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조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우 씨, 우리 조장 진짜 완전히 맛 갔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그런데 그 순간.
“실례하겠습니다.”
돌연 머리 위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조원들이 화들짝 놀라 위를 쳐다보았다.
몇 장이나 되는 높은 나무 위의 가지에 누군가가 서서 아래를 보고 있었다.
“어어어?”
마도인으로 보이진 않았다. 이십 대 후반, 혹은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는데, 단정한 차림새에 눈에도 정기가 흘렀다.
이런 경우에는 조장이 나서면 좋은데, 상태가 영 시원찮았다.
소지광이 허윤을 째려보고는 위로 포권해 보였다.
“우리는 백도맹 오주 지회의 사람들이오! 귀하는 어디의 누구시오?”
청년 무인이 가지 위에 꼿꼿이 서서 포권했다.
“본인은 공동파(崆峒派)의 제자로, 무림맹에서 온 염초라 합니다.”
팔 조 조원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우와…….”
“공동파의 고수.”
공동파라면 강호에 존재하는 수만의 무림 문파 중에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유명한 문파였다.
무림에서 유명하다는 건 곧 수준이 높다는 뜻이다. 강력한 무공과 독보적인 내공심법, 오랜 세월 쌓아 온 효율적인 수련법이 제자들의 수준을 일반 문파와 비교도 할 수 없이 높게 만들었다.
하여 십대문파의 제자들은 대개 일류고수에 버금가는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화산파(華山派)는 제자들이 일정한 수준에 오르지 않으면 절대로 하산을 시키지 않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공동파라는 문파의 제자이고 동시에 무림맹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실력은 입증되고도 남는다.
소지광이 물었다.
“왜 무림맹 사람들이 거기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소이까? 보았으면 아는 척을 할 것이지.”
“우리의 임무상 행동을 드러내기가 조심스러웠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한참 전부터 형제들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어 접촉하기 어려웠습니다.”
소지광이 ‘흠’ 하고 말했다.
“이유가 궁색하군. 보다시피 우리는 팔에 백도맹의 표식을 하고 있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표식만으로는…….”
염초가 말을 잇는 대신, 조용히 소지광의 뒤를 쳐다보았다.
소지광이 염초의 눈길을 따라가 보니 그 끝에 장용과 쾌도가 있었다.
소지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아, 뭐.”
“영감 우리한테 할 말 있어?”
장용과 쾌도가 띠꺼운 투로 대꾸했다.
소지광이 입술을 비틀었다.
“저 산적 같은 새끼들, 하여간 도움이 안 되네.”
“아, 왜 갑자기 시빈데!”
“영감, 죽고 싶어?”
소지광이 입맛을 다시며 염초에게 말했다.
“뭐. 백도맹의 표식을 하고 있어도 저놈들을 보면 나 같아도 의심스럽긴 하겠구먼. 한데 왜 여기를 지나던 것이오. 혹시나 마도와 관련된 거요?”
“저희 역시 최근에 천문장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가 있어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러 온 것입니다.”
소지광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확인하면 되지, 왜 굳이 우리 앞에 나타났소?”
염초가 힘주어 포권했다.
“백도맹 여러분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우리가 뭐 할 수 있는 게 없을 텐데…….”
“천문장에서 최대한 소란을 피워 주십시오.”
“에엥?”
팔 조 조원들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합니까?”
염초가 답했다.
“정보에 의하면 천문장이 상당한 양의 물자를 비축하고 있다 합니다.”
“물자?”
요즘 같은 때에 무림맹의 정보망에 걸릴 정도면 뭔가 수상하긴 한 모양이었다.
“네. 하지만 그 물자의 내용물이 무엇인지는 철저하게 숨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시선을 끌어 주시면 그동안 저희가 내용물이 무엇인지 확인할 겁니다.”
“그 정도면 무림맹에서 직접 해도…….”
“최근 이곳 남서부에서 매일 일만 건 이상의 가짜 정보가 풀리고 있습니다. 만일 저희가 잘못된 정보에 속아 행적을 들키게 되면 이후의 활동이 어려워집니다. 저희가 행적을 숨기려는 것은 이런 정보들의 진위를 가려서 근원지를 역추적하기 위함이니, 부디 도와주십사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그렇다면야 뭐…….”
