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406)
412화 94. 무신(4)
졸지에 팔을 모두 잃은 무신이 허공에서 몸을 비틀었다. 이성민은 겨눈 창을 아래로 내리면서 무신을 보았다.
무신은 눈을 까뒤집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양팔을 잃고 버둥거리는 무신의 몸은, 이런 비유는 좀 그럴 테지만 오뚝이와 비슷해 보였다.
“으으아아아아!”
왼팔의 격통이 너무 심했다. 양팔이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무신을 미치게끔 만들었다.
무신!
성문 쪽에서 흙먼지를 뚫고 몸을 일으킨 월후가 외쳤다. ‘인간’인 무신은 잘린 팔을 재생하지 못한다.
상실된 신체를 재생하는 마법은 없다. 대단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테레사조차도 그러한 상처를 재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수는 것이 쉬운 법이지.]마령이 중얼거렸다.
[인간이 가진 한계이기도 해. 오직 인간만이 영체와 육체가 동일하니까. 격을 뛰어넘는 것은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인간인 이상, 그 어떤 마법과 신성력으로도 손실된 육체를 재생할 수는 없다.]알고 있다.
그래서 스칼렛의 눈도, 백소고와 흑룡협의 팔도, 로이드의 다리를 재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무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그의 무공이 고강하다 한들, 무신은 인간이었다.
그는 투신전에 들 자격도 갖지 못했다. 죽음 직전의 창왕이 얻은 깨달음은 무신이 평생을 바쳐 도달한 것보다 높았다.
‘아.’
버둥거리는 무신을 향해 다가가면서, 이성민은 깨달았다. 무신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 그 원한과 증오, 복수심은 이성민 본인의 것이었다.
제니엘라의 영혼을 구속하고, 제미니에게 자비를 베풀었을 때. 이성민은 혈마의 기억에 영향을 받았다. 에레브리사에서 골드 드래곤 로드인 호메루소스와 만났을 때는 허주에게 죽은 케이세로드의 기억에 영향을 받았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마련주의 기억은…… 이성민에게 아무런 감정적 영향을 주고 있지 않았다.
사마련주를 죽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무신인데. 이성민은 사마련주의 기억을 통해 아무 원한도 느끼고 있지 않았다.
그가 느끼고 있는 원한은, 사마련주의 것이 아닌 이성민 본인의 것이었다.
그것을 알게 되니 참 허망하고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마련주는 죽음 직전에 무신에게 아무 원한도 갖지 않았다.
차라리 짙은 원한이라도 느끼고 있다면 마음이 편할 텐데. 이성민은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버둥거리는 무신을 보았다.
이성민은 사마련주의 기억을 이해했다. 사마련주가 죽음 직전, 무신에게 품은 감정은 연민이었다.
왜 연민을 품었는지도 이해했다. 한때 사마련주와 무신의 성취는 비슷했다. 어느 순간부터 사마련주는 아득히 먼 곳으로 갔고, 무신은 거의 발전하지 못했다.
그에 대한 연민이다. 한때 비슷한 위치에 있었기에 품은 연민.
본좌가 여기서 너를 죽인다면, 너는 오지 못해.
사마련주가 무신에게 했던 말. 사마련주는 그때 무신을 죽일 수 있음에도 죽이지 않았다.
그는 내심 무신이 외길에 오르기를 바라고 있었다. 연민과 동정으로나마 그러기를 바라 주었다. 나는 어떤가.
이성민은 가늘게 뜬 눈으로 무신을 보았다.
“감히, 감히, 감히……!”
무신이 침을 튀기며 외쳤다. 이쪽을 노려보는 눈에는 핏발이 가득 서고 귀기에 가득 차 있었다.
“너, 너 따위가. 감히……!”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기워 붙인 자존감은 너덜너덜했지만, 무신은 차마 그것을 완전히 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을 버렸을 때, 자기 자신이 너무 초라할 것 같아 두려웠다. 무신은 차라리 10년 전에 사마련주에게 죽었어야 했다. 그때 죽었더라면, 오늘의 치욕은 겪지 않았을 테니까.
