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23
제223화
베이올라는 현실을 부정했다.
마르할이 왜?
아니, 마르할이 쫓아올 거라는 건 알았다.
정확히는 따라와 줄 거라고 기대했다.
“뭐야, 저게….”
하지만 저건… 저건….
베이올라는 눈을 비볐다. 그런다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유렐과 마르할이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가장 먼저 든 건 배신감이었다.
마르할은 모든 걸 아는 사람이다.
유렐이 마족을 다루는 것도.
마족을 풀어 서부를 멸망시키려 했다는 것도.
레벨라를 마족으로 만든 것도.
마르할은 모두 안다.
그걸 알고도 유렐과 술을 나누고 있다.
세상에 마족을 풀어놓으려고 했던 사람과 손을 잡다니.
용사 일행의 길잡이가 저래도 되는 건가.
“이건 의외군요.”
그녀를 따라온 밤이슬이 말했다.
“정말 손잡을 줄은 몰랐지만, 놀랄 일까진 아니죠.”
“그게 무슨 뜻이야?”
베이올라의 얼굴에 서릿발이 내렸다.
“그는 책임지는 입이 수천 명은 있는 지주입니다. 아랫사람을 먹여 살리려면 부모의 원수와도 손을 잡아야죠. 가진 걸 모두 쏟아부어 원수를 죽이면, 그 시신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져 수천 명을 배불리 먹여주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레벨라를 죽였다고! 서부를 멸망시키려 했어! 당신도 그 자리에 있었잖아! 그래, 당신도 한패지? 그래서 마르할을 두둔하는 거지?!”
베이올라의 눈빛은 태양처럼 이글거렸다.
달밤에 그녀의 눈은 어둠 속 맹수의 것처럼 푸르게, 시리게, 그러나 뜨겁게 빛났다.
“저는 신비 추적자 안에서도 그런대로 높은 사람이라서요. 모두 저의 뜻이었습니다. 순수하게 엘리스를 돕겠다는 의지였죠. 믿는 건 자유입니다.”
“나는 수단의 하나였을 뿐이라고? 많고 많은 황족 중 아무나 괜찮았다고…?”
그녀의 목소리에는 패기가 없었다.
그냥 멍하니, 사실을 주워 담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르할에게 있어 그녀는 수단, 도구였다.
“고대 제국어라는 이점을 빼면 내세울 게 하나도 없는 사람과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사람. 참, 유렐은 마법사니 고대 제국어 소양도 있겠군요. 저라도 후자를 고르겠습니다.”
베이올라가 고개를 들었다.
본격적으로 겨울이 되며 날이 추워졌다.
모포가 없으면 추위에 떠느라 잠도 못 잘 정도로.
태생이 초인인 베이올라는 추위도, 더위도 잘 타지 않았다.
오늘은, 밤이 추웠다.
달빛은 시렸다.
떨어진 달빛이 가슴에 사무쳤고, 가슴에 사무친 달빛이 시려 그녀의 가슴도 시렸다.
시린 가슴에서 달빛이 떨어졌다.
그녀의 눈가를 따라 달이 떨어졌다.
베이올라는 달을 보며 눈물 흘렸다.
베이올라는 하늘로 손을 뻗었다.
공기가 손에 잡혔고, 그처럼 그녀의 손은 텅 비었다.
베이올라는 무엇도 손에 쥐지 못했다.
그녀가 가졌다고 생각한 건 모두 마르할의 것이었다.
베이올라 므에실리고라는 인간에게서 마르할이라는 인간의 영향을 빼면, 그녀에게 남는 건 이 몸뚱이가 전부다.
이 몸뚱이조차 그랬다.
머리를 감은 비누도 마르할의 부하가 구해줬고, 입고 있는 옷도 마르할의 돈으로 샀다. 그녀의 몸에 깃든 검술도 마르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마르할의 손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몄다.
시리고 시리게. 뼛속까지.
이대로 마르할에게 돌아가면, 마르할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그녀를 받아줄 것이다.
유렐을 습격한 일도 수습해 주겠지. 저 모습을 보면 이미 수습이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마르할에게 돌아가면?
다시 편안한 생활을 누리겠지.
이전과 달라진 거 하나 없이.
지주가 되었으니, 돌아가면 그녀는 하일리를 끌어들여야 한다.
마르할은 도움을 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마르할의 존재만으로 하일리는 그녀를 무시하지 못한다.
