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70
70화
오륭이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좀 문제로군. 일이 잘 안 풀리는 정도가 아니라 이 조장의 안위에까지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면.”
양 책사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천지조화를 아우르는 우리 허 방사의 점괘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
허윤은 어리둥절했다.
양 책사가 이어 말했다.
“어느 쪽이든 우리 청랑조는 이미 출발했고, 이진휘 서기의 방안은 실패한다 하니 이 건으로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이진휘가 주장했다.
“아닙니다!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쓸모없는 짓이래도.”
“한번만 믿어 주십시오!”
“……?”
허윤이 훠이훠이 손을 내저었다.
“저기, 싸울 거면 딴 데 가서 싸우십쇼들. 왜 찾아왔는지 말도 없이 남의 시간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오륭이 허윤을 달랬다.
“그러지 말고 얘기를 들어 보게.”
“얘기를 해 주셔야 듣지요.”
“표행을 나갔던 일 조의 조원들이 표물과 함께 산적에게 붙들렸다고 연락이 왔네.”
허윤이 의아해했다.
“제가 배제한 임무 중에 그런 게 있었습니까?”
“아니. 이번 임무가 아니라 지난번에 간 표행인데, 중간에 잡혀 있다가 이제야 산채에서 연락이 온 걸세.”
오륭이 말했다.
“자네가 예전에 이 조장에게 생사망연의 점괘를 뽑아 주지 않았는가. 그 점괘가 이 일을 예견하는 것이었던 듯싶네.”
허윤은 이진휘를 쳐다보았다. 이진휘가 모르는 척했다.
아아, 그때?
뭘 조심해야 할지 글자를 뽑아 알려 주겠다고 했는데 끝끝내 이진휘가 싫다고 했던 때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맞췄어?’
뭐 이렇게 잘 맞아.
왜 무슨 말만 하면 다 맞아?
허윤이 입맛을 쩝 다시며 말했다.
“점괘는 제가 뽑았으나 이미 지난 일이야 어쩔 수 없습니다.”
“알고 있네. 사실 녹림도 정마대전이 대목일세. 무림맹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는 때라, 적당히 한 몫 뜯을 기회거든. 마도에 녹림까지 적으로 돌리기는 서로 부담스러우니까 말일세.”
하기야 그게 백도맹이 창설된 계기 중 하나였다.
“표행 중에는 적당히 금전을 주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들었는데, 아예 표물을 강탈해갔다는 건…… 이 기회에 몸값을 좀 높여 보겠다, 이득을 취하겠다. 뭐, 그런 심보겠군요.”
“그렇지. 그래서 보통은 표물을 회수하러 가서 협상을 하게 된다네. 다만 그 와중에 인명 피해가 심하게 난다거나 요구 금액이 너무 높다거나 하면, 그때는 상대가 선을 넘었다 판단하고 우리도 철저하게 보복하네.”
그래서 청랑조를 담당했다는 양 책사가 함께 온 모양이었다.
“이 조장은 가서 협상을 하고 양 책사님의 청랑조는 뒤에서 협상 결렬을 대비하고. 그럼 딱히 제가 도와 드릴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양 책사님은 아예 협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시네. 자꾸 백도맹을 건드리는 자들이 많으니 이 기회에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지.”
“그러니까, 협상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점을 보러 오신 겁니까?”
“그렇지.”
양 책사가 말했다.
“하지만 방금 허 방사가 이 조장을 보고 말했잖은가. 급사할 수 있다고. 그럼 이 조장의 협상은 결국 실패한다는 뜻인 거지. 어차피 실패할 바에는 어설프게 저자세로 나가는 것보단 내 말대로 아주 끝장을 내 버려야 우리를 무르게 보지 않을 걸세. 그래야 시비도 훨씬 줄어들 것이야.”
이진휘가 주장했다.
“청랑조의 무력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만, 산채 하나에서 끝나지 않고 녹림이 개입하면 자칫 문제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우선 제게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반드시 협상을 해내겠습니다. 산채를 공격하는 것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허윤은 오륭을 힐끗 보았다가 이진휘와 양 책사를 차례로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점 봐 드려요? 말아요?”
이진휘와 양 책사가 동시에 반발했다.
