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참다못한 대홍랍강이 도귀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외까? 수습은 뭐고 식객은 또 뭐요?”
도귀가 대답인지 혼잣말인지 아리송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수습은 반쯤 백룡회 사람이고 식객은 말 그대로 손님 아닌가. 그럼 나도 식객에게 평가받을 걱정은 없겠군.”
“그러니까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묻질 않소. 누가 내게 설명 좀 해 주지 그래.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겐가?”
대홍랍강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부분 대홍랍강의 시선을 회피하는데, 장용과 쾌도만 피하지 않았다.
둘은 오히려 안됐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게 왜 폐관을 했어.”
대홍랍강이 어처구니가 없어 되물었다.
“이놈들아. 무인이 폐관 수련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 그게 왜 탓할 거리가 되는 게냐?”
“수련은 평소에 해야지. 사회생활 안 해 본 티를 내네.”
“응?”
“순진한 영감이야.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가는 세상에, 몇 날 며칠 자리를 비우면서 먹을 게 남아 있길 바라?”
그 말에 다른 이들이 흠칫했다.
그러고 보니 장용과 쾌도는 하다못해 꿩 구워 먹은 것처럼 입을 다물고 있을지언정, 사건 사고가 있는 곳이면 늘 한구석에서 자리를 지켰다.
무서운 놈들…….
자기 먹을 거 누가 챙겨 갈까 봐 그랬던 거구나.
대홍랍강도 사파 쪽에서 오래 구른 노인인데 눈치가 없지 않다.
사실 식객, 수습 운운할 때부터 어느 정도 감을 잡은 상태였다.
“그래서…… 내가 없는 새에 아주 맛난 걸 나눠 먹었다?”
장용과 쾌도가 눈을 치켜떴다.
“말조심해, 영감. 나눠 잡쉈냐고 물어봐야지. 내가 백룡회(白龍會) 백룡각주(百龍閣主)야.”
“큭큭. 이 몸은 수호각주(守護閣主)이시지.”
다른 이들이 또 움찔했다.
벌써 자기들 조직 이름까지 지었어?
특히나 장용이 지은 이름은 원래 백룡회의 한자로 쓰려 했던 일백 백(百)이었다.
하여간 저 둘의 집착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소지광이 인상을 썼다.
“이름을 지어도 하필 헷갈리게 지어. 총관에게 허락은 받았냐?”
“아, 허락받아야 해? 그럼 일단 선점해 둔 셈 쳐.”
대홍랍강이 눈썹을 올리고 물었다.
“총관? 총관은 또 누구야.”
구석에 있던 안소방이 대답했다.
“저…… 접니다.”
“뭐 저런 새파란 애송이가 총관을 해?”
장용이 핀잔을 주었다.
“저렇게 눈치가 없다니까. 식객 관리 누가 해?”
“총관……?”
“그러니까.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잘해.”
대홍랍강의 얼굴이 슬슬 붉어지기 시작했다.
“감히 내게 쫓겨난다, 만다를 운운해? 정녕 죽고 싶으냐?”
원래 폐관 수련 전에도 살기 하나는 제대로 냈던 대홍랍강이다.
그런 그가 슬슬 살기를 피우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하지만 장용은 여전히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사회생활 영원히 안 할 거야? 마음대로 해. 그러다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면 영감만 손해지.”
백룡회는 당금의 강호에서 가장 유명해진 방회 중 하나이며, 회주인 허윤은 점술가다.
만약 대홍랍강이 그런 백룡회에서 쫓겨난다면 모두가 알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그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쓸모가 없어서 그리됐을 거라 생각할 터였다.
하다못해 훗날 언젠가라도 필요하다면 허윤이 굳이 내쫓기까지 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즉, 백룡회에서 방출된 이상 그는 어디에도 쓸모없는 노인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가뜩이나 성향이 사파에 가깝고 나이도 많은데 그렇게 된다면 과연 누가 그를 받아 주겠는가.
“…….”
그제야 다들 장용과 쾌도가 뭘 믿고 수련을 마친 대홍랍강을 막 대했는지 깨달았다.
대홍랍강의 기가 죽었다.
살기도 사라졌다.
장용은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다독이듯 말했다.
“그러니까 영감, 앞으로는 함부로 폐관 같은 거 하지 마.”
백룡회의 모두가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똑똑히 보았다.
그리곤 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 백룡회에서 폐관 수련은 없다.
수련은 평소에 미리미리 해 둬야 밀려나지 않는다.
