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95
95화
한 발을 내디딘 채로 비스듬하게 자세를 취한 진무.
우우우웅!
허리에 당겨 붙인 주먹에 시퍼런 선기가 선명하게 어린다.
꾸우…….
내디딘 발에 힘이 실리고 지면을 파고들자 진무가 호흡을 멈추며 빠르게 일권을 뻗어 내었다.
칠성권, 창룡출해(蒼龍出海).
청우가 익히고 있는 무당 칠성권의 가장 마지막 초식이었다.
하지만 검강지경의 진무에 의해 펼쳐진 그것은 신공절학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바닷속 깊은 곳에 웅크려 몸을 숨겼던 용이 승천하듯 주먹이 뻗어져 나가고.
휘리리리!
내질러진 순간 비튼 주먹을 타고 뻗어 나간 푸른 기운이 승천하는 용이 몸을 뒤틀어 오르는 모양으로 회전을 만들어 낸다.
쩌어엉! 콰아아앙!
나선처럼 비틀린 기운이 정문과 함께 성벽을 때리며 폭발했고, 사방에서 달려들던 패력당의 무인들은 폭풍에 휩쓸린 낙엽처럼 안으로 튕겨졌다.
휘우우우.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가 사방을 가득하게 채웠다가 가라앉았다.
“……!”
백표는 칼을 멈췄다.
아니,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싸우던 패력당의 무인들이 일체의 공격을 멈추고 입을 벌린 채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으니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 이게 대체.”
방금까지 있던 정문은 흔적도 없었고, 오 장여의 성벽이 통째로 무너져 있었다. 아니, 터져 버렸다고 해야 할까?
또한, 진무의 전방이 휑하다.
그의 앞을 공격해 오던 무인 수십이 부서진 성벽과 함께 안으로 튕겨 들어가 모조리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탁, 탁.
“…….”
딱히 먼지가 묻은 것도 아닌 손을 털어 낸 진무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거봐. 열라고 했을 때 열었으면 좋았지.”
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아는 놈들이 있다.
진무는 뒷짐을 지고 유유히 안으로 걸어갔다.
“…….”
백표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저 가볍고 거친 성격에 익숙해져서 잠시 잊고 있었다. 그가 검강지경에 오른 절대의 무인이라는 사실을.
“야, 안 오고 뭐 해?”
“……예? 예!”
백표가 서둘러 진무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성벽 안을 채운 무수히 많은 패력당의 무인들을 향해, 보무도 당당하게.
성문이 터졌으니 그 굉음을 패력당의 수뇌들이 듣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일부는 그 현장을 직접 보았고 일부는 전각 안에서 부랴부랴 무기를 챙겨 뛰쳐나왔다.
“다, 당신은!”
노영찬이 진무를 먼저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 노영찬.”
“…….”
반갑게 손을 흔들며 걸어오는 모습에 노영찬이 눈을 끔벅거리다가 옆에 있는 백표를 발견했다.
분명 백가장주의 오라비라고 했었다. 그렇다는 것은?
노영찬이 서둘러 박살 난 성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없다.
아무도 없다.
설마? 둘이서 공격을 해 왔다고?
노영찬의 두 눈이 찡그려졌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오?”
“아, 누굴 좀 찾으러 왔는데. 자네를 불러 달라니까 대뜸 칼질부터 해서 말이야. 성벽 부순 건 자네가 이해하게.”
“…….”
이런 미친!
하마터면 욕이 나갈 뻔했다.
그가 강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탄기를 극한까지 깨달은 자신이 꼼짝도 못 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낮과는 다르다. 그들이 찾아온 곳은 십수 명을 대동한 객점이 아닌 패력당의 본진이었다.
패력당이 어디 동네 무뢰배 집단도 아니고, 엄연히 광서성의 일맥을 차지하는 사패천 소속의 문파였다.
그들의 예하에 몸담은 현기급의 무인들만 해도 십수 명이요. 그 이하 수하들의 수가 오백에 달한다.
고작 둘이 찾아와서 행패를 부릴 정도는 아니었다.
“싸우러 온 거 아니야.”
