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47
47화
사무실에 도착한 최강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샤워였다.
구역질 나는 냄새를 일단 씻어 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누칠을 몇 번이나 하면서 구석구석 씻었음에도 뭔가 께름칙한 느낌에 몇 번이고 자신의 냄새를 확인하던 최강이 소파로 향해 말했다.
“무슨 냄새라도 나냐?”
측면의 소파에 앉아 있던 류세란이 최강의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아니요……?”
류세란의 답을 들은 최강이 말했다.
“말숙이는?”
“저도 마찬가지인 것이와요.”
두 사람의 확인을 받은 최강이 그제야 안심하고 TV를 켰다.
때마침 누군가 사무실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녀왔냐?”
최강의 부탁으로 협회에 보고서를 제출하고 온 주소희였다.
최강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주소희가 책상 위의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어라?”
주소희가 반짝이는 보라색 빛깔의 보석을 집어 들며 말했다. 엄지손톱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보석이었다.
“이게 뭐예요?”
TV를 보던 최강이 주소희가 집어 든 보석을 힐끗 곁눈질로 확인하고서 말했다.
“마지막 녀석이 떨구더라.”
주소희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슬라임이요?”
“어. 왜? 이상해?”
“아니요. 슬라임이 이런 보석을 떨어트렸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주소희가 책상 위에 대충 널브러져 있는 다른 물건들을 보며 말했다.
“그럼 이것들도 전부 균열 안에서 주워 온 거예요?”
반지. 팔찌. 목걸이. 귀걸이. 다양했다.
“야! 그보다 좀 비켜. 안 보이잖냐?”
“치…… 말 좀 해 주면 어디 덧나요?”
“어, 덧나신다.”
최강이 비키라는 듯 손짓하자 입을 삐죽이며 물러난 주소희가 집어 들었던 반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최강 씨.”
“왜?”
“저 이거 주면 안 돼요?”
“그래, 가져라.”
최강이 내친김에 옆에 앉아 있던 류세란에게도 말했다.
“너도 맘에 드는 거 있으면 몇 개 가져가고.”
류세란이 감격한 듯 눈을 반짝였다.
“정말요?”
“그래. 대신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나눠 가져.”
두 사람이 신이 나서 말했다.
“네!”
최강이 책상 옆에 쪼그려서 열심히 구경하는 주소희와 류세란을 놔두고 옆에 말없이 서 있던 최말숙을 향해 보라색 보석을 집어서 내밀었다.
“말숙이도 하나 가질래?”
“…….”
최말숙이 말이 없자 최강이 말했다.
“왜, 관심 없나?”
최말숙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감히 이걸 가져도 될까 생각했사와요.”
최말숙의 말투에서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은 최강이 새삼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하긴 이 녀석, 몬스터였지?’
뭔가 정보를 얻을 수도 있겠다 생각한 최강이 말했다.
“왜? 아는 거야?”
최말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마석이와요. 흔히 오래 산 몬스…… 아니, 마족의 마나가 결집된 물건인 것이죠.”
“용도는?”
“제가 본래 살던 다른 차원에서 인간들은 이걸 장신구나 무기 같은 데 넣어서 마력을 증폭시키는 용도나 마나의 흐름을 다루는 법을 도와주는 용도로 사용했고, 몬스…….”
이번에도 최말숙의 표정에 아차 하는 기색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마족은 섭취하는 방법으로 마력을 성장시키곤 하는 물건인 것이와요.”
“그래? 그럼 필요하겠네? 자.”
“그렇지만…… 마석은 이렇게 조그마한 크기라도 상당히 귀한 것이와요. 그래도 정말 주시는 것인가요?”
“그래.”
최말숙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마석을 가져가자 최강이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네, 아버님.”
눈만 끔벅이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류세란이 말했다.
“다른 차원? 마족? 그게 무슨 소리예요?”
“몰랐어? 얘, 몬스터잖아.”
최강의 눈에 최말숙을 바라보다가 슬금슬금 주소희의 뒤로 숨는 류세란의 모습이 보였다.
