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256
256화
도진은 머리가 새하얘졌다.
저 사람은 누구지?
왜 날 알고 있지?
이제 뭘 해야 하지?
당황하면서 도사 노인을 보다가 문득 떠올랐다.
세 번째 글자 복(卜)!
도사를 뜻하는 글자였구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저런 도사를 본 기억이 없었다.
광한성모가 도진에게 말했다.
“실력이 대단하다지? 어디 한번 보자꾸나.”
“…….”
도진은 대답을 못 하고 망설였다.
“왜, 싫으냐?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귀찮은 게 붙어서 더는 못 기다리겠구나.”
광한성모가 손을 들어 제자들에게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한 중년의 무인이 나섰다.
“거기 여협은 잠시 기다려 보시오. 나는 초산도라는 사람인데, 어떤 사정인지 모르나 여럿이서 한 명을 핍박하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
원래 무림인들은 오지랖이 넓은 편이다.
하여 누군가 중재하면 상대의 체면을 생각해 손쓰기를 멈추고, 당위성을 설명한다.
그러다가 서로 친분도 쌓고 하는 게 흔한 정파의 문제 해결 방식이다.
그러나 중년의 무인은 친분은커녕 말을 채 끝내지도 못했다.
광한성모는 그저 파리라도 쫓듯 소맷자락을 휘저었을 뿐인데, 그의 목이 한 바퀴를 돈 것이다.
우드득.
그가 혀를 빼어 물고 죽자, 사방이 난리가 났다.
“꺄아아악!”
그리고 현상금을 노리고 황주부로 들어온 무인들은 한둘이 아니다.
그들이 분개하며 뛰어들었다.
“손속이 너무 악독하구나!”
“네놈들은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이화궁 제자들이 다짜고짜 그들에게 달라붙었다.
그러나 무인들도 나름 실력에 자신이 있어 황주부로 들어온 이들이었다.
하여 바로 무기를 뽑아 대응했다.
가장 앞에 있던 이가 먼저 이화궁 여제자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녀가 맨손으로 맞잡았다.
쨍!
칼이 부러졌다.
“어?”
푸욱.
그 손이 그대로 무인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심지어 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몇 번이나 손을 빼냈다가 다시 찔렀다.
푹. 푹푹.
무인의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꺽…… 끄윽…… 끅끅.”
분명 뼈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의 몸인데 부드러운 반죽을 찌르는 것처럼 걸리는 게 없었다.
순식간에 몸 곳곳에 구멍이 났다.
무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치켜뜨고 쓰러져 죽었다.
긴 소매와 팔이 온통 피에 절은 이화궁 여제자가 미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에이, 옷 갈아입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다른 무인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일 합, 이 합을 채 버티지 못하고 몸이 꿰뚫렸다.
이런 잔인한 수법은 정파에서도, 사파에서도 거의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놈들, 마도다! 마도야!”
도진은 이를 악물었다.
야율황은 도진에게 막대한 내공을 주었으나 외가 공부는 일절 알려 주지 않았다.
하여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도진은 혼란스러운 틈을 타 내공을 끌어 올리고 힘껏 땅을 박찼다.
펑!
경신법도 무엇도 아니었지만, 내공이 워낙 많아서 그 힘만으로도 단숨에 건물 지붕 위로 뛰어오를 수 있었다.
그리곤 지붕을 다시 힘껏 차 다른 집의 지붕 위로 건넜다.
“어어? 달아난다!”
이화궁 제자 중 한 명이 그걸 발견하고 근처에 있던 사람 하나를 잡더니, 도진을 향해 힘껏 던졌다.
“으아아악!”
그가 비명을 질렀다.
도진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쿠아앙!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가 기와를 뚫고 틀어박혔다.
그게 재밌었던 건지, 재미있어 보였는지 이내 다른 제자들도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으아악!”
“살려 줘!”
콰앙! 쾅!
지붕 위를 달리는 도진의 앞쪽으로 투석기처럼 사람들이 꽂혔다.
기왓장이 부서져 사방으로 날리고, 뼈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도진으로서는 그저 전력을 다해 달릴 수밖에.
막 지붕 위를 건너뛰던 그가 시선을 아주 잠깐 옆으로 돌렸다.
시장 건너 언덕, 동파구가 보였다.
사부가 있는 곳이 바로 저 앞인데…….
한순간, 단 한 번만이라도 사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러나 지금 이대로 저곳까지 갈 수는 없다.
도진은 눈을 질끈 감고 계속해서 뛰었다.
그 뒤를 이화궁의 제자들이 쫓아왔다.
아수라장이 된 길 한복판에서 도진이 달아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광한성모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저자가 백룡회주라는 허 선생이 맞느냐? 내공의 기파를 억누른 듯하나, 미세하게 정파의 것이 아닌 다른 기운이 느껴졌느니라.”
온안도인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눈앞에서 펼쳐지는 지옥도에 혼비백산할 지경이었으나, 여기까지 온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 그렇다면 더더욱 확실합니다. 그자는 좌도방문의 수법으로 사마외도의 기운을 다루는 잡니다. 그러면서 실체를 숨기고 사람들을…….”
