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65
65화
다음 날 오후였다.
최강은 주소희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뭐랄까, 주소희의 경기는 일방적이었다.
상대의 방어를 꿰뚫고도 위력이 남은 주소희의 주먹이 상대를 타격하고 있는 모습이 그 증거였다.
이건 불과 하루 전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이다. 어제 노인에게 교정받은 부분은 최강이 의도적으로 주소희에게 알려 주지 않았던 부분이었으니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최강이 니시키 도장에서 주소희가 얻기를 바랐던 것은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성장.
하지만 노인이 본의 아니게 그것을 방해한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지?’
전과 마찬가지로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듯한 무식한 대련을 펼치는 주소희를 보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런 대련은 자신보다 내공이 많거나 혹은 비슷한 수준만 되어도 통하지 않는 전법이었기 때문이다.
“하…… 또 치사하다며 난리 치겠구만.”
최강이 벌써부터 골치 아픈지 머리를 싸맸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몰랐으면 모를까 알아 버린 녀석에게 다시 족쇄를 채운다는 건 불합리로 다가갈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강이 생겨난 골칫거리에 인상 쓸 때였다. 마침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끌끌끌, 역시 젊은 처자가 제법이긴 해.”
경기는 관계자 외 비공개로 진행된다. 일행이라고는 최강을 제외하고 두 사람밖에 없는 주소희에게 일행이 있을 리 없었다.
최강이 슬쩍 확인해 보자니 역시나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여든은 거뜬해 보이는 노인이었고, 니시키 도장의 복색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영감님, 저 녀석 알아요?”
“알다마다. 어젯밤에 우연치 않게 잠깐 만났거든. 그러는 그쪽은 저 처자와는 무슨 사이인가?”
“일행입니다.”
최강과 노인은 짧은 대화를 통해 직감적으로 확신했다.
‘이 사람이었구만.’
‘이 청년이로구만.’
노인의 경우에는 주소희의 스승에 대한 확신이었고, 최강의 경우엔 쓸데없는 짓을 한 사람이 이 노인이라고 확신한 것이었다.
의외로 쉽게 범인을 찾은 최강이 질문했다.
“그런데 한국어는 어떻게 아십니까?”
“내가 교포 출신이라 그렇지. 거의 80년 전쯤인가? 자네만 한 나이 때 일본으로 넘어왔지.”
노인의 답을 들은 최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뻔한 경기의 내용, 더 이상 지켜볼 필요가 없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직 경기가 안 끝났는데? 일행이라고 하지 않았나?”
최강이 말했다.
“뭐…… 결과는 뻔한 것 같고, 슬슬 시간이 됐거든요.”
“자네 경기 말인가?”
최강이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나면 한번 구경하러 가지. 몇 번 경기장인가?”
“2번이요.”
주소희가 대련 중이던 4번 경기장에서 빠져나온 최강이 2번 경기장으로 이동하려고 할 때였다.
“실례하겠습니다.”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남성을 최강이 수상쩍은 눈빛으로 살폈다.
니시키 도장의 도복을 입은 50대 남짓의 남성이었다. 남성도 좀 전의 노인과 마찬가지로 서툴긴 해도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참 특이한 날이었다. 통역을 전문으로 하는 가이드나 심판이 아니고는 한국어를 하는 사람은 한 명도 마주친 적이 없었는데 오늘만 벌써 두 명째였기 때문이다.
“경기장으로 가시는 중이죠?”
“그렇긴 한데, 무슨 볼일?”
“경기장의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어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최강이 남성을 따라서 이동한 곳은 나시키 도장이 들어서 있는 산 뒤편의 끝없는 평야였다.
안내해 준다던 남성이 경기장은커녕 구멍가게 하나 없는 허허벌판으로 이동하자 의아한 얼굴로 최강이 말했다.
“경기장으로 안내해 주겠다며?”
“다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바뀐 1번 경기장입니다.”
최강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물론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경기장처럼 생긴 건물은커녕 건물 비슷한 것도 없었다.
허허벌판을 다시 한번 눈에 담은 최강이 말했다.
“여기가?”
남성이 말했다.
“혹시 경기장의 번호가 어떻게 붙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니, 별로?”
