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89
89화
병무반의 시험이 끝났다.
교두들의 긴 회의 끝에 청우는 겨우 을무반 시험에 응시할 기회가 생겼고.
열 받은 한태석이 사정 봐주지 않고 자신의 전력을 다한 덕분에 제갈산산은 머리가 산발이 되는 고생을 하고서야 겨우 붉은 끈을 차지했다.
멀쩡하게 통과한 것은 청상뿐이었다.
물론 그 세 사람으로 인해 병무반 시험의 강도가 높아진 탓에 합격자가 서른도 채 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애초 계획보다 너무 적은 수였기에 재시험이 치러지는 등 우여곡절이 일어났다.
병무반의 시험을 통과한 후 휴식할 시간이 생긴 그들은 정무맹 내에 자리 잡은 객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와작, 까득.
“…….”
제갈산산이 멍하니 청우를 바라보았다.
정말 잘 먹는다. 도대체 저 많은 게 어떻게 다 뱃속으로 들어가는지.
“볼 때마다 대단하시네요.”
제갈산산의 감탄에 청상이 멋쩍게 웃었다.
“그나저나 이제 을무반의 시험이군요.”
“예. 다른 시험과는 달리 합격자가 딱 여덟으로 정해져 있으니 경쟁이 치열할 듯합니다.”
“어떤 시험인지 아십니까?”
“아니요. 아직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공지가 되지 않아서.”
“흐흠.”
정보력이 뛰어난 제갈산산이었으나 을무반 시험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한 가지 알려진 것은 이번 시험의 총감독이 무풍개 양소방 대협이라는 것입니다.”
“예? 양 대협께서요?”
“그러고 보니 두 분께선 이미 인연이 있다 하셨지요?”
“아, 그건 아닙니다. 양 대협과 연을 맺은 것은 사숙이신지라.”
“그렇군요. 어쨌든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정무칠성의 한 분이신 양 대협이 직접 주관하시는 시험이라니.”
“그러고 보니 내일부터 곧바로 수업이 시작된다죠?”
“예.”
“수업이라. 하면 수업 중에 시험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겠군요?”
“예. 저도 그리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면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듯합니다. 그것이 을무반 시험에 큰 영향을 미칠 듯하구요.”
제갈산산의 말에 고기를 먹느라 정신이 없던 청우 대신 청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무반의 시험을 통과한 것은 모두 팔십 명이었다. 이제 을무반으로서 인정을 받은 합격자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양소방을 기다리며 학관에 배정받은 숙소에 자신의 짐을 풀었다.
시험 일정이 정확하게 발표되지 않았으나 제갈산산의 말처럼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청우와 달리 청상은 반드시 갑무반에 들고 싶었다.
자신이 존경하는 사숙.
아직 그의 옆에 서기에는 실력이 너무 모자랐다.
무당을 떠나올 때 누구도 자신들에게 반드시 무엇을 하라고 목표를 정해 주지 않았다.
그저 잘 다녀오라. 몸 건강하게 잘 지내다 오라 그리만 말했다.
누구도 그들에게 무당의 이름을 드높이고 오라든지와 같은 부담스러운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상은 자신들이 무당의 얼굴임을 알고 있었다.
지금의 정무맹에 무당의 이름을 걸고 있는 것은 청상과 청우뿐이었다.
그들이 무당을 대표한다. 용봉관에서 그들이 이루는 성과는 곧 무당의 이름을 높이는 길임이 틀림없었다.
‘사숙께선 이미 정무칠성에 다가가고 계신다.’
양소방과의 인연, 그리고 검성 철지량과 호각지세를 이룬 비무.
그 두 가지만으로도 엄청난 위명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무당지검으로서 명성마저 그들과 비슷한데 무공까지 어깨를 나란히 하려 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들이 나아가야 할 때였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무당의 제자이자 오룡궁을 대표하는 무인으로서, 사숙이자 무당의 검인 진무의 사질로서 부끄럽지 않게.