주소희가 떼어 내려고 했지만 어떻게든 버텨 보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꼭 처음 최말숙의 정체를 알았을 때 주소희의 모습 같았다.
‘아마도 엘리트 몬스터라는 것을 떠올렸겠지.’
최강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 우리 말숙이, 아무나 해치고 그러는 녀석 아니다? 그치?”
최말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께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요.”
주소희는 언급하지 않는 걸 보면 최말숙도 두 사람이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있나 보다.
주소희가 류세란을 겨우 떼어 내고는 반지를 보이며 말했다.
“말숙아, 그럼 이건 뭔지 아니?”
“인간들이 쓰는 아이템인 것이와요. 알기로는 마석을 가공해서 만든 것일 텐데, 아마도 마석을 남길 정도의 슬라임이었으니까 이 세계의 주민을 해치우고 지니고 있던 게 아닐지?”
최강이 집채만 했던 슬라임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빨주노초파남보 색은 다양했지만 공통점이라면 크기가 엄청났다는 것이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주소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이템? 그럼 효과는 알 수 없는 거야?”
아마도 ‘아이템빨’을 적잖이 받아 본 주소희였기 때문에 아이템의 귀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세공된 마석의 색을 보면 알 수 있사와요. 붉은색은 주로 리플렉트 효과를 가지고 있고, 노란색은 마력 제어를 서포트해 주는 능력이 있었사와요.”
주소희가 재빨리 다른 장신구를 들어서 물어봤다.
“그럼 이건?”
“일반적으로 푸른색 계열은 충격 흡수와 관련이 있던데, 주황색은…….”
잠시간 멈췄던 최말숙이 말했다.
“죄송한 것이와요.”
모른다는 의미였다.
기죽은 최말숙을 본 최강이 주소희를 다그쳤다.
“왜 애를 기죽이고 그래!”
***
최강이 균열을 클리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본격적으로 한국 이곳저곳에서는 점핑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커뮤니티에서는 대균열에 대해 의심하는 분석이 매일같이 올라왔다.
불안에 떠는 국민들이 빠르게 늘어나며 협회로 매일같이 민원이 빗발쳤다.
고민하던 협회에서는 마침내 정대욱과 조중일이란 패를 꺼내 들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임시방편이기는 했지만 의도적으로 정대욱과 조중일을 내세워 균열을 클리어하는 영상을 국민들에게 보여 주자 대균열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을 표출하기보다는 이들을 믿는 여론도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강력한 뇌기로 마지막 층의 미노타우로스 수십 마리를 가볍게 찢어발기는 정대욱의 모습을 시청한 국민들은 프리저 첫 등장 때보다 더욱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와…… A급 균열을 혼자서 한나절 만에 끝내 버리네.
└이 정도면 프리저보다 더 센 거 아님?
“으하하하하.”
└나는 다 좋은데 이 할아버지 너무 카메라를 의식하는 거 같아서 별로임. 방금 전에 웃기 전에 카메라 의식한 거 보셈.
균열을 정리하고 나온 정대욱은 지금 차로 이동하고 있었다.
카메라맨이었던 옆자리의 손자가 읽어 주는 댓글을 듣던 정대욱이 버럭 화를 냈다.
“이런 빌어먹을 놈 같으니!! 다른 녀석들은 뭐라고 그러더냐?”
“다행히 반론이 더 많습니다.”
└무슨 소리임 그게 우리 전기할아버지 매력인데.
└ㄹㅇ 다 티 남 ㅋㅋㅋ 졸귀
└근데 카메라맨도 대단함 어떻게 저 속도를 따라다니면서 촬영하지?
정대욱이 언제 화냈냐는 듯 옅게 웃었다.
“오호, 네 칭찬도 있구나?”
“네, 뭐…….”
협회의 부탁으로 했다고는 하지만 지금 상황이 영 내키지 않던 정대욱의 손자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저, 그런데 할아버님.”
“뭐냐?”
“아무리 프리저가 시켰다고 한들 구태여 협회를 위해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까? 프리저의 눈치를 보며 조금씩만 도와주는 게 좋지 않을는지.”
