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비단 무공에 한해서만이 아니다. 이런 손은 평범한 일반인 중에서도 보기 어려웠다. 굳이 말하자면 살면서 험한 일 한 번 하지 않은 고관대작의 귀부인 정도나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이거 묘하군.’
손을 뻗으면 살짝 닿을까 말까 한 거리에 허윤이 앉아 있지만, 상대를 하나도 파악하지 못해 손을 쓰기 애매했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
허윤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오셨소이까?”
“제가 그…… 요즘 들어 잘 되는 일도 없고요. 집안에도 불화가 많습니다. 집안 어르신이 돌아가시기도 하고 병에 걸리거나 다치는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농사가 잘 안 되어 큰 손해를 보질 않나, 집안의 땅과 재산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질 않나…… 아주 힘든 상황이라서요. 그저 한 해를 아무 탈 없이 잘 넘길 수 있을지 그것을 알고 싶어 왔습니다요.”
“흐음. 알겠소이다.”
허윤이 경부의 얼굴을 살폈다.
“얼굴이 워낙 상해서 관상을 보기도 좋지 않구려. 상황이 복잡하니 주역점으로 봐 드리겠소.”
“어이구, 뭔지 모르지만 해 주신다면 저야 그저 감사할 따름입죠.”
경부가 굽신거렸다.
허윤이 주의를 주었다.
“내가 좀 오래 점을 봤더니 약간 불편하실 수도 있을 거외다.”
“네, 네. 뭐든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소인은 그저…….”
그때.
훅.
허윤의 입에서 희미하지만 하얀 김이 새어 나왔다.
순간 경부의 목에 오돌토돌 닭살이 돋았다.
이게 뭐…….
손님이 놀라는 건 익숙한 일이라, 허윤은 조용히 하라고 다시 주의를 주고 놋쇠 종을 들었다.
딸랑딸랑.
“여기 하늘이 무서움을 알고, 천리에 따라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크고 작은 고난으로 인해 삶이 고달픈 이를 위해 다음 한 해에는 일이 잘 풀릴 수 있을지 여쭙고자 합니다. 부디 길흉을 알려 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허윤은 예전에 정해진 주문법에 따라 주문을 읊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게 말을 하든, 점을 간략하게 치든 복잡하게 치든 맞는 건 똑같다. 하여 이젠 주문법과 점술을 그 손님에 맞춰서 행하고 있었다.
대충하는 것 같아도 오히려 예전보다 성의가 있는 셈이었다.
“흠흠.”
허윤이 선물로 받은 반짝반짝 빛나는 연자 산통을 들고 그 안에 고대의 동전을 넣었다.
짤그락짤그락.
“대연의 수를 가르되 양쪽을 합하면 마흔아홉으로써 이는 둘로 나누어도 반드시 같지 않음을 의미하니, 음양은 서로 돌고 돌며 변하는 것이요, 한순간도 멈추지 않음이니라.”
주문을 외며 연자 산통을 뒤엎었다가 들었다. 탁자 위에 세 개의 동전이 나왔는데, 앞뒷면을 보고 그것을 흰 종이에 기록했다.
경부는 허윤이 점을 치는 동안 계속해서 힐끗힐끗 허윤을 관찰했다. 그는 속으로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무공을 익힌 게 틀림없구나! 북방의 빙공(氷功) 계열인가? 대체 어떤 무공이기에 이토록 드러나지 않지?’
무엇보다 자기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는 게 충격이었다.
‘어쩌면 일부러 감추는 건지도 모르겠군. 흔치는 않지만, 주안술(朱顔術)로 얼굴을 젊게 만드는 것처럼 손을 가꾸는 수법일 수도 있지.’
특히나 북방의 소수공(素手功) 계열은 살갗을 매끄럽고 투명하게 만들어서, 대성하면 뼈가 보일 정도가 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지금으로서는 북방의 공력이 가장 유력하다. 놀랍군. 북방의 무공이라니. 혹풍(酷風)으로 인해 북방과 강호의 교류가 단절된 지 꽤 된 거로 아는데.’
빙공 계열에 무공의 흔적을 감추는 소수공.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제야 앞뒤가 들어맞는 듯했다.
강호에 알려져 있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난 점.
젊은 나이에 비해 놀라울 정도의 고수인 점.
그리고 북방의 생소한 무공이라면 사승 존사가 당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점.
눈앞의 젊은 방사가 북방의 후계자라면 모든 게 들어맞는 것이다.