“조, 조, 종언. 재앙…… 재앙이 너에게 괴물 같은 힘을 주었구나. 그것만 없었어도, 신령, 신령이 나를 더…… 으…… 으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나?”
이성민은 더듬거리며 중얼거리는 무신에게 물었다. 그 말에 무신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내가 쓰는 힘은 요마의 힘이야. 맞는 말이니 부정도 못 하겠어. 그런데…… 이 무공. 이게 정말로 종언의 재앙으로 도달한 힘이라 생각하나?”
“이치…… 에…… 안 맞는 힘이다…… 어떻게 무공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이성민은 다시 한번 물었다. 무신은 입을 꾹 다물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 질문과 그에 대한 답에는 이미 예전에 도망쳤다. 10년의 폐관. 거듭된 명상.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 설원에서의 싸움.
알고 있다.
그 힘은 요마의 것도, 종언의 재앙으로서 얻은 힘도 아니었다.
부조리할 정도의 강함.
이치에 맞지 않는 속도.
무신은 바보가 아니었다. 외면했을 뿐,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본다면. 똑바로 생각한다면…… 알게 된다.
그것은 틀림없는 무공이었다. 부조리하고, 이치에 벗어나 있다고 해도. 극에 닿아 상식을 초월하게 된, 그런 무공이었다.
“난…….”
답을 구하고, 절망했다. 한때 호적수라 생각했던 사마련주가 그렇게 멀리 가버렸다는 것에. 비겁한 것은 사마련주가 아닌 무신 본인이었다.
신령은 사마련주의 힘을 빼앗았고, 무신은 사마련주를 죽였다. 아니, 그때…… 사마련주를 죽인 것은 정말 나였나?
부푸는 혼란 속에서 무신은 생각을 잊었고 모든 고민을 외면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초라해지는 자기 자신이 싫어 찢어진 자존감을 기워 붙여 만든 가면을 썼다.
고금제일인.
무신은 힘없는 눈으로 이성민을 보았다. 무신의 머리카락은 완전한 백발이 되었고, 그로도 모자라 뚜둑뚜둑 끊어져 우수수 떨어졌다.
주름이 거의 없던 무신의 얼굴에 깊은 주름들이 생겨났다. 꼿꼿이 세웠던 등허리는 구부정해졌고 무신은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안다…….”
삽시간에 수십 년은 늙은 무신이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 그는 더 이상 무신이 아니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발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자존감과 아집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이해를 외면한 노인일 뿐이었다.
“일천이의 힘이…… 요마의 것이 아니라는 것도…… 종언의 재앙으로서 얻은 힘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때 내가 죽지 않은 것이…… 일천이의 동정심 때문이었다는 것도…….”
“……스승님은 당신을 존중했다.”
“그게……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지…… 크…… 크크크…….”
무신이 자괴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웃음을 흘렸다. 그는 여전히 아픈 왼팔을 내려 보았다. 무신은 몸을 웅크리고 흐느끼며 울었다.
“대체…… 나는 무엇이 부족했던 것이냐……?”
절망에 찬 목소리였다.
“재능이 부족하다 여긴 적은 없다. 노력도…… 충분히 했다…… 사명감도 있었다…… 세상, 세상을 구하고 싶었다…….”
안다.
종언을 막고자 했던 무신의 마음은 진실이었다.
“한데…… 왜 나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냐. 왜, 왜…….”
이성민은 설명하지 않았다.
이성민은 자신의 기억을 뽑아 빛의 구슬을 만들었다.
무신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빛의 구슬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무신에게 닿자, 무신의 몸이 바들거리며 떨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무신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
자신이 외면했던 것과 생각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을.
진실을 알게 된 무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부릅뜬 눈에서는 피눈물이 줄줄 흘렀다.
“하…… 하하! 하하하하! 으하하하하!”
무신이 미치광이처럼 웃었다. 이성민은 고요한 눈으로 무신을 보았다.
