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87
제187화
마르할은 처소를 나왔다.
마침 성벽으로 올라갔던 세 사람도 아래로 내려오던 참이었다.
마법사와 초인은 성벽을 내려오는 방법도 평범하지 않았다.
마리나는 바람과 함께 떨어졌고, 그 옆으로 노아가 뛰어내렸다. 울상을 지은 샤힐레가 노아의 옆에 달라붙어 있었다.
마리나를 의식해 계속 차가운 표정을 짓던 태도와는 딴판이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그게 말임다….”
노아의 옆에서 샤힐레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샤힐레를 보고 노아는 잠깐 망설였지만, 그래도 이대로 입을 다무는 것보단 성벽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게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았다.
“성벽에 올라갔을 때의 일임다.”
* * *
세 사람은 성벽에 올라가 성벽 바깥 상황을 살폈다.
수백 명의 용병이 성벽을 넓게 포위했다.
저걸 포위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으니 아마 포위라 불러도 무리는 없을 터다.
“그런데 굳이 여기까지 올라올 필요 없지 않슴까? 관찰하는 마법이 있으면….”
“당신이 알아둬야 하는 일이 있어서 불렀어요.”
“제가 알아야 하는 일 말임까?”
마리나는 아래에 있는 용병들을 살폈다.
성벽 바로 아래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용병 몇이 막 도축한 말고기를 불에 올렸고, 그 고기가 익으며 올라오는 연기였다.
마리나는 가볍게 물을 만들어 모닥불 위로 끼얹었다.
놀란 비명이 들렸고, 욕설이 이어졌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알란 에고만. 그가 이단의 교주 노릇을 하며 유물을 만들어 냈어요. 그게 도시를 지키는 유물의 정체예요.”
“에고만임까.”
“역시, 당신도 성인의 이름을 아는군요.”
“좋은 사부를 둬서 가능했슴다.”
마리나는 노아가 한 말을 기억했다.
마르할이 아니라 사부.
노아는 마르할이 용사 일행의 길잡이였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리고 그녀의 사부는 일반 이단심문관과는 상당히 다르다.
“알란 에고만은 영리하게 유물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급하게 만든 유물로는 도시 하나를 상시 지키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슴까?”
“예, 있을 수 없습니다. 고작 수천 명의 신앙으로 이런 유물을 만들 수 있다면, 세상은 종교 국가가 판을 치게 되었을 겁니다.”
과거 유명세를 떨쳤던 이단들은 만 단위의 광신도를 가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알란은 수천 명으로 도시 하나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방어하는 유물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수만 명의 신앙과 숭배를 받은 유물은 일대에 재앙을 일으키는 끔찍한 물건이 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유물을 가졌던 이단은 없다.
“하지만 도시를 지키는 유물의 힘은 진짜이지 않슴까.”
“꼼수예요. 아주 잔인한 꼼수죠.”
“어떤 꼼수 말임까?”
“그건 저쪽이 더 잘 알 것 같은데요.”
성벽 아래를 구경하던 샤힐레는 화제가 자신에게 돌아오자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성벽 위에 사람이 있는 걸 발견한 용병들이 위로 화살을 쏘았고, 화살은 샤힐레의 머리를 스쳐 하늘로 올라갔다.
샤힐레는 실전 경험이 없다. 저주로 사람을 죽이기는 했어도,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마법을 쓰려면 가문의 휘장이 있어야만 하는 샤힐레다.
자기 자신에게 확신도 가지지 못하는 그녀에게 피와 살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마법을 쓰는 건 무리였다.
샤힐레는 전투 경험이 없다. 화살이 얼굴 바로 옆을 지나가는 경험은 더더욱 없다.
“꺄아아악!”
새된 비명을 지르며 샤힐레가 자지러졌다. 그녀는 바로 옆에 있던 마리나에게 안겨들었다.
샤힐레의 몸이 턱 굳었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마리나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샤힐레는 완전히 힘이 풀린 눈으로 마리나의 시선을 마주했다.
