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322
322화
나한승이 불진을 허공에 털어 짝! 소리를 냈다.
그게 마치 음공처럼 귓가를 파고들어 머리가 띵하게 만들었다.
허윤이 아래를 내려다보자, 나한승이 말했다.
“어떤 대마두라도 본사에 투항한 이상 건드릴 수 없네. 이제 우리에게 양도하시게.”
만약 고우사가 이 얘기를 들었다면 길길이 날뛰었을 터였다. 고우사가 항복했을 때에는 담우가 마구니 운운하며 거절한 탓이다.
야율황이 허윤의 밑에 깔린 채, 목에 난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고 비웃었다.
“이제 네놈은 나를 죽일 수도, 죽이지 않을 수도 없게 됐구나.”
죽이지 않으면 소림사에 도진의 정체를 털어놓을 테고, 죽이면 소림사와 척을 져야 한다.
“내 제의는 아직 유효하다. 본좌를 두고 떠나라. 그리하면 약속했던 대로 홍환을 주고, 정체도 함구해 주지.”
허윤이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야율황은 슬슬 먹힌다 생각하고 재차 권고했다.
“아직도 모르겠나? 이게 네가 예전으로 돌아갈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다.”
“마지막이라…….”
“그래. 그냥 모른 척 지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뭐 어렵나. 바로 눈앞에 행복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니까.”
“아니.”
허윤이 야율황을 빤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네가 뭘 모르고 있는지 알려 줄까?”
허윤의 눈빛을 본 야율황은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되어 간다고 느꼈다. 하여 황급히 말했다.
“기다려……! 지금 소림사와 척을 지겠다는 거냐?”
“나 혼자 뒤집어쓰면 돼.”
“네놈의 동료들은!”
“복면 써서 누군지 모를 거야.”
그걸 왜 몰라!
피에 물든 야율황의 외눈 동공이 계속 흔들렸다.
“정녕 자식을 네 손으로 나락에 떨어뜨리겠다는 것이야?”
나한승이 다시 외쳤다.
“시주는 그만두라 경고했네!”
허윤은 그쪽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야율황! 부모에겐 말이다. 자식과 함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넌 그걸 몰라.”
“그런 게 세상 어디 있느냐!”
허윤이 돌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있지. 그게 뭐냐면, 자식 놈이 아무 걱정 없이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허윤의 눈에 살기가 가득 담겼다.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도 감수할 수 있다.”
어떤 말을 해도 허윤이 자기를 죽일 거라는 걸 깨달은 야율황이 발버둥 쳤다.
“쉬익…… 쉭…… 사, 살려……! 살…… 살려!”
허윤은 빠드득 이를 갈았다.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그러곤 말을 맺기가 무섭게, 있는 힘을 다해 야율황을 내리찍었다.
칵!
야율황이 고개를 틀어 버리는 바람에 허윤이 휘두른 돌은 계단에 맞았다.
야율황은 허윤의 팔목을 양손으로 붙들었다.
“끄으으응!”
허윤이 힘을 주다가 안 되겠다 싶어 반대쪽 손으로 야율황의 눈을 찔러 갔다.
“혈안지!”
야율황은 힘껏 허리를 튕겨 허윤의 중심을 흐트러뜨렸다.
펑!
허공이 터져 나갔다.
허윤이 휘청거리는 틈에, 야율황은 몸을 틀어서 빠져나왔다. 그러곤 허겁지겁 계단을 기어 내려갔다.
“어딜 가!”
허윤은 몸을 날려서 야율황의 옷깃을 붙잡고 등에 올라타, 돌로 마구 찍었다.
“죽어! 죽어어, 이놈!”
퍽퍽! 퍽!
야율황은 양손으로 뒤통수를 가리면서 뱀처럼 몸으로 기어 계단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놈! 이놈!”
퍽! 퍽!
계단에 길게 끌린 핏자국이 남고, 그 위로 점점이 핏방울이 뿌려졌다.
그러다 도저히 더 버틸 수가 없었는지, 야율황이 몸을 뒤집으며 허윤의 손목을 잡아 금나수로 꺾었다.
허윤은 손목이 비틀리는 바람에 돌을 놓쳤다.
“억!”
하지만 팔꿈치와 어깨까지 돌아가서 탈구되기 직전, 허윤은 천근신퇴공의 천근추를 이용해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아래에 깔린 야율황은 배가 눌려서 숨을 못 쉬고 얼굴이 점점 하얘졌다. 늑골도 같이 눌려 우두둑우두둑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팔이 부러지느냐, 늑골이 부러지느냐.
