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332
332화
드러난 혜석의 머리는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 보기 어려웠다.
곳곳에 뭉갠 찹쌀떡 같은 굳은살이 튀어나와 있었고, 특히나 정수리 쪽은 울퉁불퉁 뾰족하여 마치 기암괴석이 돋아난 듯했다.
“흐흐흐. 깨진 채로 어긋나 붙고, 또 깨졌다가 붙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깨지지 않게 되더군. 그게 벌써 수십 년이나 됐네.”
그가 자기 머리를 쓰다듬는데, 매끄럽지 않아 손가락이 툭툭 걸릴 지경이었다.
혜석은 머리의 봉우리 중 유독 시커멓게 그을린 듯한 하나를 손으로 매만졌다.
“알려나 모르겠는데, 이건 전대의 대종사에게 천공지로 맞은 자국이지. 검강에 버금가는 지풍이더군.”
흠칫.
허윤은 자기의 구멍 난 귓불을 매만졌다.
그가 기억하는 천공지는 바위도 뚫었다. 그런데 저 승려의 머리는 뚫지 못한 것이다.
그 말에 백룡회원들은 물론이고 속가 무인들과 뒤따라온 손님들까지도 술렁거렸다.
“전대 대종사와도 싸우셨다고?”
“혜석 대사님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으신데?”
“그러니까 두풍이 주력인 백룡선생을 상대로도 자신 있게 오셨겠지.”
속가 무인들의 감탄을 들으며 혜석이 허윤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어떠냐? 하고 묻는 투의 표정이었다.
백룡회원들 쪽에서도 감탄 비슷한 말들이 나왔다.
“왜 머리에 화산이 있냐.”
“니미, 흉측하기도 하지. 꿈에 나올까 무섭네.”
웃고 있던 혜석이 고개를 휙 돌려 말이 나온 쪽을 쳐다봤다.
혜석도 살면서 거의 보지 못했을 정도로 인상이 더러운 둘이 숙덕대고 있었다.
혜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굳은살 때문에 골이 거의 안 생기고 대신 가죽이 통째로 위로 밀렸다.
“너희들이야말로 꿈에 나올 만한 얼굴이 아니냐?”
혜석이 말을 던졌으나, 둘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머리카락이 없어서 그런가. 속이 밴댕이 소갈딱지야.”
“뭐 한 마디 했다고 삐쳐.”
껄껄껄!
혜석이 호탕하게 웃었다.
“이놈들아. 삐친 게 아니라, 본사의 기조가 그러하니라. 서로를 자극하는 말을 던지면서 화를 참는 수행을 하는 것이지. 그 때문에 말단 제자가 사백숙은 물론이고 장문까지 약을 올려도 윤허하여 주는 게 우리 소림이다. 하물며 노납이 고작 그런 말로 삐치겠느냐?”
장용과 쾌도가 곁눈질로 혜석을 힐끔거리며 저들끼리 말했다.
“위아래가 없는 게 자랑이야?”
“삐쳤으면서 안 삐친 척하려고 자기 사문을 콩가루 집안으로 만드네.”
혜석의 눈썹이 꿈틀했다.
속가 무인들이 분개했다.
“이놈들, 무례해도 정도가 있지! 당장 사과하지 못할까!”
장용과 쾌도는 바로 눈을 부라렸다.
“도둑놈의 새끼들이 말이 많아.”
속가 무인들도 발끈했다.
“뭐라고? 도둑놈?”
장용이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손가락질했다.
“이 새끼야, 너 뒤통수 까 봐. 깨져 있어, 안 깨져 있어? 봐 봐, 깨졌네. 그게 증거여.”
“아까도 뭐가 없어졌다고 우리 탓을 하더니!”
“우린 물건을 훔친 적이 없다! 우리가 가고 다른 놈들이 들어와서 그랬겠지!”
장용이 눈을 끔벅이다가 되물었다.
“아니야?”
“당연히 아니지!”
“안 훔쳤어?”
“우린 소림사의 제자들이다! 적어도 남의 물건에는 함부로 손대지 않아!”
“아니면 됐지. 왜 화를 내.”
“그야, 네놈이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니까…….”
속가 무인들은 자기들이 왜 변명을 하고 있지? 하고 생각했다가, 아차 했다.
혜석이 그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혜석은 방금 화를 안 낸다고 말하던 중이었데, 바로 옆에서 속가가 화를 내고 있으니 그의 꼴이 이상해진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저놈들의 수작에 저희가 말려서…….”
혜석은 화를 내진 않았으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머리도 살짝 붉어졌다.