무당의 이름을 드높여야 했다.
청상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청우야.”
“……예?”
청상의 부름에 볼이 빵빵하도록 고기를 문 청우가 고개를 들었다.
무공은 뛰어나지만 순박하고, 우직하지만 조금 모자란 자신의 사제.
“내일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당의 도인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예?”
“우리 둘 모두 반드시 갑무반에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덟 명만 뽑는다는데 저까지요? 사형이나 제갈 소저는 몰라도 저는…… 자신이……. 그냥 을무반에 있는 게.”
청우가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긁었다.
하지만 청상의 표정이 너무 단호했다.
“음, 그 말을 사숙께서 들으시면 가만두지 않으실지도 몰라.”
“……예?”
“지는 거 싫어하시는 거 알지?”
“…….”
“아마 뒈지게 맞을걸?”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청상의 말에 청우가 손에 들었던 고기를 내려놓았다.
입맛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아마 맞을 거야. 분명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는 청상의 모습에 청우가 눈동자가 보이도록 크게 뜬 눈을 쉴 새 없이 끔벅거렸다.
“그, 그럴까요?”
“확신해.”
“…….”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분명 진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청우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퍽! 퍽! 쩍! 쾅!
환청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동안 진무에게 맞았던 그 지옥 같은 경험이 눈앞에 주마등처럼 그려졌다.
그리고 청상의 얼굴에서 사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진무의 얼굴이 겹쳐진다.
꿀꺽.
분명 환상이고 환청인데 침이 절로 넘어가고 맞았던 곳이 쑤셔 오기 시작했다.
“잘하자.”
“……예, 예!”
* * *
시간은 때로 빠르게 흐르기도 한다. 용봉관 무생들의 시간이 그러했다.
시험 결과에 따라 정무반, 병무반, 을무반으로 나누어진 무인들은 미리 배정된 교두들에게 수업을 받으며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이 받아야 할 수업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무학에 대한 기초 지식부터 수많은 문파의 진법, 야생에서 생존하는 방법까지 가리지 않고 엄청난 양의 지식을 습득하게 했다.
그리고 매 수업마다 그날 수업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고, 열흘에 한 번씩 종합적인 평가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빡빡한 일정이 끝나면 개인의 자유 시간이 철저히 보장되었다. 그것은 교두들뿐 아니라 무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청우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입관 시험이 끝난 지 스무 날이 지난 어느 날.
“자, 이건 외우세요.”
“…….”
을무반 무생의 신분임을 알려 주는 봉황(鳳凰)이 수놓아진 수련복을 입은 제갈산산이 책을 펴 놓고 청우를 다그쳤다.
“이것도 외워야 합니까?”
“…….”
이것도라니? 겨우 이것만이다.
“당연합니다. 지금 몇 번째 낙방인지 아시죠?”
제갈산산의 아미가 살짝 찡그려지자 청우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교두님 말씀 못 들었어요? 한 번 더 낙방하면 병무반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구요.”
“…….”
제갈산산은 그 때문에 자신의 시간까지 쪼개 보충수업을 해 주고 있었다.
열흘에 한 번, 을무반 무생으로 치른 두 번의 종합 시험.
청우는 무공이 뛰어났다. 을무반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기초 지식 부분에서는 팔십 명 중 최악.
그리 어려운 내용도 아니었다. 반드시 함양해야 할 기본적인 수준이었다.
사실 무인에게 요구되는 지식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과거를 볼 학사도 아니고 뭐 하러 수준 높은 공부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진법이라든지 기관에 대한 지식 같은 것은 무조건 외우고 익혀야만 했다.
그것도 그리 어려운 수준이 아니었다. 제갈세가로 따지면 다섯 살 꼬맹이들도 익히는 매우 기본적인 내용이었다.
하지만 청우는 어렵게 합격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대놓고 낙방이었다.
