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139)
이성민은 위지호연의 몸을 부축했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던 위지호연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 했다. 이성민은 빠르게 손을 뻗어 위지호연의 허리를 감쌌다.
“…아하하!”
위지호연이 웃음을 터트렸다. 휘청거리던 그녀를 고쳐 세우던 이성민은, 대뜸 웃음을 터트리는 위지호연을 힐긋 보았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던 위지호연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세상 일이라는 것은 정말 생각처럼 되지 않는구나.”
위지호연은 그렇게 말하며 다리에 힘을 주려 했다. 하지만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리기만 할 뿐 위지호연의 몸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했다.
“10년 전에 너와 오늘의 만남을 약속할 때… 이런 모습으로 너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부끄러운 모습으로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말이야.”
“부끄럽다고 생각 안 해.”
이성민이 대답했다. 위지호연은 스스로 서려 했으나 도통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결국 서는 것을 포기했다.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쉰 뒤에 이성민의 얼굴을 보았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렇다면 조금 더… 부끄러운 부탁을 해 보도록 할까. 나 스스로 서는 것이 힘든데. 업어줘.”
이성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창을 아공간 포켓으로 집어넣었고, 텅 빈 등에 위지호연을 업었다. 등에 업힌 위지호연은 너무 가벼웠다. 그것에 이성민은 조금 가슴이 쓰린 것을 느꼈다.
주저앉은 유호정은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핏발 선 눈으로 위지호연을 업은 이성민을 볼 뿐이었다. 유호정은 아랫입술을 뿌득 씹었다.
[…루베스를 떠나게.]이성민의 머릿속으로 유호정의 전음이 들려왔다.
[나는 이미 무림맹에게 소천마가 약해져 있다고 전서구를 날려 놓았네. 이곳에서 크론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아마 무림맹도 그 사실을 알고, 어쩌면 이미 척살대를 조직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 [왜 나에게 그걸 알려주는 겁니까?] [자네가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까.]그렇게 답하는 유호정의 얼굴은 처참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것 뿐일세. 무림맹의 척살대가 온다면… 나도 그들과 함께 행동하게 되겠지. 나를 제압한 이상 자네의 위험도는 더욱 오르게 돼. 자네가 소천마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자네는 앞으로 끔찍한 나날을 보내게 될 걸세.나 역시 자네의 끔찍함을 거들 것이고.] [익숙한 일입니다.]
이성민은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유호정의 조언에는 감사했다. 이성민은 우선 성문을 나서기 위해 걸음을 돌렸다.
[잠깐…]허주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이성민의 걸음이 멈추었다. 허주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으나, 이성민은 계속해서 생각했다. 이윽고 그는 완전히 몸을 돌려 성문을 등졌다. 주저앉은 유호정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떠나지 않는 건가?”
“이쪽이 더 안전할 것 같으니까요.”
도시를 떠나라는 유호정의 조언도 옳은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 이 도시에는 광천마와 루비아가 있다. 광천마가 없는 이상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간다고 해도 요력을 다루는 부족을 만날 수는 없다.
단지 그것 때문에 루베스에 남으려는 것이 아니다.
“루베스에는 사마련도 있잖습니까.”
유호정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정파에 무림맹과 구파일방, 명문세가가 있다면, 사파에는 사마련과 사마육문邪魔六門, 마도삼가魔道三家가 있다. 루베스는 금색 마탑과 적색 마탑, 무림맹, 사마련 등 서로 다른 세력들이 얽혀 있는 도시다. 그렇기에 이 도시는 크고 발전하였으며, 치안이 안정되어 있었다. 얽힌 세력들이 서로를 암중에 견제하면서 오히려 정적이 만들어진 탓이다.
사마련은 사파의 단체인 만큼 무림맹과 적대하고 있다. 사파라고 하여 모두가 마두인 것은 아니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도라는 것을 알아두어야 하기에 사마련이라고 해서 모두가 사악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마련 쪽에서도 마두를 척결하는 일도 있다.
소천마 위지호연이라면 유명인이다. 사마련이 무림맹과 충돌하고 싶지 않아 할 지라도, 위지호연 정도의 유명인이라면 무림맹에게서 보호해 줄 지도 모른다. 모험과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멀쩡하지 않은 위지호연을 데리고서 도시 밖으로 나가 무림맹의 추격을 받는 것보다는 이쪽이 나아 보였다.
[바보는 아니군.]허주가 투덜거렸다. 허주도 성문 밖으로 나서려던 이성민을 붙잡고 도시 안에 남으라고 말하려 했었다.
