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304
304화
소지광이 다음 차례였다.
“자, 결재받으러 왔네. 내달에 외원에서 쓸 석공 용역비와 식대…….”
총관에게 결재를 받아야 그걸 가지고 부총관이자 재무 담당인 이진휘에게 돈을 타 낼 수 있다.
안소방이 내역서를 휘리릭 보더니 말했다.
“지출이 너무 많습니다. 칠 할로 줄이세요.”
“허어, 그걸 어떻게 줄이나. 이거 다 필요한 거야.”
“손님도 없는데 접객당 앞에 무슨 석조 탁자를 만들고 조각상을 세웁니까? 탁자만 만들고 식대는 줄이십쇼.”
“안 총관. 아니, 소방이. 조각상은 몰라도 식대까지 줄이면 사기가 떨어져.”
“이틀에 한 번씩 고기가 말이 됩니까? 오 일에 한 번으로 하세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소지광은 인상을 찌푸렸으나 결국 입을 꾹 닫았다.
할 말이야 많았으나, 이렇게까지 하는 안소방이 안쓰러운 탓이다.
“에이, 알겠네. 노력해 보지.”
다음은 장용이었다.
“백룡각 정문부터 복도에 쭉 칼이랑 창 같은 거 걸어 놓고 싶은데. 그래야 분위기 나지.”
“기획안은 어디 있어요?”
“몰라? 그게 뭐야. 글을 모르는데 그런 걸 어떻게 써.”
안소방이 휘리릭 서류 한 장을 썼다.
“칼, 창은 기각이고 서기부터 찾아서 고용하십쇼. 나중에 각주님이 외부 행사에 나가더라도 안에서 처리할 수 있는 사람으로요.”
“알았으니까 대충 장식해 놓게 돈부터 주면 안 돼?”
“네, 안 돼요. 다음, 수호각주님.”
장용이 항의했다.
“까막눈이라고 차별하는 거야? 총관, 그렇게 안 봤는데 서운하네. 내가 이래 봬도 소림사와 청성파의…….”
컥.
가만히 장용을 바라보던 안소방이 돌연 피를 토했다.
장용이 깜짝 놀라 물러섰다.
“아, 갈게. 간다고.”
다음 차례인 쾌도는 이진휘에게 자문까지 받은 기획안을 자신 있게 내밀었다. 물론 그가 직접 작성한 건 아니었다.
수건으로 탁자의 피를 닦은 안소방이 기획안을 보자마자 눈을 찌푸렸다.
“여기, 문지기 월봉 이 인분. 뭡니까.”
“허수아비랑 용왕한테 줄 보수.”
“괴뢰보주는 포로니까 밥만 하루에 한 끼 주고요. 장강용왕은 회주가 싫어하시긴 하는데, 능력을 생각해서 이번에 감문장(監門長)으로 올릴 겁니다. 그러니까 이달까지만 수호각 소속인데, 수습이라 월봉 없어요.”
“그런 게 어딨어, 그래도 사람이 일을 하면 돈을 줘야지.”
“그럼 각주님 월봉에서 빼서 주는 걸로 하죠.”
“뭐 이런…….”
쾌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 수호각주가 총관에게 대들면 쓰나.”
도귀가 뒤에서 부드러운 말로 쾌도를 달랬다. 쾌도가 씩씩거리며 돌아갔다.
도귀는 자랑스럽게 사업 계획서를 냈다.
그는 마침내 수습을 벗어나 직책을 얻었는데, 안소방의 말에 의하면 ‘정보 교섭 전문가’, 이른바 정보부였다.
내부적으로 정보원을 운용하고, 대외적으로는 타 문파와 정보를 교류하는 일이었다.
그 교류라는 게 다소 일방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중간에 남의 정보원과 접촉할 경우도 있기에, 신법이 빠르고 살상 없이 중요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도귀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분야였다.
“정보부 이름이 일당백(一當百)인 건 그렇다 치고.”
이름을 그냥 넘어가자 도귀는 약간 서운한 빛을 띠었다.
“건물을 지하 삼 층, 지상 오 층 전각으로 지으시겠다고요?”
“옛말에, 풀지 않고 모으기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하였네.”
“푸는 건 저 죽고 하세요. 그때까진 수호각의 방 한 칸을 빌려 쓰시고요.”
도귀가 한숨을 쉬었다.
기실 마뜩잖긴 하였으나, 죽을 날을 받아 두고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손을 쓰겠는가.
하여 도귀도 무어라 더 말하지 못하고 나갔다.
