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Machine God RAW novel - Chapter 40
기계신과 함께 – 040
눈을 감았다 떴더니 던전 밖이었다.
아침 이슬이 나뭇잎에 걸려 있는 새벽녘이었다.
던전의 입구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
퀘스트 형식의 던전이 끝난 후에는 항상 묘한 여운이 남는다.
어떤 때는 후련하기만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후련하면서도 찜찜하기도 하고.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두 본 기분이랄까.
드라마로 치면 이 던전은 새드 엔딩일까, 해피 엔딩일까?
나는 고개를 저어 남은 감정을 털어버렸다.
그리고 주위를 한번 둘러본 다음 성녀에게 받은 [천옥보주]를 [하늘의 눈]으로 확인해 보았다.
-이름 : 천옥보주(天玉寶珠)
-희귀도 : 레어
-상태 : 일월신교의 삼대지보(三大至寶)
‘일월신교의 삼대지보?’
일월신교의 세 가지 지고한 보물 중 하나라는 뜻인데, 이것만 봐서는 이게 정확히 무슨 아이템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엄청난 치유 효과가 있다는 것은 대충 경험했던 바였고, 나머지 기능이 있다면 차차 알아가면 될 터였다.
일단은 희귀도가 레어라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나는 천옥보주를 품속으로 갈무리했다.
[마스터, 그런데 전에는 스킬을 B, A+ 이런 식으로 평가하셨지 않습니까? 왜 [천옥보주]는 B, A, 이런 게 아니라 ‘레어’로 나타나는 건가요?]‘아, 그건 말이지.’
나는 슈리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커먼, 언커먼, 레어, 유니크 등으로 평가되는 스킬의 ‘희귀도’는 던전 시스템이 정해주는 등급이다.
즉 던전 시스템을 확인하는 [하늘의 눈]으로 확인하면 언커먼, 레어, 유니크 등으로 표기된다는 뜻이다.
반면 C, B, A, S 등으로 평가되는 스킬의 ‘활용도’는 헌터들이 자체적으로 정한 등급이다.
시스템이 알려주는 ‘희귀도’만으로는 그 스킬의 정확한 가치를 판단할 수 없어서 헌터들이 자체적으로 평가한 게 바로 ‘활용도’다.
이것은 [하늘의 눈]으로 봐도 표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만근추(萬斤錘)라는 무공은 던전 시스템상 유니크로 평가받는다.
아마 ‘사용자를 무거워지게 한다’는 측면에 있어서 유니크라는 등급을 받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이리라.
그러나 헌터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유용한지를 지표로 하는 스킬 활용도에 있어서는 B+에 불과하다.
실제 사냥에서는 써먹는 데 제약이 많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 [아르고스의 눈]에서 제공한 지표를 참고해서 내 자체적으로 평가한 등급이긴 하지만. 참고로 [디바이스 컨트롤]은 굳이 희귀도를 확인해 보지는 않았어.’
[왜요?]‘그거 확인받다가는 내 스킬 정보며 약점, 쓰리 사이즈까지 탈탈 털리는데 그러면서도 알아보고 싶겠냐.’
물론 정보 단체 [아르고스의 눈]에서 절대비밀을 보장한다고는 하지만 내 정보를 타인에게 넘긴다는 것 자체가 별로 현명한 행동은 아니었다.
나는 금세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천옥보주]보다 더 중요한 걸 확인할 때가 되었다.
나는 거실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천히 정신을 집중한 다음-
후읍.
숨을 들이마시며,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던전 안에서와는 차원이 다른 양의 기(氣)가 내 몸속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장삼의 12밖에 되지 않던 마력 스텟에 비해 내 마력 스텟은 42였기 때문이다.
장삼에 비교하면, 내 몸은 그 자체로 마력 덩어리라 할 수 있었다.
내 [유가선공]은 게걸스럽게 온몸의 마력을 먹어치워 자신의 색깔로 물들인 다음, 단전으로 마력을 갈무리해 나갔다.
나는 해가 떠오르고 지고, 다시 떠오를 때까지 제자리에 앉아 운공을 이어나갔다.
* * *
나는 은하그룹에서 보내준 차량을 타고 은하그룹으로 가는 중이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대체로 지치고 어두운 표정이었다.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없던 노숙자들을 거리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몬스터가 많아진 시골에서 그나마 치안이 나은 서울로 피난을 온 것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사회는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태블릿PC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양한 헤드라인들을 보며 은하그룹 건물이 저 멀리 보이는 곳에 다다를 무렵.
“응? 무슨 일이지?”
은하그룹 본사 앞에 일단의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슈리야, 저 사람들 대체 뭘까.’
[모르겠습니다만 꼭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이군요.]‘그러게.’
딴에는 그냥 여유를 즐기는 일반인인 것처럼 보였지만, 내 눈에는 은하그룹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그 가운데는 각성자들도 더러 끼어 있었다.
‘아항.’
대충 어떤 사람들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은하그룹으로 향하면서 [유가선공]으로 이목구비와 체격에 변화를 주었다.
뚜둑- 뚜둑.
근육과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작게 난 후, 나는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냥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30대의 샐러리맨.
그게 지금 내 모습이었다.
나는 샐러리맨의 모습을 한 채로 은하그룹으로 걸어 들어갔다.
띠딕-
정문을 지나 ID카드를 대고 들어서자마자 웬 꼬맹이가 팔을 벌리며 나를 반겼다.
“여어, 우리 대주주~”
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녀석이 바로 은하그룹의 후계자 은하수.
피터팬 병이라고도 불리는 ‘하이랜더 증후군’을 앓고 있어서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성장이 멈춘 30대 아저씨였다.
