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rior Grandpa and Grandmaster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89
289화 내가 누나야 (2)
풍운자는 유설이 가져온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오랜 기간 굶었기에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거의 다 먹어갈 때쯤 유설이 물이 담긴 호리병을 건네주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구?”
목을 축인 풍운자는 지금껏 자신이 겪었던 내용을 이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소성으로 넘어온 그는 백화혈교의 본거지를 확인하고, 그들을 조사했다고 말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무척 놀랄 만한 것들이었다.
음지에서 힘을 비축한 그들의 전력은 상상을 초월했으며,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풍운자를 기겁하게 만든 것이 한 가지 있었다.
“혹시 역천대법(逆天大法)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유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만약 들어본 적이 있었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한 번 들은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 신선의 오감을 타고난 선음지체였으니까.
유설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뒤를 돌아 소요산장의 교두들에게 물어보았다.
“역천대법? 아저씨들은 들어봤어요?”
그들 중 철웅이 앞으로 나서서 자신이 아는 부분을 설명했다.
“소문으로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마교에서조차 금지한 사악한 술법이라고요. 수백 년 전에 실전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금지했대요?”
“역천대법은 인위적으로 마공을 증폭시키는 술법입니다. 그리하여 강제로 극마에 도달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지요.”
“그럼 백화혈교에 극마가 엄청 많다는 거예요?”
옆에서 듣던 풍운자가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꼭 그렇진 않습니다, 누님. 실패하면 반드시 죽는 데다가, 성공확률이 일 할도 되지 않습니다.”
“흠. 그럼 뭐가 문제니?”
“최근 교주가 대대적으로 이 술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몇 년 안에 무림을 집어삼키려고 승부수를 띄우려는 모양입니다.”
지금껏 풍운자가 이곳에 머물렀던 이유였다.
화경에 필적하는 극마의 머릿수가 많아진다면 답이 안 나올 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해 공작을 벌이며 백화혈교를 와해시키려고 끊임없이 시도했다.
허나 그들의 전력은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했으며, 교주의 무공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것을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
그때 유설이 풍운자의 어깨를 움켜쥐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누나가 도와줄게.”
“고, 고맙습니다, 누님. 저 그런데…….”
풍운자는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그를 내려다보던 유설이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으응?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그는 소요산장의 교두들을 한번 쓱 훑어본 이후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저한테는 반말이고, 이 녀석들에게는 존칭을 쓰시는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제가 배분이 몇 단계는 더 높은데…….”
명색이 절강성의 수호자이자, 큰 어른으로 이름난 풍운자가 아니던가. 이런 취급이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볼멘소리에 음괴의 얼굴이 더욱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마치 어린 동생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그의 볼을 꼬집고는 흔들어 댔다.
“네가 귀여워서 그래~”
풍운자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자신의 겉모습이 일곱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어린이라지만, 지금까지 이런 취급은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남들에게 어른으로 존중받기 위해선 자신 또한 웃어른을 존중해야 했으니까.
반로환동을 세 번이나 했다는 음괴라면, 최소한 이백 살은 넘었을 터.
“그, 그래도 제 나이가 있는데…….”
“그래서 싫다구? 그럼 나 그냥 갈까?”
지금 풍운자는 음괴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대로 떠나기라도 한다면 낭패일 터.
아쉬운 것은 자신이었기에, 재빨리 잘못을 시인했다.
“그,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이제야 유설이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그의 볼을 놓아주었다.
“흠~ 그럼 누나가 뭘 도와줄까?”
잠시 고민하던 풍운자는 우선 소요산장의 교두들부터 돌려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같이 데리고 다녀봐야 짐이 될 공산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엄함이 가득했던 자신이 어린이 취급을 당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싶지가 않았다.
“너희들은 먼저 복귀하거라.”
음괴를 보필해온 세 명은 군말 없이 양손을 모아 포권했다.
이어서 그들 중 가운데 있던 철웅이 대표로 풍운자에게 물었다.
“예, 어르신. 헌데 어쩌실 생각입니까?”
“돌아가서 내 제자한테 전해. 나는 이곳에 남아서 음괴 누님하고 같이 백화혈교를 무너트리고 돌아간다고.”
“두 분이서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풍운자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지금 당장 역천대법을 멈추지 못하면, 강호에는 미래가 없으니까.”
“잘 알겠습니다, 어르신.”
“그래. 걱정할 것 없다고 전해라.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세 명은 다시 유설을 향해 포권을 건네며, 저마다 한 마디씩 건네었다.
그간 함께 이동하며 정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음괴 대협은 저희의 은인이고, 영웅이십니다.”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오십시오.”
“무운을 빌겠습니다!”
유설은 머리 위로 손을 흔들며, 그들을 미소로 보내주었다.
“잘 가요, 아저씨들~ 소요산장에서 또 만나요.”
* * *
백화혈교의 입구로부터 삼십여 장이 떨어진 숲속.
소요산장의 교두들을 돌려보낸 둘은 이곳에 은신해 있었다.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주변을 살펴보며, 정찰하는 상황이었다.
“지금 백화혈교를 끝장내지 않으면, 세상에 큰 화가 닥칠 것입니다.”
“알았어. 그럼 오늘 끝장을 내야지.”
유설은 용화창을 움켜쥔 채 언제든 뛰쳐나갈 자세만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풍운자는 머뭇거리며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극마급의 고수도 많지만, 교주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누님.”
“싸움을 잘해서?”
“예. 놈이 사용하던 흉마살혼조는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해본 무시무시한 무공이었습니다.”