이어 낙락이 들어왔다.
안소방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손을 내밀었다.
낙락이 당당하게 ‘한 달 활동비’라고 적힌 서류를 건넸다.
당과 천 개의 비용을 요구하는 내역이 적혀 있었다.
안소방이 가만히 그것을 보더니, 선을 쭉 그었다.
허윤이 안소방을 찾아가던 중에, 막 총관의 집무실에서 나오는 시무룩한 표정의 낙락을 만났다.
“왜 그런 표정입니까?”
“당과 천 개분을 살 돈을 달라고 했는데, 이백 개로 깎였네.”
“예?”
“심지어 그것도 사지 말고 만들어 먹으라고 재료비만 줬어. 나 이제 어떡하는가?”
“당분간만 참아 보십시오. 안 총관의 열의가 넘쳐서 말리기도 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내 말이……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사람 같아서 차마 항의도 못 하겠더군.”
그때, 낙락이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혹시 자네, 팔단정금으로 저 친구 독을 밀어내는 거 안 되나? 사람 피 말라 죽겠네.”
“그러잖아도 원래 아침마다 벌모세수를 했잖습니까. 며칠 전에도 노폐물을 밀어내듯이 시도해 보려 했는데, 계속 돌던 내공이 같이 밀리면서 갑자기 멈추니까 순간적으로 독이 확 올라 큰일 날 뻔했습니다.”
“후우. 역시 안 되는구만.”
낙락이 한숨을 쉬더니 ‘당과를 어떻게 만들더라. 사과랑 꿀부터 사러 가야겠네.’하고 중얼거리며 떠났다.
허윤은 안됐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소방이 대견스러웠다. 죽음을 앞에 두고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되레 열정적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하여 허윤은 깍듯이 직함을 불러 주며 안으로 들어섰다.
“총관. 나 왔네.”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안소방이 서류 여러 장을 문진으로 툭툭 쳐서 가지런히 놓은 다음, 허윤을 보고 말했다.
“지금까진 이진휘 부총관이 돈 달라고 하면 내줬던 모양입니다. 보니까 안 나가도 될 돈이 새 나가더군요.”
“그랬…… 나?”
사실 예전에는 늘 돈에 쪼들리며 살았지만, 지금은 너무 많아서 주체를 못 할 지경이었다. 하여 최근엔 별생각 없이 돈을 쓴 것도 사실이었다.
“백도맹도 중앙의 재력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니까, 지회를 통해 지역 상인들의 자금을 모으잖습니까. 우리도 언젠가 전역에 지회를 두게 될 텐데, 그때를 생각하셔야죠. 그때 저는 없겠지만.”
움찔.
“뭐 하러 그런 얘기를…… 아무튼 알겠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뒷산에서 두풍 연습하지 마십쇼.”
“응? 아니, 왜?”
“거기 있는 게 그냥 나뭅니까? 녹나무잖아요. 장뇌 만드는 약재료. 그게 지금 우리 주력 수입원인데, 회주님이 다 때려 부수면 손해는 누가 보겠습니까?”
허윤이 머쓱하게 웃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군. 앞으론 정해진 곳에서만 하겠네.”
“그리고, 이번에 들어온 수레는 뭡니까?”
“그건 수석이야.”
“반품합니다.”
허윤은 깜짝 놀랐다.
“내가 쓸 걸세, 이 사람아. 그건 그냥 두게.”
“감정사 불러서 봤더니 태반이 평범한 돌이더군요. 냇가에서 그냥 퍼 온 돌이요.”
“그건 연습용으로…….”
“인부를 구하면 그냥 가져올 수 있는 돌을 왜 수십 배도 넘는 돈을 지불하고 사 옵니까?”
“아냐, 아냐. 중개상이 제법 많이 깎아 주고 가끔 좋은 수석이 있으면 먼저 보내 주고, 또 공짜로 줄 때도 있어서 그리 큰 손해는 아닐 거야.”
“계산해 보니 수석 감정인과 인부를 고용하면 더 많은 양의 질 좋은 돌을 더 싸게 가져올 수 있습니다.”
“여보게, 소방. 그래도 내가 회주야.”
“전 총관인데, 총관 관둘까요?”
돌연 안소방이 코를 잡았다.
“어? 코피…….”
쩝…….
허윤은 입맛을 쓰게 다셨다.
안소방이 코를 막고 새 서류를 보며 말했다.
“대신 귀물은 급하다고 하셨으니까, 이쪽 예산은 올려 드리겠습니다.”
