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333
333화
초우인은 환장할 지경이었다.
벌써 몇 대를 맞았는지 셀 수도 없었다.
캉!
“아우! 주먹이야…….”
“턱 치지 않게 조심해. 거기는 쇠야.”
“진작 말해 주지.”
서덕이 소수창을 휘휘 흔들었다.
“빨리빨리들 지나가.”
초우인이 점점 더 짙은 살기를 내뿜으며 씩씩거렸다.
“다 죽인…….”
빡!
“통과!”
그다음은 평범한 중년 무인의 차례였다. 초우인이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는데, 무인이 그의 뺨으로 손을 뻗었다.
움찔.
초우인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그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수십 대를 맞으면서도 눈을 감은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무인은 톡톡 하고 뺨을 살짝 두드렸을 뿐이었다.
서덕이 무인을 잠시 쳐다보다가 고갯짓을 했다.
“통과.”
초우인이 무인의 뒷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데, 다음 차례가 된 이가 갑자기 초우인을 때렸다.
퍽!
초우인이 고개를 홱 돌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런 등골을 뽑아 버릴 새끼가! 사람이 딴 데 보는 중인 거 안 보이됴?”
때린 자가 놀라서 주춤거렸다.
서덕이 이번엔 손님을 막았다.
“넌 안 돼.”
“네? 왜, 왜요?”
“주먹질에 매가리가 없어. 다음!”
다음 차례는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장포도 여미지 않아 펄럭거리며 다니는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였는데, 양팔이 모두 없었다.
초우인이 비웃었다.
“어쩌됴? 때릴 팔이 없됴?”
“통과.”
초우인이 뭔 소리냐는 듯 서덕을 째려보았다.
서덕이 대답했다.
“아는 사이야.”
“이래서 봐주고, 저래서 봐주고. 그럼 되됴, 안 되됴?”
“허수아비, 은근히 주인의식 있네. 알았다. 너 통과 안 된대.”
천기성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류 육종의 대표로 대결을 참관하러 왔소이다.”
“왜 멀쩡한 놈들이 안 오고 팔도 없는 사람을 보내.”
“왔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몰라서?”
“너는?”
“자원했소. 그나마 조금이라도 얼굴을 아니까.”
초우인도 그제야 납득했다.
“통과.”
계속해서 많은 이들이 초우인을 치고 지나갔다.
그러던 중, 까무잡잡한 피부에 도를 찬 삼사십 대 정도의 여 무인과 서덕의 눈이 마주쳤다.
“아아, 장강용왕이 문지기를 하고 있다더니 정말이었잖아? 오랜만이네?”
서덕이 왠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기까지 오다니. 간이 부었구나, 두화.”
“간이 부은 건 내가 아니라 백룡회주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는 거람?”
“입 털지 말고 꺼지든가, 죽든가.”
‘두화’라는 이름이 익숙해 곰곰이 생각해 보던 초우인이 곧 떠올려 냈다.
“녹림? 녹림 이 인자? 정신머리가 없나, 정파의 영역에 혼자서 뒈지려고 왔됴?”
두화가 킥 웃었다.
“아아, 오늘은 싸우러 온 거 아니니까. 채주의 명령 때문에 왔는데, 어쩌면 합의 여하에 따라 백룡장과 협력 관계가 될 수도 있고.”
“그건 내가 결정 못 하지.”
“그럼 회주하고 직접 얘길 해 봐야겠네. 들어가도 되지?”
“꺼지라고 했는데 못 들었나?”
두화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남십자성은 왔나?”
“남십자성이 여길 왜 와.”
서덕의 말에 초우인이 무슨 소리냐는 듯 대답했다.
“아까 지나갔잖됴. 자기도 봐 놓고.”
서덕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응? 언제?”
초우인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도 못 한 거물들이됴. 일이 점점 재밌어됴.”
허윤은 백도맹주 진경립과 무림맹 문상 제갈예, 두 사람과 자리를 같이했다.
진경립이 허윤에게 선물을 내밀었다.
“자, 이런 걸 모은다기에 준비해 봤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부적으로 돌돌 만 붓이었다.
“살인마 아홉 명의 털을 뽑아 만든 붓인데, 사람의 피로 적셔 누군가의 이름을 쓰면 그에게 아주 큰 흉사(凶事)가 생긴다고 하네.”