난데없는 남성의 질문에 최강이 별생각 없이 말하자 남성이 답했다.
“1번부터 18번까지의 경기장의 번호는 오로지 경기장의 면적으로 붙여집니다. 생각해 보시면 대련을 거듭할수록 점점 경기장의 번호가 줄어들지 않았습니까?”
최강이 처음에 배정받았던 9번에서 대련을 거듭할수록 넓어졌던 경기장들을 돌이켜 볼 때였다.
남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파손 위험 때문이죠. 대련료를 받는다고 해도 매 경기 부숴 먹으면 보수비가 더 들거든요.”
“뭐. 그렇긴 하겠네.”
남성의 말에 공감한 최강이 말했다.
“근데, 그래서? 심판은 어딨고? 대련 상대는 어딨는데?”
“심판은 없습니다. 애초에 1번 경기장을 택한 것도 마음껏 날뛰기 위한 데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대련 상대라면…….”
후라타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그쪽?”
최강의 물음에 남성이 고개를 숙여 소개했다.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니시키 도장의 사범 후라타라고 합니다.”
“사범?”
이상했다. 최강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오늘은 부사범 2차전. 즉, 부사범이 나와야 맞기 때문이다.
“네. 사범입니다. 대신 저를 이기신다면 3일 후에 총사범님과의 대결로 바로 진행해 드리겠습니다. 혹여 불만이 있으시다면 지금 당장 부사범 중 한 명을 준비시키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후라타의 말을 들은 최강이 픽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그냥 하자. 내가 손해 볼 것도 없어 보이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어차피 자신의 목적은 총사범 타쿠마와의 경기이다.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면 충분한 것이다.
***
주소희의 경기가 끝이 난 것은 최강이 나가고 10여 분쯤 지나서였다.
경기가 끝난 주소희는 최말숙 그리고 노인과 함께 이동 중이었다. 오늘 최강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던 2번 경기장에 도착한 주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어라? 잠겼네?”
“혹시 벌써 끝난 건 아닐까요?”
최말숙의 말을 들은 주소희가 채워져 있는 자물쇠를 확인하고 말했다.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뒷정리하는 사람도 없고.”
주소희가 뭔가 들은 것은 없나 싶어 함께 온 노인에게 말했다.
“영감님, 혹시 뭐 들은 거 없으신가요?”
노인은 어째선지 먼 산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영감님?”
노인이 말했다.
“이쪽이 아닌 듯허이, 처자.”
***
후라타는 굳이 말하자면 니시키 도장의 2인자이다.
나이를 떠나서 총사범 타쿠마를 제외하면 가장 고수일뿐더러 동시에 타쿠마의 수제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변이 없다면 천수를 다한 타쿠마의 뒤를 잇는 다음 총사범은 후라타가 될 것이다.
오늘의 이 행동이 문제가 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후…….”
대련에 앞서 호흡을 고른 후라타가 맞은편을 바라봤다.
프리저가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몇 번을 겨뤄 봐도 이길 자신이 들지 않는 상대였다. 무인을 평가하기에 박하다던 미국에서 50위권으로 평가한 프리저를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후라타가 나선 이유는 존재했다.
약점.
오로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최강의 약점 비슷한 것이라도 찾기 위해서였다.
나중에 이 일이 밝혀진다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후라타는 자신이 총사범이 되고 말고가 아니라, 니시키 도장의 상징인 타쿠마가 이기느냐 지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약점이 아니어도 좋다.’
그래, 약점이라고도 할 수 없는 사소한 습관이라도 상관없었다.
그것을 치명적인 약점으로 변모시킬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자신이 규칙을 어기며 생겼기 때문이다.
이틀…….
정상적이라면 반나절밖에 없을 시간이 오늘 자신의 위반 행위로 이틀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자신의 스승 타쿠마라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덤빌 테면 얼마든지 덤벼 보라는 듯 여유로운 최강을 향해 후라타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단순히 축발을 뻗는 듯한 가벼운 움직임이었는데 수 미터가 지워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후라타의 깔끔한 정권이 펼쳐졌다.
***
탁.
