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77
제77화
용사가 사라진 행렬은 조용한 태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조용한 태풍. 모순되는 말이지만, 용사가 지나간 자리를 표현하기에 그만한 표현을 마르할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는 조용히 나타나 주변을 휘젓고 유유자적 사라진다.
용사가 내뿜는 묘한 분위기에 눌려 있는 사람들에게 마르할이 말했다.
“자자! 다시 갑시다! 준비! 준비!”
이주민들이 마차에 올랐고, 일꾼들도 풀을 뜯던 말을 끌고 왔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마르할에게 달려왔다.
알라실과 마리나였다.
“용사랑 아는 사이였어요?”
마리나는 성황국어를 할 줄 안다. 그가 알라실을 보고, 다시 마르할을 보았다.
“저만 빼고 다 알고 있었군요.”
“제가 말 안 했던가요?”
“안 했어요. 언질조차!”
마리나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그러나 거기에 눈 하나 깜짝할 마르할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말해준 것 같은데.”
“뭐를요?”
“제가 용사의 길잡이였다는 거요.”
“전혀, 한 번도, 비슷한 단어조차 들은 적 없어요.”
“안 해줬구나. 지금이라도 말해줄게요. 용사가 마왕성까지 갈 때, 용사의 길 안내를 했어요. 당연히 다른 사람들과도 알고 있죠. 아니면 저 같은 평민이 언제 실라나티엘 같은 가문과 엮이겠어요. 그런데 알면 뭐가 달라져요?”
“당연히 달라집니다!”
그랬다면 접근 방식 자체를 달리했을 것이다. 용사와 그 일행과 관련된 일은 제국에서도 특급으로 관리한다.
당장 제국에 연락해 용사의 관계자가 있다는 사실부터 알려야 한다.
그냥 관계자도 아니다. 용사의 길잡이라고 했다. 왜 그토록 중요한 일을 한 사람이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이제라도 알아서.”
마리나는 가짜다. 실라나티엘의 이름을 사용하며, 실라나티엘 가문의 마법을 사용하지만, 정작 실라나티엘 가문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고향이 없다. 돌아갈 장소가 없다. 그건 그녀가 품고 있는 불안이다.
마르할이 진짜 용사 일행이라면, 그녀는 제국의 누구도 세우지 못한 공을 세우는 것이 된다.
제국에 공을 세우면, 그녀에게도 돌아갈 장소가 생길지도 모른다.
마리나 실라나티엘이라는 가짜를 진짜로 만들어줄 근본이.
그녀는 실라나티엘이 되어야만 한다.
‘내가 실라나티엘이야.’
마리나 실라나티엘만이, 유일한 실라나티엘이다. 두통에 마리나가 머리를 한 번 털어냈다. 그리고 말에 올라탔다.
옆에 있던 알라실이 마르할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저거, 사고 칠 사람의 얼굴인데요.]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죠.]용사와 관계된 주제가 나오자 마리나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마리나 수준의 마법사와 스트레킬 수준의 기사가 되면 기분의 변화만으로 주변에 작게나마 영향을 줄 수 있다.
실라나티엘이라는 이름답게, 저쪽도 상당히 사연 많은 세월을 보낸 모양이다.
[나야 성황국에 미련이 없으니 이러고 있지, 저쪽은 진짜 실라나티엘이라고요? 제국에 연락이라도 하면 심각해지는 거 아니에요?]알라실은 성황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출신과 생애를 생각하면 성황국을 좋아할 수가 없다.
알라실은 마리나에 대해 모른다. 실라나티엘 가문의 상황도 모른다.
마르할이 용사 일행이었다는 것도 몰랐던 것 같다. 그걸 알아버리고, 용사까지 만난 그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다.
마리나는 위험하다. 실라나티엘의 이름을 사칭하는 가짜, 그러나 능력은 진짜 실라나티엘이다.
여태 마르할이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에 기반하면, 그녀는 죽여 입을 막는 게 맞다.
하지만 마르할은 그 선택을 보류했다.
[진짜 군대가 와도 버틸 준비는 하고 있어요. 다른 나라가 보고만 있지도 않을 거고요. 그리고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고요.] [서부는 모든 것이라면서요. 모든 걸 걸고 확인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에요?] [아마도요. 제 은인들하고도 연관된 일이라서요.] [은인이라면, 용사?] [그 형도 은인 중 하나죠.] [그러면 마르 실라나티엘?] [맞아요. 실라나티엘이라는 가문에 얽힌 역사는 많이 어지럽거든요.] [어지러워? 보통 복잡하다고 하지 않나요?]알라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게 역사를 두고 어지럽다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실라나티엘 가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많지 않다. 오래된 귀족 가문이라는 소문은 있지만, 정작 실라나티엘 가문이 배출한 유명한 인재는 마르 실라나티엘이 유일하다.
가문의 영지도, 위치도, 구성원도 모든 게 숨겨져 있다.
‘음. 어지러운가?’
