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rior Grandpa and Grandmaster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발랄한 도발꾼 (2)
석벽 위에 우뚝 선 전사룡은 몹시 분노한 듯 보였다.
야차 같은 눈빛으로 이곳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유설의 도발은 멈출 줄을 몰랐다.
아니, 오히려 강도가 더 거세졌다.
급기야 널브러진 괴승들의 사이에서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어서 내려와요, 며루치~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며루치~ 우리가 맛있게 먹어줄게요~”
전사룡의 얼굴이 무섭도록 일그러졌다.
그런 그를 올려다보는 유진산은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엄청나구나. 이곳까지 살기가 느껴지다니…….’
무려 거리가 백여 장이었다.
그가 쏘아 보낸 서릿발 같은 기운이 유진산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고 있었다.
역시나 현경급의 절세고수란 말인가?
도저히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더 이상 도발을 이어가면 위험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그, 그만하면 되었다, 아가.”
“왜애? 안 내려오잖아.”
“아마도 부하들을 기다리는 걸 게다. 곧 움직일 테니, 슬슬 도망칠 준비를 하자꾸나.”
유진산은 그가 머뭇거리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황금가면을 쓴 천축의 고수들이 집결하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고강한 무공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조심성이 강한 놈이었다.
그때 손녀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또 나타났어!”
전사룡의 왼쪽으로 황금가면을 쓴 금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은 한 명뿐이지만, 그 수는 금방 늘어날 터.
이곳에 더 남아있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진산은 쉽게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괴승들의 숫자를 파악해야 한다.’
약간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역시나 시간이 지날수록 전사룡의 주위로 다른 금사가 또 나타나고 있었다.
“한 놈, 두 놈…… 세 놈……. 총 세 놈이로구나.”
그때 유설의 검지가 꼬물꼬물 움직이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니야. 한 마리 더 있어.”
석벽의 끄트머리에서 또 한 명의 금사가 전사룡을 향해 달리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화경급의 고수가 도합 네 명이나 더 남아있다니.
거기에 전사룡을 더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전력이었다.
만약 이번에 두 명을 줄여놓지 않았다면, 대항해볼 엄두도 내지 못했으리라.
“확인했으니 되었다. 어서 철수…….”
그는 말을 하다 말고 눈을 부릅떴다.
석벽 위에서 전사룡의 신형이 날아올랐기 때문이다.
타앗-!
기다렸다는 듯이 네 명의 금사도 함께 몸을 날렸다.
그들의 목적은 불 보듯 뻔했다.
본진의 앞마당에서 동료들을 죽이고, 도발을 감행했으니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닐 터.
다섯 명이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기세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할아버지와 눈을 마주친 유설이 다급히 소리쳤다.
“빨리 튀자!”
적들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이대로 맞서 싸우면 할아버지가 위험할 것을 직감한 것이다.
조손은 그들이 다가오기 전에 등을 돌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타타탓-!
부리나케 달아나던 유진산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뒤를 슬쩍 바라보자 쫓아오는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포기하지 않을 기세였다.
“할배, 좀 더 빨리!”
유설도 그걸 알고 있는지 할아버지를 다그쳤다.
하지만 이미 유진산은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가, 할애비는 지금이 가장 빠른 속도야.”
네 명의 금사는 크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유진산의 경공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니까.
문제는 그들의 선두에서 달리는 전사룡이었다.
그의 경공은 무지막지하게 빨랐고, 거리는 계속 좁혀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
유진산은 속이 타들어 갔다.
옆을 슬쩍 바라보자 유설이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우우웅-!!!
손녀가 내민 검지의 끝에서 기(氣)가 끝없이 모여들며, 응축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광일선지(佛光一線指)?’
무림 제일의 지법이라 할 수 있는 아미파의 비기였다.
내력의 소모가 엄청난 기술인 만큼 위력도 강했기에, 지금 상황에서는 아주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유진산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도 재빨리 손녀를 따라서 손끝으로 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유설과 달리 그는 아직 이 무공을 완성하지 못했다.
성공 확률은 고작 삼 할.