풍운자 또한 동부 무림의 최강자라 일컬어진 현경급의 고수였다.
그런 그의 눈빛에 알 수 없는 두려움까지 서려 있었다.
그만큼 교주 염휘는 무시무시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유설의 얼굴에는 조금의 긴장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니, 웃음을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날이 없는 용화창을 그의 가랑이에 밀어 넣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으래~?”
풍운자는 다리를 오므리며, 미간을 가운데로 모았다.
“왜 이러십니까, 누님. 연세도 많으신 분이 왜 이런 장난을…….”
“푸히히. 교주가 무서워쪄?”
그는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유설이 미안하다는 듯 씩 웃으며, 타이르듯 말했다.
“걱정하지 마. 교주는 누나가 상대해줄게.”
“잠시만요. 뭔가 좀 이상합니다, 누님. 움직이는 인원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음~ 다들 어디 갔을까. 산책이라도 나갔을까~”
풍운자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음괴의 시선에 불안함을 느꼈다.
원래 성격이 괴팍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을 괴롭히는 데 재미를 붙인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제가 앞장설 테니, 교주를 만나기 전까진 힘을 아끼십시오.”
“으응~ 알았어.”
풍운자는 자신의 귀를 잡으려는 유설의 손길을 재빨리 피했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백화혈교의 입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타앗-!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그의 신형은 마치 한 마리의 독수리와도 같았다.
역시나 명불허전의 경공술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유설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붙었다.
잠시 후 풍운자의 양손에서 돌풍이 뿜어지며, 절벽의 아랫부분을 강타했다.
꽈아아앙-!!
거센 굉음과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환영진법이 파괴되자, 벽이 있던 자리에 큼지막한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십여 명의 무사가 기겁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풍, 풍운자가 돌아왔다!”
“어서 교주님께 알려!!”
그러나 그들을 순순히 보내줄 풍운자가 아니었다.
한 줄기 바람으로 변한 그의 신형이 혈교도들을 휘감으며 지나쳤다.
휘리리릭-!
곧이어 뼈가 분쇄되는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투콱-! 콰콰콰콱-!!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동시다발적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몸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이미 풍운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거침없이 통로를 비집고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동자의 모습을 한 신선처럼 보일 정도였다.
뒤따르던 유설이 까르륵 웃으며 갈채를 보냈다.
“얘, 너무 멋있다. 귀여워~”
앞서가던 풍운자는 한숨을 내쉬며,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백화혈교의 본거지로 향하는 통로는 아주 깊었다.
한참을 나아가고 나서야 밝은 빛을 마주할 수가 있었다.
“저곳입니다, 누님.”
밖으로 나가자 눈앞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오래전 화산이 폭발한 자리인 듯, 아래로 푹 꺼진 넓은 분지에 군락이 형성된 모습이었다.
십여 개의 거대한 막사와 훈련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대열을 맞추어 이동하는 혈교도들이 보였다.
이곳까지 느껴지는 기분 나쁜 마기에 유설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가장 중심부에 있는 막사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있는 애야?”
“그렇긴 한데 혼자가 아닙니다. 주변에 놈의 수족인 사대호법이 있고, 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직접 부딪혀보면 알게 될 터.
목표지점의 주변을 쓱 살펴본 유설은 그에게 한 손을 올려 보였다.
“알았으니깐, 나만 따라와.”
“……예?”
머뭇거릴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유설은 빨리 일을 끝마치고 할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결심을 굳힌 유설은 앞장서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자, 드가자!”
이곳은 무림맹에서조차 손을 놓은 백화혈교였다.
그곳을 향해 단신으로 돌진하는 무모함이라니.
용화창을 꼬나쥔 채 질주하는 음괴의 뒷모습에 풍운자는 입을 떡 벌렸다.
“……저, 저런.”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잠시 멍한 얼굴로 머뭇거리던 풍운자는 이내 유설을 뒤쫓아 돌진을 시작했다.
* * *
절강성 소요산장의 정상 부근.
유진산은 지금 뒷짐을 진 채 바람을 쐬고 있었다.
이곳은 어느덧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아가는 모습이었다.
조용히 그의 옆을 지키고 있던 천일호가 말문을 열었다.
“음괴 대협께서 빨리 돌아와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왜? 그전에 백화혈교에서 쳐들어올까 봐 겁이 나느냐.”
“에이~ 무섭다니요? 걔들은 하나도 안 무서워요. 그냥 보고 싶어서요.”
“쯧쯧.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네 속을 모를 줄 아느냐.”
“아, 아닙니다, 어르신! 정말이라고요.”
유진산은 횡설수설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오래 걸리진 않을 게다. 음괴는 나처럼 성질이 느긋하지 못하니까.”
“아아. 정말요? 음괴 대협이라면 꼭 그분을 찾아오실 겁니다. 저는 무조건 믿어요!”
유진산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날이 갈수록 강호에 손녀를 신봉하는 추종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개중 한 명이 천일호였다.
“……음?”
돌연 유진산의 걸음이 멈추었다.
갑자기 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자, 천일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르신?”
“말이 씨가 된 모양이로구나.”
“예?”
“올 것이 왔다는 얘기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요산장의 곳곳에서 경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적들의 침입을 알리는 다급한 종소리였다.
“설, 설마…….”
기어코 백화혈교가 또다시 쳐들어온 것이리라.
그렇다면 지난번에 왔던 혈검대보다 더욱 강한 놈들이 왔을 공산이 높았다.
당황하는 천일호와는 달리 유진산은 침착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시야에 무사들을 소집하는 맹남천의 모습이 잡혔다.
“일단 저리로 가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