확실히 요즘 정대욱은 너무 심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점핑 균열에 너무 적극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헛기침한 정대욱이 말했다.
“크흠…… 다 득이 되는 것이 있으니까 움직이는 것이다.”
“아…… 역시. 어떤 것입니까?”
기대하는 듯한 반짝이는 시선을 받으며 정대욱이 말했다.
“먼저 이 아이템들이다.”
확실히 모든 균열이 아이템을 떨어트린 건 아니지만 적지 않은 확률로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었다. 보름간 열심히 움직인 정대욱은 벌써 많은 아이템을 얻었다.
“프리저를 쓰러트리고 다시 억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도와줄 테지.”
“과연! 다른 것은 없습니까?”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없던 정대욱이 다른 적당한 변명거리를 생각해 말했다.
“우리의 적은 프리저뿐만이 아니다. 동시에 협회이기도 하지. 일반 국민들에게 우리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두면 나중에 협회를 무너뜨리고 정점에 섰을 때도 반발이 강하지 않을 것이다.”
“과연 할아버님은 굉장하십니다.”
혹시나 다른 이유는 없냐고 물어 올까 봐 조마조마하던 정대욱이 속으로 안도했다.
정대욱은 다음부터는 손주 놈이 아니라 아들놈을 데리고 다녀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
국내의 여론을 정대욱과 조중일로 대충 무마시킨 우범하는 지금 중국에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얼마 전 중국과 일본에서도 고단위 점핑 현상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었다.
“답부터 말씀드리자면, 맞습니다.”
답변을 받은 우범하가 속으로 기뻐했다.
사실 중국에 오기 전에 일본에도 먼저 방문했던 우범하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지금, 중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협력체 제안으로 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나, 협력에 대한 이야기는 거절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우범하의 당황한 얼굴이 보였다.
“어…… 어째서입니까? 일본 측에서는 이미 나름의 긍정적인 답을 받아 왔습니다.”
남자의 입꼬리가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남자의 뒤편에서 경호하는 두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몰라서 묻는 겁니까?”
방 안에 전반적으로 우범하를 비웃는 듯한 기운이 맴돌았다.
“…….”
우범하가 차마 입을 열지 못하자 남자가 말했다.
“시기상으로 볼 때 대균열의 징조는 우리 중국과 일본 쪽에서 먼저 일어났지요. 그런데 왜 우리가 그 가운데 있는 한국 측에 먼저 접선하지 않는지, 생각해 본 적 있으십니까?”
우범하의 머릿속에 너무나도 쉬운 답이 한 가지 떠올랐다.
한국과의 동맹은 애초에 도움이 안 된다. 한국 같은 소국과는 동맹을 맺어도 도리어 손해다.
그렇게 판단했을 것이다.
머릿속에 답을 떠올린 우범하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3분의 1…….
어쩌면 그보다 낮은 확률에 겁먹어서 말려들 확률을 높일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었다.
“일본도 참 약았습니다. 총알받이로 사용할 생각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과 동맹을 맺어 득 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는 문을 향해 몇 걸음 걷던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인 우범하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우리 대중국, 일본과는 다르게 대국으로서의 품위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들어 올린 우범하의 눈에 남자의 조소가 보였다.
“힘들 것 같으면 동맹 같은 구차한 제안이 아닌 국가원수가 직접 와서 빌어 보십시오. 그럼 제 선에서 드릴 수 있는 협조 정도는 해 드리겠습니다.”
남자가 문을 닫고 방을 나갔다.
비참했다.
어째서 그 점을 간과하고 있었을까?
애초에 중국과 한국이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가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면서…….
왜일까?
골칫거리이던 정대욱과 조중일이 협회와 협력하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프리저 때문일까?
협회장도 아닌 고작 비서관이 나와서 응대하는 모습만 보고도 알았어야 했는데…….
앞선 어느 때보다 강한 대균열로 예상되는 이때, 한국은 그저 짐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우범하가 너무 늦게 깨달았음을 자책했다.
“한심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