하지만 절실함이 그 확률을 높여주었던 것일까?
손끝에서 회오리치는 기가 응축되며 작은 구체를 만들어냈다.
‘성공이다!’
기뻐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손녀는 이미 준비를 마치고 있었으나, 순서를 양보했다.
“할배가 먼저 쏴.”
유진산의 생각에도 그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도주하던 그는 뒤를 돌아보며, 전사룡을 향해 지법을 쏘아 보냈다.
쏴아아앙-!
한 줄기 광선이 바람을 가르며 직선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무엇이든 꿰뚫을 정도로 파괴적이고 위압적인 무공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마주한 전사룡은 표정의 변화조차 없었다.
그는 피하기는커녕 왼손을 내뻗었다. 유진산의 불광일선지를 정면으로 받아낼 심산이리라.
충돌의 순간. 그의 왼손이 순간적으로 붉은 광채를 뿜어냈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광선이 소멸하며, 전사룡의 상체가 슬쩍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의 경공을 멈추게 할 수조차 없었다.
유진산의 두 눈에 실망이 서릴 무렵.
돌연 또 하나의 금빛 광선이 뒤이어 그를 향해 직진으로 뻗어 나갔다.
쏴아아앙-!!
전사룡은 이번에도 한 손으로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그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유설이 펼치는 불광일선지의 위력은 조금 전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그 속도와 파괴력이 몇 배나 강력했다.
충돌의 순간 무지막지한 굉음과 함께 눈부신 섬광이 번뜩였다.
꽈아아앙-!!!
“크윽!”
방어에 사용했던 전사룡의 왼손이 어깨 뒤로 꺾일 듯이 휘어버렸다.
동시에 상체가 크게 휘청거리며 다리가 꼬이고 말았다.
워낙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기에, 그의 신형은 지면을 십여 바퀴나 굴렀다.
쿠쿠쿠쿵-!!
뿌연 흙먼지와 함께 꼴사납게 넘어진 그는 곧장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주 큰 충격이 있었지만, 놀랍게도 모든 곳이 멀쩡해 보였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얼굴이 분노에 잔뜩 구겨진 것을 제외한다면.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음양쌍괴가 아니었다.
“꽉 잡아, 할배!”
할아버지를 어깨에 들쳐멘 유설은 섬전같은 경공으로 하늘을 질주하고 있었다.
이미 거리는 멀어질 대로 멀어진 이후였다.
전사룡은 이내 추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부하들과의 거리도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멈춰선 그는 충혈된 눈동자로 멀어져 가는 둘을 노려보았다.
* * *
한편 추격을 따돌린 유진산과 손녀는 바로 본부로 돌아가지 않았다.
추적을 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인근의 숲속에 몸을 숨긴 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정말 무서운 놈이었다. 할애비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그가 말을 마친 그때.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어딘가에서 터져 나온 쩌렁쩌렁한 외침이 숲속을 뒤흔들었다.
【끄아아아악!!】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거센 메아리.
분노에 가득 찬 포효에 새들이 놀라 사방으로 날아올랐다.
“화가 많이 났나 봐.”
“아마도 그렇겠지. 우릴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게다.”
“근데 소리를 들어보니깐 근처에 있는 것 같아. 내가 잠시 살펴보고 올게.”
“위험하게 뭐하러?”
유설이 안심하라는 듯 할아버지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야 우리도 본부로 안전하게 돌아가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사룡이 직접 방벽 밖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칫 꼬리라도 잡힌다면, 본부의 위치가 발각될 터.
“혼자서 괜찮겠어?”
“응, 걱정 말구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유설은 할아버지의 어깨를 두 번 두들겨 안심시켜 주었다. 그러고는 기척을 죽인 채 어딘가로 나아갔다.
“조심하거라, 아가…….”
유진산이 나직이 중얼거렸지만, 이미 눈앞에서 손녀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마음 같아선 함께 가고 싶었으나 자신은 전사룡에게 발각될 위험이 있었다.
그는 숨을 죽인 채 손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날이 조금씩 어둑어둑해지자, 그의 마음도 조금씩 타들어 갔다.