빵점, 백지, 낙서. 도대체 어떻게 무공을 익혔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자, 다시 설명할게요. 육합(六合)은 천지(天地)와 동서남북(東西南北)의 방향을 가리키는 말로 음양가(陰陽家)는…….”
제갈산산의 설명이 이어지고, 청우는 점점 몽롱하고 멍청한 표정으로 변한다.
“집중해요! 집중!”
제갈산산의 뾰족한 고함에 청우가 번쩍 정신을 차린다.
“자, 외워 봐요.”
“에, 육합은 천지와 동서남북이고…… 동서남북이고…… 동서남북이고…….”
앵무새도 아니고 같은 말만 반복한다.
풀어서 설명해서 그렇지 기껏해야 오십 자도 안 된다. 도대체 이 간단한 걸 왜 못 외우는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던 제갈산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청우가 보이는 무공에 대한 발전은 실로 엄청났다. 무공 수업 시간에는 날아다닌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였고, 그 습득력에는 무생들뿐 아니라 교두들까지 놀랄 정도였다.
몸을 쓰는 수업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머리를 쓰는 수업에는…….
“하아.”
청상의 간곡한 부탁이 아니었다면 벌써 포기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열의와 성의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 하나 만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찌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잊어 먹는단 말인가? 뭐 이런 똥멍청이가 다 있단 말인가?
육합권은 할 줄 알면서 육합에 대해서 모른다는 게 말이나 되냐?
정말이지 신기할 정도였다. 사형제가 어찌 이리도 다르단 말인가?
듬직하기가 도사의 표본과도 같은 청상에 비하면 이건 뭐.
제갈산산의 잦은 한숨에 청우가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는데.
“분명 죽을 거야. 사숙한테…….”
“…….”
“확실해. 죽을 게 틀림없어.”
그의 등 뒤로 청상이 힘 빠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유령처럼 지나간다.
청우의 등줄기가 써늘해졌다.
진무만 생각하면 강제적으로 열의가 생긴다.
“저어, 제갈 소저?”
“뭐요?”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
제갈산산이 청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아, 좋아요. 제발 집중해서 잘 들어요. 이해하지 말고 그냥 외우라고요. 알겠죠?”
“……예.”
“육합은…….”
제갈산산의 말이 이어지고 청우가 한 자, 한 자 필기를 해 가며 열심히 되뇌었다.
집중력이 하락할 때마다는 청상이 그의 뒤를 유령처럼 지나간다.
“죽을 거야. 분명히…….”
“…….”
* * *
용봉관은 기존의 목표대로 후기지수들을 가르치는 무관이자 학관으로서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교육이 시작되고 정확히 스무닷새가 지났을 때.
“하핫, 어서 오십시오.”
용봉관주 등여평과 제갈협진, 그리고 각 반의 총 교두들이 모여 반가운 손님을 맞이했다.
“이거 신수가 아주 훤해졌구만?”
“그렇습니까?”
손님의 말에 등여평이 활짝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그래, 제법 자리를 잡았다고?”
“예. 벌써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고생이 많았군.”
“모두가 교두들의 공입니다. 정말이지 이들의 열의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입니다.”
등여평은 모든 공을 교두들에게 돌려 어깨를 으쓱하게 했다.
“자, 그럼 이제 을무반의 시험을 시작할 때인가?”
“예.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지요.”
찾아온 손님은 다름 아닌 무풍개 양소방이었다.
“준비는?”
“약간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벌써 여러 가지 평가를 통해 을무반의 무생들을 여덟 개 조로 나누었습니다.”
“고생했군. 쉽지 않았을 터인데.”
“대군사가 계획을 잘 세운 덕이지요.”
등여평의 말에 양소방이 제갈협진을 쳐다보자 그가 미소를 띠며 고개를 숙였다.
“그보다 아이들을 보낼 곳을 정하셨습니까?”
“그 때문에 늦었지.”