악가장에서 소중한 손님으로 대하는 이유도 이자의 정체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
아니, 근데 왜 대놓고 앞에서 점을 보고 있지? 냉기를 풀풀 풍겨 가면서?
소문나기를 바라고 있나?
경부는 머리가 복잡해져서 속으로 끙! 하고 마뜩잖은 신음을 냈다.
“기다리기 지루하셨습니까? 다 됐소이다.”
“아이쿠, 그렇습니까? 점괘가 어떻게 나왔는지…….”
“중천건(䷀)이올시다. 중천건(重天乾)은 여섯 괘의 효가 모두 양인 특이한 괘로써…….”
주역 육십사괘 중의 으뜸인 괘다. 흔히는 만사형통을 의미한다. 뭘 해도 잘 될 운세였다.
경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쨌거나 이번 살행은 성공한다는 뜻이 아닌가! 운수대통의 부적이 제법이군.’
경부는 살짝 웃음을 참아야 했다.
‘자기가 내 손에 죽는 것이 만사형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죽을 때 표정이 아주 볼만하겠구나.’
그런데 허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확히는 중천건의 구오가 움직이는 동효(動爻)요. 아래에서부터 다섯 번째, 그러니까 위에서 두 번째 효가 노양(老陽)으로써 양이 극에 달해 곧 음으로 변하게 되오.”
“그건 나쁜 뜻입니까?”
“뜻 자체는 나쁘지 않소.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보면 이로울 것이다. 이런 뜻이오.”
경부의 입장에서 대인은 허윤이라 볼 수 있었다. 허윤을 만나면 자기가 하늘의 용처럼 이로워진다는 건 곧 살행을 성공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야아…… 정말 좋은 점괘네요!”
어느 쪽으로 해석해도 좋은 의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허윤이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글쎄, 이게…… 좀 그렇소.”
경부는 욕을 할 뻔했다.
좋은 점괘 뽑아 놓고 왜 부정적이야?
하지만 바로 기분이 풀렸다.
아아, 곧 나한테 죽을 놈이니 그럴 수 있지.
속으로 껄껄 웃은 경부가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엔 안 좋습니까요?”
“아까 말한 구오의 효는 양(⚊)이었는데 곧 음(⚋)으로 변하게 되오. 그러면 중천건(䷀)에서 화천대유(䷍)가 되지.”
“화천대유는 무슨 뜻입니까?”
허윤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어딘가 아주 좋지 않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대유 원형(大有 元亨). 크게 얻고 크게 형통할 것이라.”
경부는 잠깐 헷갈렸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안 좋은 점괘가 아니었다.
심지어 아까보다 더 좋잖아, 개새끼야.
표정만 보면 어디 일가친척이 떼 몰살당해서 뒈진 줄 알겠네.
경부는 기쁨을 드러내지 않고 표정 관리를 했다.
“소인이 잘 모르지만, 감히 생각건대 그거 좋은 거 아닙니까요?”
허윤이 정색했다.
“점괘는 보이는 대로만 보는 게 아니오.”
아니, 누가 봐도 좋은 점괘인데 왜 정색을 해.
경부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놈이 혹시 내게 일부러 그러나?
“네, 네. 선생님께서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그 정도가 아니오. 이거 정말 안 좋은 흉괘(凶卦)인 것 같소.”
이 새끼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경부는 허윤이 턱에 손가락을 올리고 골똘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충동에 휩싸였다.
그냥 죽일까…….
좋은 대길(大吉)의 괘를 안 좋다고 빡빡 우기면 제 놈이 안 죽을 거라고 생각하나.
당장이라도 목을 비틀어 달라고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으면서.
하지만 허윤의 표정은 매우 심각하고 진지했다. 장난이 아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자꾸 말을 어렵게 하시면 소인 같은 미천한 것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쉽게 알려 주십시오.”
“점괘의 뜻은 좋으나, 모양이 좋지를 않소.”
“…….”
“주역점의 점괘는 위아래 두 개의 팔괘가 합쳐져서 육십사 개가 만들어지오. 그런데 팔괘의 형상은 본래 사물의 모양에서 따온 것이오. 즉, 어떤 경우에는 점괘보다 팔괘의 모양이 우선일 수 있소.”
“…….”
“그러니까 예를 들면 태괘(☱)는 땅(⚌)위에 물(⚋)이 있는 모양이니 연못을 의미하오. 감괘(☵)는 물이 흐르는 모양이라 물이나 시내를 의미하는 것이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자세히 보니 그럴싸합니다. 그런데요?”