“야…… 네 생각에도 이거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매일 아침 살을 맞대고 체온으로 교감한 사이잖아.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헌신짝 버리듯 날 팽개쳐?”
대홍랍강이 하소연했다.
“살을 맞댄다니 이상하냐? 어쨌든 이마도 살이잖아. 그리고, 백번 양보해 회주야 그렇다 쳐. 고 형이랑 지광이 동생 봤어? 어떻게 형, 아우까지 하던 사이에 갑자기 이럴 수 있냐.”
번산은 칼을 갈고 있다가 한숨을 쉬며 대홍랍강을 쳐다보았다.
“그걸 왜 제게 와서 말하십니까?”
“너도 뭐 맡은 게 없다며.”
“전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아직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미룬 겁니다.”
“그래서? 식객인 나와는 다르다? 하이구야? 이제 이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까지 날 무시하는 거냐? 응?”
대홍랍강이 이를 갈며 살기를 뿜자 번산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앞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누군가? 누가 겁도 없이 백주에 우리 백룡회원을 건드려?”
도귀가 눈을 부릅뜨고 도경을 쥔 채 대홍랍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홍랍강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며 입을 이죽댔다.
“나이 백씩 먹고 잘하는 짓이외다. 수습 소리나 들으면서.”
“내일모레 나이 팔십인데 아직까지 식객으로 떠도는 처지보다는 낫지 않은가?”
“내가 언제 떠돌았소? 사람 함부로 모함하지 마시구려.”
“모함이든 아니든, 우리 백룡회원에게 손을 대면 나 도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니 조심하시게.”
도귀는 대홍랍강에게는 눈을 부라리고, 번산에게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 두어 달 남았나? 평가 잘 부탁하네.”
서러워진 대홍랍강은 싸울 의지도 사라져서 휘적거리는 걸음걸이로 자리를 옮겼다.
그깟 정규직이 뭐라고.
대홍랍강이 연못에 앉아 침울함을 달래고 있는데, 그의 옆에 누가 술 한 병을 떨구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뒷산의 개…… 아니, 한때 장강용왕으로 불렸던 서덕이가 왼손으로 음식을 안고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서덕이는 대홍랍강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뒤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다시 뒷산으로 올라갔다.
“…….”
뒷산 조용한 곳에서 혈안지와 살인두풍을 연습하고 있던 허윤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마음이 복잡해서 그런지 여전히 혈안지는 잘 안 되었고, 살인두풍의 위력도 사람을 죽이지 않을 정도로 약하게 줄이지 못했다.
“허어. 왜 이렇게 불안할까.”
신기에 가까운 점술을 갖게 되면서 이제는 감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한데 지금 보통 불안한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큰일이 벌어질 듯했다.
“안 되겠다. 뭐든 확인해 봐야 진정이 되겠어.”
그런데 마침 음식을 들고 올라오던 서덕이 허윤을 보더니, 아래쪽으로 눈짓을 했다.
“누가 찾던데.”
“고맙소.”
허윤은 서덕에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 내려갔다.
과연 이진휘가 새하얘진 얼굴로 서신을 들고 허윤을 불렀다.
“회주! 왜 이제 와, 한참 찾았는데! 큰일 났어.”
허윤이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일인데?”
“백도맹에서 중경으로 보냈던 백도지사가 죽었어.”
* * *
산서성 평요로 찾아간 백도지사 침익은 마공을 익힌 것으로 추정되는 자를 쫓고 있었다.
“저쪽이다!”
“놓치지 마라!”
그의 휘하에는 절정 화승의 고수 두 명과 초일류, 일류급의 무인이 다수였다.
그들도 중경 백도지사의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포위망을 좁히며 대상자를 압박해 갔다.
마침내 절벽을 뒤에 두고 대상을 몰아넣는 데에 성공했다.
대상은 거의 주저앉듯 덜덜 떨면서 자신을 포위한 십여 명의 무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백도지사 침익은 그것을 보고 황망함을 금치 못했다.
“젊은 여자?”
쫓느라 정신이 없어 자세히 살피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대상자는 이십 대 가량의 여인이었다.
여인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떨면서 애원했다.
“사, 살려 주세요. 왜 이러시는 거예요?”
그러나 침익은 방심하지 않았다.
부하 중 한 명이 이미 추격 중에 죽었고, 여인은 피가 묻은 검을 쥐고 있었다.
침익이 일갈했다.
“마공을 어떻게 얻었느냐. 솔직히 대답한다면 고통을 가하지는 않겠다.”
“모릅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냥…… 뒷골목에서 웃음이나 팔던 가련한 인생일 뿐이옵니다.”