‘바보인 줄 알았나 보지?’
이성민은 그렇게 이죽거려 주고선 유호정을 지나쳤다. 모여 든 구경꾼들은 이성민이 위지호연을 업고서 다가오자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이성민의 어깨 위에 양 팔을 힘없이 늘어트리고 있던 위지호연이 쿡쿡거리며 웃는 소리를 냈다.
“새삼… 아니. 처음으로 알았어.”
“뭘?”
“네 등. 넓고… 좋구나. 이렇게 남의 등에 업히는 것은 처음이야.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에 업혔을 지도 모르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은 이번이 처음인 거야.”
위지호연이 머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는 이성민의 어깨에 턱을 기대었다. 그리고는 살짝 머리를 기울여 이성민의 목덜미와 머리에 머리를 뉘였다.
“…좋은 기분이야. 안정된다고 할까… 후후! 이상한 일이지. 생각해 보면 말이야. 너는 나한테 여러 가지로 처음을 주는 것이 많았어. 친구인 것도. 무공을 가르친 것도. 약속을 한 것도. 지켜진 것도. …이렇게 업힌 것도.”
위지호연의 목소리는 작았다. 내뱉는 숨결은 얕고 따뜻했다. 귀에 닿는 숨결이 고막을 간질이는 것 같았다. 가슴이 크게 뛰었고, 그 소리가 위지호연에게 들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작은 걱정이 들었다.
“만나서… 좋아.”
힘없이 늘어트린 팔이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위지호연의 양 팔이 이성민의 목을 안았다.
“늦어서 미안하다. 설마 약속을 어기게 될 줄이야… 후후! 걸음이 내 생각보다 너무 느렸거든. 그래도…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너무 탓하지는 말아 줘. 이곳까지 오는 길이 많이 힘들었거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네가 왜… 이렇게 약해진 거지?”
“다음에…”
위지호연이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나중에.”
그 말을 끝으로 위지호연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성민은 기겁하여 머리를 돌려 위지호연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이성민의 바로 코앞에 있었다. 미약하게 내뱉는 호흡을 통해 이성민은 안심하였다. 위지호연은 단순히 잠에 빠진 것 뿐이었다. 이성민은 힘이 빠져 비틀거리던 다리에 힘을 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놀라게 하기는…!”
새근거리며 잠든 위지호연의 얼굴을 잠깐 동안 보다가 걸음을 재촉한다. 구경꾼들은 따라오지 않았다. 멀리서 유호정이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사마련은 어디에 있지? 생각하고 탐색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더 빠르다.
‘네블.’
[네.]마음속으로 부른 것만으로 네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럴 때마다 이성민은 중개 길드인 에레브리사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중개 길드로서의 편리함도 편리함이었지만, 정보 같은 애매한 것은 완벽하게 다루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소속된 중개인들의 능력은 불가사의하기 짝이 없었다.
‘광천마와 루비아의 위치. 그리고 루베스의 지리 정보를.’
사마련의 위치를 묻는 것보다, 이성민은 이 도시 전체의 지리 정보를 원했다. 얼마 이동하지 않아 네블이 이성민의 그림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정보를 전할 때 사용하는 수정구를 이성민에게 건네주었다.
지도를 요구하지 않고 지리 정보를 요구한 것은, 그것을 확실하게 머리에 새겨 넣기 위해서였다.
사마련은 중앙 지구에 위치해 있었다. 무림맹의 지부와는 제법 거리가 멀었고, 근처에는 용병 길드가 있다. 루비아와 광천마는 외곽순환 기차를 타고서 중앙 지구의 외곽지를 돌고 있는 중이었다.
‘둘에게 사마련으로 와 달라고 말을 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네블에게 그를 부탁한 뒤에 이성민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기차는 탈 수 없었다. 경비병들의 말을 무시하고 있는 대로 경공을 펼친 덕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얌전히 굴 수는 없었다. 이성민은 이곳까지 왔을 때처럼 철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호각 소리와 경비병들의 외침이 들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추지는 않았다. 우선 사마련으로 가서 그들의 입장을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계집… 저주를 품고 있군.]철로 위를 달리는 중에 허주의 중얼거림을 들었다. 그 말에 이성민의 몸이 움찔 떨렸다.
‘저주?’
[그래. 아주 기묘한 형태의 저주야. 마법은 아니고… 남쪽 주술사들이 사용하는 저주와 닮아 있는데. 아주 질이 나빠.]허주가 짧게 혀를 찼다.
