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94
제94화
다곤은 돈이 있어도 약을 팔아주지 않는 마법사와 의사 탓에 여동생을 잃었다.
그들이 약을 팔지 않은 이유는 딱히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전염병이 한창 퍼지던 때였고, 기다리면 약값이 오른다는 게 그들의 말이었다.
실제로 약값은 올랐고, 마법사와 의사는 돈을 벌었다.
그래서 다곤은 사람을 죽이는 약을 만들기로 했다.
사람들은 다곤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 가족 잃은 분노에서 나온 선택은 이성으로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만이 다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곤은 여러 약을 만들었다.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독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다곤은 산이라 불리는, 쇠도 녹이는 물이 있음을 알았다.
다곤은 여러 산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 암살자들의 살을 녹이고 있는 물질의 정체다.
암살자 다섯에게 몇 방울씩 산을 떨어뜨린 마르할은 다시 첫 번째 암살자에게 돌아왔다.
“읍읍…!”
남자의 눈빛은 간절했다.
암살자로서 다양한 고통에 버티는 훈련을 받았겠지만, 생살이 녹아내리는 고통은 쉬이 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말하고 싶어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였다면 최대한 버텨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옆에는 네 명의 동료가 있다.
한 명이 먼저 입을 열면, 그러면 나머지는?
무조건 먼저 배신하는 게 이익이다. 망설일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러면 좋아요. 휴고, 그걸.”
“여기 있습니다.”
휴고가 긴 통을 가져왔다. 뽑기 도박에서 흔히 쓰는, 작은 막대를 넣어두는 통이다.
“뭔지 알죠?”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막대 열 개가 들어 있어요. 1번부터 5번까지의 번호가 두 개씩 들어 있고요. 당신이 1번이에요. 자, 뽑아봐요.”
마르할은 남자의 뒤로 돌아가 묶인 남자의 손 앞에 통을 대주었다. 남자는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통 안에 든 막대를 만졌다.
뽑기라고? 여기서? 다른 동료들은 바보가 아니다. 진즉 그와 같은 결론에 도달해 입을 열 기회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뽑아야 한다. 뽑아야 한다. 뽑지 못하면 죽는다.
손가락이 작은 통을 휘저었다. 손목은 완벽하게 묶여 있어 움직이지 않는다. 의지할 수 있는 건 손끝의 감각이 전부다.
남자가 통에서 막대 하나를 뽑았다.
마르할은 그 막대를 남자의 눈앞에 가져가 직접 확인시켜 주었다.
“3번. 잘못 뽑았네요. 3번은, 말할 생각 있어요?”
세 번째로 묶여 있는 남자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잘못 뽑은 대가를 치러야겠죠?”
마르할이 가죽 통의 내용물을 몇 방울 1번의 배에 떨어뜨렸다. 살이 녹고 장기가 뜯겨나가는 듯한 고통에 1번이 몸부림쳤다.
발작하는 1번을 두고 마르할이 3번의 재갈을 풀어주었다.
“저, 저희는 검은 손가락 소속 암살자입니다.”
“그거면 됐어요. 그리고 알고 있던 거예요.”
마르할이 다시 3번에게 재갈을 물렸다. 3번이 억울함에 몸을 뒤틀었다.
마르할이 가죽 통을 열었다. 그리고 3번의 허벅지 위에서 천천히 통을 기울였다. 3번이 몸부림쳤다.
“억울해요?”
“읍읍읍!”
3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억울할 것 없어요. 오히려 한 명이 다 말해버리면 다른 사람들이 억울하잖아요? 그러니까 한 번에 말할 수 있는 정보는 하나예요.”
3번의 허벅지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비명이 재갈을 뚫고 나왔다. 의자가 덜컹거리다 뒤로 넘어갔다.
마르할이 휴고를 힐끗 보자 휴고가 넘어진 의자를 다시 세웠다.
마르할은 2번 남자에게 물었다.
“뽑을래요?”
2번은 대답 대신 마르할을 노려봤다.
