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159)
“켁.”
알라두르의 입에서 피가 뿜어졌다. 그는 가슴을 뚫고 나온 손을 내려 보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를 보았다. 그 시점에서 알라두르의 가슴을 뚫고 나온 손이 뽑혔다. 피가 울컥하고 뿜어지면서 알라두르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러니까… 씨발…”
알라두르가 처참한 얼굴을 하고서 끊어지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이 숲은 좆같다니까…”
그 말을 남기고서 알라두르가 앞으로 자빠졌다. 으아아악! 그를 보고 있던 무인들은 체통도 잊고서 비명을 질렀다. 알라두르의 가슴을 꿰뚫은 것은 창백한 얼굴을 한 적귀였다. 그는 손을 더럽힌 피를 혀로 핥으면서 이쪽을 보는 시선들을 보았다.
“많군.”
적귀가 중얼거렸다. 이성민과 조우한 후로, 숲을 떠돌던 적귀는 모여있던 세가의 무인들을 보았다. 행동을 망설일 것은 없었다. 몬스터가 그러하듯이 요괴는 인간을 먹는다. 다만 요괴가 인간을 먹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몬스터와는 다른 이유가 있다. 인간을 살해하고 먹는 것. 그것은 먹잇감으로 전락하여 죽는 인간이 느낀 공포를 먹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요괴에게 있어서 포만감뿐만이 아니라 힘을 더해주기도 한다.
“이 숲에 자리잡은 이후로 이렇게 많은 인간을 보게 되는 것은 처음이야… 겁도 없는 녀석들.”
적귀는 세가의 무인들을 비웃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적귀에게 있어서 지금의 상황은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야나에게 심장을 뽑힌 이후로, 적귀는 계속해서 약해지고 죽어가고 있었다. 죽음의 진행을 막기 위해 이 숲에 자리 잡기는 했지만, 진행을 늦추기는 했어도 완전히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러니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공포가. 저들이 두려워하면 할수록 저들을 포식하였을 때에 적귀가 얻는 힘은 많아진다. 비록 야나에게 패배하여 어르무리에서 도망치기는 했으나, 적귀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힘을 회복하고 숲의 요력까지 취한다면 야나를 쓰러트리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두렵나?”
적귀는 공포로 물들어가는 무인들의 얼굴을 보면서 물었다. 공포는 전염된다. 갑자기 알라두르가 적귀에게 죽은 것으로 세가 무인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번져가고 있었다. 적귀는 그것이 만족스럽고 즐거웠다. 비록 약해지기는 했어도, 한때 프레데터의 정점 중 하나였던 적귀의 힘은 저들 모두를 쉽게 죽일 수 있을 정도였다.
“너, 넌 누구냐?”
제갈태령이 공포를 숨기려 하며 물었다. 그는 급히 몸을 일으켜 검을 뽑았다. 적귀는 제갈태령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적귀.”
“적귀…?”
제갈태령은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남궁희원은 아니었다. 그는 이 숲에서 지내는 동안 에레브리사를 통해 미혹의 숲에 와있는 요괴들에 대해 들어두었기 때문이다.
“검을 뽑아라!”
남궁희원이 고함을 질렀다. 그 외침에 창천검광대의 전원이 검을 뽑았다. 제갈태령도 뒤늦게 현환충검대에게 그것을 명령했다.
“저항도 좋지. 그것이 꺾일수록 인간은 절망과 공포를 느끼게 되니까… 오랜만의 포식이다. 나를 즐겁게 해 다오.”
적귀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당아희가 더듬거리며 암기를 꺼낸다. 암야흑무대가 사방으로 뛰어나갔다. 수십 종류의 암기가 적귀에게 쏘아졌다. 드드득! 적귀의 등이 열리더니 두꺼운 갑각이 튀어나와 암기에게서 적귀의 몸을 보호했다.
“현환살검진을!”
제갈태령이 고함을 지른다. 현환살검진은 현환충검대가 펼치는 검진이다. 비록 숫자가 꽤 줄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검진을 펼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남궁희원은 급히 모용서진을 찾았다. 모용서진은 검을 들기는 했으나 어쩔 줄 몰라 머뭇거리고 있었다.
적귀가 움직였다. 앞으로 달린 적귀는 가장 먼저, 암기를 던져대던 암야흑무대의 한명을 덮쳤다. 암야흑무대의 대원은 보법을 펼쳐 적귀에게서 벗어나려 했으나, 적귀가 홱하고 뻗은 손은 암야흑무대원의 목을 잡았다. 적귀는 보란 듯이 목을 잡은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퍼억! 암야흑무대원의 머리가 위로 튀어 올랐다.
