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342
342화
그날 밤.
문상은 백도맹을 나오려던 상단 대표를 만났다.
상단 대표가 다소 머쓱해하며 말했다.
“이해해 주십시오. 우리가 타지로 상행을 가는 목적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함인데, 중간에 통행료로 다 털리면 남는 게 없잖습니까. 그럼 결국 동네 장사밖에 못 하는 겁니다.”
“실망했습니다. 본 맹에서 밀어 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림맹이 밀어줘도 한계가 있지요. 저만 해도 하루에 짐차를 많으면 백 대까지 부려 전국으로 보내는데, 그걸 무림맹에서 다 맡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본 맹에 소속된 표국이 많이 있습니다.”
“무림맹 소속 표국은 대개 큰 문파나 세가의 가업이라 비싸고, 작은 짐은 맡아 주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자기들 가문에 일이 생기면 표국 문을 닫고 다들 싸우러 가지요. 전쟁 중에도 장사를 해야 하는 저희로서는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게다가 뭐…… 아까 분위기를 보면 녹림은 무림맹을 두려워할 것 같지도 않고.”
상단 대표는 거듭 허리를 숙여 사과하곤 부리나케 떠났다.
백도맹을 분열시켜서 빈껍데기로 만들려던 계획은 이제 물 건넜다고 봐야 했다.
문상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저 족속들은 본인들이 한 말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군.”
설마하니 허윤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정파란 놈이 제 이익 때문에 녹림과 손을 잡다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천가만호와 소림사 속가가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문상은 방 안을 계속 서성거리면서 생각에 골몰했다.
“연백룡이 생각보다 쉽게 넘어오진 않으나, 그는 협의심이 아주 강하니 회주가 사파나 마도와 관계가 있다고 계속 부추기면 결국은 이쪽으로 올 것이다. 그리고 속가 쪽이야 워낙 백룡장에 대한 반감이 심하니 별다른 걱정이…….”
탁!
한창 중얼거리던 문상은 갑자기 지독한 통증에 온몸이 굳었다.
새끼발가락을 탁자 다리에 박았다.
하필 연하디연한 사슴 가죽으로 만든 고급 신발을 신고 있었다.
“끄으으윽……!”
문상은 눈물까지 찔끔 흘리면서, 주저앉아 발가락을 움켜잡았다.
외공 수련은 멀리하고 내공에 치중한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애처럼 발가락이 아파 고생할 줄이야!
짜증이 나서 탁자의 다리를 봤는데, 단단하기로 유명한 흑단목이었다.
물에 가라앉을 정도로 무겁고, 수련용 목검으로 만들 만큼 딴딴하다.
저번에 소림사 속가들이 쳐들어왔을 때 가구가 많이 상했다더니, 아예 단단한 걸로 다 다시 맞춘 모양이었다.
“끄응, 끙…….”
하여간 이놈의 백룡장은 재수 없는 것들 천지였다.
회주 허윤은 물론이고, 인상도 더러운데 말까지 이상하게 하는 그 두 놈을 포함해서.
* * *
연백룡이 허윤을 찾았다.
포권으로 인사를 한 뒤, 크게 결심한 투로 청했다.
“한 가지 상의드릴 일이 있어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허윤이 순순히 연백룡을 맞이했다.
“혹시나 싶었는데, 연 대협이었소?”
기다린 듯한 말투였다. 연백룡이 방으로 들어가니 찻잔이 두 개 놓여 있었다.
“역시 제가 올 줄 아셨군요. 그렇다면 혹시 온 이유도…….”
“모르오.”
“예? 그건 모르십니까?”
“속마음은 말 안 하면 모르지. 혹여 알아도 행동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이고.”
“아아, 네.”
고개를 끄덕이던 연백룡은 문득 방에서 묘한 혈향을 느꼈다. 하여 슬쩍 방을 살피니 벽 쪽 탁자에 피로 글자를 쓴 게 보였다.
“저건…… 무엇입니까?”
“아, 혜석 대사의 코피가 한참 안 멈추기에 좀 얻어 와 봤소. 기다리기 심심해서. 저게 인혈필로 쓴 건데…….”
살인마의 털로 만든 붓인데, 사람의 피로 이름을 쓰면 상대에게 흉사가 찾아간다는 귀물이다.
허윤은 말을 하다 말고 문상을 생각하며 ‘흐흐’ 하고 음침한 미소를 흘렸다.
“제갈…… 뭐라고 쓰여 있는 듯합니다만.”