[기혈을 뒤틀고 내력이 모이는 것을 방해하고 있군. 그것 뿐만이 아니야… 근본부터 육체를 흔들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고수라고 해도 이런 저주를 몸에 담은 이상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지. 내공도 제대로 모이지 않고 뒤튼 기혈은 계속해서 통증을 유발한다. 거기에 육체를 흔들고 있으니 육체적인 힘도 제대로 쓸 수가 없을 거야.]주저앉아 있던 위지호연의 모습을 떠올린다. 힘없이 늘어트린 팔다리와 꺼져가는 목소리. 이성민은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저주를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주술은 마법과 다르다. 마법은 보다 뛰어난 마법으로 제압할 수 있지만, 주술은 경우가 달라. 특히 이런 계통의 저주라면 저주를 건 술사를 죽이지 않는 이상 해주는 불가능하다.]지금으로서는 저주를 건 술사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선 위지호연이 정신을 차리는 것을 기다린 뒤에 그녀에게서 직접 듣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주 자체가 이 계집을 죽일 수는 없다는 거야. 단순히 힘을 빼앗고 고통을 주는 것이 목적인가… 질이 나쁜 저주로군.]그 위지호연이 저주를 받았다. 그토록 강하던 위지호연이. 이성민은 이곳까지 도달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전생에서라면 절대로 인연이 없었을 강자들을 만났다. 제니엘라나 주원 같은 수백 년 묵은 괴물을 제외하고서, 이성민이 만나 본 ‘인간’ 중에서는 위지호연이 제일이었다. 그런데 그 위지호연이 저주를 받아 약해졌다고?
한참을 달리던 경공을 멈춘다. 이성민은 난간을 뛰어넘고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머지 않아 그는 머릿속에 기억된 장소에 도착했다.
사마련의 건물은 동양풍의 거대한 저택이었다. 저택의 입구 앞에는 사납게 생긴 두 명의 거한이 경비로 서 있었다. 이성민은 등 뒤에 업혀 잠든 위지호연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귀창?”
경비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이성민의 눈썹이 움찔 떨렸다.
“업힌 쪽이 소천마요?”
이성민의 얼굴을 들여 보던 경비가 잠든 위지호연을 힐긋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서는 이성민의 말을 듣지 않고 몸을 돌렸다.
“들어가쇼. 지부장님이 기다리고 계시니까.”
두 명의 경비가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이성민은 설마 그들이 먼저 알아보고 문을 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함정일 지도 모른다.]“함정은 아닙니다.”
허주가 경고했고, 마치 그것을 읽었다는 듯이 경비가 먼저 말했다. 이성민은 잠깐 망설이다가 문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안에는 단아하게 차려 입은 중년의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이성민을 향해 꾸벅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이 저택의 총관을 맡고 있는 보혜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보혜가 숙인 머리를 들었다. 무공을 익힌 것은 확실했으나 이성민이 대단하다고 느낄 수준은 아니었다. 이성민은 앞서 걷는 보혜를 따라 저택과 이어지는 정원을 가로질렀다.
“지부장님은 뒤뜰 정원에 계십니다. 이렇게 날이 좋은 날이면 바깥에 곧잘 나와계시지요.”
보혜가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택의 뒤에는 제법 커다란 인공 연못이 있었고, 연못의 위에는 다리와 이어져 있는 팔각정이 있었다.
“지부장님은 저곳에 계십니다.”
보혜가 걸음을 멈추었다. 이성민은 천천히 연못으로 다가갔다. 팔각정의 안에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그는 다리 앞에서 멈춰 선 이성민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이쪽으로 오시오.”
중년의 남자는 보혜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초절정의 경지에는 들지 못하였으나, 절정 고수로서는 완숙한 모습이었다. 이성민은 천천히 다리를 가로 질렀다.
“내가 이곳에 올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까?”
“정파에 개방이 있다면 사파에는 하오문이 있소이다. 귀창이 철갑신창에게서 소천마를 구해내고, 도시를 떠나지 않고 되려 도시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는 소문은 방금 전에 전해 들었소.”
“그게 내가 이곳에 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까?”
“그렇게 하지 않을까, 하고 예상했을 뿐이외다. 철갑신창을 제압하고 소천마를 구한 것은 무림맹과 척을 지겠다는 뜻. 그럼에도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사마련의 도움을 청하려는 것이 아닐까. 대단한 예상도 아니지만.”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낮게 웃었다.
“소개가 늦어 미안하오. 내 이름은 관후고, 사마련 루베스 지부의 지부장을 맡고 있소.”
관후가 몸을 일으켜 포권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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