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와…….”
“와아…….”
허윤 일행은 저마다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영감, 이런 거 본 적 있어? 난 처음인데.”
“나도 없다.”
“평생 한 번도 못 봤고, 앞으로도 지금이 아니면 못 볼 거 같은데요.”
“우와…….”
장원의 창고.
그 안에 벌써 몇 수레분의 은이 들어갔다.
쪽배 모양의 은원보가 상자에 담겨서 차곡차곡 놓이고 있었다.
“창고가 모자라서 일부는 금으로 받았고, 나머지는 어음이야. 여기.”
이진휘가 허윤에게 최고급 비단에 싸인 어음을 내미는데, 그 손이 덜덜 떨렸다.
“오십만 냥…… 백도맹 혹은 진령상회에서 지불을 약속한 거야. 실제 환액하기 전까지는 연 일 푼의 이자도 받을 수 있어…….”
일행들이 계산했다.
“오십만 냥의 일 푼이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만 있어도…….”
“은 오처언 냥!”
약왕을 뺀 모두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그러나 허윤은 이내 입맛이 쓴 듯 말했다.
“마냥 좋아하긴 좀 그렇구려. 이게 다 수적의 본거지에서 나온 거요.”
이진휘가 정정했다.
“아니야…… 그거 다 처분하려면 아직 멀었어.”
일행들이 화를 냈다.
“세상에서 제일 잘사는 게 도둑놈들이네.”
“이런 걸 소굴에 처박아 두고 있으니까 나오기가 싫었겠지.”
그때 장원 뒤에서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혹은 뭔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메아리쳤다.
콰우우우우!
이진휘가 깜짝 놀라며 성질을 냈다.
“아…… 저거 어떻게 좀 안 돼? 뒷산에 이상한 게 사니까 불안해 죽겠네.”
장용이 말했다.
“해도 안 끼치는데 뭐 어때. 그냥 개 한 마리 키운다고 생각하면 되지.”
콰르르르…….
“거봐. 잘 짖잖아.”
…….
소리가 뚝 그쳤다.
소지광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부패한 관리들은 곳간에 수천만 냥을 비축했고, 부자들은 고위 관직 청탁 뇌물로 한 번에 수백만 냥을 쓴다고 들었네. 하지만 나는 백만 냥도 안 되는 돈에도 이렇게 어쩔 줄 모르겠군.”
대홍랍강이 짐짓 눈을 감았다.
“서민이 다 그렇지. 본로도 한때는 저만한 금액을 마구 주무르던 때가 있었는데.”
“아무튼, 너무 많은 재화가 갑자기 들어와 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구먼. 잘 지켜야겠네.”
허윤이 대답했다.
“밤에는 장원 앞에 진법이 발동하니 큰 문제가 없겠고, 뒤쪽은…….”
쾌도가 말했다.
“큭큭큭. 형님, 뒤에는 개가 지키고 있어서 괜찮습니다. 지도 사람인데 밥값은 하겠죠.”
일행들이 이상한 걸 보는 눈으로 쾌도를 쳐다보았다.
앞에선 개라 하고 뒤에선 사람이라 했는데?
방금 그 발언, 좀 이상한 거 아냐?
말을 걸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참다못한 고우사가 물었다.
“그 개가 사람이라는 거냐, 사람이 개라는 거냐? 아니면 그냥 그놈을 멕이려는 거냐?”
“큭큭큭. 일거양득 몰라? 이게 그런 거야.”
“이야…… 이놈들, 평소에 사람 대할 때는 개차반인데 욕할 때는 앞뒤 맥락까지 엄청 신경 써서 골라 하네.”
“그것도 일거양득.”
“인마, 말 두 마디를 붙여서 한다고 그게 다 일거양득인 게 아니고……. 아니, 어떤 놈이 아침부터 문자 써 가지고 애를 또 거기에 꽂히게 만들어 놨냐? 이 새끼 이거 이제 온종일 이럴 거 아냐. 아침에는 문자 좀 쓰지 말자, 좀. 여럿 피곤하다.”
