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68
제168화
곯은 배에 죽이 들어갔다. 수일에서 십수일 만에 받아들이는 미죽에 위장은 작게 경련했고, 배는 미죽의 온기로 따스했다.
배곯던 사람들은 길목에서 나와 거리 구석에 앉아 낡은 나무 그릇을 들고 곡식과 육포를 넣고 끓인 죽을 마셨다.
한 여인이 끓는 솥 앞에 엎드려 울었다. 누가 자기 그릇을 뺏으려 해 실랑이를 벌이다 그릇을 엎었더랬다. 그래서 한 모금도 음식을 먹지 못했더랬다.
여인은 한참이나 배곯은 듯 깡말랐고, 안색은 파리했다. 그래서 여인의 울음은 아이를 잃은 모친의 것처럼 처량했다.
이언은 그릇을 가지고 길목을 벗어나지 말라 하였고, 배부른 용병을 길목 여기저기 배치했다. 그러자 남의 그릇을 탐하는 사람이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은 성녀 알라실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알라실은 마르할과 함께 별장 지붕 위에 있었다.
길목마다 장작 타는 연기와 커다란 솥이 뿜어내는 수증기가 뒤섞여 올라왔다.
“식량을 푸는 건 좋지만요. 꼭 제 이름이었어야 했어요?”
“그게 메라를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으니까요. 미안하게 됐어요.”
“미안한 줄 아니까 용서해 줄게요.”
성녀의 이름이 유명해지면 좋은 게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름이 알려진다는 건 좋은 일이다.
역사의 축적에 중요한 요인은 두 가지가 있다.
개인의 재능.
주변인의 존재.
용사는 인류 탄생 이후 한 번도 없었고, 이후로도 없을 재능으로 하늘을 갈랐다.
검을 잡고 하루 만에 철을 가른 비상식과 비정상의 끝을 달리는 재능.
반면 용사 일행의 나머지 넷은 차근차근 역사를 쌓았다.
성황국 출신 성인은 고행 사제로서 수많은 사람을 치료했고, 마법사는 므에트 제국이 므에트 왕국이라 불리던 시절부터 키운 실라나티엘의 역사를 가졌다. 도둑은 수십 년을 활동하며 동부 전역에 악명을 떨쳤다.
그 역사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리 쓰일 것이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한 남자가 검을 휘둘렀다.
-성황국 출신 사제는 수천 명의 사람을 치료하며 성인이라 불리었다.
-실라나티엘 가문에 한 여아가 태어났다.
-한 명의 도둑으로 동부의 귀족과 상인, 그리고 유명 유파들이 골머리를 앓았다.
그리고 오늘 일을 한 줄로 기록하면 이러하리라.
-성녀의 자비로움에 악덕한 지주들이 감동하니, 경계의 배곯은 자들의 입으로 한 모금 미죽이 들어갔다.
네루 황녀도 식량을 푼다고 했다.
최소 세 개 도시의 곳간이 열렸으니, 미죽을 먹은 사람만 수만이고, 성녀의 이름을 듣는 사람은 십수만도 넘을 테니, 알라실은 이제 진짜 성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때요? 변화는 느껴져요?”
“오늘 아침 환자를 보는 게 평소보다 편하긴 했어요. 속도도 빨랐고요.”
“앞으로 더 편해질 거예요. 더 빨라질 거고요.”
“가짜 소문으로 진짜 영웅을 만들 수 있다면, 왜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을까요?”
“없었을 것 같아요?”
마르할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건 성황국에서 교육받으면서도 못 들었어요.”
“비슷한 시도는 많았지만, 성공 사례는 한 손에 꼽아요. 가짜라곤 해도 이미 존재하는 소문과 사건이에요. 남의 역사를 빼앗는 게 쉽겠어요?”
역사 잇기, 아니, 역사 뺏기.
알라실이 짊어지고 있는 업이다.
에고만의 이름을 쓰는 것만으로 성인의 역사를 이어받을 수 있다면, 교황청이 수백의 실험체를 폐기하는 일도 없었다.
“그럼 저는요?”
알라실은 마르할과 알레스를 설득하지 않았다. 네루와는 얼굴만 본 게 전부다.
“이건 반쯤 진짜니까요. 알레스는 죽기 싫으면 메라 말에 따라야 하고, 네루 황녀랑도 만났다면서요?”
“마르할, 당신은 어때요? 제 자비에 감동했어요?”
“네, 감동해서 교회에 헌금도 내고 싶어졌어요.”
알라실은 눈을 흘겼다.
그녀가 교회를 싫어한다는 걸 빤히 아는 마르할이다.