조원들이 어물거리면서 허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결정을 내려야 할 허윤은 넋이 나가 있어서 여전히 결정은커녕 대화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소지광이 대신 나서서 물었다.
“만약 우리가 소란을 피웠는데 거기에 마도의 고수라도 있으면 어쩌오? 귀급 고수가 한 명만 있어도 우린 감당이 안 되오. 아니, 졸급이라고 해도 수가 많으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될 것이오.”
마도의 분류는 정파와 다소 차이가 있어서, 졸급이면 정파의 삼류와 이류에 속한다. 팔 조의 대부분이 삼류이고 이류는 소지광 정도라, 동수라 해도 당연히 백도맹 쪽이 크게 불리하다.
“그럴 일은 전혀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저희 정보에 따르면 마도 전력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마도의 무인들이 있다면, 그땐 저희가 지켜보고 있다가 즉각 개입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번산이 뭔가 고민하다가 염초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귀급 이상의 고수가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염초가 빙긋 웃었다.
“그 정도는 저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준입니다. 귀급이고 군급이고 저희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대단한 자신감이 아닐 수 없었다.
팔 조 조원들이 수군거렸다.
마도의 귀급은 정파에서 일류고수 수준인데도 혼자서 감당하겠다는 걸 보니 역시 공동파의 제자다.
게다가 아까부터 ‘저희’라 하고 이번엔 콕 집어 ‘저 혼자서’라고 하는 걸 보면 무림맹에서 온 이가 염초 한 명이 아니라 몇이 더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번산이 더 고민스러운 투로 다시 물었다.
“만약에…… 그 이상이면 어떡합니까?”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염초가 긴장하며 번산을 쳐다보았다.
“이를테면…… 마급이라든가…….”
“마급…… 이요?”
마급 고수가 나타나면 어쩔 거냐고?
염초는 생뚱한 표정으로 되물었다가 곧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마급이 왜 이곳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자기가 말해 놓고도 번산은 뭐라고 답변하지 못하였다.
염초가 궁금했는지 물었다.
“마급의 고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번산이 망설이다가 답했다.
“점괘에 그리 나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피식피식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까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마 몸을 숨긴 무림맹의 다른 고수들인 듯했다.
얼마나 우스웠으면 은신하다가 말고 웃었을까.
팔 조 조원들의 얼굴이 벌게졌다.
“막내 저 병신.”
“아주 똥칠을 하네.”
염초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 마급의 고수는 아주 큰 전력입니다. 천재지변과도 같지요. 하나 그만큼 함부로 움직였다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손해가 막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주의해 움직이고 어마어마한 인력이 함께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저희 첩보에 걸리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원래부터 팔 조의 조원들도 허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찜찜해서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남들의 비웃음을 사니 자신들이 더욱 부끄러워졌다. 번산은 고개를 끄덕이곤 알았다는 듯 물러섰다.
“답변 감사합니다.”
“하지만 혹시나 마급이 나타난다고 해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염초가 자신만만하게 장담했다.
“아니, 저희는 차라리 마급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어떤 자인지 몰라도 겁도 없이 단독으로 출행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염초는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곧 포권을 했다.
“무림맹과 백도맹은 함께 싸우는 형제들입니다. 저희는 이번 일에 협력해 주신 데 대한 감사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염초가 곧 나뭇가지를 밟고 뛰었다. 그러자 어디에선가 세 인영이 나타나 염초처럼 가지 위를 휙휙 뛰어갔다.
네 사람은 순식간에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은신하며 천문장을 감시할 터였다.
팔 조 조원들은 떫은 입맛을 다셨다.
“이제 어쩌지?”
쾌도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뭘 어째. 도망가야지.”
“도망을 간다고?”
“영감이 그랬잖아. 괜찮으면 우리가 정찰 가고, 괜찮지 않으면 무림맹이 간다고. 무림맹에서 왔으니까 안 괜찮은 거잖아.”
조원들이 흠칫했다. 장용이 핵심을 꿰뚫었다. 분명 떠나기 전 소지광이 그렇게 말했었다.
“영가…… 아니, 단연자 선배. 쾌도 말이 맞습니까?”