안소방이 은원보 가득한 창고를 보면서 마른침을 삼키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면, 밤에는 문제없고 뒤쪽도 걱정이 없는…… 걸로 쳐도, 낮이 문제군요. 저희가 장원을 비울 때도 있을 거고요.”
“당분간은 재물이 쌓인 걸 숨겨야…….”
이진휘의 말에 허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숨기지 말고 아예 다 드러내는 게 좋겠네.”
“응?”
“어차피 본채를 쳤다는 소문도 다 났는데, 그럼 떠들기 좋아하는 치들은 우리가 얼마나 벌어들였는지 대략으로나마 셈하려 할 걸세. 게다가 우리는 사람을 모아야 하고, 그러려면 소문을 내야 하잖나. 돈이 없는 것보다야 많아 보이는 게 낫지.”
“이런 귀신 나올 것 같은 장원에서?”
“나는 좋네만 다들 썩 달갑잖은 반응인 듯하니…… 여긴 별채로 쓰고, 본관은 번듯한 다른 장원을 구해 보자고.”
일행들이 그 말을 반겼다.
그러잖아도 가뜩이나 음산한 곳인데 밤만 되면 허윤이 수련을 한다고 설치는 바람에 귀기가 계속 꼬였다.
“그래서 말인데…….”
허윤이 일행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상황이 대강 정리되고 정착할 수 있게 됐으니, 슬슬 점수 정산을 해야겠소이다.”
일행들은 귀를 쫑긋했다.
드디어!
기여도 점수에 따라 직위를 결정할 때가 된 것이다.
다들 두근두근하며 허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허윤이 장부를 펼치더니 ‘음’ 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대홍랍강이 독촉했다.
“빨리 말해 보게. 뜸 들일 필요 있나.”
“조금 난감하게 됐소이다.”
허윤은 좀 더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장부를 내보였다.
“우선, 장용과 고우사가 공동 일 위요.”
고우사와 일당들이 환호했다.
“이야아아! 해냈다!”
“역시 점수를 몰았더니 됐잖습니까.”
“사람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 봐야 해.”
약왕이 손뼉을 치며 축하했다.
“잘됐소이다. 한데, 일 위가 둘이니 둘 중 누구에게 먼저 기회를 주어야 할지 어렵게 됐구려.”
고우사와 일당들이 주장했다.
“당연히 나이순이지.”
장용과 쾌도가 차례로 주장했다.
“형님을 잘 보좌해야 하니까 충성심 순으로 해야지.”
“판단력이 뛰어나고 상식적인 사람을 골라야 일거양득입니다, 형님.”
‘판단력과 상식’ 얘기를 그들이 먼저 꺼내자 고우사 일당들이 어이없어했다.
소지광이 제안했다.
“차라리 무공으로 정하는 건 어떻습니까. 강호에서 무를 빼놓긴 어려우니.”
장용은 팔짱을 끼고 여유 있게 말했다.
“소림사와 청성파의 공동 전인이며 전대 신강제일인이자 종남파의 보검 소유인인데, 거기에 고우사를 쓰러뜨린 고수라는 이력도 추가되겠군.”
말을 하던 장용이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역시 우리 방회의 이인자는 이력이 번듯한 사람이 하는 게 낫지. 사파와 마도를 고루 오가며 활약한 영감, 이런 건 남들 보기도 좀 좋지 않잖아.”
“거기서 정파는 왜 빼냐. 이거, 함부로 경쟁 상대 음해하는 상도덕 없는 놈일세.”
장용은 고우사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걸 이제 알았어?”
“뭐?”
“사람 볼 줄 그렇게 몰라서야 어떻게 큰일을 하겠어. 쯧쯧. 역시 영감은 이인자의 그릇이 안 돼.”
잠깐 눈만 끔뻑이던 고우사가 감탄했다.
“허허. 이거 이놈, 자기 허물까지 팔아서 음해에 진심이네.”
“아니, 그러니까 그걸 이제 알았느냐고. 영감은 말을 할수록 자기 욕하는 거야. 그만 포기해.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너 같은 놈을 응징하기 위해서라도 이인자의 자리는 포기하지 않…….”
장용과 말씨름을 하던 고우사는 갑자기 충격을 받은 듯 말을 멈췄다.
“하…….”