한쪽 눈에 안대까지 찬 마리나의 눈빛은 긴장이 풀린 샤힐레가 감당하기에 너무 무서웠다.
“하으으… 잘못했어요오….”
샤힐레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고개를 따라 어깨도 아래로 축 처졌다.
* * *
“그런 일이 있었슴다.”
“결국, 끝까지 버티는 건 무리였네요.”
“죄송해요오….”
“마리나도 크게 놀란 기색은 아니네요.”
“위에서 다 놀라서 더 놀랍지도 않습니다. 그 가문의 역사를 이었으면, 그런 성격이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만… 설마, 저런 사람이었다니.”
샤힐레를 한 번 본 마리나가 한숨을 쉬었다.
사신의 가문에는 그녀도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무려 죽음의 신이다. 제국의 지원을 받으며 역사를 쌓은 실라나티엘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는 저주의 달인.
차가운 샤힐레의 태도를 보고 마리나는 내심 만족했다.
실라나티엘과 자웅을 겨루는 가문의 후계자라면 저 정도 자만심은 있어야지.
그런데 현실은 저 꼴이다.
겉모습만으로 마법사의 역량을 판단하는 일은 피해야 하지만, 저 모습을 보고 실망하지 말라고 하면 그것도 힘들다.
“보태준 것도 없잖아요오….”
“그러면서 대답은 또 따박따박 잘한단 말이죠. 이것도 누구의 영향인 걸까요.”
“왜 절 봐요?”
“아뇨.”
“대책은 세웠어요?”
“봐봐. 묻지도 않고 뻔뻔하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거.”
마리나의 깐죽거림을 무시하고 마르할이 말을 계속했다.
“그래서, 대책 안 세웠어요? 저쪽이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저희를 죽이려 하면 어쩌려고요?”
“일단 밤에 제물을 바친 다음 판단하기로 했슴다.”
“맞아요. 도박판에서도 내 손 패부터 보고 살지 죽을지 정하니까요.”
“그렇게 됐어요오….”
마리나와 샤힐레는 의외로 사이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사신이라는 이름만 없으면, 샤힐레가 워낙 무해한 인상이기는 했다.
순한 얼굴만 보고 그녀에게 손대려 하면 사신의 저주를 몸으로 맛보게 되지만.
“다들 피곤할 테니, 우선 쉬었다가 밤에 보는 걸로 하죠.”
“어, 시간은 괜찮슴까? 일주일밖에 없다고 들었던 것 같슴다만?”
이번 일은 다른 마을과 다르다.
성벽을 포위한 용병들을 처리하고, 도시 사람들까지 대피시켜야 한다.
노아가 보기에는 일주일 밤낮을 뛰어다녀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여기가 평범한 도시였다면 일주일로는 턱도 없죠. 하지만 종교가 지배하는 도시라면 다르잖아요?”
“이해했슴다.”
성황국 영토 내부에 있는 도시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면, 도시를 비우는 데 사흘이 걸리지 않는다.
도시에서 제일 직급 높은 성직자가 명령하면 끝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여기는 종교에 의해 지배되는 도시다.
이단, 그것도 산 제물까지 바치는 이단이 지배하는 도시.
* * *
밤에도 교회를 둘러싼 사람들의 숫자는 줄지 않았다.
교대로 일정한 숫자를 유지하도록 만든 게 분명했다. 기도가 끊어지면 의식 또한 끊어질 테니까.
교회 근처에는 기도하는 사람 말고도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렸다. 그들의 관심사는 교회나 기도가 아니라 교회 앞에 있는 여덟 마리 말과 다섯 마리 소였다.
가축들은 눈이 풀렸고, 입을 벌렸다. 벌어진 입에서 침이 줄줄 흘렀다. 몸통이 술에 취한 사람처럼 흔들렸지만, 그래도 쓰러지진 않았다.
가축들 앞에는 커다란 불길이 타올랐다.
나무를 삼키며 타오르는 불은 건물 지붕만큼이나 치솟았고, 열기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피부를 뜨겁게 했다.