북두건곤칠성대법과 귀기의 평형을 맞추기 위해서 일단 귀물을 늘려 수련을 할 셈이었다.
“……그거라도 허락해 줘서 고맙네.”
허윤도 풀이 죽어서 방을 나갔다.
* * *
약왕 위선남은 무림맹에서의 임무를 훌륭하게 해내었다.
협의당주 주악정도 원래 여러 문파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약왕을 굳이 적으로 삼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가셔야 한다니, 아쉽습니다.”
“다음에는 꼭 밤새도록 술잔을 나누어 보세나.”
약왕이 인사를 마치고 서둘러 돌아가려는데, 호천이 찾아왔다.
“얘기 들으셨습니까?”
“무슨 얘기 말인가?”
“전역에서 마도와 사파가 발호했습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다시 시작이로군.”
“한데 무림맹의 정보에 의하면, 사파의 세력 중에 남십자성의 고수들이 한두 명씩 보이는 모양입니다.”
“으응? 그들은 대종사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들었네만.”
“제가 확인을 하러 나가던 참인데, 허 선생에게도 미리 알려 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알겠네. 꼭 전하지.”
* * *
호천의 말대로 강호는 또다시 전운에 휩싸였다.
사파와 마도의 공격이 산발적으로 시작됐다.
이번에는 기존에 움직이지 않던 세력과 여러 잔당까지 전부 합류하여 기세가 더 거셌다.
무림맹도 백도맹도 기존의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정신없이 싸워야 했다. 그럼에도 마도와 사파에 상당한 고수가 있어 순식간에 밀리는 양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여, 저희 백룡회에도 백도맹 중앙회에서 참전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심지어 여러 지역의 문파들도 도움을 청해 오는 중입니다.”
안소방이 지도를 두고 싸움이 벌어진 곳에 붉은 돌을 놓았는데, 어디랄 것도 없이 지도 전체가 붉었다.
“그중에 삼 할이 벌써 날아갔습니다.”
“난리가 났군. 이거,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 기세면 보름 안에 구주가 다 먹히겠어.”
“이 정도면 소림사가 나와야 하지 않나?”
“제아무리 남십자성이 가세했다 해도 그들의 뒤를 받치는 인원은 싸움이 끝나면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니, 그렇게까지 빨리 이뤄지진 않을 겁니다. 간헐적으로 반격도 있고요. 하여 소림사도 아직 나설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보는 듯합니다.”
허윤이 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움직이는 게 좋겠는가?”
“전부 다요.”
안소방의 말에 모두가 벙 찐 표정을 지었다.
“괴뢰보주와 야율 소저가 알려 준 정보를 토대로 마도 쪽 전력을 분석했고, 서 감문장께 사파 쪽 정보도 받아 놨습니다. 여기다 회주님의 점괘까지 더하면 백룡회 전원이 필요한 곳에 갈 수 있습니다.”
고우사가 어리둥절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릴 찢어서 각자 여기저기 따로따로 보낼 거라고?”
안소방이 눈을 빛냈다.
“네. 극정에 앙연까지 있는데 아깝게 전력을 낭비할 수는 없죠. 게다가 개별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곳에서 제시한 금액도 만만치 않고요.”
“응? 돈을 줘? 무슨 용병 같은 건가.”
“하여 제가 어젯밤에 지역마다 동선을 다 짜 놨습니다. 계획대로면 한 분이 달포에 네 군데씩은 가실 수 있겠더라고요.”
일행은 경악했다.
예산 절감만으로 부족해서 이제는 돈 벌러 밖으로 돌리기까지 하는 건가!
허윤이 만류하려 했다.
“안 총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
“컥!”
안소방이 한 줌의 피를 토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도귀가 벌떡 일어났다. 그 때문에 다른 이들도 엉겁결에 같이 일어났다. 마치 서로 가겠다고 선 듯한 모양새가 됐다.
“제 말에 따라 주셔서 고맙습니다. 며칠 잠 안 자고 정리한 보람이 있네요.”
안소방이 눈물을 글썽이며 코를 훔치자, 다들 차마 다시 앉을 수가 없게 됐다.
약왕이 안쓰러워하며 말했다.
“그래도 잠은 자야지.”
안소방은 퀭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차피 곧 지겹도록 잘 텐데, 지금은 좀 덜 자려고요.”
고우사가 포기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가자. 가야지. 우리 총관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는데, 놀면 뭐 해. 돈이나 벌어 오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