“왜 그래, 영감?”
“내가…… 일인자도 아니고 이인자의 자리를 놓고 너 같은 놈과 아득바득해야 하냐? 얼마 전만 해도 천 명의 수적들을 진법으로 옭아매어 전멸시킨, 진법의 대가인 내가?”
순간 자괴감이 들었던 고우사가 장용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내 이력에서 진법가란 말은 왜 빼, 이 새끼야! 그냥 사파와 마도를 오갔다고 하니까 진짜 엄청 나쁜 인간 같잖아!”
장용이 순순히 그 말에 수긍했다.
“그건 영감 말이 맞아.”
“……?”
“내 부하가 되면 그런 것도 섭섭지 않게 잘 챙겨 줄게.”
“이…… 이 새끼, 말이나 못 하면…….”
“상식이 없네. 말을 못 하는데 어떻게 이인자가 돼.”
허윤은 분위기가 더 나빠지기 전에 끼어들었다.
“다들 잠깐만 진정하시오. 내가 그래서 생각해 둔 게 있으니, 일단 들어 보시오.”
고우사는 좀 삐쳤고, 장용은 다 이긴 것처럼 기세가 등등했다.
허윤이 달래는 투로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나 혼자의 힘이 아니었소이다. 누구 하나 도움이 되지 않은 이가 없었소. 한데 그중에서 등수를 갈라 누가 누구의 명령을 듣고 한다면, 그것도 좀 아닌 것 같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명령한다 해도 순순하게 듣지 않을 것도 뻔하고.”
“잘 아네.”
지금도 몇십 살의 나이 격차를 넘어 티격태격하는데, 자리의 고하가 생긴다고 딱히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하여 점을 쳐 보니, 아니나 다를까.
오히려 나빠질 거라는 점괘가 나왔다.
그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직책을 나눠 일을 분담하여도 지금처럼 앞으로도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게 어떤가 하는 거요.”
대홍랍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건 아닐세. 자네도 자네보다 이삼십 년씩 젊은 친구가 마구 반말을 하고 맞먹는다 생각해 보게. 자네가 그래서 괜찮다고 한다면 나도 동의하겠네.”
“아, 그건 이미 지금도 그러고 있소이다. 그럼 한 명은 동의하는 걸로 알겠고.”
“……?”
얼떨결에 동의한 셈이 되어 버린 대홍랍강은 당황했다.
“아니, 이보게. 갑자기 그게 무슨…….”
“혈맥은 다 나으셨소?”
“자네 의견에 예전부터 동의하고 있었네.”
일행들이 대홍랍강을 째려보았다.
쾌도가 물었다.
“근데, 그러면 저 재물들은 어떻게 합니까?”
“우리 모두가 함께 얻은 것이니 기본적으로는 방회의 것이라 생각하네. 하여 여기 이 서무관의 허가를 받아 누구나 업무상으로 쓸 수 있고, 이제는 월봉도 줄 수 있으니 매달 지급하고 할 셈일세.”
“감사합니다, 형님.”
“한 명 더 동의했고. 다른 분들 의견 있소?”
일행들이 창고와 어음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기껏 열심히 발로 뛰었는데 다 똑같은 취급이라니 기분은 나쁘지만, 저 막대한 돈을 모두가 소유하는 거라 생각하니 또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었다.
갑자기 약왕이 한마디 하려 했다.
“자네가 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인 줄은 알았으나…….”
“고문께도 같은 적용을 할 셈입니다.”
“허허,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고맙네.”
일행들이 수군거렸다.
“하여간 있는 놈들이 더하다니까.”
“아까 오십만 냥짜리 어음을 보고 자기 혼자 눈 하나 깜박 안 할 정도였으면서.”
“성숙곡으로 빼돌리나 잘 지켜봐야 해.”
“선…….”
약왕은 일행들이 거기까지 말하는 걸 보고 재빨리 귀를 막았다.
문득 번산이 질문했다.
“그럼 기여도 일 등을 한 두 분은 어떻게 합니까? 완전히 똑같은 대접이라면, 아무래도 좀 억울하시지 않을까요.”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원하는 바를 한 가지씩 들어주면 어떨까 하네.”