“중천건(䷀)은 사람이오. 그럼 중천건(䷀)에서 화천대유(䷍)로 바뀌면 어떻게 되겠소?”
“모르겠는데요.”
허윤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목 잘린 사람이오.”
……이 새끼가?
경부는 어이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허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곤 순간적으로 실수를 깨달았는데, 허윤의 표정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이놈이 나를 알고 있었구나!
소름이 끼치고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손을 써야 한다!’
아주 짧은 순간 경부는 안법(眼法)을 써서 시야를 동그랗게 만들었다. 손 닿는 데에 있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인식했다.
앉은뱅이 탁자 위에 있는 놋쇠 종. 금속과 목재로 만들어진 팔괘 판. 향초가 꽂힌 촛대. 산통. 벼루. 붓. 화선지와 누런 괴황지. 수석.
……수석? 수석은 뭐야. 수석이 왜 있어?
그러나 깊이 생각할 틈 없이 산통을 쓰기로 했다. 대나무가 아니라 동물의 뼈로 만든 듯한데, 내공으로 폭발시키면 뼛조각이 암기처럼 허윤에게 날아갈 것이다. 그러면 그때 공격을…….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려는 순간.
스윽.
허윤이 왜인지 산통을 옆으로 밀어 치우는 것이었다. 마치 정리하려는 듯한 모양새였다.
……하필?
급한 대로 벼루를 집기로 했다. 싸구려 벼루라 더 좋았다. 벼루를 터뜨려서 먹물과 조각으로 시야를 가리면 그때…….
스윽.
허윤이 벼루를 치우고 있었다.
경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연인가? 아니면……?
하지만 이미 들킨 이상, 더 돌아갈 길은 없다.
‘내가 죽더라도 네놈은 죽인다!’
경부는 마지막으로 수석을 노렸다. 허윤이 수석은 치우지 않고 있었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수석을 보고 있었다.
경부는 빠르게 수석에 눈길을 주었다가 허윤을 보았다. 허윤과 눈이 마주쳤다. 경부는 잠시 갈등했다. 그런데 왠지 허윤도 갈등하는 듯했다. 치울까 말까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순간 경부는 전력을 다해 내공을 끌어 올리곤, 오른손으로 수석을 집었다. 허윤이 뒤늦게 손을 뻗는 게 보였다.
늦었구나! 죽어라!
경부가 허윤의 머리통을 번개처럼 후려쳤다.
이 한 수에 경부의 내공 팔 할이 담겼다. 막기도 어려울뿐더러, 막더라도 충격이 있을 터였다.
그러면 이후 실제 공격은 왼손으로 가한다. 허윤이 수석을 막는 순간, 왼손 소매에 달린 장치를 격발시켜서 백 발의 독침을 일거에 쏠 심산이었다.
아주 잠깐만 멈칫해도 벌집이 되고, 독에 녹아 버릴 터였다.
그것도 이 독은 주로 육대마가 중의 살마가에서 쓰는 독!
허윤이 죽으면 살마가가 의심을 받게 됨으로써 경부의 임무는 완성된다.
하지만 허윤은 수석을 막지 않았다. 아니, 막지 못하는 듯했다. 여전히 앉아 있으니 신법으로 피할 시간도 없었다.
‘끝났다!’
순간.
댕!
범종 치는 듯한 소리가 나며 손에 든 수석이 충격을 못 이겨 쩍 하고 갈라졌다.
동시에 눈앞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엄청난 파문이 허윤에게서부터 퍼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아!
경부는 일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본능적으로 독침을 격발했다.
그러나 독침은 파문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서 티도 안 나게 사라져 버렸다.
경부도 튕겨 나갔다. 몇 번이나 바닥을 구르다가 겨우 일어섰다. 다시 달려가 허윤을 죽이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다.
빠드득!
경부가 이를 갈며 고개를 들었는데…….
“어……!”
경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곳곳에서 경부와 같은 탄성의 외침이 튀어나왔다.
“어어어?”
“어!”
“이게 무슨 일이야?”
악가장의 무사들도 멍하게 서서 허윤을 바라보았다.
허윤의 머리에서……
은은하게 빛이 났다.
“후, 후, 후광(後光)이!”
“후광이야! 후광이 빛나고 있어!”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오체투지로 엎드리고 난리가 났다.
“아이고, 도사님.”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이 오셨다!”
사람들이 단체로 부처님을 찾으며 부르짖자, 허윤도 얼떨결에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