서부에서 지낸 잠깐의 시간에 마르할의 흔적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다.
이게 마르할의 역사인지, 베이올라 므에실리고의 역사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당신. 제국에 복수하고 싶지?”
“흥미로운 결론이군요. 근거가 뭐죠?”
“엘리스와 함께 있었으니까. 엘리스는 소일라 언니에 대해 알고 싶어 했어. 그리고 당신은 진실을 알았을 거야. 아냐?”
“맞습니다. 당신이 떠난 이후에도 저는 그 지옥 안에 있었죠. 그리고 당신이 못 들은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소일라 므에실리고는 죽지 않았다.
애까지 낳아 잘살고 있다.
그걸 알려줄 순 없다.
한때 마왕이었던 인간이 모든 역사를 청산하고 평범한 생활을 하려면, 보통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용사 일행의 도움이 있었겠지.
소일라가 살아 있다고 말하면, 베이올라는 만사 제쳐두고 소일라부터 찾으려 할 것이다.
그건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군.’
황제가 소일라 므에실리고에게 그랬던 것처럼, 유렐이 엘리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밤이슬 또한 베이올라를 속여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날 도와.”
“제 목적은 제국입니다. 당신이 그걸 할 수 있다고요?”
“적어도 유렐과 엮인 놈들은 모두 지옥으로 보내버릴 거야. 내 목숨을 걸고.”
“좋습니다. 당분간 도와 드리도록 하죠.”
달밤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면 미래를 훔쳐볼 수 있다.
밤이슬의 고향에 전해지는 미신이며, 밤이슬이라는 마법사의 근원이 되는 역사다.
달빛을 담은 눈물이 베이올라의 뺨을 타고 떨어졌다.
밤이슬은 밤에 흐르는 이슬 안에서 미래를 보았다.
* * *
마르할은 술판에서 일어나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다.
기사 두 명이 그의 뒤에 은밀히 따라붙었다.
살기는 없다. 단순한 호위 겸 감시다.
지평선과 이어진 자리에 흐릿한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둥근 달 아래서 여인의 고개는 하늘을 향했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오늘 일은 합리성보다는 마르할의 개인감정이 다분히 들어간 선택이다.
마르할은 베이올라가 고통받길 원한다.
레벨라에게 말했듯, 이건 마르할의 저열한 욕망이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그러나 조금 더 사정이 나쁜 사람을 보며 느끼는 추잡한 희열. 날것 그대로의 감정.
마르할은 고통으로 강해졌다.
강렬한 경험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역사.
그 역사에서 태어난 신비의 힘은 제국을 불사르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 * *
스트레킬과 마린은 마르할을 뒤쫓았다.
카반과 아스탈은 도시로 귀환했다.
쿠헬바가 카반의 대리인 노릇을 하고 있지만, 재건 중인 도시에는 공성 기사인 카반의 솜씨가 필요한 일이 많았다.
아스탈은 직접 전투에 내보낼 수준이 되지 않았다.
기사가 검을 들고 달려오는데 허리 구부리고 쪼그려 앉아 삽으로 땅이나 파리?
마린과 스트레킬은 말에 각성제를 먹여가며 달렸다.
말은 근처 사람들에게 협조를 구해 조달했다. 뛰어난 용병과 기사도 있었지만, 스트레킬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스트레킬이 신비를 쓸 것도 없었다.
저 앞에 모닥불이 보였다. 모닥불 근처에는 마르할과 유렐의 모습도 있었다.
같이 술을 마시고 있는 걸 보면, 최악의 상황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스트레킬은 표정을 구겼다.
“이상하군. 엘리제가 아무리 빠르다 한들, 베이올라를 추월한 순 없어.”
베이올라가 간단한 추적도 못 하고 헤매고 있을 리는 없다.
마르할과 베이올라의 경로는 같아져야 하는데, 그러면 둘이 합류를 했겠지.
마르할만 달랑 유렐과 만나는 건 이상하다.
둘은 합류하지 않았고, 앞에선 마르할이 유렐과 함께 있다.
마린도 스트레킬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그 미친년이 벌써 한바탕했다고요?”
“아마도. 그런데 당사자는 보이지도 않고 마르할만 저러고 있다면… 이미 합의가 끝났나.”
마린이 고삐를 당겼다. 스트레킬이 반사적으로 따라 멈췄다.
