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407
407화
제갈예가 부탁했다.
“쉬운 일이 아니란 건 압니다. 저들은 비주를 계속 외워야 하니 어지간해서는 대꾸를 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하나, 반드시 알아 와야 합니다.”
장용과 쾌도가 기가 찬 듯 ‘허!’ 하고 탄성을 냈다.
“어떻게 알았어?”
“존성대명이 또 우리 전문이잖아.”
그런 게 전문이 다 있었나…….
곧 둘이 장내를 둘러보더니 무명자를 찍었다.
“아까부터 저 영감이 좀 만만해 보이더라고.”
그러곤 그쪽으로 달려갔다.
제갈예는 말리려 했다.
무명이란, 이름이 없다는 뜻이다. 공명심이 너무 강해서 보통의 명판은 눈에 차지도 않으니 아예 이름을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무명자의 본래 이름을 알아내는 게 제일 쉬워 보인다고?
무명자는 계속 주문을 외며 도귀를 몰아붙였다.
사악!
그가 현란한 도법으로 도귀의 뺨을 긋는 순간, 도귀가 중지로 무명자의 도 옆면을 때렸다.
떠엉!
도가 크게 진동하며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금이 갔다.
무명자는 속으로 감탄했다.
‘과연 한때 적수가 없었다고 말할 만하구나!’
공격을 할 때 집중을 위해 아주 잠깐 비주법을 멈추는데, 그 짧은 사이에 내공을 그러모아 도를 노려 후속 공격을 막는 것이다.
‘하나, 그 정도로 오래는 못 버틴다!’
이미 도귀의 몸에는 상처가 여기저기 나 있었다.
무명자는 계속해서 비주를 읊어 도귀의 집중력을 흔들었다.
“훔…… 나사리 사다바야 살발타 살발타…….”
도귀가 인상을 쓰며 거리를 벌리자, 무명자가 바로 따라붙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크게 소리쳐 물었다.
“무명자 형, 존성대명이 어떻게 되셔?”
완전히 도귀에게만 집중하고 있던 무명자는 순간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돌아볼 뻔했다.
찰나 비주법이 멈춘 틈을 노려 도귀가 눈을 번뜩이며 달려들 듯하자, 무명자는 부러진 도에 내공을 과격하게 집어넣어 도귀를 향해서 터뜨렸다.
꽝!
도귀가 급히 보법을 밟으며 피했다.
그사이 무명자가 이를 갈며 흘깃 뒤를 돌아봤다.
장용과 쾌도가 열 걸음 정도 떨어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저 새끼들은 한창 싸우고 있는데 뜬금없이 왜 이름을 물어봐?
무명자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자 둘을 무시하고 계속 비주를 읊었다. 중요한 건 도귀를 견제하는 것이다.
“다다나 훔…… 살바리…….”
“무명자가 이름인가?”
“그게 이름은 아닐걸.”
“근데 왜 대답을 못 하지? 이름이 없나? 노비 새낀가?”
“그럼 존성대명이 없을 수 있지.”
움찔.
“어? 방금 움찔했지.”
“그러게. 진짜 노빈가 본데.”
명예를 중시하는 무명자로서는 응당 화가 치밀었으나, 그렇다고 도귀를 두고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네놈들은 아주 고통스럽게 사지를 도려내 죽일 테니.’
무명자는 어느새 또 한 자루의 도를 구해 쥐고 도귀를 공격했다.
쉭! 쉭쉭!
무명자의 도법이 거세졌다. 도귀가 계속해서 밀렸다.
“노비 영감쟁이가 무공이 세네.”
“저건 무슨 무공이지? 노비 영감쟁이 검법인가.”
무명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공을 섬세하게 운용하면서 주술까지 외는 건 고도의 정신력을 요하는 일이다.
한데 신경이 쓰여서 참기가 어려웠다.
노비 영감쟁이는 또 뭔가.
자꾸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는 듯했다.
“저 저, 들으면서 안 듣는 척하는 거 봐. 음흉해 가지고.”
“노비잖아. 존성대명이 없어서 그래. 우리가 이해해 주자.”
무명자는 결국 확 고개를 돌려 장용과 쾌도를 노려보았다.
“이 새끼들!”
바로 쫓아가 죽이려고 했으나, 거리가 꽤 떨어져 있던 데다 둘의 눈치까지 빨라서 금세 멀어져 갔다.
그러더니 되레 화를 냈다.
“노비 영감쟁이 새끼, 엿듣고 나서 자기가 화내네.”
“존성대명만 없으면 단가?”
“크아아아아!”
쿵쿵!
무명자가 소리를 지르며 발을 굴렀다.
그러곤 도귀에게로 칼끝을 돌렸다.
“너부터 끝장을 내고 저놈들을 죽여야겠다!”
무명자가 도광을 뿜어냈다.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한 빛이 번쩍이는 가운데, 그 사이를 도기로 갈랐다.
