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백룡회는 난리가 났다.
“아니, 회주.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백도맹에서 계속 서신 보내고, 사람 보내고 난리가 났잖아.”
허윤은 회원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짐을 싸고 있었다.
“미안하게 됐소.”
고우사가 허윤을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봤다.
“미안할 게 아니라 설명을 해야지. 여기 지진 나? 다 죽어? 그래서 혼자 내빼는 거야?”
“지진도 안 나고 죽지도 않을 테니 걱정 마시오.”
그의 앞을 소지광이 막고 손을 내밀었다.
“내놔 봐.”
“뭘 말이오?”
“점괘. 대체 무슨 점괘가 나와서 이러는지 우리도 좀 알자.”
“점을 치긴 했으나, 그것 때문에 가는 건 아니오.”
도귀까지 끼어들었다.
“회주, 지금 많이 이상한 거 아나? 평소답지 않군.”
귀령초 밭이 생긴 이후로 백룡회 일에 무심했던 약왕조차 걱정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우리에게까지 아무 말을 해 주지 않으면 어쩌는가.”
“어쩔 수 없으니 양해해 주십시오.”
“혹시 천기누설이라도 될까 봐 그런가?”
“비슷합니다.”
대홍랍강도 불평했다.
“그렇더라도 대략적이나마 언질은 주어야지. 갑자기 이게 뭔가.”
허윤은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한 후, 이진휘에게 방향과 일부 지명을 표시한 대나무 살 여러 개를 주었다.
“자. 백도맹에 이걸 전해 주게. 대종사…… 와 관련이 있으면서, 마공을 익힌 자가 있을 만한 방향은 다 찾아 뒀어. 우리 장원이 기준이니까 괜히 잘못 찾는 일이 없게 잘 전달해야 하네.”
“아니, 회주가 가면 한 방에 찾을 건데 일을 왜 복잡하게 해. 방향하고 지명을 알아도 구체적으로 찾으려면 한참 걸릴 거 아냐.”
“급한 일이 있어 그러니 더 묻지 말게. 여러분에게도 미안하오. 금세 돌아올 터이나,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이후 백룡회는 총관이 맡아 주고.”
그 말에 회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스윽.
고우사가 정문까지 가는 길을 막아섰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하나둘 고우사를 따라 허윤을 막았다.
“어허, 뭐 하시는 거요.”
“돌아오질 못해? 그렇게 위험한 일에 회주를 어떻게 보내냐. 네가 없으면, 여기가 돌아가긴 할 것 같아?”
다른 이들도 동조했다.
“맞아. 백룡회가 생긴 지 얼마나 됐다고 회주가 없어져. 그럼 백룡회도 없어지는 거지.”
고우사가 전에 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백룡회의 직위인지 뭔지 하나 얻으려고 우리가 진짜 개고생을 했어. 그런데 네가 뭐라고 그걸 다 무시해?”
“무시하는 게 아니오. 사정이 있으니 비켜 주시오.”
“안 되겠다면?”
“여러분들이 막는다고 내가 지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이렇게 하자. 네가 저 문으로 말짱히 나가거든 네 마음대로 해. 하지만 거기까지 가면서 우리 손에 한 번이라도 잡히면, 무슨 일인지 말해 주고 우리 의견에 따라.”
허윤이 입술을 꾹 물었다가 대답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다면, 좋소. 내 옷깃이라도 잡히면 포기하겠소.”
소지광이 회원들에게 경고했다.
“전에 회주를 한번 잡아 보려 한 적이 있는데, 손끝도 못 댔소이다. 긴장들 하십시다.”
“이번에도 그럴 거요. 여러분들은 날 막을 수 없소.”
그때 돌연 도귀가 회원들의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하지만 나 도귀가 여기에 있다면 어떨까.”
고우사가 힐끗 보곤 피식 웃었다.
“거, 회주에게 대들었다가 잘릴까 봐 걱정되지는 않으시나?”
