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Machine God RAW novel - Chapter 39
기계신과 함께 – 039
포근하기도 하고, 청량하기도 한 신비한 기운.
그 기운은 내 [유가선공]의 내기와 합쳐져 내 몸을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유가선공]이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엄청난 기세로 내 가슴을 치유하기 시작했다.나는 이내 두 눈을 뜨고 내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판타지 장르의 던전에서 나오는 ‘트롤’의 것처럼 엄청난 재생력이 작용하고 있었다.
뻥 뚫린 상처가 눈에 보일 속도로 아물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심장은 다시 제 위치로 무사히 돌아갔다.
팔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
나는 할 말을 잃고 내 등 뒤에서 내게 손을 대고 있는 성녀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성녀가 싱긋 웃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녀에게 치유 능력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역시 괜히 천마신교의 성녀라 불리며 교도들로부터 떠받들어진 것은 아닌 듯했다.
“밝히지 않아서 미안해요. 제 능력은 극비 사항이거든요.”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이익보단 불이익이 많죠.”
특히 성녀처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력이 없는 이상 더욱 그랬다.
“아, 그럼 혹시······?”
아까 한서후의 사숙을 속이느라 등을 찢은 상처, 그것을 나는 완벽히 치유하지 않은 채로 교주전까지 왔었다.
그러나 교주전에 올 때쯤 이미 내 몸은 만전의 상태였다.
나는 내 몸이 완벽히 치유된 것이 [유가선공]의 효능인 줄만 알았는데······.
성녀가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내 등에 업혀 나를 치유한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마주 웃으며 그녀의 미소를 맞받았다.
* * *
비밀 통로는 우려와 달리 꽤나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교주가 앉아 있던 화려한 의자.
그 의자를 [하늘의 눈]으로 보자 다음과 같은 정보가 떠올랐던 것이다.
-이름 : 교주좌
-희귀도 : 커먼
-상태 : 의자 뒤쪽 용의 눈과 꼬리, 그리고 여의주를 동시에 누르면 비밀 통로가 드러난다.
“······.”
역시 [하늘의 눈]!
나는 감탄을 하며 바로 비밀 통로를 열었다.
성녀 또한 내 능력에 적잖이 감탄하며, 내 공을 치하했다.
우리는 함께 비밀 통로를 들어섰다.
우리가 들어서자 의자가 저절로 움직여 통로가 다시 닫혔다.
비밀 통로는 생각보다 길었다.
한 10분의 시간 동안 걸은 끝에 우리 마침내 통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통로를 빠져나온 우리의 눈앞에는 강이 흐르고 풀이 자라는 평화로운 동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정갈하게 지어진 모옥(茅屋)이었다.
나는 그 모옥으로 다가가려다 말고 성녀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에서는 맑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저 모옥······ 기억나요.”
그녀가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다 기억나요. 내 잃어버렸던 시간들이.”
의선의 유서에 있던 내용대로, 성녀는 과거의 기억을 잃었었다.
그러다가 저 모옥을 봄으로써 과거를 되찾게 된 것이다.
그녀는 천천히 모옥을 향해 다가갔다.
나 또한 그녀의 뒤를 따라 천천히 모옥으로 다가갔다.
모옥의 대청마루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미려한 얼굴의 중년인.
그가 바로 시대를 뒤흔들었던 풍운아 천마(天魔)였다.
성녀가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비틀대다가 내 어깨를 짚었다.
천마는, 예상대로 죽은 상태였다.
그러나 무슨 조화인지 그의 시체는 한 점 부패하지 않은 채로, 생전의 형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귀천의 순간, 자신의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해 둔 것 같았다.
다만 그는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성녀를 부축해 모옥의 한편에 앉혔다.
성녀는 한참 동안 천마와 그가 들고 있는 꽃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옛 기억을 회상하는 듯, 그녀의 눈빛은 천마를 바라보는 동시에 과거를 향해 있었다.
한참을 눈물을 흘리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모옥의 기둥을 쓰다듬었다.
“이 모옥은, 내가 살던 곳이었죠.”
그리고 성녀의 과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 모옥과 똑같은 모양의 모옥에 살고 있던 그녀는, 어느 날 강에 떠내려온 사내를 건져내었다.
사내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었는데, 성녀는 그를 최선을 다해 간호했다.
다행히 그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성녀는 정신을 차린 그를 극진히 보살폈고, 그녀의 보살핌을 받은 그는 성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성녀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성녀는 그의 사랑을 거부했다.
“저를 사랑하지 마세요.”
“왜입니까? 당신도 저를 사랑하지 않습니까.”
성녀 또한 이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을 서툰 사내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저는 죽을 사람인걸요.”
그러나 그녀는 천음절맥(天陰絶脈)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려 있는 상태였다.
20살을 넘기 전에 온몸의 기혈이 차갑게 굳어 죽는다는 병.
그녀는 이미 18살이었다.
그녀가 이곳에 모옥을 짓고 살아가는 이유는, 때때로 차갑게 굳어가는 몸을 잠시나마 따뜻하게 해주는 화령초(火靈草)라 하는 풀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방법을 찾아보겠소.”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정확히 1년 후에 다시 그녀에게 돌아왔다.
“미안하오, 방법을 찾지 못했소.”