도귀가 보법을 밟으려는 순간, 또다시 귓가로 웅얼거리는 주문이 들려오고 생소한 향이 풍겨 내공 운용을 방해했다.
내공이 깃들지도 않은 도경, 일개 종이 쪼가리 따위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쩌억.
도귀의 가슴에서 피가 튀었다. 도귀가 가슴을 붙들고 뒤로 주춤거리고 물러났다. 이번엔 제법 큰 부상이다.
무명자가 눈을 치켜떴다.
“어떠냐. 이것이 본좌의 마령참혼(魔令斬魂)이다. 네 파천일기격을 누르고 천하제일의…….”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세다 했더니 천하제일 노비 검법이었군.”
어느새 또 다가온 장용의 중얼거림이었다.
도귀를 도법으로 누르고 싶은 게 무명자의 욕심인데, 아까부터 자꾸 검법이라고 헛소릴 해 대니 짜증이 났다.
“이것들은 눈이 없나! 이게 어디가 검법……!”
한데 말을 하다 보니, 검법만 아니라고 부정하면 노비는 맞는다고 하는 꼴이 되는 것 같았다.
하여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찮구나, 벌레 놈들아. 말장난은 안 통한다. 끌끌끌.”
장용과 쾌도가 또 화를 냈다.
“못된 영감쟁이 새끼, 자기가 자기 입으로 노비래 놓고 왜 애꿎은 사람한테 벌레라고 지랄이야!”
울컥.
“내가 언제 그랬느냐, 끌끌끌.”
이를 지켜보고 있던 제갈예의 눈썹이 꿈틀했다.
만만하다더니…… 실패했나…….
어차피 글렀다고 생각했는지 장용과 쾌도는 무명자에게 막말을 퍼부어 댔다.
“재수 없는 영감쟁이. 그렇게 재수 없게 살다 뒈져.”
“퉤, 평생 노비나 하고 살아라.”
그러더니 몸을 돌리고 가 버리는 것이었다.
울컥울컥.
저 새끼들이?
계속해서 자신을 무시하는 둘의 행태에 결국 무명자의 눈이 돌아갔다.
“어딜 가느냐!”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푹 꺼지듯 사라졌다. 장용과 쾌도가 기겁해서 달아났다.
장용과 쾌도는 마당을 누비면서 무명자를 피해 다녔다.
우두두두두.
막빈자의 근처로도 지나갔다.
막빈자도 무명자가 실랑이 벌이는 걸 들어서, 상황을 대강 알고 있었다.
그가 낙락과 살짝 거리를 벌린 뒤에 지나가는 장용과 쾌도를 보고 껄껄 웃었다.
“정말 웃긴 놈들이로구나.”
장용과 쾌도가 지나가다 말고 비굴하게 말했다.
“웃기면 존성대명 좀.”
“껄껄껄, 네놈들에게 내가 왜 이름을 알려 줘야 하느냐.”
“그럼 닥쳐, 이 거지 새끼야!”
“뭘 웃기다고 처 웃어!”
울컥.
고수일수록 남에게 욕을 먹는 일이 흔치 않다. 하물며 마라왕은 서역에서 왕처럼 살아온 이들이었다. 두려움에 떨면 떨었지, 자기들을 함부로 대하는 자는 없었다.
하여 막빈자도 눈이 뒤집혀서 장용과 쾌도를 쫓아갔다. 덕분에 낙락과 안소방은 한숨을 돌렸다.
“저놈들은 내가 죽인다.”
“아니, 내 거다.”
“하나씩 하지.”
“아니, 둘 다 내가 죽인다!”
“그럼 내가 먼저 다 죽여 버리면 되지!”
장용과 쾌도가 무명자와 막빈자를 달고 뛰었다. 갈지자로 뛰고 갈라지고 해도 완전히 떼 놓을 수가 없었다.
둘은 서서히 따라잡혔다.
“그만 따라와, 개새끼들아! 존성대명도 없는 새끼들이!”
“야, 야! 문상! 어떻게 좀 해 봐!”
장용과 쾌도 등이 번뇌마의 근처를 지나갔다.
번뇌마가 서덕을 발로 차서 나동그라지게 한 뒤 그쪽을 보았다. 그러더니 휙! 하고 바람처럼 움직여 순식간에 장용과 쾌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곤 아직 펴지 않은 주먹을 들었다. 여전히 동전의 앞뒤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네놈들은 아직 죽을 수 없다. 여기, 네놈들의 운명이 있…….”
장용과 쾌도가 좌우로 갈라졌다.
그 뒤를 쫓던 무명자와 막빈자가 갈등하는 얼굴로 번뇌마에게 욕을 했다.
“왜 앞을 막았느냐!”
“놈들이 갈라졌잖아!”
번뇌마도 눈을 치켜떴다.
“놈들은 내가 먼저 찍…….”