“껄껄껄. 백룡회는 다들 같은 권리를 가졌다지 않았나.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좋은 평가를 해 준다면 회주가 어찌 자를까.”
“그 말도 일리가 있네.”
다들 내공까지 끌어 올리고 손을 움켜쥐는 모양으로 들어 올렸다.
소지광은 곰방대도 내던졌다.
고우사가 허윤을 먹잇감처럼 노려보았다.
“자, 백룡회 대 백룡회주의 대결이다. 백룡회를 걸고 한판 해보자고.”
그가 지켜보기만 하는 장용과 쾌도에게도 손짓했다.
“너희는 백룡회 아냐? 빨리 와.”
“우리?”
그때까지 구석에서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던 장용과 쾌도가 구시렁거리며 회원들 쪽으로 갔다.
“나, 나도 백룡횝니다!”
심지어 이진휘와 낙락까지도 합세했다.
이제 허윤을 제외한 백룡회 전원이 그의 앞을 막고 있는 셈이 되었다.
그러자 허윤도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강호에서 이만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면 사람이 아니라 이쑤시개라고 해도 지나갈 수 없을 것이다.
약왕이 자신들을 슥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리 회주라도 이건 불가능하겠는데?”
그의 말대로, 도무지 틈이 없었다.
심상으로 이리저리 피해서 움직여 보지만, 결국은 누군가에게 걸렸다.
수백 번 심상을 돌려도 완벽한 기회는 찾아낼 수가 없었다.
거의 향 한 대를 피우는 시간 동안 숙고한 허윤이 심호흡을 했다.
더 이상은 시간을 끌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까지 본 미래가 또 변하고 만다.
‘아예 잡히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마침내 허윤이 한 발을 내디뎠다.
“온다!”
번산이 껴안을 듯 달려들었다.
“못 갑니다!”
순간 번산의 시야에서 허윤이 사라졌다.
신리팔괘보!
그런데 허윤이 피한 곳에 안소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극 방향으로 오실 줄 알았습니다. 그거 가르쳐 준 게 납니다!”
와락!
안소방이 허윤을 덮쳤다.
그러나 허윤은 피하긴커녕 그를 어깨로 들이받았다.
“어어!”
쿠당탕!
안소방은 헛손질을 하며 그대로 나뒹굴었다.
설마 허윤이 피하는 대신 치고 지나갈 줄이야!
고우사가 소리쳤다.
“조심해, 회주가 사람 팬다!”
약왕이 길을 막고 손을 뻗었다.
“담대하게 허를 찔렀군. 하나 내게는 통하지 않을 걸세. 나도 금나수는 좀 한다네.”
그의 손이 천변만화를 일으켰다.
허윤의 전면이 약왕의 손으로 뒤덮였다.
허윤이 기다렸다는 듯 그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헉!
순간 약왕의 몸이 굳었다.
그간 허윤에게 당해 처참하게 훼손된 시신들을 숱하게 봐 온 약왕이었다.
허윤의 정수리를 본 순간, 자신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틈에 허윤은 약왕을 지나쳤다.
“아이고! 대놓고 들이미는데 그걸 냅둬? 머리카락을 확 잡아챘어야지!”
약왕도 답답했다.
“당해 보시오! 그게 되나.”
이어 소지광이 몸을 날려서 허윤의 다리를 걸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진휘가 허윤을 잡으려 달려들었다가 소지광의 위로 넘어졌다.
꽈당!
“으아악! 죄, 죄송합니다!”
소지광은 황망했으나 이진휘를 탓할 수 없었다.
그 절묘한 방해의 순간은 허윤이 일부러 만들어 낸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허윤은 눈만 말똥거리는 장용도 지나쳐 갔다.
그러나 곧바로 등 뒤에 쾌도가 따라붙었다.
“형님, 큭큭큭.”