좌도방문, 사마외도.
그 두 마디에 광한성모가 온안도인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면사 때문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자신에게 꽂히는 눈길에 온안도인은 온몸이 쭈그러드는 듯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구나. 이곳에서 꼼짝 말고 있어라.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발가락을 모조리 뽑겠다.”
“네? 네, 네……!”
휙!
곧 한 줄기 바람처럼 지붕에 오른 광한성모도 도진을 쫓기 시작했다.
온안도인은 눈을 굴렸다.
주변이 온통 시체들로 가득했다.
이화궁 제자들 일부가 아직 남아 무인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달아나고 싶었으나 그러면 발가락을 뽑는다고 해서 그럴 수도 없었다.
“끄아악!”
“으아아!”
온안도인은 처절한 비명을 애써 외면하며 도포로 머리를 감싸고 자리에 웅크렸다.
덜덜덜.
“내, 내 잘못이 아니야. 이게 다…… 허, 허 선생 때문이야.”
무섭고 두려웠지만, 그래도 하나 위안이라면 허윤이 곧 저 괴물 같은 마인들에게 죽을 거라는 점이었다.
그러면 매일 밤 반복되는 자신의 끔찍한 악몽도 끝이다.
“그러니까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게 수모를 주지 말았어야지……. 정통을 무시하고 사람들을 현혹한 벌이다……. 너 같은 놈은 죽어 마땅해…….”
조금만, 조금만 더 참으면…….
온안도인은 눈을 질끈 감고 귀를 틀어막은 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 * *
허윤은 동파구에 있는 소동파의 사당 근처에 도착했다.
이곳에 올 때까지 아무 시비도 겪지 않았다.
허윤의 점술 실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소인들의 득세도 그에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듯했다.
“후.”
사당이 보이는 다관의 앞에서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졌다.
“여기구나…….”
허윤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모래가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한 식경이니까, 다음번은 정오쯤 될 듯했다.
아침부터 시작해 모래시계를 뒤집은 횟수가 이번으로 열다섯 번째.
이제 이 모래가 다 떨어지기 전에 도진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허윤은 도진에게 주려고 산 당과 꾸러미와 모래시계를 조심스럽게 탁자에 올려놓고, 차를 주문했다.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여전히 결정하지 못했다.
문득 할 말이 없으면 웃으라던 중년인의 말이 떠올라서 히죽 웃어 보았다.
히죽, 히죽.
“아무래도 뭔가 어색한데…….”
허윤은 다관의 여주인에게 동경을 부탁했다.
“여깄어요.”
“아, 고맙소.”
“피부도 뽀얗고 하얘서 그리 이쁜데, 웃는 건 왜 그 모양이래요. 남의 얼굴 가죽이라도 뒤집어쓰셨수?”
허윤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웃음 한 번에 이십 년을 퉁 치려고 하니 잘 안 되어 그렇소.”
“욕심이 많으시네.”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외다. 그런데 좀 가 주시면 안 되겠소? 남이 보니까 더 안 되는 거 같소이다.”
여주인은 알겠다며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먼발치에서 계속 지켜보았다.
“아유! 억지로 웃으려고만 말고 뭐 즐거운 일이라도 생각해 보든가요. 내가 다 어색해 죽겠네.”
“사람 맘이 어디 그리 말처럼 쉽소? 당장 걱정스러우니 그렇지.”
사르르…….
그러는 와중에도 모래시계의 모래알은 쉼 없이 흘러내리고, 허윤은 입이 아프도록 연신 미소를 짓는 연습을 했다.
* * *
도진은 쉼 없이 쫓겼다.
이화궁 제자들의 경공이 도진보다 빨라서 위험스러운 상황이 수차례나 반복됐다.
펑! 퍼엉!
땅으로 내려가 기척을 죽이고 담 뒤에 숨었는데 담벼락을 박살 내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기도 했고, 내공을 담아 발로 차고 던진 기왓장에 맞아 멍이 들기도 했다.
무엇이든 꿰뚫는 손끝이 아슬아슬하게 몸을 스쳐 간 것도 여러 번이었다.
“헉, 헉, 헉.”
내공 때문에 체력적으로는 지치지 않았으나, 다급함에 호흡이 달렸다.
한데 이화궁 제자들이 워낙 요란스럽게 따라오는 바람에 현상금을 노리고 황주부를 찾은 무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곳곳의 객잔과 다관에서 무인들이 튀어나왔다.
“뭐야!”
“수상한 자들이다!”
이화궁 제자들은 앞을 막으면 누구든 가릴 것 없이 손을 썼다.
“으아악!”
“마도 놈들이다!”
비명과 외침이 퍼지면서 더 많은 무인들이 몰려들었다.
아직 남아 있던 몇몇 제갈가 무사들도 합류했다.
다행이라면 그 덕분에 이화궁 제자들과의 거리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만약 도진의 정체가 드러나면 그 정파인들이 모조리 적으로 돌아설 테니 그때는 불행이 될 것이다.