“그런 사람 있소. 연 대협도 잘 아는 사람.”
연백룡이 피로 쓴 글자에서 관심을 거두고 포권했다.
“대협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알아보니 훨씬 웃어른이시더군요. 일전에 제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냥 편히 아들처럼 대해 주십시오.”
“…….”
허윤이 묘한 낌새를 느끼고 연백룡을 보았다.
“그게 하고 싶던 말이오?”
“아, 아닙니다. 사실 제가 여기 온 건, 천가만호의 연합맹주를 제의받은 것 때문입니다.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런 제의를 수락해도 될지, 혹여나 수락했다가 제가 실수하여 잘못된 일이 생기면 어찌해야 할지…….”
“점을 보고 싶다?”
“어, 음…… 그래도 될지…….”
“하지만 그건 점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오. 일단 귀하의 관상을 보니 관운은 있는 듯하여 문제는 없을 거요.”
“만일 맹주가 된다면 앞으로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가 상당히 많겠지요?”
“많을 거요. 혼자 결정하지 말고 현명한 사람들의 말을 듣고 결정하시오.”
그러자 연백룡이 바로 포권을 했다.
“하여 부탁드리건대, 허 대인께서 제게 조언을 해 주십사 하고 찾아온 것입니다.”
엥? 내가?
천가만호의 중요한 결정을 자신에게 물어서 결정하겠다고?
그건 사실상 허윤이 연백룡을 통해 천가만호를 좌지우지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백도맹에, 녹림에, 천가만호까지.
이러면 도진이 낸 점괘가 거의 들어맞은 셈이다.
마치 분열된 것처럼 보이나, 모이는 형상입니다.
이 파국을 극복하는 답은 기울어진 균형, 즉 권력입니다.
허윤은 막연하게 예상했음에도 실제로 이리 와 닿으니 머리가 멍해졌다.
“장…… 아니, 대인께서 부담스러워만 하지 않으신다면 앞으로 자주자주 찾아뵙겠습니다.”
“뭐, 부담이랄 것까지야 있나. 평생 해 오던 일인 것을.”
“정말 다행입니다! 이제 보니 대인의 별호가 백룡인 것도 하늘의 운명인 것 같습니다. 하하하!”
호탕하게 웃은 연백룡이 슬쩍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도연 소저는 이 시간이면 자고 계시겠지요?”
연백룡이 허윤의 일에 자꾸 편을 들었던 이유가 표정에서 드러났다.
* * *
번산은 한 노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노인이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고얀 놈. 무림인이 되겠다고 가문의 역작을 들고 가출하더니, 무슨 염치로 돌아왔느냐.”
번산이 답했다.
“돌아온 게 아닙니다. ‘그것’을 잠시 빌리고자 왔습니다.”
“못된 놈 같으니라고. 썩 꺼져라.”
번산은 바닥에서 노인의 다리를 붙들고 질질 늘어졌다.
“할아버님, 할아버님! 그게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그게 있어야 회주가 곤란하지 않게 됩니다.”
“아, 아니, 이놈이 왜 이래? 예전에는 안 이러더니. 너 면에 살고 면에 죽는 놈 아니었냐?”
손자의 뻔뻔함에 노인이 당황했다.
“놔라. 놓으라고, 바지 벗겨진다! 이놈이 대체 어디서 뭘 했기에 비렁뱅이가 다 되어 가지고 돌아왔어?”
“안 주시면 못 갑니다!”
“그거 주면 집으로 와서 가업을 이을 테냐? 너더러 칼 만드는 대장장이가 되라 했더니, 그 칼을 가지고 사람에게 휘두르느냐?”
“당장은 못 옵니다. 하지만 일이 마무리되면 정식으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달라진 손자의 모습에 노인은 궁금증이 샘솟았다.
“그래서, 네가 모시는 사람이 누구라고?”
“백룡선생이십니다.”
노인이 깜짝 놀랐다. 당금의 강호에서 백룡선생을 모르는 이가 있을 리 없었다.
“네가?”
“예.”
“거기서 뭐 해?”
“이제까지 한 게 없어서 심부름이라도 잘해야 합니다.”
노인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툭 하고 던지듯 말했다.
“백룡회면 여기서 집이 멀지도 않은데, 이제껏 얼굴 한 번 안 비추고. 고얀 놈.”
그러더니 뒷짐을 지고 말했다.
“알았다. 주마. 하지만 이건 네게 주는 게 아니라 백룡선생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번산이 기뻐했다.