허윤도 야율황도 필사적이었다.
야율황은 더 참지 못하고 허윤의 손목을 놓았다. 대신 아까 자기가 허윤의 쇄골 아래에 낸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후벼 팠다.
“으아아악! 으아악!”
허윤은 천근신퇴공을 유지하지 못하고 힘이 빠졌다. 야율황은 허리를 일으켜서 허윤의 찢어진 배에까지 손가락을 넣어 벌렸다.
살이 점점 벌어지고 피가 울컥울컥 새어 나왔다.
“으아아아!”
허윤도 이에 뒤질세라 야율황의 눈 아래에 엄지를 밀어 넣었다.
“크아아악!”
고개를 흔들어서 피하느라, 야율황의 손도 허윤의 상처에서 빠졌다. 허윤이 그 틈에 야율황의 목을 졸랐다.
“커…… 윽…….”
곧 야율황의 목과 턱에 핏줄이 돋고, 얼굴에 수없이 난 작은 구멍에선 실 같은 피가 찍찍 새어 나왔다.
야율황의 눈이 조금씩 뒤집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허윤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헐레벌떡 도진을 찾아간 자리에 남아 있던 핏자국.
야율황을 만나 느낀 공포감.
살 의지를 잃고 무기력하게 헤매던 날들.
그리고……
한창 상념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허윤의 눈에 황색 적삼에 붉은 가사가 보였다.
흰 눈썹이 귀까지 닿아 흘러내린 노승.
방장 혜심이었다.
그가 허윤과 야율황의 곁에 쪼그려 앉아 멀건 눈을 뜨고 있었다.
“시주는 말이야. 기필코 이자를 죽여야겠는가?”
허윤은 온 힘을 다하고 있었으나, 소림승이 신경 쓰여 말했다.
“이자는 불구대천의 원수요! 날 막지 마시오!”
말하면서 아주 살짝 힘이 빠진 사이 야율황의 가물거리던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그가 있는 힘을 전부 짜내어 말했다.
“사, 살려…… 끄윽…….”
혜심이 혀를 찼다.
“이자가 잘못을 했다면, 평생 뉘우치게 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 아닌가. 이대로 죽는다면 시주의 마음이 편해지겠는가?”
“그렇소!”
“나무아미타불. 그럼 시주의 방식은 잘못되었네.”
혜심이 손을 내밀어 야율황의 목 쪽을 더듬거렸다.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이 생긴다. 따라서 이것이 없으면 그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그것이 소멸하니. 이를 바로 연기(緣起)라 하네.”
그러더니 꽉 누르고 있는 허윤의 왼손 새끼손가락을 잡았다.
“빈승은 눈이 보이지 않으나 시주의 마음에 가득한 분노를 볼 수 있네. 복수에는 복수가 따르고,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부르는 법. 자비로써 용서하고 분노의 마음을 가라앉히면, 분노 역시 사라질 걸세.”
“그런 소리는 나중에 하시고 비키시오!”
뚝!
혜심이 허윤의 새끼손가락을 당겨서 반대로 꺾었다.
허윤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삽시간에 얼굴이 땀범벅이 되었다.
“큭, 크으윽! 이, 이게 무슨……!”
하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야율황이 죽을 것 같아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혜심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더듬거리면서 네 번째 손가락을 잡았다.
“우리가 투항한 자를 눈앞에서 죽게 내버려 두면, 수행자인 우리의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그 원망은 시주에게 향하게 될 걸세.”
뚝!
허윤은 더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혜심이 또 더듬어서 허윤의 중지를 잡았다.
허윤은 등줄기가 섬뜩해졌다.
혜심이 말했다.
“내 방금 연기에 대해 설법하였는데도 아직 깨닫지 못하였는가? 번뇌는 번뇌의 원인을 없앰으로써 사라지지. 그래도 시주는 여전히 우리에게 번뇌를 일으킬 작정인가?”
뚝.
손가락이 세 개나 부러져서 이제 더는 야율황을 목 졸라 죽일 수 없게 됐다. 숨통이 조금 트인 야율황이 가쁘게 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중지를 구부려 주먹을 쥐곤 허윤의 겨드랑이 바로 밑 부분을 힘껏 강타했다. 내공이 담기지 않았어도 고통이 큰 혈도라 허윤은 팔에서 힘이 빠졌다.