“호오, 어떻게 한 번에 알아보네?”
뚜둑뚜둑.
내가 변신(?)을 풀며 의외라는 듯 물었다.
“우리 대주주님이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시든 저희는 다~ 알 수가 있어요.”
은하수가 그 정도는 일도 아니라며 씨익 웃었다.
이 녀석이 나를 ‘대주주’라 부르는 이유는, 내가 얼마 전에 은하그룹의 대주주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요 두 달간 나는 현대 장르의 던전을 주로 클리어하며 미래기술이 집약된 첨단 아이템들을 은하그룹에 팔아왔는데, 계약 내용대로 일정 지분을 주식으로 받은 덕에 대주주로 등극할 수 있었다.
특히 내가 보유한 지분은 회사 경영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그룹 후계자인 은하수가 저렇게 유난을 떠는 거였다.
“그건 그렇고 형, 밖의 저 사람들은 뭐야?”
나는 21살이었기 때문에 30대인 은하수와는 형 동생 하기로 했다.
외견은 정반대였지만.
“아, 저 사람들······ 말하자면 산업스파이?”
최근 은하그룹은 단시간에 엄청난 기술적 도약을 겪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어마무시했냐 하면 거의 50년에 걸쳐야 할 기술적인 발전을 이 3달 동안 이루어내었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 기술을 탐내는 타기업 혹은 타국의 스파이들이 귀찮게 굴고 있다는 거였다.
“슬슬 기자들도 냄새를 맡고 있긴 한데, 기자들은 오히려 달래기가 쉬우니까.”
은하수가 엄지와 검지, 중지를 슥슥 비볐다.
돈으로 해결했다는 의미.
“아무튼 너도 이제 조심해야 될 때가 됐다. 우리 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바로 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여기저기서 널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니까.”
은하그룹이 이렇게 놀라운 발전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물론 내가 가져온 아이템들이 큰 일조를 했다.
“뭐, 내 공이 없진 않았지?”
나는 씨익 웃으며 은하수를 바라봤다.
“근데 형도 겸손 떨 때가 다 있네? 형이 없었으면 아마 아이템의 기술을 채 반도 못 파악했을걸?”
“으하하하, 이 녀석, 이래서 마음에 든다니까!”
은하수는 왕자병 기질이 있어서 이런 칭찬을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내가 한 말은 맞는 말이었다.
현대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들은 시간이지 지날수록 그 기술력이 발전하고 있었는데, 대략 1달이면 10년에서 20년이 앞선 아이템들이 등장한다.
즉 던전시대가 열리고 3달이 지난 지금은 30년에서 60년 정도 앞선 시대의 기계들이 발견되고는 했는데, 현재까지 이 기계들의 과학기술 수준을 따라잡은 곳은 세계적으로 봐도 은하그룹과 다른 두세 개의 기업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중에서도 은하그룹은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는데, 이는 모두 사실상 눈앞에 있는 이 천재 은하수 덕분이었다.
그는 천재적인 기계공학 엔지니어였지만 뛰어난 화학공학자이자 전기공학자이기도 했다.
거기에 생명공학과 토목공학에도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으니, 거의 공학 분야 전반에 두루 능통한 과학계의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가 각성자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고유 스킬은 [물아일체]라는, 조금은 뜬금없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이 스킬이야말로 바로 은하그룹 기술 연구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었다.
[물아일체]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원하는 사물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그 사물이 되어볼 수 있는 스킬이었는데, 은하수는 이 스킬을 사용해 물체에 들어감으로써 그 물체의 작동 원리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었다.혼자서 웬만한 연구소는 씹어 먹는 연구 성과를 올린 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거참, 그런데 민간 부분에서 몇 가지 기술을 상용화할 거라고 발표한 것만으로 저 난리라니. 우리가 개발한 기술 다 꺼내 보이면 난리가 나겠다.”
은하수가 마치 공개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린다는 듯이 양손을 징그럽게 꿈틀거렸다.
은하그룹은 최근에 몬스터 때문에 공포에 떠는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 기술을 공개했는데, 그 몇 가지 기술만으로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일단 이들은 인구가 밀집된 도시 인근을 높은 담장으로 감싸는 정부의 ‘도시방어권 형성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최근 개발한 합금 기술을 싼 값에 제공했고, 일반인들이 주변에 발생한 몬스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몬스터 감지 장치를 만들어 배포했다.
던전이 열리기 시작한 지 3개월이 되어가는 현재는 던전에서 풀려난 몬스터가 확연하게 늘어난 상태였다.
던전이 생성되는 속도를 헌터들의 던전 클리어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서 이미 인구수가 적은 각국의 시골은 몬스터에 의해 장악된 곳이 많아진 상태였다.
그 덕에 사람들은 시골의 집을 버리고 헌터들이 지키는 도시로 몰려들었지만, 도시라고 마냥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도시 인근에서 생겨난 몬스터들이 때때로 도시의 사람들을 덮쳐서 사상자를 내기도 했으며, 도시라고 던전과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이 생겨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헌터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로 도심 속 던전이었지만, 그런 그들조차 놓치거나 클리어하지 못하는 던전이 종종 생겨났다.
때문에 시민들에게 있어 은하그룹에서 판매하는 몬스터 감지 장치는 가뭄의 단비와 다름없었다.
시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은하그룹에의 몬스터 감지 장치를 사들였고, 은하그룹은 그 덕에 천문학적인 수익을 벌어들였다.
“네가 구해다 준 원소측정장치가 대박이었지.”
은하수가 내 등을 팡팡 치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