기대한 답이 나올 거라곤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어쩜 저렇게 사람 속을 긁는 말만 하는지.
“차라리 저한테 주세요. 성녀인 제가 잘 쓸 테니까요.”
“성직자가 개인적으로 돈을 받으면 횡령 아니던가요.”
“성녀한테 누가 횡령죄를 뒤집어씌우겠어요.”
“뒤집어씌우는 게 아니라 진짜 횡령인데.”
“에라이, 나쁜 자식아!”
알라실이 지붕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마르할도 그녀와는 다른 방향으로 지붕에서 내려왔다.
경계는 일단 안정되겠지만, 서부로 소문이 퍼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마르할이 가진 땅이 모두 안전해진 건 아니다. 그리고 마린의 토지도.
서부 전체가 안정될 때까지 마르할은 쉴 수 없다.
사실, 천하를 담은 땅의 주인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한시도 움직임을 멈춰선 안 된다.
* * *
파푸란은 거의 항상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편이다.
용병 길드 일이 늘어나니 인상을 쓰고, 용병 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문제를 일으키니 또 인상을 쓰게 된다.
하지만 그건 가벼운 짜증에 가깝다.
진심이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금방 풀리고 금방 가라앉는 그런 종류의 감정이다.
지금 파푸란의 미간은 평소보다 두 배는 더 깊게 파였다.
파푸란 앞에는 다양하게 몸이 갈라진 수십 구의 시신이 있었다.
마을 마장을 노리다 조셉의 검에 갈라진 강도들의 시신이었다.
말을 탔으면 마적이라 하겠지만, 이놈들은 말도 없이 호기롭게 달려서 공격해왔다.
사방이 뻥 뚫린 황야에서 말이다.
“영감님, 다친 곳은 없죠?”
“괜찮네.”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조셉이 말했다.
“몇 명째인지 기억해요?”
“대강 이백쯤 죽였네.”
“영감님이 이백. 카리안 꼬맹이 쪽이 사백. 그리고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한 게 또 이백오십. 허, 소문 퍼지고 얼마나 지났다고 이 마을에만 천 명이 꼬라박아?”
“그렇게나 많나?”
조셉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마족과의 전쟁까지 경험한 노기사가 드물게 놀랐다.
“예. 서쪽에서 애매하게 마을을 만들던 놈들이 제일 많았고, 식량이 떨어진 주변 마을 놈들도 있었습니다.”
“카리안의 창고 쪽으로 간 사람이 사백 명이나 된다고?”
조셉이 지키는 마장도 도적들의 표적이 되었지만, 카리안의 창고도 다르지 않았다.
마을 중앙에 있는 큰 창고는 근처 건물이 방패가 되어준다.
카리안의 창고는 황야 중앙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공격 대상으로 삼기 좋았다.
조셉도 카리안의 창고 방향에서 몇 번이나 사람이 죽어가며 지르는 비명을 들었다.
“그 꼬마, 독을 썼습니다. 겐트만이라는 학자 놈하고, 그놈 옆에 붙어 있는 암살자가 제법이에요. 식량 일부를 빼앗기는 척 식량에 탄 독으로 싸그리 죽였습니다.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독 든 음식을 먹고 뒈진 시체가 풍장 치르고 있습니다.”
“닮았군.”
“수단 방법 안 가리는 게 마르할 그놈하고 판박이죠. 마르할 옆에서 그놈 하는 짓 잘만 받아먹어도 거물이 될 겁니다.”
카리안을 처음 본 마을 사람들의 인상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였다.
토지 경주에서 땅을 얻었으니 운과 결단력은 있다. 일하는 걸 보니 잡부 경험도 많다. 그러나 일꾼으로 일하는 것과 그걸 감독하는 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파푸란을 포함해 카리안에게 큰 기대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을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기 땅을 지키고 있었다.
심지어 카리안이 처리한 강도가 제일 많았다.
“마을은 어떤가.”
“고용한 용병들이 적당히 해주고 있습니다. 마을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시절엔 자주 있던 일이니 다들 익숙한 것도 있고요.”
조셉이 마을에 자리 잡은 건 마을이 거의 다 완성될 시기였다. 마르할의 사업 기반이 정리되고 마을을 지킬 사람이 필요할 때.
마을이 만들어지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조셉도 몰랐다.
“좀 씻어야겠네.”
“알겠습니다.”
용병 길드로 돌아가며 파푸란은 생각에 잠겼다.
‘만 명 이상일 거라는 건 예상했는데. 더 상향 조정해야 하나.’