“잠깐 갔다 올게요.”
마린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한 번 보고, 스트레킬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별 인사는 똑바로 해라. 안 그러면 두고두고 후회하니까.”
“뼈저리게 알아요.”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두 사람은 그리 확신했다.
어둠에 파묻혀 마법으로 타오르는 불길을 지켜보는 베이올라의 모습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 * *
베이올라는 한참이나 가만히 있었고, 밤이슬도 그녀를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인간으로서 밤이슬은 이질적이다.
어린 나이에 미래를 보게 된 그의 감정과 생각은 평범한 인간과 동떨어지게 되었다.
신비 추적자 안에서도 괴짜 소리를 듣는 게 밤이슬이었다.
그의 머리와 심장은 베이올라를 위로할 어떤 말도 짜내지 못했다.
밤이슬은 주제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고, 베이올라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기를 택했다.
동쪽에서 말 한 마리가 다가왔다.
“이 미친년아.”
“왔어?”
“…어지간히 저질렀구나.”
베이올라의 옷은 피로 물들었다.
저건 씻어도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 옷을 버려야 한다.
저 옷이 얼마짜린데.
“갈 거지?”
“응.”
“쌍년.”
아침에 일어나면 서로가 옆에 있었고, 밤에 잠들 때도 대부분 함께였다.
둘 사이에 많은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마르할 님이 앞을 막으면, 어쩔 거야?”
“싸워야지.”
“내 앞에서 그 말을 하는 게 무슨 뜻인지 알지?”
베이올라가 검을 뽑았다.
마린도 한 쌍의 단검을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도와 드릴까요?”
“아니.”
밤이슬의 제안을 거절하고, 베이올라는 앞으로 나아갔다.
둘은 동시에 움직였다. 검과 검이 부딪쳤다.
달빛 아래 불똥이 튀며 새로운 빛을 만들었다.
불똥은 쉬지 않고 만들어졌다.
스트레킬과의 대련은 이 대 일을 기본으로 한다.
스트레킬에게 한 방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두 사람은 몇 달이나 합을 맞췄다.
서로의 움직임은 훤하다.
불똥이 별빛처럼 튀었다.
베이올라는 힘을 살린 정석에 가까운 검술.
마린은 도둑에게 배운 변칙의 극을 달리는 검술.
베이올라가 마린을 찍어 눌렀다.
정면에서 받아내면 승산이 없다. 공격을 받아내지 않고 흘려내며 발차기.
급격하게 꺾이는 궤적을 그리며 마린의 발이 베이올라의 머리를 향했고, 베이올라는 팔을 들어 발차기를 막았다.
서로가 뒤로 밀려났고, 숨을 고르지도 않은 채 다시 격돌했다.
상처가 늘었다.
마린의 뺨을 타고 피가 흘렀고, 베이올라는 목의 피부가 찢어졌다.
검을 맞댄 채 마린이 입을 열었다.
“다친 거 아니었어?”
“뛰어난 마법사가 있어서. 계속할래?”
“이게 맞아? 좆같은 세상. 난 10년 넘게 칼질하면서 살았는데. 누구는 반년도 안 돼서 따라오고 있네.”
“꼬우면 황족 하든가.”
“줘도 안 가져.”
마린이 베이올라의 배를 발로 찼고, 베이올라는 손으로 발차기를 막았다.
찰나 베이올라의 손이 가속했다. 막을 수 없는 공격을 막았다.
“야, 그거 뭐야?”
“신비.”
“씨발.”
태어나길 초인으로 태어난 베이올라.
도둑의 후계자가 된 마린.
승부가 안 난다.
억지로 끝을 보려고 하면, 둘 다 죽는다.
그래서 둘은 싸움을 멈췄다.
“죽지 마라. 마르할 님 방해하지도 말고.”
“너야말로, 언제까지 내숭 떨래?”
“꺼져!”
마린이 단검을 던졌다. 유물이 아니라 투척용 단검이었다.
베이올라는 살기도 없는 단검을 손으로 잡아챘다.
마린이 떠났다.
달이 밝았다.
달빛 아래서.
베이올라는 손에 있던 단검을 하늘로 던졌다.
떨어지는 단검을 향해 베이올라는 검을 휘둘렀다.
쇳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반으로 잘린 단검이 땅에 떨어졌다.
하나의 인연을 자르고, 하나를 자를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이제 철을 베는 기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