마르할이 고용한 용병과 파름의 부하들이 의식이 벌어지는 장소를 둘러싸 보호했다. 그들은 도시 사람들의 행동을 살피면서도 의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불길 앞에 가축이 있었고, 가축의 대가리는 불길을 향했다. 그리고 샤힐레는 가축의 뒤에 있었다.
샤힐레는 한 손에 단검을 들었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불과 가축의 상태를 세밀하게 살폈다.
샤힐레가 하려는 건 별게 아니다.
기행.
마법사라면 누구나 하는 행동이다.
샤힐레가 가축에게 다가갔다. 단검이 말의 목을 찔렀다.
말의 대가리가 쇠뇌에 걸린 화살처럼 발사되었다. 발사된 대가리에서 척추와 혈관이 딸려 나왔다.
비위 약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구역질하며 속에 든 걸 게워냈다.
못 볼꼴을 많이 봐왔을 용병들도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진짜 마법사들은 마법에 기행이 필요 없습니다. 마법에 필요한 건 역사의 축적, 기행은 역사를 쌓는 행위지, 그 결과를 내보이는 행위가 아닙니다.”
“저한테 마법을 가르쳐준 사람이 누군지 잊었어요?”
“그냥 들어요. 저도 한 손 거들고 싶은 거 참으려고 떠드는 겁니다.”
샤힐레의 행동 하나하나에 어마어마한 신비가 깃들었다.
대체 저걸로 어떤 저주를 만들어 내려는지 마법사의 호기심이 꿈틀댔다.
마음 같아선 마리나도 달려가 단검을 손에 쥐고 가축의 목을 베고 싶었다.
“이미 기행이 필요 없는 마법사가 기행을, 이토록 요란한 기행을 벌인다면, 그건 아주 특별한 마법을 준비하고 있다는 겁니다.”
샤힐레는 열세 마리 가축의 목을 모두 땄다.
발사된… 그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열세 개의 대가리가 땅에 떨어졌다.
대가리는 입에는 혀를 빼물었고, 뒤로는 뽑혀 나온 척추뼈가 길게 늘어졌다.
대가리를 잃은 몸통은 쓰러지지 않고 빳빳이 서서 자리를 지켰다.
불길이 높게 일렁였다. 머리 없는 소와 말의 그림자가 불길의 흔들림을 따라 일렁였다.
머리를 잃고, 척추까지 뽑힌 열세 개의 몸통은 불길을 향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샤힐레는 단검을 옷에 닦았다. 그리고 열세 개의 몸통 중 가운데 있는 소의 몸통을 끌어냈다.
그녀의 수십 배에 달하는 무게를 가진 소의 몸통이 빈 수레처럼 끌렸다.
소의 몸통은 석상이라도 된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소의 발굽 자국이 땅에 길게 남았다.
샤힐레는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소의 몸통을 옆으로 밀었다. 굳건하던 몸통이 옆으로 쿵 소리 내며 쓰러졌다.
“저, 저거…! 머리 모양이!”
누군가 말했다. 용병이거나 도시 사람이리라. 어쩌면 이 자리를 지배하는 신비에 의해 양측이 동시에 말했을지도.
군중의 시선이 발사된 대가리에 집중되었다.
분명 불길을 향해 쏘아졌던 머리는 혼자 움직여 샤힐레와 쓰러진 소 몸통 주변으로 커다란 원을 그렸다.
내민 혓바닥은 불길에 말랐다. 척추에 엉킨 혈관과 핏물에도 척추의 하얀색이 눈에 띄었다.
“…못 참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마리나가 발사된 대가리와 척추로 이루어진 원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마르할은 달려가는 마리나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질리지도 않고 스트레킬이 만든 괴식을 매일 먹어대는 인간이, 샤힐레의 의식을 보고 어찌 참을까.
소의 몸통 앞에 앉아 있던 샤힐레는 빙그레 웃으며 난입한 마리나에게 새로운 단검을 꺼내 건넸다.
마리나는 그 섬뜩한 웃음을 보고 그녀가 사신이라는 걸 몸으로 이해했다.