그가 ‘후’ 하고 한숨을 쉬더니 눈에 힘을 주고 목을 꺾으며 뚜둑 소리를 냈다.
혜석은 대청이 계단 옆에 있는 사자 석상 앞으로 갔다.
‘시주가 본사의 계단을 바수었다지? 그렇다면 밴댕이 소리를 들어도 그에 대한 응답은 해 줘야 마땅한 것.’
그러곤 석상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쩌억!
단단한 화강암을 오랜 세월 정으로 쪼아 조각한 석상이 그대로 박살 나며 쪼개졌다.
그걸 미리 본 허윤이 계단 옆 석상을 가리켰다.
“저쪽에 누가 좀 서 보십시오.”
고우사가 뭔 소린가 하면서도 사자 석상 앞으로 가서 서려다가, 멈칫했다.
그러곤 호천을 보며 턱짓했다.
호천은 신입이라 가장 서열이 낮았다. 호천이 쓴 입맛을 다시며 사자 석상 앞에 가서 섰다.
혜석이 허윤을 빤히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막고 있는 걸 억지로 밀어내고 부수기에는 모양새가 영 좋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반대쪽의 용 석상으로 향했다.
한데 그때, 허윤이 또 손가락으로 그쪽을 가리켰다.
“저쪽에도 한 명.”
번산이 가 섰다.
혜석이 뭔가를 부숴야겠다 생각하면, 어김없이 거기에 백룡회원들이 가서 지켰다.
속가 제자들은 어리둥절했지만, 혜석은 아니었다.
실력 행사를 해서 입을 막으려 했는데, 실패한 것이다.
혜석이 허윤을 보며 말했다.
“내가 뭘 하려는지 눈치로 안 건가? 그 정도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일세.”
“그렇다고 칩시다.”
“노납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으나, 전대 방장 사형에게 부탁받은 바가 있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권고하겠네.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본사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강호에 공표한다면, 이제까지의 죄는 없었던 것으로 해 주겠네.”
“어떤 죄를 말씀입니까?”
혜석은 손가락을 꼽으며 하나씩 셌다.
“첫 번째, 본사에 무단으로 침입한 죄. 두 번째, 일단의 무리로 하여금 본사의 행사를 방해하도록 사주한 죄. 세 번째, 제지에 응하지 않고 귀의한 자를 해친 죄.”
허윤이 손가락을 꼽으며 똑같이 답했다.
“첫째, 본장에 무단으로 침입한 건 당신들이 먼저요. 둘째, 그러지 않았으면 내가 당신들을 쳐야 했을 것이오. 셋째, 그자의 귀의는 거짓이었고, 내겐 불구대천의 원수라 내버려 둘 수 없었소.”
혜석이 다시 손가락을 꼽았다.
“첫 번째, 백룡장에 사마외인들을 끌어들인 건 시주였으며. 두 번째, 복면인들이 본사의 이목을 헤살하여 골마가에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본산이 불타게 만들었고. 세 번째, 대종사가 참회 없이 죽음으로써 도륙당한 본산 학승들의 억울함을 풀 길이 없어졌네.”
허윤도 지지 않고 손가락을 들었다.
“첫째, 귀사가 사마외인이라 주장하는 자들은 이미 갱생한 본장의 일원이오. 둘째, 함께 골마가와 싸우겠다는 제의를 거절한 건 귀사였소. 셋째, 나는 이미 그자가 귀사에 침입할 거라는 사실을 알린 적이 있소. 그걸 누구 탓으로 돌리는 거요?”
둘 다 한 마디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자 혜석이 내공을 담아서 소리를 치며 네 번째 약지를 접었다.
네 번째! 사술로 대중을 현혹하고 기망한 죄! 이것이 앞서 말한 모든 죄 중에 가장 큰 죄라 할 것이다!
우르르릉.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며 대청의 기왓장들이 달그락거렸다.
대홍랍강도 감탄할 정도의 사자후였다.
하지만 허윤은 전혀 겁먹지 않고 똑같이 약지를 구부렸다.
그러나 혜석과 달리 조용히 말했다.
“넷째. 본인의 점술에 의하면 대사의 흉일(凶日)은 모레요. 겁이 나면 당장 승부를 내도 좋소.”
혜석은 한쪽 입꼬리를 올려 비웃듯 미소를 지었다.
모레의 흉일을 피한다면 사술에 겁을 먹은 꼴이 된다.
허윤의 점술이 사술인지 아닌지, 자신 있으면 정면으로 밝혀 보라는 도전이다.
“모레는 내게 흉일이 맞을 걸세. 살계를 열어 시주를 육도로 돌려보낼 대죄를 저지르는 날이니. 따라서 시주에게는 그날이 기일이 될 걸세.”