이게 지금 싸우러 오지 않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깽판이냐?
“목인겸. 그 새끼 어디 있냐?”
“…….”
노영찬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뭐, 남의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 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대인, 대인 해 가면서 대접해 줬더니! 이런 미친 새끼가!”
노영찬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노성을 질렀다.
“뭣들 하고 있어! 죽여!”
촤자자작!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패력당의 무인들이 저마다 흉흉한 살기를 품고 진무와 백표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노영찬은 순찰 장로를 불렀다.
“가서 목인겸을 불러와라. 그들이 상대하겠다고 자신했으니.”
“알겠습니다.”
순찰당주가 뛰어가고 노영찬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백여 명이 넘는 패력당의 무인들이 칼을 곧추세운 채 진무를 빼곡히 둘러싸고 있었다.
“음, 이럼 곤란한데.”
“…….”
진무의 말에 백표가 홱 고개를 돌렸다.
뭐가 곤란한데? 이럴 줄 몰랐어?
하긴, 아무리 강기의 무인이라도 상황을 이따위로 만들어 놓은 것은 좀 심하긴 했다.
그러게 습격을 했어야지, 습격을.
그런데.
후아악!
진무의 몸에서 시퍼런 선기가 전신을 감싸며 피어올라 불길처럼 넘실거린다.
“목인겸이만 데려오라니까.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아주 곤란해져.”
해맑기만 했던 진무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잔인하게 변했다.
싸늘한 눈빛과 살짝 벌어진 입술 새로 빛나는 차가운 송곳니가 소름이 절로 돋아 오르게 할 정도로 섬뜩했다.
꾸우욱.
그가 발을 가볍게 내딛자 움푹 팬 지면이 힘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분명 이런 상황이 있었다.
단강구의 공사척 패거리를 찾아갔을 때와 비슷했다.
물론 패력당은 하찮은 무뢰배 집단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 방파였다. 인원수부터 소속된 무인들의 질까지 천양지차다.
하지만 그때의 진무와 지금의 진무는 다르다.
그때는 그저 탄기에 이르러 있었고, 지금은 그때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 검강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패력당? 수백 무인?
패력당은커녕 그 할애비가 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진무였다.
검강지경의 무인을 괜히 절대의 경지라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는 일인 문파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강했다.
물론 이곳에 있는 누구도 알지 못하겠지만.
“죽어!”
가장 먼저 칼을 휘둘러 온 텁석부리 수염의 장한.
그래. 재수 없게도 니가 시작이구나, 불쌍한 놈.
진무가 손을 마주 뻗자 칼이 허망하게 튕겨 나가고 장한의 모가지가 손아귀에 잡혔다.
“내가, 지금, 조금! 화가 나.”
나지막하게 뱉어진 진무의 목소리.
쿠아아앙!
모가지를 잡은 채 그대로 땅바닥에 찍어 버린 힘에 그 주위가 폭격을 맞은 것처럼 터져 나갔다.
“……!”
놀람? 경악? 그딴 걸로 표현될 수 있을 리가 없다.
딱 한 걸음 걸었고, 딱 한 번 움직였다. 그것으로 모든 게 멈췄다.
패력당의 무인들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칼을 들었던 그 동작으로 그대로 정지했다.
흩어지는 기운이 세찬 바람을 만들어 먼지를 날리고 놀라운 광경을 드러낸다.
대가리부터 몸의 반이 땅속에 처박힌 채 두 다리만 빠져나와 있는 텁석부리 수염의 사내.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반구형으로 패어 들어간 오 장여의 대지.
“퉤.”
진무가 입 안으로 들어온 먼지를 뱉어 내며 패어 든 대지에서 걸어 나왔다.
역시 강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적어도 법보다 힘이 가까운 이 무림에서 그만한 것은 없다.
손으로 먼지를 털어 가며 걷는 가벼운 걸음이었지만, 누가 경박하다 하겠는가?
그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사방을 짓누르는 압력이 점점 더 강해졌다.
스윽.
백표가 검을 내렸다.
이건 뭐 자신이 도울 게 없었다.
이미 적은 전의를 상실해 버린 듯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노영찬!”
“……!”