“하하하!”
적귀가 웃음을 터트렸다. 적귀는 입이 벌어질 수 없는 각도까지 벌려졌다. 그리고는 튀어 올라 떨어지던 머리를 한 입에 삼켰다. 으적! 이빨에 머리가 박살나는 것을 보며 세가의 무인들은 몸을 떨었다.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겁을 먹지 않았을 터이나, 지금은 아니었다. 일주일 동안 이 숲에 시달린 탓에 세가의 무인들의 정신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다. 덕분에 공포는빠르게 퍼져나갔다.
“으아아!”
제갈태령은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는 공포를 외면하려 고함을 질렀다. 현환충검대가 앞으로 달린다. 평소라면 뚫을 틈 없이 정교한 검진을 펼쳐야겠지만, 일주일 동안 약해져 있던 정신력과 공포, 인원수의 공백은 검진이라기보다는 조악한 칼질놀음으로 보였다.
그 안에 뛰어 든 적귀는 양 팔을 휘두르며 현환충검대의 대원들을 학살했다. 그는 일부러 대원들을 죽이지는 않았다. 팔을 뜯고, 다리를 뜯는다. 나뒹구는 대원들이 아프다고 지르는 비명과 부모를 찾는 것을 귀 기울여 듣는 다. 그런 비명과 절규는 공포를 증폭시킨다. 적귀는 입 안에 들어오는 피와 인육의 맛이 깊어짐을 느꼈다. 공포에 절은 인간의 몸뚱이는 요괴에게 있어서 세상 무엇보다 맛깔 나는 식사였다.
남궁희원은 대적하는 것보다는 탈출을 생각하고 있었다. 남궁희원은 모용서진을 보았다. 틈이 보인다면 모용서진을 강제로 데리고서 이 숲을 탈출하기 위해서였다.
[가, 같이 가요.]눈치 빠른 당아희가 재빠르게 남궁희원에게 전음을 보냈다.
[뭐요?] [암야흑무대를 돌진시켜 시선을 끌겠어요. 그러니까 나도 데리고 가 줘요!]그 말에 남궁희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갈태령을 버리는 것은 그렇다고 치고, 같은 세가의 가솔인 당아희가 당가 무인들을 버린다는 것이 역겹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중에 죽는 이들이 늘어난다. 비명은 커지고 공포는 증폭된다. 적귀는 모르고 있었다. 이 숲이 허주의 요력에 물들어 요괴의 숲이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적귀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사악.
숲이 일순간 침묵한 것을, 적귀는 느끼지 못했다. 죽어가는 시체 직전의 무인들 한 가운데에서 누군가가 몸을 일으킨 것도 보지 못했다. 몸을 일으킨 남자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알몸이었고, 유령처럼 희미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틀림없이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증폭되는 공포의 부름을 받아, 그 공포를 취하기 위해 이곳에 현신한 것이다.
“저건 또 뭐야…?”
현환충검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제갈태령은 어떻게 해야 이 끔찍한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상황에서 한 발 물러서 있었기 때문에, 제갈태령은 몸을 일으킨 남자를 보았다. 하지만 남자는 제갈태령을 보지 않았다. 남자는 무감정한 눈으로 학살을 계속하고 있는 적귀를 보았다.
남자에게 있어서, 적귀는 자신의 먹잇감을 빼앗는 무뢰배였다. 그렇기에 남자는 적귀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상대가 누구인가. 요괴인가 인간인가. 그것은 남자에게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응?”
적귀는 손에 묻은 피와 살점을 핥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알몸의 남자가 성큼거리며 다가오는 것을 보며, 적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적귀는 저 모습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허주…?”
남자는 허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비록 적귀가 기억하고 있는 허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존재였으나, 남자의 모습은 허주였다. 적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허주라면 아까 전에 보았다. 육체를 잃고, 혼만이 남아 인간에게 달라붙은 그 추하기 짝이 없는 몰골. 그렇게 전락한 것이 한때 이 토지를 지배하고 있던 대요괴 허주의 말로였다.
“이게 무슨…”
학살이 멈춘다. 적귀는 상황을 깨닫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4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허주는 죽었으나, 허주가 남긴 공포와 요력은 이 숲을 요괴의 숲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은 것이다. 이 토지는 한때 이곳에서 군림했던 대요괴를 다시 부활시켰다.