‘……왜 이렇게 안 오지?’
쪼그려 앉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길 잠시 후.
어딘가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쉿.”
멀지 않은 곳의 수풀에서 유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댄 채로 살금살금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유진산도 긴장한 얼굴로 속삭이듯 물었다.
“……어떻게 됐어?”
“큰일 났어, 할배.”
“무슨 일인데? 큰일이라니?”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유설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사룡이 부하들이랑 우릴 찾고 있어.”
“아직도?”
“응. 다섯이 몰려 다녀. 붉은가면도 오십 명이나 넘게 봤어.”
자신들이 이 숲에 숨어 있는 걸 직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무서운 놈이 아닐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렇게까지 작정한 것을 보면, 이 섬 전체를 샅샅이 수색해서라도 찾으려고 할 터.
순찰조를 포함하여 저항군의 모든 활동을 중지시켜야 했다.
그러나 그곳까지 가는 길이 쉽지는 않을 터.
“어서 본부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거 큰일이구나.”
“어떡하지?”
잠시 고민하던 유진산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설이 혼자 본부로 돌아가서 이 사실을 알리거라.”
“그럼 할배는?”
“그동안 할애비는 잠시 숨어 있으마.”
유설은 그럴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이곳에 할아버지를 혼자 남겨두기가 찜찜한 것이리라.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좋은 생각이라니?”
유설이 할아버지의 눈을 마주 보고는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본부로 가는 길에 쟤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해볼게. 그 틈에 할배도 같이 도망쳤다가 본부에서 만나는 거야.”
“안 된다. 그건 너무 위험해.”
어떻게 손녀를 미끼로 쓰고 도망친다는 말인가.
유진산은 단호하게 말했지만, 유설도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더 빠르니깐.”
가는 길에 주변의 이목만 끌어주는 것뿐이었다. 적들이 쫓아오면 따돌린 이후에 본부로 복귀하면 그뿐일 터.
유설의 신형이 수풀 위로 날아올랐다.
타앗-!
숲을 벗어나 하늘로 솟구쳐 오른 유설은 어딘가를 향해 질주했다. 적들이 알아볼 수 있게끔 기척도 숨기지 않았다.
그렇게 나아가길 잠시 후.
어딘가에서 그림자들이 차례로 솟구쳐 오르며, 손녀를 무섭게 뒤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림자의 숫자는 단 네 개뿐이었다.
움직임을 자세히 살펴보니 전사룡과 금사 세 명이었다.
“휴.”
유진산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손녀의 작전과 시도는 좋았다. 다만 계획처럼 완벽하지는 못했을 뿐이다.
이 숲의 어딘가에 금사 한 명이 더 남아있을 터.
그렇다면 무엇이든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적당한 곳을 찾아서 끝까지 숨어 있든가. 아니면 이대로 돌파를 시도하든가.
‘그래. 우리 손녀가 만들어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전사룡도 없는 마당에 무서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혹여 발각되더라도 금사 한 명 정도는 뿌리칠 자신이 있었다.
결심을 굳힌 그는 용살창을 움켜쥔 채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해안가로 이동하여 바다를 빙 둘러 돌아서 갈 생각이었다. 현재로선 그것이 가장 안전한 경로이기도 했다.
‘본부에서 보자꾸나, 아가.’
불빛 한점 없는 어둑한 숲속이었지만, 어둠은 그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는 신체의 감각을 최대로 끌어 올린 채 계속해서 나아갔다.
역시나 손녀의 말대로였다.
가는 곳마다 절정 이상의 무위를 지닌 적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자신들을 잡기 위해 부하들을 총동원한 모양이었다.
‘싸움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겠지.’
적사 정도라면 쉽게 제압할 수 있을 테지만, 소음을 피하기는 어려울 터.
작은 인기척이라도 느껴질 때면 최대한 우회해서 나아갔다.
그래서일까? 반각이 지나도 숲을 빠져나가는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 더 전진했을 때였다.
‘이상하구나. 이 정도면 숲이 끝날 때도 되었는데?’
유진산은 뭔가가 이상함을 깨닫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곧이어 놀란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