마법사 가문이라는 걸 고려해도, 확실히 실라나티엘 가문은 이상하다. 이상한 가문이니 그 역사가 어지러울 수도 있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요. 힘닿는 데까진 도와줄게요.] [든든하네요.] [그럼요, 누구 도움인데. 아, 맞다. 용사랑 무슨 이야기 했어요?] [못난 동생이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답니다.] [그게 끝?] [진짜 끝이에요. 그 성격 봤잖아요?]알라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마디 나눈 게 전부지만, 용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강 알았다.
낙천의 끝을 달리는 듯한 사람이다. 그래도 되는 사람이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도 저 사람에게는 일상이겠지.
[또 손가락 자를 일 있으면 꼭 불러줘요.] [네, 뭐… 따로 부탁할 사람도 없으니까요.] [꼭이요!]알라실이 다시 마차에 올라탔고, 마르할도 말에 올랐다.
행렬은 출발 준비를 마친 지 오래다. 수십 대의 마차가 길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
공국으로 가는 속도와 서부로 돌아오는 속도는 족히 배 이상 차이가 났다.
말과 마차에 사람을 최대한 태웠지만, 그래도 걷는 사람이 나왔다.
건장한 성인 남성도 말과 같은 속도로 몇 시간이나 걸으면 지친다.
걷느라 지쳤는데, 사람이 늘어나며 해야 할 일은 배로 늘었다.
오랜 서부 생활로 노숙의 달인이 된 일꾼들과 달리 이주민은 대부분이 여자와 노인, 아이였다. 게다가 노숙하는 법도 제대로 몰랐다.
몸은 힘든데 일은 배로 많아졌으니, 일꾼들의 피로도 점차 쌓였다.
티리리리링.
철로 된 솥이 바닥을 굴렀다. 끓고 있던 물이 쏟아지며 모닥불이 꺼졌다. 옆에는 아이 하나가 안절부절못하며 솥과 옆에 있는 마차를 번갈아 보고 있다.
마차 뒤쪽에서 험악한 인상의 남자 한 명이 나와 쏟아진 솥을 보고는 역정을 냈다.
“아니, 나뭇가지 타는 것 같으면 말하라니까? 그 간단한 거 하나를 못 해?”
“자, 잘못했어요.”
“잘못했다고 하면 다야? 이거 어쩔 거야? 다시 장작 주워서 불 피우고 밥하면, 나는 언제 쉬어?”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잘못하면 다냐니까?”
“맞아요.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죠.”
어깨에 올려지는 손에 남자가 벼락 맞은 것처럼 몸을 떨었다.
“올손? 제가 어제 뭐라고 했었죠? 다섯 번째 하는 말이었는데요.”
“그, 사람에게 친절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요?”
“화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끝이에요?”
올손이 눈알을 굴렸다. 그는 이 젊은 고용주가 무서웠다.
백 명에 가까운 사람을 고용하고 있으면서,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와 같은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기억될수록 좋다. 조합 간부한테 아부 한 번이라도 더 떨어야, 길드 사람들이랑 술 한 번이라도 더 마셔야 쉽고 편한 일자리를 딸 수 있다.
사람이 이름을 기억해주는 게 무서울 수 있다는 걸 올손은 처음 알았다.
“피곤한 건 이해해요. 그런데 일하면서 안 피곤하면, 그건 놀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렇죠?”
“맞습니다. 백번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피곤하다고 소리 지르고 일 대충 하면, 돈 주는 사람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나쁠 것 같습니다!”
“우리 얼굴도 아는 사이인데, 잘하죠, 잘. 알았죠?”
“잘하겠습니다!”
“그럼 뭐부터 해야 할까요?”
올손은 더러워진 솥을 물로 씻고 다시 장작을 가져다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올손을 지켜보고 있던 마르할에게 베이올라가 다가왔다.
“너무한 거 아냐?”
“에이, 보통이죠. 저 사람들이 누구 가족인지 잊었어요?”
“아. 그랬지.”
“그런데 여기 있어도 돼요? 식사는요?”
“…먹었어.”
베이올라가 눈을 슬쩍 피했다.
수십 대의 마차가 늘어선 행렬은 이주민들이 더해지며 몇 배는 시끌벅적해졌다.
하지만 식사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기피하는 장소가 생겨났다.
스트레킬이 요리를 만드는 모닥불 근처다.
오늘도 스트레킬이 만드는 음식 앞에는 마린과 마리나가 기다리고 있다.
“아직 완성도 안 된 것 같은데요.”
“먹었어.”
“아, 네. 그래서요?”
“반응이 왜 그래.”
“어떤 반응을 기대하시는데요.”
“됐어.”
베이올라는 근처에 있던 마차 난간에 걸터앉았다.
“마린, 강하더라.”
“…그 일로 풀 죽을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마린 같은데요.”
머리보단 몸을 쓰는 사람이라 그런가. 당사자인 마린과 스트레킬은 잘 지내는 것 같은데, 이쪽이 가라앉아 있다.
“다른 형제들은 지금도 제국에서 영향력을 넓히려고 노력하고 있겠지.”