“여기까지 와서 침묵이라. 다음 차례에도 그 생각이 변하지 않기를 빌게요.”
액체 몇 방울.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 그리고 다시 3번의 차례가 돌아왔다.
3번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이번 순번이 돌면 다들 두 번씩 저 끔찍한 액체를 뒤집어쓴 게 된다.
자신만 빼고. 왜 대답하고도 고문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왜 저놈은 3번을 뽑았단 말인가.
살아서 여길 나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 최대한 고통을 나눠야 한다. 그게 공평하다.
3번은 1번을 뽑았다. 1번도 별다른 정보를 주지 못하고 발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맛보았다.
1번이 3번을 노려봤다. 3번도 1번을 마주 노려봤다.
마르할은 4번에게 갔다. 4번은 2번을 뽑았다.
2번은 침묵했다. 5번도 2번을 뽑았다. 2번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다음 차례가 되었을 때, 2번은 1번을 뽑았다.
* * *
베이올라는 광기로 가득한 고문 현장을 보았다.
마르할이 가죽 통의 내용물을 뿌릴 때마다 시큼한 냄새가 났다. 돌로 된 바닥에는 피와 오줌, 그리고 녹아 떨어진 살점이 있다.
피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피 공포증이 호전된 지금이라면 버틸 만했다. 튀는 피보다 더 잔인한 건 마르할이었다.
마르할의 고문은 악랄했다.
어느 부분이 악랄하냐고 하면, 사람의 심리를 가지고 노는 게 악랄하다.
암살자들은 마르할이 아닌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고문에 수반하는 공포나 분노는 전부 같은 암살자들을 향했다.
필사적으로 막대를 뽑는 게 자기 막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막대를 뽑으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보는 이미 뒷전이다. 자신을 고통받게 한 동료에게 더 많은 고통을 주려는 게 그들의 목적으로 보였다.
암살자들이 앞다퉈 입을 연 탓에 정보는 빠르게 모였다.
그들이 쓰는 독과 해독제의 제조법, 검은 손가락에서 쓰는 암호문과 암구호, 그리고 케르디시에 있는 그들의 본거지까지 전부 나왔다.
하지만 도시에 있는 그들의 거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걸로 보였다.
저들은 처음부터 그 쓰레기장에 자리 잡았고, 명령을 하달하는 사람은 따로 있단다.
“이 저택 사람들의 뒤를 밟으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죽이라는 명령도!”
4번의 입에서 나온 말에 베이올라의 몸이 굳었다.
마린은 저 명령에 따라 습격당한 게 분명했다. 베이올라는 마르할의 표정을 살폈다.
마르할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래요? 그걸 제일 처음 말하지 그랬어요.”
그 말을 끝으로 4번에게 재갈을 물리고,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조졌네.”
베이올라의 옆에 있던 다곤이 말했다.
“뭐가?”
“아가씨, 금화 100개 이야기 알아?”
“듣기는 했어. 그거 진짜야?”
“쏠쏠했지.”
“당신이?”
네가 금화 100개의 주인이냐는 질문에 다곤이 웃었다. 빠진 앞니 2개가 훤히 보인다.
다곤이 품에서 작은 통 하나를 꺼냈다. 가죽이 아니라 유리로 된 병이다.
“이게 금화 80개짜리야.”
“80개…?”
제국 금화 80개는 적은 돈이 아니다. 쓰기에 따라 마을을 세울 수 있는 돈이다.
“당신 마법사였어?”
“아니, 마법사가 되면 귀찮은 일이 얼마나 많은데. 마법사 같은 거 시켜줘도 안 해.”
마법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강 알고 있다는 뜻이다.
마법사가 아니면서 마법사를 사칭하는 사람은 많아도, 마법사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 마법사라 불리길 거부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역시, 마르할 주변에는 평범한 사람이 없다.
“맞다. 금화 이야기 중이었지. 일단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저놈은 물불 안 가려. 검은 손가락? 이제 황제의 그림자라는 놈들이 와도 안 돼.”