마리나는 샤힐레가 건넨 단검을 받았다. 그리고 샤힐레를 따라 소의 뱃가죽에 검을 가져갔다.
뱃가죽이 폭발했다.
안에서 튀어나온 창자는 위로 똑바로 솟구쳤다. 창자는 불길의 높이만큼 올라갔다.
하늘에 뜬 창자는 구불거리며 한 마리 뱀처럼 타오르는 불길로 몸을 던졌다. 창자 사이에 심장이 있었고, 간이 있었고, 위가 있었다.
불길은 창자와 함께 소의 장기를 모두 삼켰다.
배부른 고양이가 갸르릉 우는 것처럼 불길이 좌우로 흔들렸다.
흡사 생명과 같은 불길의 움직임에 용병들도 공포에 질렸다.
마리나의 마법은 직관적이다. 불과 얼음을 만들고, 그걸로 사람을 공격한다.
하지만 샤힐레의 마법은 이해가 불가능하다. 그녀의 저주와 의식을 보는 사람에게 남는 건 의문과 공포다.
어느새 마르할 옆까지 온 파름이 탄성을 터뜨렸다.
“환상적이군.”
“파름에겐 저게 보이죠? 어떻게 보여요?”
“보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거지. 그래도 이만큼 선명하면 뭔지도 알겠어. 이거, 저놈들한테 건 저주의 갱신이지?”
“맞아요. 배신자를 죽이는 저주라니, 그런 편리한 저주가 있다면 모든 사람이 애용했겠죠.”
샤힐레가 용병들에게 건 저주는 간단한 저주가 아니다.
사신이라 불리는 마법사가 하루 꼬박 의식을 치러야 겨우 완성하는 저주다. 그것도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동의를 언제 받았냐고?
마르할에게 고용된 용병들이 받은 의뢰서. 그 의뢰서에는 모두 샤힐레의 손길이 깃들었다.
의뢰를 수락하는 것 자체가 저주를 향한 동의다. 그래서 배신하면 죽음이라는 조건이 의뢰서에 있는 거고.
“저쪽도 시작하는 모양이야. 우리가 시간을 끄는 사이 후딱 끝내려는 모양인데.”
파름이 교회를 가리켰다. 세인이 교회의 문을 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건장한 남자 한 명이 함께였다.
“잠깐 구경 갈까요.”
“좋지.”
마르할과 파름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교회 옆으로 돌아갔다.
파름이 교회 벽을 손등으로 두드렸다.
“꽉 막혔어. 못 들어가겠는데.”
“꼭 들어갈 필요는 없죠. 커다란 구멍이 하나 있잖아요.”
“딱 봐도 사용하는 구멍 아니었나. 들킬 것 같은데.”
“들키면, 저쪽에서 저희를 건드릴 수 있고요?”
“그것도 그래.”
파름은 장검 손잡이를 쥐었다. 그리고 한 마리 맹수 같은 움직임으로 교회의 벽을 타고 올라갔다.
마르할도 파름을 따라 교회 지붕으로 올라갔다.
교회 지붕은 삼각형이었지만, 중간에 평평한 부분이 있었다. 구멍은 그곳에 뚫려 있었다.
교회 지붕 구멍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달빛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히 구멍을 들여다보고 있던 노아가 몸을 일으켰다.
파름이 비꼬듯 말했다.
“교회 관계자라 저쪽보단 이쪽이 중요하단 건가.”
“음. 어디서 알았슴까? 들킬 행동은 안 했지 말임다.”
“그냥 내가 잘나서 안 거야.”
“그렇슴까.”
대충 대답한 노아는 다시 구멍에 집중했다.
마르할도 슬쩍 구멍 안쪽을 엿봤다.
전형적인 산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었다.
교회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기다렸고, 제물로 선택된 남자는 천장의 구멍에서 내려오는 달빛의 중앙에 섰다.
남자를 둘러싼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소리로 기도했고, 세인이 제물에게 검을 건넸다. 제물은 스스로 가슴을 찔렀다.