“나는 미신이나 점을 안 믿는 사람이야!”
“이미 나온 얘기를 뭘 또 점을 치는가?”
어쩌라고.
그때, 허윤의 눈에 양 책사의 얼굴이 들어왔다.
얼굴 안색은 거뭇했고 눈빛은 탁했으며, 눈 안의 실핏줄은 터져서 빨갛게 보였다. 특히 이마에 있는 작은 점 같은 사마귀가 유독 도드라져 있었다.
“하아.”
허윤은 한숨을 쉬었다.
“이만한 징조가 보이면 무시하려 해도 할 수가 없잖아.”
양 책사가 물었다.
“징조라니. 무슨 말인가?”
“양 책사님. 어제 술 자셨습니까?”
“뭐? 요즘 같은 때에 무슨 술을 마신단 말인가.”
“이마에 사마귀는 언제 생기셨습니까?”
양 책사가 얼떨떨한 얼굴로 자기 이마를 만져 보면서 대꾸했다.
“사마귀가 무슨 상관인가?”
“이마의 사마귀는 위치에 따라 일을 방해하는 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흥. 하지만 이건 아주 예전부터 있던 걸세.”
“예전부터 있었대도 지금이 바로 운을 방해하는 그때요.”
양 책사가 얼떨떨해했다.
“그게…… 보인다고?”
양 책사가 자기 이마를 더듬거렸다.
“눈빛도 불안해 보입니다. 뭐 말하지 않은 거 있습니까?”
양 책사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리고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지 있는지는 점을 쳐 보면 알 겁니다.”
양 책사가 잠시 생각하더니 동의했다.
“그럼 점을 쳐 보시게. 이번 임무가 어찌 될지. 어디 이번에도 맞는지 두고 봄세.”
“거, 자꾸 점치는 걸 시험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점은 그냥 점입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할 수 있습니다.”
“누가 모르나. 잘 맞으니까 하는 말이지.”
“뭐, 저도 그렇습니다.”
이진휘가 허윤을 쳐다보았다.
허윤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한번 웃어 보인 후 점구들을 준비했다.
* * *
“점괘는 천풍구(天風姤)의 괘로, 뜻밖에 좋지 않은 일을 만나게 되는 운세입니다.”
허윤이 설명했다.
“초육의 효사는 계우금니 정길(繫于金柅 貞吉)이라 쇠말뚝에 단단히 묶어 두면 이롭고, 유유왕 견흉(有攸往 見凶)이라. 그냥 진행하면 반드시 흉한 꼴을 보게 되지요. 특히 계우금니에서 금니(金柅)라는 것은 수레바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쇠로 만든 고정목을 의미합니다.”
양 책사가 뒷말을 받았다.
“수레바퀴를 고정하여 나아가지 않아야 이롭다? 수레바퀴가 나아가면 흉하다? 수레바퀴가 통상 일의 진행을 의미한다면, 이번 임무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건가?”
허윤이 점괘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겉으로 드러난 뜻은 그리합니다. 또 뒷부분의 해석에 이시부척촉(羸豕孚蹢躅)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건…….”
양 책사가 말했다.
“이시부척촉은 성질 나쁜 돼지가 날뛸 기회를 엿보며 머뭇거리는 꼴을 일컫지. 즉, 임무를 진행하면 못된 것들이 날뛰어 실패할 거라는 얘기로 보이는군.”
허윤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맞습니다. 이 점괘가 나오면 잠시 중단하고 기다리는 게 좋습니다.”
“안 돼!”
이진휘가 외쳤다.
“벌써 청랑조가 출발했다니까? 그리고, 우리 조원들이 잡혀 있다고! 그런데 무슨 내실을 다지고 기다리라는 거야? 다 죽고 움직이라고?”
양 책사도 참견했다.
“표물을 훔쳐 간 산채의 위치와 인원은 전부 파악됐네. 우리 쪽의 무력이 산채의 전력을 상회해. 일이 잘되지 않을 어떤 이유도 없네.”
“점괘는 그렇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허윤도 왜 이런 점괘가 나왔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이것이 전쟁 중에 나온 점괘라면 공격 측은 포위를 더 굳게 강화하고 잠시 숨을 고를 것이요, 수비 측은 평소보다 더욱 굳게 빗장을 걸고 지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점괘는 이번 임무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있다.