“그건 아닐 것 같은데.”
제국에게 버려지다시피 했지만, 베이올라는 뼛속까지 제국 황족이다. 제국 황실을 무시하는 발언은 참기 힘들다.
베이올라의 말에 다곤은 답하지 않았다.
베이올라의 출신이 심상치 않다는 건 보자마자 알았다. 제국 귀족 출신이라면, 자부심이 대단할 터.
서부에 제국 핵심 전력이 올 일은 없다. 설령 온다 해도 마르할과 부딪힐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결론이 나지 않는 일로 언쟁을 벌여봤자 서로 피곤하기만 하다.
마르할은 고문을 계속하고 있다. 지하실 안은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다.
베이올라의 체감상 하루는 지난 것 같았다. 피와 비명은 그만큼 그녀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지하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검을 찬 남자 한 명이 지하실로 내려왔다.
휴고의 부하다. 베이올라도 몇 번 본 얼굴이다.
“찾은 것 같습니다!”
뽑기 통을 흔들고 있던 마르할이 몸을 돌렸다.
“어디요?”
“아, 안내하겠습니다.”
“앞장서요. 휴고, 이놈들 처리 부탁해요.”
“어떻게 할까요?”
“전통대로.”
“알겠습니다.”
마르할이 뽑기 통을 옆으로 던졌다. 열 개의 막대가 바닥에 흩어졌다.
“스트레킬, 카반, 부탁해도 될까요?”
“알았다.”
“물론입니다.”
전신 갑옷을 입은 인간 흉기 둘이 마르할의 뒤를 따랐다.
계단을 올라가려던 마르할이 베이올라에게 물었다.
“베이도 올래요?”
베이올라는 망설였다. 스트레킬과 카반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대응 자체가 불가능하다. 암살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르할은 본인이 약하다고 말하지만, 베이올라는 그날 갈라지는 구름을 보았다.
그 자리에 용사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구름을 가른 사람은 마르할이다.
조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겠지. 하지만 마르할이 구름을 가르는, 용사와 같은 힘을 품고 있는 건 사실이다.
저 셋 사이에 자신이 끼어들어도 될까.
“괜찮아요. 따라와도 방해는 안 돼요.”
“…정말로?”
“위험한 자리면 데려가지도 않죠.”
“그럼 갈래.”
지상은 지하보다 어두웠다.
하늘로 올라가는 달이 칼날처럼 날카롭다. 손을 뻗으면 베일 것만 같다.
베이올라는 칼날 같은 달 아래를 걸었다.
저택을 나서 밤거리를 걷는다. 비슷한 건물들이 나란히 늘어선 길을 걷고 있으면 반복되는 꿈이라도 꾸는 느낌이다.
하지만 서늘한 밤공기와 저 앞에 걸어가는 마르할은 분명한 현실이다.
“여깁니다.”
마르할의 부하는 저택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멈췄다.
다른 건물과 똑같은 건물이다. 하지만 창문 밖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건물은 이 건물이 유일하다.
“마약이 유통되기 시작한 시점을 기준으로 가장 많은 금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수고했어요. 들어가 있어요.”
꾸벅. 고개를 깊이 숙인 남자가 밤거리를 달려 사라졌다.
마르할이 문을 열기도 전에 저절로 문이 열렸다.
“들어가죠. 저쪽에서 직접 초대해 주네요.”
“안전한 거 맞나?”
스트레킬이 물었다. 그냥 암살자를 상대하는 것과 암살자의 본거지에 들어가는 건 완전히 다르다.
암살자가 공들여 준비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함정과 싸워야 한다.
스트레킬의 불안을 마르할은 일축했다.
“안전해요.”
“그럼 괜찮겠지.”
마르할이 앞장서 건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바로 복도가 있었고, 복도 끝에는 위로 가는 계단이 있다. 마르할은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올라가자 문이 나타났다. 문틈에서 빛이 샌다.