한데 허윤은 이미 확 뒤로 돌아서서 쾌도를 보는 중이었다.
쾌도가 깜짝 놀라 피하려다가 장용과 부딪치고, 재차 달려온 약왕까지도 방해했다.
약왕이 화를 냈다.
“뭐 하나!”
“남자답게 뒤를 노렸는데 형님이 쳐다보시잖아. 앞에서 형님을 어떻게 쳐.”
“뒤에선 쳐도 되나!”
그때, 낙락이 쾌도와 약왕의 어깨를 밟고 쏜살같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허윤보다 속도가 빨라서 금세 봇짐을 움켜쥘 수 있을 듯 보였다.
그 순간 허윤이 옆으로 뭔가를 버리듯 내던졌다.
휘익!
낙락은 거의 허윤을 잡기 직전이었는데, 갑자기 허공에서 직각으로 꺾어 허윤이 던진 당과를 쫓아갔다.
고우사가 소리를 질렀다.
“개냐!”
낙락이 움찔하며 멋쩍은 얼굴로 당과를 물었다.
결국 고우사와 도귀가 허윤의 앞을 막았다.
“망할. 수습 양반, 자신은 있겠지?”
“껄껄껄. 나 도귈세. 전성기 때 말이야, 내 도를 누구도 피할 수 없던 이유가 바로 신법 때문이라네.”
고우사와 도귀는 잠깐 시선을 마주쳤다가 양옆으로 갈라져 쏜살같이 허윤에게 접근했다.
휘이이익!
엇갈려 지나가면서 한순간에 잡아챌 생각이다.
이러면 만약 둘이 실패해서 지나치더라도 여전히 앞뒤로 포위하고 있는 셈이 되어, 계속 상황을 유지할 수 있다.
거짓말처럼 고우사와 도귀의 손이 허윤을 스쳐 갔다.
허윤의 움직임이 너무 절묘해서, 둘이 일부러 손을 미끄러뜨리는 것으로까지 보였다.
고우사와 도귀가 엇갈려서 지나쳐 가며 어이가 없어 웃었다.
한 번에 성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생각했으나, 건드리지도 못할 줄이야.
“다시!”
파앙!
힘껏 찬 바닥에서 흙먼지가 터져 나갔다.
둘은 방향을 반대로 전환하여 재차 쇄도했다.
하나 둘의 손은 또다시 허공을 움켜쥐었을 뿐이었다.
몇 번이나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두 사람은 자존심이 상했다.
“에라이! 맞아 죽을 거면 죽어라, 나도 모르겠다!”
고우사가 전력을 다해 구궁장법을 펼쳤다.
그간 놀고만 있지는 않았는지 내공이 깊어져서 뿌연 손이 더욱 진해졌다.
“허허! 나 도귀의 손을 사 합이나 피한 건 회주가 처음일세. 하나……!”
도귀가 도경을 쥐고 허윤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것도 이제 끝이야.”
부드러운 미소는 어느새 사라지고, 악귀처럼 눈을 치켜뜬 무서운 얼굴이었다.
허윤의 눈에 긴장감이 흘렀다.
절정 고수가 전력을 다해 뻗어 낸 장법과 절대로 빗나가는 일이 없다던 앙연의 고수가 펼친 합공이다.
세상의 누구라도 이것은 피할 수 없다.
허윤은 둘이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지금이다!’
허윤의 정수리에서 빛이 나며, 파문이 퍼져 나갔다.
고우사와 도귀가 공격에 담은 내공이 파문에 쓸려 일순간 사라졌다.
둘은 경악했다.
그러나 나이는 헛먹은 게 아니라는 듯, 금세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었다.
허윤은 전력을 다해 바닥을 굴렀다.
머리 위로 내공을 담지 않은 고우사와 도귀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갔다.
“아차!”
고우사와 도귀는 내공을 잃은 탓에, 서로 엇갈려 가며 계속 만들어야 할 포위 대형을 이어 가지 못하고 멈춰 버리고 말았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모두의 한숨이 터졌다.