그 정도는 다들 수긍했다.
이제까지 기여도를 위해 힘껏 달려왔는데 아무 보상이 없다면 도리어 섭섭한 일일 터였다.
“두 사람, 뭐든 말해 보시오. 들어줄 수 있는 한에서는 최대한 들어주겠소.”
허윤이 먼저 고우사를 쳐다보았다.
고우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일행들은 고우사가 어떤 소원을 말할지 궁금했다.
굳이 돈을 달라고 할 필요는 없고, 장용과 쾌도에게 대한 것이면 어차피 어떤 식으로든 빠져나갈 테니 소용이 없고.
고우사와 함께 노력했던 노인 패거리는 이미 그 둘의 밑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서 딱히 빌고 싶은 소원도 없었다.
고우사는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허윤에게 물었다.
“이봐. 그러고 보니, 방회 이름 아직 안 정했지?”
“그렇소. 이제 정하려고 하오.”
“그럼, 내 소원은 그걸로 하지. 방회 이름을 내가 정하는 걸로.”
“그래 주시면야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만, 노인장께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소?”
한데 일행 중 몇몇이 반대했다.
“에이, 그랬다가 이상한 걸로 지으면 좀…….”
고우사가 말했다.
“구룡회(九龍會)! 어떤가. 이상하지도 않고 제법 괜찮지?”
일행들이 구룡회란 단어를 몇 번 읊조리다가 물었다.
“호오. 이름은 나쁘지 않은데, 구룡이 뭘 말하는 겁니까?”
고우사가 과거를 회상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뒷짐을 졌다.
“나는 사실 어릴 때부터 항상 내가 용이 들어가는 별호를 얻게 될 거라 생각했지. 현실은 그렇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내가 구룡회에서 아홉 마리 용 중의 하나가 되는 거라면, 꿈을 이루게 되는 셈이지.”
쾌도가 물었다.
“그건 좋은데, 그럼 나머지 여덟 명은 누구야?”
“구는 완전한 수이지. 그러니까 구룡은 완전해지는 아홉 마리의 용이라는 거다. 멋지지 않으냐?”
“아니, 사람이 여기 열한 명이고, 꼬마를 빼도 열 명이잖아. 왜 아홉이란 계산이 나왔느냐고.”
고우사가 인상을 썼다.
“알 바냐? 내가 내 소원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너희가 무슨 상관이야?”
“이 영감, 또 생각 없이 그냥 멋있어 보이니까 대충 구룡이라 그랬네.”
고우사가 비웃었다.
“그렇다고 사람 수 맞춰서 팔룡회, 십일룡회 그러면 멋이 나?”
장용이 진지하게 말했다.
“구룡회인데 영감 혼자 용 하면 안 되지. 사람 숫자 맞춰서 그냥 다 넣어. 십일룡회 해.”
“미친놈인가…… 세상에 십일룡회가 어디 있어. 그러다가 나중에 사람 한두 명 더 들어오면? 십이룡회, 십삼룡회 되겠다?”
허윤이 곤란하다는 투로 말을 보탰다.
“그건 안 될 일이오. 이름을 자주 바꾸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앞으로 한두 명만 더 들어오고 끝낼 건 아니잖소.”
“그러니까 그냥 구룡회 해. 깔끔하잖아.”
고우사의 말에 장용이 대꾸했다.
“나중에 들어올 사람까지 한…… 백룡회(百龍會) 정도는 넉넉하게 쟁여 놔.”
“아니, 미친놈아. 이게 뭐라고 쟁여 놔. 그냥 나만 용 하면 된다니까?”
“영감만 용 해? 다 용 하고 싶지. 하여간 자기 좋은 거만 하려고 하고, 순 이기적이야.”
“알았으니까, 미친 새끼야. 이건 내 소원이고, 넌 네 소원이나 말해.”
장용이 결심한 듯 말했다.
“형님, 그럼 저는 대국적으로 백룡회를 소원으로 하겠습니다.”
고우사가 어이없다는 듯 장용을 쳐다보았다.
“야이, 씨. 이십삼룡회 같은 새끼야. 왜 내 소원 위에 네 소원을 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