촛불은 아니다. 유물의 빛이다.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유물이긴 하지만, 암살자가 쉬이 구할 물건도 아니다.
이번에도 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리고 문 안쪽의 풍경이 드러났다.
가죽 소파에 근육질의 남성이 앉아 있다. 다리를 벌리고, 허벅지에 팔을 올리고 있다. 손은 탁자 아래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 뒤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다섯이 나란히 서 있다. 인형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일단 앉을까?”
공국어, 케르디시 방향. 다른 언어가 섞인 것 같지는 않다. 아마 토박이.
“그러죠.”
마르할이 남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스트레킬과 카반이 마르할 뒤쪽에 섰다.
“아가씨, 우린 여기야.”
다곤이 베이올라를 붙잡았다. 베이올라와 다곤은 문을 지켰다. 만약을 대비한 탈출로 확보다.
마르할은 다리를 꼬고 무릎에 양손을 올렸다.
마르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용건.”
“연금술이라는 단어를 아나?”
“만물을 금으로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던 머저리들이 쓰던 말이죠.”
“그게 가짜가 아니라면?”
남자가 탁자 아래 감춰져 있던 손을 꺼냈다. 그의 손에는 하나의 돌과 하나의 금이 들려 있었다. 돌과 금에는 깨진 자국이 있다.
남자가 금과 돌을 맞댔다.
금과 돌의 깨진 부분이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맞물렸다.
“연금술. 우리는 무한한 금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손에 넣었다.”
마르할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그래서요?”
“무한한 금이다! 서부 경제를 삼키고 공국을 삼키고,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다!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고? 이 큰 도시의 지주씩이나 되는 자가!”
“당신, 이름은요?”
“검은 손가락의 당주 유스발이다.”
“유스발, 그걸로 뭘 하게요?”
“뭐든지 할 수 있다. 이 도시를 살 수 있고, 서부 전체를 손에 넣고 주무를 수 있다. 나에겐 마약도 있다. 반대로 묻겠다. 이 둘로 못 할 게 뭐가 있지?”
유스발의 뜨거운 시선이 마르할을 향했다. 꿈을 품은 사람의 눈이다. 열정과 열망을 품고 서부로 온 사람의 전형적인 눈.
마르할은 저런 눈을 많이 봤다. 눈에 가득한 열망이 꺼지는 것도.
마르할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유스발은 역으로 화를 냈다. 사람은 답답한 사람을 보면 역으로 화가 나는 법이다.
유스발의 눈에 마르할은 머저리였다. 이 도시를 다스릴 자격도 없는, 운만 좋은 머저리.
유스발에게 마르할이 다시 물었다.
“겨우 그거 때문에 약을 풀고 도시를 쓰레기장으로 만들었어요?”
“겨우? 겨우 그거라고? 제국 황제도 가지지 못한 무한한 황금을 ‘겨우’라고?”
“맞아요. 겨우 그거.”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군.”
유스발이 탁자를 밟았다. 그의 동작에는 중간 과정이 없었다. 스트레킬과 카반이 반응했을 때는 이미 유스발의 손에서 바늘이 쏘아진 뒤였다.
유스발의 뒤에 있던 암살자들도 움직였다.
백 발에 달하는 바늘이 별빛처럼 반짝였고, 천장이 무너지며 암살자들이 내려왔다.
그리고 바람이 움직였다.
유스발이 탁자에 발을 올린 채로 멈췄다. 그의 손에는 소매에서 막 꺼낸 단검이 들려 있다.
스트레킬과 카반, 그리고 베이올라를 노리고 날아가던 바늘과 천장에서 떨어지던 암살자들도 자리에서 멈췄다.
마르할의 이마 앞에 바늘 하나가 멈춰 있다. 마르할은 손가락으로 바늘을 밀어냈다. 바늘이 허공에서 옆으로 밀려났다.
“겨우 이거?”
유스발의 시선이 처음으로 마르할의 눈을 향했다. 타오르는 불길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