“인혈필(人血筆)이군요. 저도 말로만 들었는데…….”
진경립은 허윤이 부적을 떼려 하자 말렸다.
“나중에 하게. 귀기와 살기가 너무 강해서, 자네는 몰라도 나는 꿈이 사나워진다네.”
“고맙습니다.”
문상이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듣던 대로군요. 남들은 꺼리는 귀물을 모으시고.”
“이나마도 겨우 건진 거요. 많이 박살 나서 없어졌소.”
허윤이 공손한 존대를 하지 않음에도 문상은 개의치 않았다.
“회주는 나를 잘 모르겠지만, 나는 회주를 잘 압니다. 오주 지회의 군사가 제 동생입니다.”
“아아, 어쩐지.”
생긴 것부터 기분이 나쁘더라니.
지금껏 그가 결정한 일들이나 호천이 한 말 때문에 선입견이 생겼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나.
“듣자 하니, 모레가 결전이라던데…… 그때가 혜석 대사의 흉일이라면서요?”
“거짓말이오.”
문상이 담담하게 웃던 그대로 동작이 멈췄다.
“예? 점쟁이는 점괘를 거짓으로 말하면 안 된다지 않습니까.”
“점을 안 봤소. 처음 본 사람 사주도 모르고 어떻게 길흉일을 알겠소이까. 그냥 화나서 해 본 말인데 그러마 해서 그렇게 됐소이다.”
“하하하…… 천하에서 이름난 회주께서 하는 말이라 혜석 대사도 깜박 속으셨군요. 나는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으니, 그 말씀을 대사께 전해 드리는 것으로 대신하지요.”
진경립이 의아해했다.
“그러면 쓰나.”
“그러라고 백룡회주가 내게 말한 것입니다. 그래야 혜석 대사의 복장이 뒤집힐 것 아닙니까. 본인이 회주에게 놀아났다는 생각이 들 테니까요. 그렇다고 이제 와 결전일을 바꾸자니 겁먹은 것 같고. 이러나저러나 분해서 잠도 못 이루실 겁니다.”
허윤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누가 그 동생에 그 형 아니랄까 봐.
“허허, 그런가. 나는 숫자에는 밝은데 그런 부분은 영 눈치가 없단 말이지.”
“그건 그렇고, 우리 쪽 제안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래서 허 회주와 상의하러 왔네. 오라 했더니 나를 부르지 뭔가?”
문상이 웃으며 물었다.
“백도맹을 허 회주에게 넘기실 생각입니까?”
갑자기 훅 들어온 송곳 같은 질문에 진경립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 참, 어떻게 알았나?”
“밥 먹고 하는 일이 이런 것이다 보니 그렇습니다.”
“문상 앞에서는 뭐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지도 못하겠군.”
“과찬입니다.”
“이왕 이리됐으니 속내를 좀 털어 보겠네. 나는 백도맹과 진령상회를 따로 분리할 생각일세. 기반이 상회라 그런지 상인을 천시하는 무림의 고정 관념 때문에 고수를 섭외하는 것도 어렵고, 아무래도 한계가 있더군.”
“그렇다면 더욱 잘되었습니다. 무림맹이 그간 중소문파를 돌보지 못한 건 사실이지요. 하여 나는 이번에 소규모 문파를 위한 조직을 새로 개설할 작정입니다. 허 회주가 백도맹주로서 그곳 당주를 맡아 주면 일석이조가 아니겠습니까?”
진경립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허 회주가 맹을 맡아 주었을 때 결정할 일이고, 당장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세. 백도맹에는 일만이 넘는 중소 상방과 상회가 가입해 있어서 걸린 자금 문제가 만만치 않거든.”
“지금은 소림사가 맹에 어느 정도 속한 입장이라 내가 손을 써 볼 수 있습니다만, 승부가 끝나면 더는 개입하기 어려워집니다. 늦기 전에 결정하는 게 백룡장과 백도맹을 지키는 길입니다.”
문상이 손을 들어 읍을 했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 온 이유입니다. 그럼 생각해 보시지요. 아,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흑룡도 좀 보고 싶군요.”
그렇게 문상이 떠나고 난 뒤에, 약간 멍청하게까지 보였던 진경립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가 웃으면서 허윤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허윤은 돌변한 진경립의 눈빛에 희한해하며 대답했다.