표물을 찾고 표사와 일 조 조원들을 구해 와야 하는 임무인데,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지키고 있으라니.
“그냥 두 분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일이 해결될 겁니다. 아무것도 안 해야 길합니다. 즉, 그냥 버티고 있으면 이번 일이 해결될 거라는 의미로 보는 게 타당한데…….”
허윤이 물었다.
“왜일까요?”
양 책사가 멀뚱히 답했다.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나.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누군가 공을 가로채기나 하겠지.”
이진휘가 눈을 치켜떴다.
“그렇군요! 우리에게는 가만히 있으라 해 놓고 허 조장이 임무를 가로채서 자기가 공을 세우려는 셈인 겁니다!”
“난 공명에 관심이 없어. 할 일도 많다고.”
“고정쇠라는 게 본인을 말하는 거 아닌가? 자기가 고정쇠가 되겠다는 거지. 그랬다가 나중에 우리가 따지면 본인이 이번 일을 맡아야 일이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우기겠지. 아니야?”
“아니야. 오해일세.”
하지만 이진휘는 믿지 않았다. 이진휘가 씩씩거리며 허윤을 노려보았다.
“책사님이 허 조장의 못된 심보를 빨리 알아채셔서 다행입니다. 허 조장은 속이 아주 엉큼한 사람입니다. 하마터면 속을 뻔했습니다.”
양 책사가 작게 코웃음을 쳤다.
“자네가 뭐라고 말해도 좋으나, 나를 끌어들이진 말게. 나는 허 조장이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어. 어차피 이미 청랑조는 출발했다니까.”
이진휘가 항의했다.
“잠깐만요! 어떻게든 기다리게 해 주십시오! 협상을 할 여지는 주셔야지요!”
“벌써 출발한 걸 이제 와 어떻게 멈추나. 지금이라도 뒤쫓아 가든가. 걸음을 서두르면 얼추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진휘가 급히 오륭에게 부탁했다.
“서무관님!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가게 해 주십시오!”
“지금? 하지만…….”
오륭이 허윤의 눈치를 살폈다.
“허 조장이 이 조장의 안위가 좋지 않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걸 알면서도 보내기는 좀 내키지가 않네.”
“허 조장의 점괘는 엉터리라니까요!”
“아까는 잘 맞는다고…….”
그때 양 책사가 끼어들어 한마디를 더했다.
“오륭 서무관. 이 둘을 다 보내면 어떻겠는가.”
“허 조장까지 말씀이십니까?”
“허 조장이 공명심에 일을 그르칠까 봐 못 미덥기는 하나, 그의 점괘까지 무시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임무를 누가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쨌든 누구라도 성공해서 포로들을 구해 와야 하니 말일세.”
“음.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허윤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전 할 일이 있습니다만.”
그런데 문득 아까 들었던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젊은 사람이 죽을 조짐이라…….’
허윤이 다시 이진휘를 보았다. 이진휘의 얼굴에서 코끝에 종기를 짠 흉터만 보인다. 아무래도 이진휘의 관상에 보이는 흉사가 마음에 걸렸다.
“하…….”
별로 친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하필이면 요즘 점괘가 잘 맞아 가지고.
“에잉.”
허윤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자네가?”
“어차피 저희 조는 아직 임무 중이고 하니, 함께 가 보겠습니다.”
이진휘가 반대했다.
“나는 싫다고!”
“코끝에 종기만 아니었어도 안 갔네. 까마귀도.”
“까마귀는 또 뭐야!”
허윤이 손을 내밀었다.
“그건 그거고. 복채.”
“싫어! 이젠 안 줄 거야!”
“점을 봤으면 복채를 내야지.”
곁에 있던 양 책사가 동전을 꺼냈다.
“여기 있네. 이 조장의 것까지 내가 내주지.”
짤그락.
한데 그 순간, 양 책사의 입가에 아주 살짝 미소가 스쳐 간 것처럼 보였다.
허윤은 돈을 챙겼지만 뭔가 찜찜했다.
왠지 당한 기분인데…….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