“황권은 바체아 제국의 비밀을 밝혀내는 사람에게 넘어간다면서요.”
“아버지가 그렇게 말해도, 다른 형제들이 따르지 않으면 피바람이 불 거야.”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는 나이가 많다. 초인의 육신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장에서 입은 상처로 약을 먹고 있다는 건 황제의 자식이라면 다 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 바보 아니거든?”
베이올라가 눈을 샐쭉하게 떴다.
“그렇죠. 무려 고대 제국어도 할 줄 아는 학자시죠.”
고대 제국어란 말에 베이올라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마르할 앞에서 관능 소설을 낭독하던 때가 떠올랐다. 마르할의 고대 제국어는 걸음마 수준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 책을 읽을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면 그날 그녀와 마리나가 대중 앞에서 떠든 내용도 알게 된다.
“고대 제국어 수업은 잠시 중단하면 안 될까.”
“왜요?”
“가르치는 사람도 정리가 필요해.”
“그러면 잠시 마리나한테 배우죠.”
“아, 안 돼! 선생이 둘이면 오히려 잘못 배울 수도 있어.”
“제 수준이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아무튼, 수업은 잠시 중단이야.”
“그러죠.”
마르할은 그녀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녀가 심란해할 이유는 몇 개나 있다.
레벨라도 없이 홀로 남겨졌고, 황권 다툼은 현재진행형이고, 그녀 자신은 달라진 게 없다. 소일라 므에실리고도 그녀의 고민거리 중 하나일 것이다.
마르할이 보기에 첫 만남의 베이올라와 지금의 베이올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만, 원래 이런 건 본인은 체감하기 힘든 법이다.
무언가 계기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사람이 변하는 일이란 의외로 쉽게 생기지 않는다.
***
서부를 벗어난 레벨라는 쉬지 않고 달렸다.
도시마다, 마을마다 말을 바꿨고, 싸움도 몇 번 있었다.
그 끝에 그녀는, 위치도 모르는 밀실에서 멈췄다.
제도에 도착한 그녀는 가족을 찾았다.
황실 교관인 아버지도, 그녀를 따라 기사가 되려고 하던 동생도, 그리고 어머니와 제도에 있던 작은 집도 사라졌다.
가족을 찾던 레벨라는 그녀의 반응을 뛰어넘는 기습에 기절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자신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습도와 냄새로 보면 환기가 안 되는 지하. 손과 발은 묶여 있다.’
손과 발을 묶고 있는 밧줄의 크기는 손가락 두 마디가량.
그녀의 힘으로는 끊을 수 없다.
발소리가 들렸다.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이 벗겨졌다. 환한 빛에 레벨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천장에 박힌 구슬이 보였다. 빛을 내는 구슬, 마법사들이 가장 많이 파는 유물이다. 다른 유물에 비해 비교적 구하기 쉽다.
하지만 비교적 구하기 쉽다는 거지, 평민은 저런 물건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녀의 눈가리개를 치운 건 마법사였다. 펑퍼짐한 옷에 깡마른 몸. 그리고 거뭇한 눈 밑.
여기까진 학자와 다를 바 없지만, 귀에 수십 개의 귀걸이를 달고 있다. 귀만이 아니라 코와 혀에도.
호감 가는 외형은 아니다.
“기분은 어때?”
“제 가족은 어떻게 됐습니까?”
“곧 알게 될 거야. 반응이 올 때가 됐는데. 오, 왔군.”
마법사는 거울을 가져왔다. 레벨라는 참으로 오랜만에 자기 얼굴을 보았다.
씻지 못해 외관이 외형만 보면 거지가 따로 없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눈을 보았다.
눈이 시꺼멓다. 흰자가 보이지 않는다. 먹물이라도 탄 것처럼 눈이 검게 물들었다. 그건 안개처럼도 보인다.
“마족?”
“한 번에 알아보다니, 서부에서 비범한 경험을 한 모양이야.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하지만, 시간이 없는 게 아쉬워.”
마법사가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레벨라는 상자가 어떤 물건인지 단번에 알아봤다.
성황국의 성지에서 자란다는 성목으로 만든 상자.
성황국이 귀빈에게 줄 선물을 담을 때 주로 사용하는 물건이다. 그 상징성과 상자 자체가 가진 신성함 때문에 제국 귀족들도 높이 치는 물건이다.
마법사가 상자를 열었다. 상자는 비어 있다. 하지만 레벨라는 정신이 상자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자, 서부로 가라. 서부로 가서 황녀를 죽이고 난동을….”
마법사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밀실의 문이 잘렸고, 이어 보이지 않는 칼날이 마법사의 목을 잘랐다.
기사 한 명이 들어와 레벨라의 손발을 묶고 있는 밧줄을 잘랐다.
“움직일 수 있나?”
“가능합니다.”
“움직인다. 시간이 많지 않아.”
기사가 누군지는 모른다. 어쩌면 그녀를 더한 수렁으로 데려가는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레벨라에게는 달리 선택지가 없다.
레벨라는 기사를 따라 밀실 바깥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