“무림맹으로 오라면서 정작 혜택은 하나도 없군요. 그저 소림사와 중재해 주겠다며 협박하는 걸로 들렸습니다.”
“맞네. 이런 건 정당한 거래라 할 수 없지.”
“그래서 떠보려고 잘 모르는 척 연기를 하셨습니까?”
“문상도 모르지 않았을 걸세. 하지만 내가 모르는 티를 내면 그가 설명을 해야 하고, 그래서 말이 길어지면 그만큼 실수할 확률도 커지는 거지.”
“으음.”
“내가 중요한 자금 문제를 언급했는데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네. 그렇다면 그에겐 자금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있거나,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뜻일세.”
진경립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문상은 중재하러 온 게 아냐. 다른 속셈이 있네. 그리고 내 생각이 맞는다면…… 그는 오히려 백도맹의 분열을 부추기러 온 걸세!”
“백도맹이요?”
“전부터 불만 세력에 무림맹이 접근하는 눈치가 있었지. 오늘 보니 확실하군.”
허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리 동요하지는 않았다.
“자네하고 상관없는 일이 아닐세.”
“아직은 상관없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저는 굳이 백도맹주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자식인 도진이 흑룡인 게 밝혀지고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다는 걸 들키면 온 세상이 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백도맹주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진경립은 당장은 더 권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아, 내가 보낸 무공은 잘 익히고 있나?”
“그러잖아도 천근신퇴공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말입니다.”
허윤이 매우 의심스러워하며 물었다.
“그거 맞으면 원래 사람이 터지는 게 맞습니까?”
진경립이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린가? 사람이 왜 터져. 자네, 뭘 배운 거야?”
* * *
백도맹주가 움직인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백룡장에는 저마다 상계의 각 지역 대표 혹은 대리자가 동향을 파악하려 왔다.
문상은 그들을 만났다.
“내가 거듭 권유했음에도 백도맹주께선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안타까운 일이나, 백도맹은 그에게 넘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대표와 대리자들이 분개했다.
“결국은 강행할 모양이군! 어떻게 우리를 쏙 빼놓고 그런 자에게 백도맹을 맡긴단 말인가!”
“맞아. 우릴 너무 우습게 보는 처사지! 수십 년을 함께했는데.”
“실력 행사로 우리 뜻을 분명히 밝히자고!”
“여기 무림맹의 문상도 와 계시니 그쪽으로 가 버리면 그만이지.”
문상이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 역시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분들과 하는 것이 편하지, 어디서 온 지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와는 일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문상. 우리가 무림맹으로 가면 잘 부탁드리오.”
“그야 물론이지요.”
진경립의 생각대로 문상은 백도맹 내부에 분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물밑에서 움직이는 자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서덕은 문지기로서 당연한 의무대로 허윤에게 수상한 인물들에 대해 보고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점괘에 왜 위험이 있었는지 확실히 드러났다.
“남십자성이라니. 거르지 못했소?”
“들어올 때 이상한 놈들이 몇 있긴 했거든? 와…… 근데 전혀 모르겠더라고. 허수아비 말로는 한번 섞이면 못 찾는다데?”
“흠…….”
앙연의 고수인 서덕의 눈으로도 찾기 어렵다면 보통이 아닌 듯했다.
“남십자성이 올 이유야 충분하지. 흑룡은 오늘 밤 조심하는 게 좋겠어.”
“녹림 이 인자는 또 왜 왔다는 거요?”
“뭐 협력을 한다나? 회주하고 할 얘기가 있다나.”
“그래서?”
“꺼지라고 했지.”
휴, 허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중 다행이오. 하마터면 일이 더 복잡해질 뻔했소.”
“근데 들어오더라고.”
“뭐요?”
허윤이 서덕을 노려보았다.
“그걸 그냥 뒀소?”
서덕이 멋쩍어하며 대답했다.
“전에 같이 살 비비고 살던 사이라 손쓰기도 뭐하고…….”
“아니, 문 지키는 데 그렇게 집착하더니 왜 이럴 때만 너그러워지는 거요?”
서덕이 자기 가슴을 툭툭 쳤다.
“여기도 문 있잖아. 마음의 문. 이게 열린 걸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