혜석은 곧 삿갓을 들어 깊숙이 눌러썼다.
“기다리지.”
소지광이 그와 속가들을 지정된 숙소로 안내했다. 속가들은 허윤과 백룡회를 끝까지 째려보며 자리를 떴다.
그들이 대청을 떠나자, 이진휘는 떨리는 무릎을 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와아, 긴장돼서 죽는 줄 알았어. 무슨 기 싸움이…….”
그러다가 못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소림사는 왜 저렇게 회주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거지? 아무리 그래도 좀 지나치다 싶은데.”
서열 순으로 끝 쪽에 서 있던 호천이 대답했다.
“소림사는 이번 일로 잃은 게 너무 많네. 무력의 핵심이 빠져나간 상황에서 어린 승려들과 경전을 공부하는 학승들만 남았을 때 본산이 습격을 받아 특히 피해가 컸겠지. 본래 이번에 강호에 보낸 무승 중 일 할만 남겼어도 충분히 막아 냈을 걸세. 그것도 억울한데, 거기에 복면인들까지 난입하여 난리를 부렸으니 체면도 완전히 구긴 셈이고.”
대홍랍강이 투덜거렸다.
“아니, 집 싹 비우고 나갔다가 털린 놈들이 잘못한 거지. 그게 소림사라 해도 설마 본진을 칠 줄 몰랐다고 하면 말이 되나.”
“보통 소림사의 본산은 아주 강력할 거라 생각하니까, 감히 칠 생각을 안 했을 거요. 하지만 마도에는 흑룡이 있었지. 그래서 본산이 불타는 치욕을 겪은 것이오. 그리고 그 흑룡이 지금은…….”
백룡장에 있다.
“그래서 더 싫어하나?”
“그뿐만이 아니오. 강호의 모든 문파는 소림사를 존중하오. 그런데 다른 문파와 달리 백룡회는 소림사를 존중하지 않았잖소. 복면을 쓴 채 깽판을 치고, 경고를 무시하고, 끝내는 소림사 출행의 최종 목적이나 다름없던 대종사까지 자기들끼리 처리해 버렸으니.”
호천이 허윤을 슬쩍 보았다.
“갈 길을 잃은 소림사의 분노가 백룡회를 향했다고 보면 될 거요. 소림사에게 지금의 백룡회는 사마외도나 다름이 없소. 아니, 오히려 더하면 더하겠지.”
그때, 갑자기 호쾌한 음성이 들렸다.
“정확하군. 하지만 속가 쪽의 속셈은 다르다네.”
호천과 백룡회가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보았다.
비단옷을 입은 장대한 체구의 노인이 좌우로 무사와 문사를 대동한 채 들어오고 있었다.
건강해 보이는 대춧빛 얼굴의 그가 허윤을 보고 웃었다.
“사부를 봤으면 인사를 해야 하지 않겠나?”
허윤은 ‘아!’ 하고 탄성을 냈다.
“백도맹주님?”
백도맹주가 껄껄 웃었다.
“그들은 우리가 쥔 장강의 상권을 노리고 있지. 때문에 백도맹과 그 백도맹을 대표하는 백룡장의 힘을 어떻게든 꺾으려 들 걸세.”
그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인사했다.
“만나서 반갑네. 내가 바로 진경립일세.”
감문장 서덕이 모처럼 열정적으로 문지기 일에 종사했다.
“통과! 안내인이 올 때까지 안에서 조금만 기다리셔. 통과! 댁도…….”
이어 누가 봐도 학사처럼 보이는 중년의 문사가 무림맹 소속 무인들과 함께 도달했다.
그는 누구라고 먼저 말하지도 않고 미소를 머금고 기다렸다.
서덕이 위아래로 그를 훑어보곤 뒤를 엄지로 가리켰다.
“통과.”
문사가 초우인을 한 번 쳐다보곤 문을 지나쳤다.
초우인도 도끼눈으로 문사를 노려보다가, 문득 뒤에 호위로 따라온 여 무인에게 눈길을 주었다.
“어이, 거기 이쁜이.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었던됴?”
여 무인이 다짜고짜 초우인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다.
빠악!
초우인의 코가 휘었다.
“이런 개년이!”
“통과!”
여 무인이 지나갔다.
“못 통과!”
서덕이 소수창으로 초우인을 두드렸다.
이후 그 옆에 있던 남자 무인들도 어리둥절하다가 알겠다는 듯 초우인을 힘껏 때렸다.
빠악!
“통과!”
그때까지도 망설이던 이들이 갑자기 달려와 남자 무인들의 뒤에 줄을 섰다.
빠악!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