침익이 뒤쪽으로 눈짓을 했다.
부하들이 앞으로 나아갔다.
무장을 해제시키고 점혈을 해서 무력화시키려는 생각이었다.
여인이 부들거리면서 검을 들었다.
“가, 가까이 오지 마세요. 다, 다가오면…….”
검 끝이 심하게 떨렸다.
부하들이 천천히 여인에게 다가섰다.
그때, 침익은 불현듯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멈춰! 아래다!”
순간, 혈광 한 줄기가 사선으로 뻗었다.
“앗!”
가장 앞에 있던 절정 화승의 고수는 침익의 말에 급히 땅에 칼을 박아 넣었다.
째앵!
칼이 심하게 흔들렸다.
하마터면 손잡이를 놓칠 뻔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기습적이었으나 공격을 막아 냈다!
하나 그 옆쪽은 아니었다.
일류급 무인은 위로 도를 치켜들고 있었는데, 몸뚱이가 위아래로 분리되었다.
“어어…….”
풀썩.
바로 한 걸음 뒤에 있던 초일류급은 아슬아슬하게 피했으나 검기를 막고는 충격으로 손아귀가 찢어졌다.
“분명히 검기가 위, 위로 왔는데…….”
방금까지 떨던 여인이 거짓말처럼 떨림을 멈추고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실망한 듯 말을 내뱉었다.
“다가오면 죽이려고 했는데 왜 멈춰. 한 놈밖에 못 죽였잖아.”
“간악한 것.”
침익이 직접 나섰다.
그가 짧은 단봉을 들고 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여인의 목과 팔에 핏줄이 돋고 눈이 벌게졌다.
팽창이 극심했는지 순식간에 실핏줄이 터져 피가 새어 나왔다.
“죽어!”
혈광이 번쩍였다.
검기가 침익의 관자놀이로 날아들었다.
“엇!”
침익의 표정이 굳었다.
검기가 머리가 아닌 옆구리 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걸 알았는데도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아 반응이 둔해졌다.
둔해진 게 찰나라고 해도, 이 조금의 시간에 목숨을 잃느냐 마느냐가 걸려 있다.
“지사님!”
다른 절정의 고수가 여인에게 자신의 칼을 던졌다.
여인이 고개를 틀어 피한다고 피했는데 뺨이 베였다.
덕분에 잠깐의 시간을 얻은 침익은 내공을 크게 일으켜 안전하게 속박에서 벗어났다.
여인이 거푸 검을 휘둘렀다.
“죽어, 죽어, 죽어!”
계속해서 같은 초식이었는데, 눈으로 보이는 검기와 실제 검의 궤적이 기이하게 어긋나 있었다.
그림자가 다르다.
깡! 깡깡!
연신 불꽃이 튀었다.
쨍!
단봉에 계속해서 막힌 여인의 검이 마침내 깨져 나갔다.
여인이 피를 토하면서도 침익을 향해 달려들었다.
방심하면 다시 몸이 속박당한다.
사정을 봐주고 점혈을 하고 그럴 때가 아니었다.
침익은 절기를 펼쳐 여인을 단숨에 공격했다.
공세에 비해 수비 능력은 형편없었다.
여인은 순식간에 머리가 박살이 나 죽었다.
침익은 방금 자신이 중경 백도지사처럼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했다.
“이것이 마기인가……!”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기가 막혔다.
“그런데 백룡회주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가서 이런 자를 죽이고 멀쩡히 돌아왔다니. ……대체 그는 어떤 사람인 거냐.”
* * *
백도지사 셋이 나섰는데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부하를 잃었다.
다른 한 명은 대상자를 찾는 데 실패했다.
어떻게 죽었든, 백도맹에서 가장 무력이 강한 백도지사의 사망 소식은 파장이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일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백도사문에서 불가해한 종류로 구분했던 사건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난 것이다.
마공을 익힌 자가 그만큼 나오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나 마공을 사용하는 게 삼류 사파인들이었기 때문에 유독 중소 상인들과 소형 문파에 피해가 집중됐다.
백도맹에서 대응을 하려 해도 백도지사의 수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때, 예전 산서성의 회주로 있던 진경립의 처남이 추천했다.
“허 선생은 사파가 서안으로 들어오는 걸 모조리 막은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 맡긴다면 마공을 쓰는 자들을 쉽게 찾아내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백도사문에서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미 우리도 그에게 일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소. 백룡회는 백도맹에 속한 방회니까 당연히 맡아야 하고.”
“그런데요?”
“백룡회주가 거절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