그는 천하 방방곡곡을 돌며 방도를 찾아다녔지만, 그의 엄청난 신분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그녀의 병을 치유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대신 이것을 갖고 있으시오.”
그는 성녀에게 목걸이 하나를 건넸다.
그 목걸이를 목에 거는 순간 그녀는 따뜻하고도 청량한 기운이 온몸을 감도는 것을 느꼈다.
“이게······?”
성녀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그는 말했다.
“이게 당분간 그대의 목숨을 지탱해 줄 것이오. 언제든 꼭 목에 다니시오.”
그러고서 그는 또다시 방법을 찾겠다는 말과 함께 훌쩍 떠나갔다.
목걸이의 힘 덕분인지 그녀는 그 뒤로 5년을 더 살아남았다.
그녀를 만난 모든 의원이 그것이 기적 같은 일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러나 5년을 지나 24살이 되자, 그녀는 마침내 자신이 죽을 때가 되어감을 알 수 있었다.
기혈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굳어갔던 것이다.
간간이 소식만 전하던 그가 다시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방법을 찾았소.”
그는 이제는 굳어 스스로 움직일 수도 성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성녀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물었다.
그 방법이 무엇이냐고.
옳지 않은 방법이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그가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는 그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소. 그래서 다른 세상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내었소.”
성녀는 아픈 와중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다른 세상으로 가는 방법이라니?
“그대를 치유할 만한 방법이 다른 세상에는 있다 하오. 그곳을 특정해 찾아가는 방법을 알아내었지. 그대와 둘이 그곳에 가서 치료를 받게 할 생각이오. 다만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는 없소. 그대도 이건 알아두어야 할 것 같아서 말해주는 것이오.”
그가 답지 않게 길게 말해주었다.
그 모습에서 그의 염려와 각오를 느낄 수 있어서, 성녀는 기어코 눈물을 흘렸다.
“그곳에서······ 나와 평생 함께해 주겠소?”
자신의 두 손을 잡고 그렇게 묻는 그에게, 성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대는, 한숨 자고 일어나면 끝나 있을 것이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성녀는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그녀는 천마신교라는 낯선 장소에서, 기억을 잃은 채로 다시 깨어났다.
천마는 그녀의 곁에 없었다.
* * *
“······.”
가슴 아픈 성녀의 이야기가 끝났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모든 정황이 정리되었다.
천마는 불치병에 걸린 그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녀와 함께 차원 이동을 했고,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결국 목숨마저 바쳐 그녀를 살려내었다.
성녀는 그 과정에서 기억을 잃었다가······ 방금 다시 되찾았다.
“결국 이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되었네요.”
성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마에게 다가갔다.
“바보 같은 사람.”
그는 천마를 빤히 쳐다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천마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가 손을 내려, 그가 임종의 순간까지 들고 있던 꽃을 들어 올렸다.
“화령초의 꽃이에요······. 함께 화령초 따러 참 많이 다녔는데.”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가 가장 듣고 싶어 했을 말을 해주었다.
“고마워요.”
성녀의 목소리가 기어코 떨려 나왔다.
“그리고, 사랑해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마의 몸이 재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파스스 부서져 가루가 된 천마의 앞에서, 성녀는 바닥을 짚은 채 오열했다.
* * *
성녀는 자신의 목걸이를 목에서 풀었다.
목걸이에는 작은 바닷빛 돌이 달려 있었다.
바닷빛 돌은 마치 물방울처럼 생겼는데, 물방울의 뾰족한 부분이 갈고리처럼 살짝 휘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이가 내게 준 목걸이예요. 이것 덕분에 이제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네요.”
그녀는 그것을 내게 건넸다.
“제 마음 같아서는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을 드리고 싶은데, 드릴 게 이것밖에 없네요.”
그녀는 ‘이것밖에’라고 표현했지만, 무려 천마가 그녀의 목숨을 붙들어놓기 위해 그녀에게 선물한 기물(奇物)이다.
여기에 담긴 그녀의 마음이 결코 가벼울 리 없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녀가 팅팅 부은 얼굴로 빙긋 웃어 보였다.
“실은 제 치유 능력도 이 목걸이의 힘이에요. 아팠을 때는 치유 능력 같은 건 못 썼는데······ 저를 살리려고 소모되던 힘을, 제가 치유되면서 밖으로 내뿜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처음으로 남한테 말해주네요. 부디 유용하게 쓰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목걸이를 품 안에 집어넣었다.
아까 경험했던 따스하고 청량한 기운이 온몸에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어떡하실 건가요?”
나는 기어이 묻고 말았다.
사랑하는 임을 잃고 홀로 남은 그녀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성녀는 물끄러미, 우리가 밤새 만든 봉분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죽으면, 저이의 모든 노력은 헛수고가 되는 거겠죠?”
“······.”
성녀의 마음에 담긴 상심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성녀가 돌연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짝! 쳤다.
“살 거예요! 살아서 맛있는 것도 먹고, 아름다운 풍경도 보고, 또······ 행복해야죠. 그게 저이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인걸요.”
그녀가 봉분에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걱정 말고······.”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잘 가요.”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축하합니다. 던전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성녀로부터 받은 ‘천옥보주(天玉寶珠)’가 던전 보상으로 인정됩니다.] [‘천옥보주(天玉寶珠)’를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초마권법(初魔拳法)]이 삭제됩니다.] [스킬 [디바이스 컨트롤]이 활성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