그 사이에 야율황이 버둥거리면서 허윤을 밀쳐 내고 벗어났다. 그런데 혜심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관했다. 아니, 야율황을 잡으려는 허윤을 팔로 가로막아서 방해했다.
허윤은 원통해서 시퍼런 눈으로 혜심을 쏘아보았다.
“내게는 자비를 베풀라더니, 대사는 번뇌의 원인을 내게 돌리는 거요?”
“시주의 분노는 이자로 인해 시주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요, 우리의 번뇌는 이자에 대한 시주의 분노에서 오는 것이니. 술을 식초로 만들어도 그 바탕은 술인 것처럼, 시주가 허망한 아집(我執)의 환영을 걷어 내야만 연기를 멸할 수 있고 그것이야말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되는 이치인 걸세.”
빠져나간 야율황이 뒤를 돌아보았다. 피범벅이 된 얼굴에 특유의 비열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큭큭큭.
허윤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정작 저런 건 눈깔이 없어서 못 보면서, 마음의 분노가 뭐 어쩌고 저째?”
삼청신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절을 하듯 그대로 돌계단을 들이받았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이 발생하며 돌조각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흙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계단을 비롯해 반경 오 장이 모두 터져 나가 땅이 반원형으로 움푹 패었다.
혜심이 순식간에 몸을 날려 피했고, 소림승들도 바닥이 무너져 나한진을 더는 유지하지 못하고 자리를 이동해야 했다.
고루마와 골마가의 고수, 마인들도 놀라서 계단 쪽을 돌아보았다.
“뭐, 저런……!”
두풍의 위력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간담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고루마가 정신을 차렸다.
흑룡은?
도진은 그 사이에 거의 도귀에게 도착해 있었다.
고루마는 이를 갈면서 땅을 박찼다.
“에이, 망할!”
호천은 급히 허윤을 찾았다.
허윤은 반원으로 팬 그 자리에서 엎어져 있었다.
어깨와 배에 난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손가락이 세 개나 부러졌다.
허윤이 부축하려는 호천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난 괜찮아. 무리하게 힘을 쓴 바람에 잠시 탈진한 걸세. 그보다…….”
허윤이 손가락으로 계단 아래를 가리켰다.
“놈이 살아 있어.”
호천은 허윤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끈질기게도 야율황은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
“내가 처리하지.”
허윤이 호천의 팔을 잡았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호천은 허윤이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하여 고개를 끄덕이자, 허윤이 팔을 놓아주었다.
호천은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내려갔다.
한편, 야율황은 폭발에 튕겨 나가서 계단 아래까지 날아갔다.
쿠당탕탕!
엉망이 된 몸이었으나, 낙법으로 몸을 굴려 크게 다치지 않고 일어날 수 있었다.
“헉, 헉.”
정신을 차린 야율황은 웃었다.
본래 달아나려면 나한진을 뚫었어야 했는데, 허윤 덕분에 나한진이 밀려 무사히 아래까지 온 것이다.
이제 고루마의 도움을 받아 합류하기만 하면…….
그때 야율황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도진을 보았다.
도진은 허리를 숙이고 헉헉대는 중이었다.
순간 퍼뜩 살심이 치밀었다.
하늘이 돕는구나! 지옥에 가거든 네 아비를 원망하거라. 허가 이놈, 본좌의 말을 듣지 않은 걸 평생 후회하고 절망하며 살게 해 주마!
솔직히 허윤은 무섭다. 쓰는 수법이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괴이하고 파괴력도 어마어마하여 상대하고 싶지 않다.
하나 도진은 다르다. 내공이 없어도 죽일 수 있다.
바닥엔 소림승과 마인들이 수도 없이 엎어져 있었다. 병장기들도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다.
야율황은 개중 아무 도나 집고 도진의 뒤로 접근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야율황의 눈앞에 흰 수염의 복면 노인이 나타났다.
야율황은 깜짝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그러나 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도경을 거꾸로 쥔 채 부르르 떨며 서 있을 따름이었다.
손도 떨고 다리도 떨었다.
바들바들…….
큰 키로 내려다보는데 눈동자는 공포에 질린 듯하고 복면 틈으로 살짝 보이는 표정은 심하게 굳었다.
그때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렸다.
“으하하! 내가 이겼다! 역시 철두공!”
순간, 야율황의 머리에 벼락이 떨어졌다.
빠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