아니, 부활은 아니다. 저것은 어디까지나 이 토지에서 가장 강력했던 괴물의 모습을 본 땄을 뿐. 허주 본인인 것은 아니다. 적귀의 눈에 탐욕이 어렸다. 허주 본인이라면 모르겠지만, 단순히 모습만 본딴 것이라면 이 숲에서 태어난 공포의 형상일 뿐이다. 저것을 먹는다면 이깟 인간들 수백 수천을 먹는 것보다 더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운이 좋군!”
적귀는 들고 있던 머리를 던져 놓고서 허주의 모습을 한 요괴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까지, 적귀는 아무런 두려움도 갖지 않았다. 약해졌다고는 해도 적귀는 한때 프레데터의 정점이었다. 이 숲에서 태어난 공포의 형상. 아무리 길어 봐야 400년의 세월도 살지 못한 저 요괴는 절대로 적귀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래야만 했다.
달려들고, 손으로 찢는 것. 적귀의 생각은 거기서 멈췄다. 자신의 양 팔이 되려 뜯겨지고 머리가 뽑혔다는 것을 적귀는 끝내 알지 못했다. 양 팔과 머리를 잃은 적귀의 몸이 달리던 속도 그대로 땅을 뒹군다. 요괴는 적귀의 시체를 내버려 두고서 남은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살아남은 이들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나타난 저 알몸의 남자가 적귀보다 더한 괴물임은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사, 살려… 살려줘.”
제갈태령은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는 몸을 덜덜 떨면서 어린 아이처럼 겁에 질려 더듬거리는 소리를 흘렸다. 남궁희원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요괴를 보았다. 겁에 질린 것은 당아희도 마찬가지였다. 당아희는 가랑이가 축축하게 젖는 것을 느꼈으나 수치심도 느끼지 못했다.
“…서진.”
남궁희원이 작은 목소리로 모용서진을 불렀다. 양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모용서진이 남궁희원을 돌아 보았다.
“도망치시오. 뒤를 돌아보지 말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도망칠 수가 없다는 것을 남궁희원은 느끼고 있었다. 끝없이 헤매게 되는 숲이다. 이 자리에서 도망친다고 한들 이 숲을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도, 남궁희원은 모용서진에게 도망치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괴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는 행동을 멈추고서 머리를 돌려 무성한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뒤흔들렸다. 나무들이 꺾이더니 길을 연다. 요괴는 우두커니 서서 그것을 보았다. 생존자들은 요괴가 그쪽을 보고 있었으나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움직임을 보인 순간, 저 요괴가 이쪽을 향해 달려들어 모두를 죽일 것임을. 물론 그것은 확신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지도 모른다’ 라는 공포가 모두를 움직이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뭔지 알겠군.]허주가 중얼거렸다.
[이 숲은 네가 저 똥을 치워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이성민은 걸음을 멈추었다.
나무가 치워져 만든 길은 그리 길지 않았다. 설마 이렇게 가까이에 추격자들이 와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이런 참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민은 죽어가는 부상자들과 시체들, 그리고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세가의 무인들을 보았다.
“…귀, 귀창.”
제갈태령이 더듬거리며 중얼거렸고.
“…오랜만이야, 아우.”
남궁희원이 내뱉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이성민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직도 나를 아우라고 하는 겁니까?”
“못 부를 이유도 없지. 한 번 형님은 영원한 형님이 아닌가?”
남궁희원이 대답했다. 이성민은 그런 남궁희원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쪽을 빤히 보고 있는 요괴에게 시선을 주었다. 얼굴이 낯이 익다. 예전에, 이성민은 저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이 어르신과 똑같은 얼굴이군.]허주는 놀라지 않고서 대답했다. 이성민은 아무 것도 입지 않은, 허주의 모습을 한 요괴를 보았다. 탄탄한 근육은 둘째치고서도 하반신이 특히나 훌륭했다. 이성민의 등 뒤에 선 루비아는 양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으나, 교묘하게 벌려진 손가락의 틈사이로 보이는 루비아의 눈은 똘망똘망했다.
[거시기는 오히려 더 작아진 것 같은데.]허주가 투덜거렸다.
‘내가 저 녀석을 죽여야 한다고?’
‘강해 보이는데.’
[강할 거다. 이 어르신의 공포에서 태어난 놈이니까. 하지만 너도 충분히 강해.]허주는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한 번 해 봐라.]허주가 재촉할 것도 없었다.
요괴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