡차곡.
저축성 하나는 열 받을 정도로 뛰어난 은공이었다.
“이런 씨…….”
“어, 계속해 봐. 더 하면 팰지도 몰라.”
싱긋이 웃는 위협에 백표가 뒷말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몸을 돌려 주루로 갔다. 술을 사기 위해서.
그리고 그날 밤 흥안의 인근 산 깊은 곳에서는 울분에 휩싸인 불청객을 만난 늑대들이 팔자에 없는 횡액을 당하고 말았다.
“와! 진짜 끝내주는구나.”
익어 가는 고기를 바라보며 진무는 연신 감탄사를 뱉었고.
‘망할 노무 은공 새끼! 수전노 같은 은공 새끼!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은공 새끼!’
백표는 쉴 새 없이 얇게 썬 고기를 구워야만 했다.
“너 속으로 또 내 욕했지?”
“아 진짜! 아니라니까 왜 자꾸 그러십니까, 은공! 그냥 확 굽지 말까요!”
이 새끼 발끈하는 걸 보니 욕한 게 틀림없다.
심히 거슬렸지만, 진무는 한 번쯤 용서를 해 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채기법으로 내공이 늘어난 덕분에 난파풍도의 경지가 한층 심오해졌고, 고기가 상상 이상으로 맛있어졌기 때문이다.
“더 구워. 술 남았다.”
“…….”
투덜거리기는 해도 열심히 고기를 썰고 굽는 백표를 보며 진무는 명진이 참 편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사패천주일 때는 손 하나 까딱해 본 적이 없었구나.
‘백가장 문제를 해결해 주고 나서도 데리고 다닐까? 저 새끼 말투만 어떻게 고치면 딱 좋은데.’
그놈의 고기 앞에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진무가 백표를 데리고 백가장으로 향하는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맛있게 익어 가는 고기와 향기로운 술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