이 마을에서만 천 명 가까운 인원이 죽었다. 근처 마을에서 온 놈들까지 포함해도 숫자가 지나치게 많다.
서부에 나가 있는 놈들의 숫자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많든가, 서부의 상황이 상상 이상으로 나쁜 듯했다.
‘쯧. 마을이 부유한 게 이럴 때는 안 좋아.’
마르할의 개척촌은 세율도 낮고 근처 마을보다 시설도 좋다.
그러니 도적들의 우선순위가 되는 거겠지.
용병 길드 지부로 들어간 파푸란의 목에 뒤에서부터 차갑고 날카로운 것이 들이밀어졌다.
폐부까지 서늘함이 내려왔다. 이 얼마 만의 긴장감인지.
“어이, 쓰레기. 이건 무슨 의미냐.”
“그동안 신세 많이 졌수다. 그런데 이런 일도 있는 법 아니겠어? 한때 용병이었으면 당신도 동의하지?”
용병 길드 내부에는 파푸란이 고용한 용병들이 모두 모여 있었지만, 한 사람도 나서지 않았다.
용병들은 파푸란을 비웃으며 멋대로 꺼낸 맥주를 마셨다.
이것들이 미쳐서 단체로 배신을 했다.
용병이 배신하는 일이야 너무 흔해 안줏거리도 안 되지만, 하필 시기가 최악이다.
파푸란은 우선 시간을 끌기로 했다.
“이 빌어먹을 기근이 언제 끝날 줄 알고?”
“그러니까 하는 일이야. 마을 창고에 몇 달은 먹을 식량이 있다며? 수백 명이 몇 달을 먹을 양이면, 수십 명은 몇 년을 먹지 않겠어?”
이놈들의 계획은 실패한다.
마을의 첫 기둥을 올린 사람들을 얕보면 안 된다. 얼빠진 것처럼 구는 상점 주인들은, 물장사하는 마담조차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사람의 배를 가르는 배짱을 가지고 있다.
용병을 고용한 것도 최대한 피해 없이 넘어가기 위한 것이지, 용병 없이 마을을 지킬 수 없다는 게 아니다.
마을에는 피해가 없다. 하지만, 자신은 확실하게 죽는다.
당연하게도 파푸란은 죽고 싶지 않았다.
겨우 용병 길드 지부다운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
“수십 명? 개 같은 새끼들. 감시를 그렇게 했는데 그새 내통까지 했네.”
“선수들끼리 뭘 그리 열 내시나. 어설픈 떠보기는 그만하고. 잘 가쇼.”
놈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도움이 필요함까?”
파푸란의 몸에 그늘이 졌다.
목소리는 바로 뒤에서 들렸다. 그러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발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놈 지인인가? 자신 없으면 도망쳐. 마장에 가거나 여관으로 가서 용병 놈들이 배신했다고 해.”
“그놈이 마르할을 말하는 거라면, 아는 사이는 맞슴다. 여기 불신자들을 정리하면 되는 검까?”
“불신자…?”
공국어를 쓰고 있지만, 발음은 성황국 출신이다.
그리고 불신자라는 말은 성황국 사람끼리 대화할 때가 아니면 잘 쓰지 않는다.
타국 사람이 들었다간 반감밖에 안 사는 단어를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다.
불신자라는 말을 당당하게 쓰는 사람들은 성직자 정도다.
파푸란이 생각을 끝내는 것보다 먼저 그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막 사람의 몸에서 뽑아진 피는 따듯했다. 파푸란은 피를 뒤집어썼다. 피가 눈을 가렸다.
비명이 들렸다. 식탁과 의자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괴물이라는 외침.
도망치라는 고함.
파푸란의 뒤에 있던 용병은 이미 쓰러졌다.
파푸란은 눈에 튄 피를 닦고 가까스로 눈을 떴다.
부서진 식탁 두 개와 의자 다섯 개.
바닥에 흥건한 피와 사지가 뜯겨나간 시신, 몸통이 반으로 갈라진 시신, 두개골이 함몰되어 얼굴이 반쪽이 된 시신, 그리고 그 사이에서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는 여인 한 명.
“여기가 마르할의 마을 맞슴까?”
“그래.”
“노아라고 함다. 당분간 신세 지고 싶은데, 괜찮슴까? 일은 할 수 있슴다. 특히 몸 쓰는 일을 잘함다.”
“거기에 살인도 포함되나?”
“불신자에 범죄자라면 가능함다.”
“환영하지.”
파푸란은 노아에게 손을 뻗었고, 노아는 파푸란이 뻗은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