“맞긴 뭘 맞아. 우리가 여기 놀러 온 거야? 쯧.”
“그런데 선배님은 왜 그런 불편한 표정을 짓고 계십니까?”
“아무래도 기분이 찜찜해서. 아까 본 표식이…….”
그때 소지광의 눈이 살짝 크게 떠졌다.
“어! 기억났다. 이런 망할?”
“왜 또 영감.”
소지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까 그거, 풍림단(風林團)의 표식이다. 쟤들 풍림단이었어.”
“풍림단?”
* * *
백도맹 오주 지회의 회주 안종.
그가 광서의 지도를 넓게 펼쳐 두곤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었다.
“흠.”
혼잣말처럼 안종이 물었다.
“군사는 어떻게 보는가?”
그의 옆에서 존재감 없이 조용히 서 있던 중년의 문사가 깃털 부채를 흔들며 말했다.
“최근 칠 일 내에 뿌려진 마도의 가짜 정보가 세 배로 늘었습니다. 특히 사천과 귀주에서요. 마도가 움직인다면 광서가 첫 행보가 될 가능성이 아주 커졌습니다.”
“뭔가를 가리고 있군.”
“맞습니다. 연기를 많이 피워서 진짜 불이 난 데를 가리는 수법이지요.”
오주 지회의 총군사 제갈료.
오주 지회의 모든 전략과 전술은 그의 손에서 펼쳐진다. 비상한 두뇌로 한 번 본 것은 거의 잊지 않기로 유명하며 이미 이십 년 전에도 마도의 광서 진출을 막아 낸 적이 있다. 당시에 나이가 겨우 이십 대 후반이었다.
그러니 지금 회주 안종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안종이 ‘흠’ 하고 깊은 침음성을 내며 물었다.
“거물인가 보군.”
“이번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무림맹도 나섰습니다. 저희도 때에 맞춰 팔 조를 보냈지요. 팔 조가 몰이꾼이 되어 시끄럽게 마도의 이목을 끌면, 무림맹이 진짜 목적을 이루게 될 겁니다. 누가 움직였는지 알아내는 건 시간문젭니다.”
“만일 군사의 생각이 맞게 된다면, 팔 조의 피해가 좀 있겠군그래.”
“어떤 식으로든 우리 측 고수들의 움직임은 최대한 감춰져야 합니다. 우리 측 고수가 움직인 빈자리에 마도가 들어오면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일반 무사는 널리 퍼뜨려서 감시의 눈을 많이 만들고, 그 감시의 눈을 바탕으로 고수들은 바늘로 찍듯 중요한 순간에 행동해야 합니다. 무림맹도 자신들의 역할을 잘 알고 있으니 우리 정찰조를 잘 써 줄 겁니다.”
회주 안종이 찻잔을 들어 살짝 돌렸다. 식은 찻잔에서 김이 나며 차가 데워지기 시작했다.
“첫 임무에서부터 희생자가 나오면 사기에 좋지 않은데.”
“장기에서 졸을 아까워하면 전투는 이겨도 전쟁은 이길 수 없습니다. 마도에서 어떤 급의 고수가 움직였는지 알아내는 것만으로 우리는 저들의 의도를 유추할 수 있고, 정보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됩니다. 지금 물밑에서 벌어지는 정보전의 성과가 향후 전개될 전쟁의 주도권을 좌우할 것입니다.”
“그 정도야 나도 알고 있네. 다만 팔 조에 재밌는 놈들이 들어왔던데, 그놈들이 죽으면 좀 아쉬울 거야.”
“패류방은 원래부터 버리는 패로 만든 것이었으니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닙니다. 이번 임무만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그들은 제 몫 이상을 해내는 셈이지요.”
“그들이 얼마나 살아 돌아올 수 있겠나?”
“무림맹이 개입한다는 전제하에, 귀급을 만났을 경우에는 대다수가 생존할 것이고 군급을 만났을 때는 절반 정도 생존할 것으로 봅니다.”
“무림맹이 개입하지 않고 거물의 정체만 확인한다면?”
“생존 전무(全無)입니다.”
부채를 살랑거리며 제갈료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팔 조의 사망 위로금은 충분히 책정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