“고맙습니다, 할아버님. 이왕 주시기로 했으니 빨리 좀 주십쇼.”
* * *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 결전의 날이 왔다.
사상 초유의 머리 대결이었다.
그 때문에 둘째 날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몰렸다.
거기엔 놀랍게도 화산파의 장로 아운과 멸문한 청성파의 해송 도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해송 도장 아니십니까?”
해송 도장이 눈을 거진 다 덮은 눈꺼풀을 들어 올려 아운을 쳐다봤다.
“이게 누구야. 본산을 뺏긴 동지 아닌가?”
둘이 껄껄 웃었다.
“아니, 후학 양성해서 청성파 재건할 생각은 안 하시고 여길 다 오셨습니까.”
“자네야말로 본산을 되찾을 생각은 안 하고 뭐 하나.”
“본산은 나중에 찾으면 되지만, 이런 건 살아서 다시 못 볼 구경 아닙니까.”
“나도 그래서 왔다네.”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얘기를 듣자 하니, 어제 이미 전초전을 펼쳤다더군. 허 선생은 멀쩡했는데 혜석 대사가 코피가 났다고.”
“방어 입장이니까 그랬지, 공격 입장이면 또 달랐겠지요.”
둘은 경기를 보러 온 것처럼 행동했지만, 주변인들은 이미 그들이 허윤을 위해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림사가 승복하지 않거나 문제가 생길 경우, 그들이 나서서 막아 줄 터였다.
호천이 얘기했던 ‘제대로 된 명사’ 역할을 하러 온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악가장과 남악십삼파, 남궁가 등에서도 사절을 보내 확실히 허윤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대결 그 자체보다 거기에 얽힌 정치적인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허윤은 고마웠으나, 이미 대결 자리에 선지라 가벼운 눈인사로 대신했다.
진법이 모두 치워진 넓은 마당 한가운데에 허윤과 혜석, 그리고 연백룡이 서고, 참관객들이 그 주위를 빙 둘러 자리했다.
특히나 일부 자리는 상당수가 뒤통수에 고약을 붙인 이들이 선점해 있어서, 그들이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백룡회의 특별고문이지만 중도 성향이 강한 약왕이 진행을 맡았다.
약왕이 사람들을 향해 포권으로 인사했다.
“멀리에서부터 와 주신 내외빈 여러분께 감사드리면서, 오늘 이 자리에 대한 개요를 먼저 설명하도록 하겠소이다.”
그때, 무슨 전음을 들었는지 약왕의 귀가 쫑긋하더니 얼굴이 경직됐다.
약왕이 정색하며 말했다.
“시작하기 전에, 약 선전을 하겠소. 백룡장의 특산품인 만병통치약인데 대량으로 사실 분은 뒤에 강서 상회에서 대기하고 있으니까 이용하시고, 가판대가 마련되어 있으니 낱개로도 …….”
약왕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얼굴이 벌게져서는 백룡회 쪽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다들 장용과 쾌도처럼 눈을 말똥거리며 무슨 일이 있냐는 듯 모른 척하고 있었다.
약왕은 할 수 없이 약 선전이 다 끝나고 나서야 싸우게 된 이유와 현재까지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허 회주가 질 경우 앞으로 백룡장은 소림사의 분부를 거역하지 않고, 혜석 대사가 질 경우 소림사는 백룡장의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기로 합니다. 또한 백룡 소협은 천가만호의 대표로서, 패배하게 되면 일전의 일에 대해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이외다.”
청중이 물었다.
“세 사람인데 대결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약왕이 답했다.
“물론 서로 머리로 들이받아 겨루는 것이 가장 깔끔할 거요. 하나 셋이면 순서 때문에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무엇보다, 여차하면 상대 머리를 터뜨려서 곤죽으로 만드는 모습이 모든 이들의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질 수도 있었다.
당사자들은 죽음을 각오해서 괜찮다고 하나, 남은 이들은 그렇지 않다. 비무를 하다가 죽어도 문제인데, 끔찍하게 죽으면 그것 자체로 최악이다.
약왕이 말을 이었다.
“서로 해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단단함을 겨루는 것이니, 불상사를 막기 위해 개별적, 단계적으로 시행할 것이오.”
이후 일꾼들이 손수레를 밀고 왔다.
거기에는 온갖 것들이 다 실려 있었는데…….
나무 몽둥이로 시작해서, 돌, 칼, 쇠스랑, 곡괭이 등이 종류별로 준비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저걸로 머리를 칠 건가 봐.”
“엄청 살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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