그 순간.
딱!
청명한 타격음과 함께 막대한 기의 파동이 일렁였다.
번뇌마와 무명자, 막빈자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바람이 위에서부터 호선을 그리며 날아와 그들에게 내리꽂혔다.
콰드드드드드―!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허윤이 계속해서 두풍을 날렸다.
쾅! 콰앙! 쾅쾅!
제갈예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힘껏 쥐었다.
“정통으로 맞았다!”
땅거죽이 뒤집히고 흙모래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마당 한쪽이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
장용과 쾌도가 맡은 바 일은 제대로 해내지 못했지만, 유인에는 성공했다. 이러면 어쨌든 싸움은 이긴 것이…….
“후…….”
“이게 그 살인두풍이라는 거냐?”
“제법 매콤하구나. 어떻게 머리통으로 이런 강력한 공력을 일으킨 게지?”
세 마라왕이 사방으로 흩어져 호신강기를 두른 채 서 있었다. 옷 상의가 죄다 찢기고 살이 벌게졌으나, 놀랍게도 그 외엔 거의 피해가 없었다.
제갈예의 안색이 하얘졌다.
“살인두풍도 안 먹혀?”
한두 대 정도만 맞고 나머진 피한 듯했다.
돌을 쥐고 있던 허윤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손에 들린 돌이 조각조각 깨져서 박힌 것이다.
제갈예는 금세 깨달았다.
허윤의 늘어난 내공을 돌이 감당하지 못했구나!
그렇다고는 쳐도 살인두풍을 맨몸으로 받아 내다니.
허윤도 같은 생각인 듯, 세 마라왕을 잠시 지켜보며 허탈한 감탄성을 냈다.
“남십자성의 성주들도 내 두풍에 죽었소. 아무렴 십 할 공력을 모두 담아내지 못했다고는 하나, 두풍이 이 정도로 통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구려.”
막빈자가 크게 웃었다.
“당연하지! 우리가 비주법에만 의존하고 있는 줄 아느냐? 남십자성 따위에 우릴 비교하면 안 되느니.”
무명자도 웃었다.
“네 살인두풍은 서역에서도 들었다. 소문이 허풍은 아니었군. 상대가 우리가 아니었다면 천하를 노려볼 수도 있었겠지.”
번뇌마도 흐흐하고 실소를 흘렸다.
“솔직히 대단하구나. 그래도 중원에서 만난 것 중엔 가장 나았다. 죽이는 재미가 있겠어.”
허윤이 감읍한 듯 정중히 손을 모아 읍을 했다.
“백도맹주 허윤이오. 노 선배들께 감탄했소. 특히 고왕삼 선배의…….”
“고왕삼이 누구냐?”
“거기 선배가 고왕삼 아니오?”
막빈자가 인상을 썼다.
“고왕삼이 아니라 초금송이다.”
“초나라 초 자에 금 금 자, 소나무 송 자요?”
“그렇다.”
허윤이 고개를 갸웃하며 번뇌마를 쳐다봤다.
“이상하구료. 그쪽 번뇌마 선배가 초금송인 줄 알았는데.”
번뇌마가 코웃음을 쳤다.
“사람 이름을 순 엉터리로 외고 있구나. 나는 종무혼이다.”
오가는 말을 듣고 있던 무명자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이름을 남기는 건 분명 무림인으로서는 명예로운 일이다. 그러나 아까부터 자꾸 이름을 캐묻는 게 영 수상쩍었다.
하여 무명자는 허윤이 물어도 대답하지 않으려 했다.
“이놈, 무슨 수작을 부…….”
허윤이 손을 들어 만류했다.
“아, 잠깐 기다려 보시오.”
그러곤 붓을 손바닥에 찍더니 종이에 뭘 적었다.
“초…… 금…… 송. 종무…… 혼……. 종 종 자에 없을 무, 혼 혼?”
번뇌마가 화를 냈다.
“천간 무 자다!”
“아아, 미안하외다.”
그리곤 허윤이 고개를 들고 무명자를 쳐다봤다.
한데 묘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내 이름은 안 묻느냐?”
허윤이 흥미 없다는 듯 시큰둥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뭐, 그다지.”
울컥.
스스로 번뇌마, 막빈자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 없는 무명자였다. 한데 지금 허윤은 마치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아닌가!
이놈도 나를 노비로 알고 있나?
“이노옴! 죽기 전에 똑똑히 기억해 둬라. 본로의 존함은 방태이니라. 양양 방씨에 클 태 자.”
“양양 방씨면 클 방 자?”
“맞다.”
“이제 보니 한나라 형주 사람이셨네.”
무명자가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었다.
“흥. 이제 본로가 노비 같은 게 아니란 걸 알겠느냐?”
“아이고, 고맙소.”
허윤이 글씨를 마무리 지었다.
“다 됐다.”
무명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물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뭘 그리 쓰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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