최강이 정권을 바깥으로 쳐 내고는 후라타의 복부를 때렸다.
주르르륵.
바닥에 두 발을 고정한 후라타가 뒤로 강하게 밀려나는 모습이 보였다.
흙 밭에 그려진 선명한 ‘二’ 자를 확인한 최강이 생각했다.
‘끄떡도 없다 이건가?’
비록 일반 주먹이라고는 해도 확실하게 유형기를 실어서 가한 타격이었는데 의외였다.
하압.
어림없다는 듯 기합을 터트리며 기운을 끌어 올리는 후라타를 본 최강이 말했다.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는데?”
“말씀하시죠.”
“심판이 없는데, 그럼 점수제도 없는 건가?”
원래라면 방금 같은 경우에는 1점짜리는 될 만한 타격이었다. 니시키 도장에서는 점수제를 기반으로 한 판정승이 엄연히 존재했고 지금 그것이 딱 필요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없습니다. 오로지 승패는 한쪽이 기절하거나 항복을 선언했을 때. 그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최강이 달려드는 후라타의 공격을 연달아 피하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뭐 어쩔 수 없지.’
최강이 주먹에 맺힌 백색 기운을 기점으로 거친 바람이 모여들자 달려드는 후라타의 품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후라타가 깜짝 놀라 방어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최강의 이번 주먹은 방금과는 좀 달랐다.
천지 가르기에 직격당한 후라타의 사지가 쭉 펴지는 모습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쿵. 쿵. 쿠웅.
이어지는 천지 울리기를 얻어맞은 후라타가 바닥에 꽂혔다가 지면이 사라짐과 동시에 반동으로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최강이 다음 타를 때려 넣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천지 울리기의 충격으로 생겨난 거대한 구덩이 속으로 떨어져 내려야 할 후라타가 의식을 차리고 황급히 지면을 차고 뒤로 물러났다.
최강이 아쉬운 얼굴로 혀를 찼다.
‘쳤어야 했나?’
위력 조절이라는 게 참 힘들었다. 그냥 죽여도 상관없는 녀석이었다면 주저 없이 다음 타를 때려 넣어서 마무리 지었을 텐데, 그래서는 곤란한 녀석이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계속할 거냐?”
“물론입니다.”
“그렇겠지.”
이번엔 최강이 먼저 움직였다.
천운 올리기로 후라타의 턱을 올려치려던 최강이 주먹을 가까스로 피해 내는 모습이 보였다.
속도나 위력의 문제가 아니라 연계기인 만큼 따로 사용했을 때 한정적인 타격점이 회피하는 데 도움을 준 듯했다.
천운 올리기를 멋지게 헛방 친 최강이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이 황천 보내기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최강이 길게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주먹을 풀었다.
아무리 잘 쳐줘도 눈앞의 후라타라는 녀석이 황천 보내기를 견뎌 낼 만한 녀석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앞선 어느 때보다 강하게 휘몰아치던 최강의 주변 바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을 때였다.
“그만!!!!”
엄청난 고성이 저 멀리서 들려왔다.
최강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니 아까 마주쳤던 노인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구경 오겠다고 했던가?’
최강이 다가오는 노인을 보다가 후라타의 모습을 봤을 때였다.
돌처럼 굳은 후라타의 얼굴이 보였다.
‘뭔가 이상한데……?’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빠르게 분석하던 최강이 가까이 다가온 노인에게 말했다.
“영감님이 총사범?”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내가 총사범 타쿠마긴 하지.”
“영감님, 보아하니 영감님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은데, 그럼 대련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리고 약속은요?”
“약속?”
“제가 이기면 일단 영감님하고 3일 뒤에 붙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던데요? 뭐, 무효라거나 그런 말을 하시지는 않겠죠?”
먼지투성이의 후라타와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최강을 번갈아 확인한 타쿠마가 말했다.
“청년이 이긴 걸로 하지. 대련도 3일 뒤가 아니라 청년만 괜찮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해 주겠네.”
“스승님!”
후라타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자 눈빛으로 묵살한 타쿠마가 말했다.
“하겠는가?”
예상외로 일이 너무 순탄하게 풀리자 씩 입꼬리를 올린 최강이 말했다.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