남자의 몸이 녹아내렸다. 뼈까지 녹아 바닥에 퍼졌고, 돌로 된 바닥은 방금 전까지 사람이었던 핏물을 흡수했다. 그리고 알란의 앞에 있는 돌멩이가 붉게 빛났다.
“하나부터 열까지 만들어진 유물이라니… 저건 미쳤슴다. 몇 년의 시간과 몇 명의 희생이 필요했을지 감도 안 잡힘다.”
노아는 처음 유물의 힘을 경험하고, 이미 있던 유물을 이단의 방법으로 강화했으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끔찍했다.
저 유물을 만든 인간은, 아마 처음 유물을 만들기로 하고 여태 한 번도 의식을 그만둔 적이 없다.
밤낮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의식을 계속했다.
최초의 의식, 한 번의 의식을 쭉 이어 기도를 올리고 제물을 바쳐 유물을 만들었다.
천 개가 넘는 이단의 기록을 외우고 있는 그녀의 기억에도 이런 의식은 없었다.
“손대면 안 돼요.”
“안 댈 검다.”
그냥 궁금했다. 저런 생각을 해낸 사람에게 삶이란 무엇인지.
* * *
광란의 밤이 지났다.
빈 건물에서 선잠 자던 티머시는 마르할의 부름에 하품하며 밖으로 나왔다.
마르할은 건물 그늘에서 티머시를 불렀다.
“티머시. 이쪽이에요.”
막 일어난 티머시는 멍한 머리로 생각 없이 마르할을 따라갔다.
잠에서 깬 뇌가 생각을 시작할 때쯤 티머시는 자기가 이상한 곳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빈 건물이 많은 도시지만, 그래도 기척이 아예 없는 장소는 잘 없다.
하지만 이 근방은 사람의 기척이 아예 없었다.
“…나 혹시 죽나?”
“아뇨. 설마요.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일이라서 그래요.”
마르할은 한 건물로 들어갔다. 문도 달려 있지 않은 건물 내부에는 배가 갈라진 커다란 소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저건 어제 그?”
어젯밤을 떠올린 티머시가 미미하게 인상을 썼다.
소와 말의 머리가 발사되고, 소의 창자가 하늘로 올라가 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맞아요. 어제 그 소. 샤힐레.”
소의 배는 열려 있었고, 창자가 있던 자리에는 검붉은 피가 가득했다.
샤힐레는 열린 배 속에 손을 담갔다. 소의 배 속에서 나온 샤힐레의 손에는 가죽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사람 얼굴 형태를 한 가죽이었다.
사람의 얼굴을 바꾸는 기술이 있다는 괴담에 가까운 소문이 있긴 했지만, 그걸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샤힐레는 가죽을 마르할에게 건넸고, 마르할은 가죽을 다시 티머시에게 주었다.
“…나한테 이걸 쓰라고?”
“네.”
“네가 안 가고?”
“원래 제가 갈 예정이었는데, 도시 꼴을 보니 그건 힘들어 보여서요. 다른 사람들도 자리를 비우기는 힘들고요.”
“나 거짓말 못 하는 거 알잖아.”
티머시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거짓말을 끔찍하게 못 했다. 거짓말만이 아니라 그냥 연기를 못한다.
다른 용병들처럼 거짓말도 하고, 사기도 치고 했으면, 티머시의 허리춤에는 지금보다 2배는 비싼 검이 있었을 터였다.
“거짓말할 필요도 없고, 어려운 일도 아니니 괜찮아요.”
“아니, 그래도….”
티머시의 반론에도 마르할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티머시는 한숨을 쉬며 가죽을 받았다.
“네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게 세 번은 되니까, 그거 때문에 믿어주는 거야.”
“반대로 세 번이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을 의심하면 개만도 못한 인간 아닌가요?”
“그러니까, 난 그런 인간은 되기 싫다고. 그냥 쓰면 되나?”
“위아래는 잘 보고요.”
티머시가 가죽을 뒤집어썼다.
가죽이 얼굴을 한차례 꽉 조였다. 압박감에 티머시는 눈을 감았다.
티머시가 눈을 뜨자 그의 앞에는 거울이 있었고, 거울 안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