그 때문에 도진은 내공을 최소한으로 이용하고 최대한 마기를 억눌렀다.
그리고 틈이 벌어진 찰나, 뒷골목으로 들어가 처마의 그림자 사이에 몸을 숨겼다.
휴우.
이대로 기척을 억누르고 이화궁 제자들이 지나가길 기다려야 했다.
만약 운 좋게 빨리 저들을 떨쳐 낼 수 있다면 동파구까지 어떻게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 그러지 못한다면…… 혹은 성공할지언정 조금이라도 늦어진다면, 가지 못한다.
가더라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사실은 지금도 아주 고민스러웠다.
과연 사부를 보러 가는 게 정말 옳은 일일까?
혹시 사부를 이 일에 휘말리게 하는 건 아닐까?
아니, 도리어 이쪽으로 오지 말라고 경고를 해 드려야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어떻게?
문득.
갑자기 어두워진 것 같았다.
하여 도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것처럼 누군가가 옷자락을 휘날리며 지붕 위를 뛰어넘는 중이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 와중에 도진을 보고 있던 것이다.
광한성모가 눈웃음을 쳤다.
아!
순간 그녀는 공중에서 그대로 뚝 떨어졌다.
도진은 황급히 바닥을 굴러 피했다.
쿠우우웅!
데굴데굴 구르면서 튕기듯 몸을 일으켰는데, 등이 딱딱한 벽이 아닌 푹신한 옷자락에 부딪혔다.
킥! 킥킥!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들려왔다.
도진은 전력을 다해 내공으로 몸을 보호했다.
뻐― 억!
광한성모의 일 장이 도진을 강타했다.
도진은 화살처럼 날아가 담벼락에 처박혔다.
와르르르.
자갈과 짚을 섞은 흙벽이 그대로 무너졌다.
“쿨럭쿨럭!”
도진이 흙먼지 속에서 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쓰러졌다.
온몸의 뼈가 부서진 것처럼 아팠다.
도진은 알지 못했으나, 방금 광한성모의 공격엔 오 성의 힘도 채 실리지 않았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도진을 쏘아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어쩐지 뭔가 마음에 걸리더라니. 네놈도 대종사의 은총을 받았구나. 그것도 꽤 많이. 도대체 대종사는 어디까지 퍼뜨린 거냐.”
내공의 반탄력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건 확실히 천마신공의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지. 늙다리 도사 덕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고귀한 피를 만나게 되었구나. 고맙게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피를 모조리 짜내어 주마.”
도진은 기를 쓰고 일어나려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아니, 이제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남십자성 이화궁주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광한성모가 순식간에 도진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의 몸에서 살기가 저릿하게 퍼져 나왔다.
“하나 여전히 이상해. 고작 이런 놈에게 어떻게 백면신이 당했지?”
백면신?
그 말에 도진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다.
그렇다고 제가 그들이 찾는 사람이 아니라 사실은 흑룡이라는 걸 밝혀 봐야 마찬가지다.
피가 짜내어지는 결과는 똑같다.
어쩌면 더 비참하게 죽을지도 모른다.
하여 도진이 망설이는 사이, 광한성모가 양손을 들어 올렸다.
휘리릭.
옷자락이 도진의 목에 감겼다.
“안심해라. 아까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테니까.”
“자, 잠깐! 큭……!”
광한성모가 탐욕스러운 눈으로 도진을 훑었다.
“시시하도다.”
옷자락이 도진의 목을 조르며 돌아갔다.
도진은 옷자락을 잡고 버텼다.
몸이 바들바들 떨리도록 힘을 쓰고 있었으나, 조금씩 목이 돌아갔다.
으득, 뿌득.
곧 대량의 천마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기쁨에 찬 광한성모의 살기가 극에 달했다.
“너를 죽이고 백룡회를 찾아가 네놈의 빈 껍질을 던져 주어야겠구나! 그리고 모조리 죽여 백면신의 원혼을 위로하리라. 죽어라, 백룡회주!”
순간.
뻐― 어억―!
모든 세상이 한 점에 몰렸다가 터져 나갔다.
콰아앙!
광한성모가 서 있던 바닥이 충격으로 눌리면서 흙더미가 폭발했다.
어찌나 위력이 강했는지, 비산하는 흙조차 따가울 지경이었다.
도진의 목을 죄고 있던 옷자락도 찢어졌다.
도진은 뒤로 나뒹굴고, 광한성모는 바닥에 납작 짓눌렸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도진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있는데, 흰 수염이 난 신선풍의 노인이 도경을 거꾸로 쥔 채 광한성모의 머리를 밟고 악귀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누구냐. 나 도귀가 있는데 누가 감히 백룡회주를 죽인다고 엄포를 놓느냐.”
도귀는 도진을 돌아보았다.
그러곤 부드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물었다.
“회주, 괜찮…….”
“…….”
“……?”
도귀는 도진과 발아래에 있는 광한성모와 도진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이상한 듯, 도진에게 조심히 물었다.
“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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