아아! 이대로 놓치는 건가!
이만한 고수들로도 회주를 막지 못하는 건가!
데굴데굴!
바닥을 굴러 두 사람을 지나친 허윤이 무릎을 꿇고 막 일어나려 했다.
코앞이 문이다.
하나 일어서면 그 앞에…….
대홍랍강이 있다.
다소 침울한 표정의 대홍랍강이 허윤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만 툭 올리면 되는 지척이다.
허윤은 내공도 없이 무릎을 꿇고 있어서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반드시 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허윤을 놓치고선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던 고우사가 활짝 웃었다.
“그래! 잘했다, 대강아! 잡아!”
그제야 다들 환호했다.
“손만 얹으면 됩니다!”
“뭐 하십니까! 어서 잡으십쇼!”
하지만 대홍랍강은 아무 대답 없이 그저 빤히 허윤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허윤은 아주 조심스럽게, 거북이보다 더 느릿하게 일어섰다.
두 사람은 거의 팔이 맞닿을 정도로 붙어 있었다.
허윤이 귀엣말처럼 조그맣게 말했다.
“중용하겠소.”
대홍랍강의 입이 움찔 움직였다.
마치 미소를 짓는 듯했다.
허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대홍랍강을 지나쳐 문을 나갔다.
“……?”
“뭐야.”
이를 지켜보던 모두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대강아, 뭐 하냐?”
“어르신, 뭐 하십니까?”
대홍랍강이 흐흐흐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뭐 하냐니. 나 백룡회 사람 아니잖아. 식객이야, 식객.”
다들 어이가 없어 했지만, 대홍랍강에게 한 행동이 있어서 차마 더 따질 수도 없었다.
“젠장!”
고우사가 성질을 내며 애먼 바닥을 찼다.
약왕도 허탈해했다.
“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군.”
그때 장용이 뒤에서 말했다.
“우린 아는데.”
뭐?
회원들이 깜짝 놀라서 장용과 쾌도를 쳐다보았다.
‘우리’라고 했으니 당연히 쾌도도 안다는 뜻이다.
쾌도가 말했다.
“서신 보고 나갔어.”
“서신?”
이진휘가 둘을 탓했다.
“왜 아까 얘기를 안 했습니까?”
“말하지 말라 그래서 안 했지.”
“누가요.”
“형님이.”
다들 진지한 표정으로 모여들었다.
아무래도 둘이 진짜 뭔가 알긴 아는 것 같았다.
고우사가 재촉했다.
“자세히 좀 얘기해 봐.”
대홍랍강도 슬쩍 끼어 귀를 기울였다.
장용이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아침에 수상한 놈이 진법 앞에서 기웃거리기에 쫓아갔더니 서신을 흘리고 도망가더라고.”
“그래서?”
“형님 가져다 드렸지.”
“내용은? 너희도 봤어?”
“형님이 펼쳐 놓으신 걸 쾌도와 함께 봤지. 그런데 갑자기 우리에게 아무 말 하지 말라 그러면서 짐을 싸시데.”
회원들은 조바심이 나서 재촉했다.
“무슨 내용이었어. 봤으면 알 거 아냐.”
장용은 눈만 말똥거렸고, 쾌도는 웃었다.
“큭큭큭.”
“왜 말은 안 하고 웃어. 답답해 죽겠네.”
“우리가 형님하고 어떻게 만났는지 알아?”
소지광이 ‘아!’ 하면서 이마를 쳤다.
“이놈들, 까막눈이야. 글자를 봐도 몰라.”
“아오오오!”
다들 괴성을 지르는 와중에 고우사가 팔짱을 끼고 가만히 생각하더니, 나뭇가지를 주워 와 부러뜨렸다.
그것을 장용과 쾌도에게 한 개씩 주고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곤 바닥을 톡톡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그려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