진무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부르자 노영찬이 식겁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주, 죽여. 죽여라!”
진무가 보여 준 한 수에 넋이 나가 버린 노영찬은 공포심에 아무 소리나 막 질렀다.
그 새끼 참, 이미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 터인데 뭘 그렇게 뼛속까지 호전적이야?
그런데 이 멍청한 놈들이 똥오줌 못 가리고 또 그 명령을 듣는다. 사파치고는 충성스러운 놈들이다. 사지를 벌벌 떨며 주저앉아도 모자랄 판에.
“휴, 그래. 충성스러운 거 좋지. 하지만 사파인이 그래서 되겠냐? 가능성이 없으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검광을 번뜩이며 주위로 검진을 형성해 다가오는 패력당 주력 무인들의 모습에 진무가 걸음을 멈췄다.
스르릉.
진무가 자신을 둘러싼 검진을 향해 검을 뽑았다.
시퍼렇게 솟구치는 검강이 그 자태를 드러냄과 동시에 살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 사이 노영찬의 곁으로 순찰 장로가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다, 당주님!”
“……?”
“없습니다. 없어요!”
뭐가 없단 말인가?
“목인겸, 그놈과 그 수하 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
너무 놀라운 소식을 들으면 약간 정신이 멍해진다.
그리고 이내 충격이 심장을 조여 온다.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될 때까지 잠시 쉬고 있겠다고, 자신들이 상대해 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도, 도망갔……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망할!
조금만 더 빨리 와서 말해 주지. 잔뜩 기대를 걸고 있었건만, 놈들이 어떻게 이렇게 자취를 감춰 버린단 말인가.
노영찬이 허망한 표정을 짓는 순간.
콰아앙!
사방을 진동시키는 폭음과 함께 검광이 밤하늘을 대낮처럼 밝혔다.
시퍼런 불길이 모든 곳을 집어삼키고, 검진이 터져 나갔다.
파훼한 것이 아니었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짓밟아 으깨 버린 것이다.
눈 몇 번 감았다 뜨고 나자 수십 명이나 되던 패력당의 주력 무인들이 모조리 땅바닥에 피를 토하며 널브러져 있었다. 현기급의 무인들이 태반이었는데, 죄다 사지 육신이 분리되어 죽은 것이다.
고작 한 방에.
그리고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진무.
핏물 가득한 대지에 서서 악귀처럼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칼에 유형화되어 맺힌 시퍼런 기운.
“가, 가, 가, 강…….”
놀라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습.
응, 그래. 맞아. 이게 바로 강기란다.
진무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내가 어지간하면 사파는 안 죽여. 근데 칼 들고 죽자고 덤비는 놈까지는 용서할 생각은 없거든.”
목을 따 주겠다는 말을 참 웃으면서 잘도 한다.
그러고는 또 한 걸음씩 다가왔다.
제 명줄을 취하러 오는 사신처럼.
꿀꺽.
노영찬은 패력당의 최고 고수였으나 도무지 저 괴물을 상대할 자신은 들지 않았다. 수하들 앞이고 나발이고 뒈지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건 잘못되었다. 잘못 건드려도 아주 단단히 잘못 건드렸다.
망할 자식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것이 실수였다. 하필이면 패력당에 저런 만년교룡 같은 전설의 괴수가 찾아올 게 무어란 말인가?
“야.”
“…….”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진무가 전각 아래 단 위에 서 있던 노영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려와. 목 아파.”
이런 난장판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나른한 한마디.
팟! 파팍!
노영찬은 섬전처럼 뛰어내려 진무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살면서 그리 빨리 움직여 본 적이 없었다.
탄기의 극한?
그의 무공은 진무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요, 보름달 앞에 놓인 반딧불처럼 미미한 수준이었다.
“…….”
진무가 자신의 발아래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노영찬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야, 내가 원래 이런 성격은 아닌데. 니가 예의 바르기도 했고, 근래 선도비기를 익히다 보니 성격이 좀 유해졌거든? 그러니까 딱 한 번만 더 묻는다.”
“말씀하십시오, 대인!”
“목인겸이란 새끼 지금 어디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