양소방이 함께 온 수하에게 지도를 받아 탁자 위에 펼쳤다.
“확인할 곳은 총 여덟 곳이네.”
“음, 이곳이 ‘궁’이라는 자들과 연관이 있다는 곳인가요?”
“그렇다네.”
“위험할 수도 있겠군요.”
제갈협진으로부터 ‘궁’에 대해서 들은 뒤였던 등여평의 얼굴에 걱정이 묻어났다.
“해서 각 조별로 을무반의 교두 한 명과 비선대(秘線隊)의 정예 무인 둘씩 딸려 보낼 참이네. 어차피 무생들의 평가도 해야 하니까.”
을무반의 여덟 교두는 모두가 의기급에 이른 명망 높은 무인이었으며, 비선대는 양소방이 이끄는 정무맹의 숨겨진 정보 조직이었다.
사패천과 일월마교를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이니 결코 모자라지 않는 실력이었다.
“그 정도라면 충분하겠군요.”
“그래. 모두 여덟 개 조로 나누어진 무생들은 각자에게 내려진 임무를 수행하면서 지도력, 융통성, 상황 대처 능력. 그리고 발전 가능성까지 다각도로 평가받게 될 것이네.”
“허면 각 조에서 가장 우수한 인원을 뽑아 갑무반으로 편성하는 것입니까?”
“옳네. 이 용봉관이 만들어진 목적이 바로 그것에 있으니까.”
양소방의 말에 등여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무맹 산하 여섯 개의 무력 단체가 있었으나 구파, 오대세가, 각지의 중소 방파의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즉, 정무맹주가 오롯이 장악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니다. 특히나 그 대주를 맡은 자들이 정무맹의 장로들이기에 더 그랬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힘이 집중되지 않았고 사패천과 일월마교와의 분쟁에서도 많은 패배가 있어 왔다.
용봉관을 만든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곳은 겉으로 보이기에는 각 문파에서 발전 가능성이 있는 무인을 모아 수련시키는 학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숨은 뜻이 있었다.
첫째는 중원 무림을 삼분하는 사패천과 일월마교, 그리고 의문의 세력인 ‘궁’이라는 자들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둘째는 용봉관을 대표할 여덟 명의 무인을 갑무반으로 선발해 정무맹의 핵심 전력으로 키워 내는 것.
갑무반 여덟 무인은 유사시에 용봉관의 무인들을 이끌 대장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림에 아무 세력도 갖지 않은 등여평을 관주로 앉힌 것이다.
이는 등여평에게도 설명한 내용이었고, 교두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을 정무맹주 직속으로 만들어, 오직 정무맹주에 의해 통제되는 막강한 전력으로 기능하게 하는 것.
그를 위해서 용봉관에 입관한 이들을 각 파의 이대제자, 장남에게 가려져 후계에서 멀어진 가문의 차남, 그리고 구대문파 및 오대세가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한 중소 방파의 자제들을 선발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제갈협진의 계획에서 시작되었고 정파를 아끼는 철지량과 양소방, 그리고 총 교두가 된 네 명의 무인 간의 토의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이번 시험으로 용봉관의 체계가 완성되는 것은 물론 ‘궁’이라는 자들에 대한 조사가 좀 더 진척될 수 있겠군요.”
“우리가 기대한 바네.”
양소방이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가 결의에 찬 눈빛을 보냈다.
“그럼 시험 일자는 언제로 잡을까요?”
“언제? 이 사람. 뜻을 품었으면 바로 시작해야지. 지금 당장 을무반의 무생들을 대연무장에 모아 주게.”
“지금요?”
“암. 꾸물거릴 것이 뭐란 말인가?”
마음에 품은 뜻을 행함에 있어 머뭇거림이 없었다. 양소방다웠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등여평이 피식 웃으며 을무반의 총 교두 만화검(萬花劍) 백천성을 바라보았다.
“시작하세.”
“예. 관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