“모두, 모두 거짓이었구나. 내가…… 으하하하! 내가 속았어, 내가! 왜, 왜 생각하지 않았는지. 왜, 왜……!”
의심은 줄곧 있었다.
하지만 의심은 쭉 의심으로만 있었다. 그 의심을 확인해 보고자 했던 적은 없었다.
그것조차 신령의 농간이었을까. 무신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는 실실 웃으면서 이성민을 보았다.
“그래…… 그랬었어…….”
무신의 발이 움직였다.
“종언의 재앙은 바로 나였구나.”
무신의 몸이 사라졌다. 이성민은 무신의 움직임을 보았으나, 그가 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이성민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이쪽으로 다가오던 월후의 머리를, 무신의 발이 으깨버리고 있었다.
“내가 어리석었어…….”
머리를 잃은 월후의 시체가 아래로 떨어졌다. 죽음의 순간에도 월후는 무신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신은 바닥에 떨어진 월후의 시체를 보면서 몸을 돌렸다. 그는 피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웃었다.
“자네에게…… 몹쓸 짓을 많이 했군. 일천이에게도…….”
이성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웃음을 멈춘 무신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 보았다. 잠시 하늘을 보던 무신이 중얼거렸다.
“나는 갈 수 없네.”
투신전…… 무신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격도 없거니와 염치도 없어…… 창왕…… 후후. 그가 그 길에 올랐군. 혹, 나중에 그를 만나게 된다면…… 미안하다고 전해주게. 물론…… 일천이에게도.”
“그러지.”
이성민은 살짝 머리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무신은 크게 숨을 삼켰다. 그는 떨리는 두 눈을 감으며 물었다.
“마지막…… 부탁을 해도 되겠나?”
“말해 봐.”
“자결…… 하게 해주게.”
그런 부탁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민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어째서?”
“부끄러움이 많아…… 이…… 덧없고…… 어리석던 삶을 나 자신의 손으로 끝내고 싶네…….”
그 말에, 이성민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 정도의 존중은 이성민도 줄 수 있었다.
“아아…….”
나지막한 신음을 흘린 무신의 몸이 크게 덜컹거렸다. 그는 자신의 내공을 사용해 모든 혈맥을 터뜨렸다.
꽉 감은 눈과 코, 귀, 입에서 검은 피가 뿜어졌다. 무신의 몸이 크게 휘청거리더니 아래로 추락했다.
‘나는…….’
어리석었다. 무신은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먼 옛날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고, 땅에 닿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무신은 길고 긴 기억 속에서 헤매었다.
처음 무공을 익혔을 때.
사마련주와 검선을 만났을 때.
막연히, 고금제일이 되겠다는 바람 속에서 무공에 매진했을 때.
영매를 만났을 때.
그때부터, 고금제일이라는 막연한 목표를 버렸다. 종언에 대해 듣고, 영매와 함께 세상을 구하겠다는…… 그런 사명을 갖게 되었다.
영매의 소개로 월후를 만났고, 육존자를 모았고, 천외천을 만들어서…….
‘아아…….’
그것이 무신이 살아온 삶의 대부분이었다. 종언을 막겠다는 목적으로 살아왔다.
오늘 이전까지만 하여도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생각 자체가 무신이 살아온 평생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부질없구나……’
헤매던 기억의 끝에서, 무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살아온 평생은 거짓이었다.
신령은 그를 기만하고 꼭두각시처럼 부렸다. 종언을 막으려 했지만, 무신이야말로 종언을 바라는 신령의 종이었다.
무신은 큭큭 웃었다. 지면이 가까웠고, 무신은 두 눈을 감았다.
높이가 높았고, 혈맥을 터트린 무신의 몸은 너무나도 약했다. 호신강기조차 없으니 이 높이에서 추락하는 것은 틀림없는 죽음이었다.
이성민은 바닥에 널브러진 무신의 시체를 보며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스승의 원수를 갚았음에도 유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제니엘라를 쓰러트렸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감정이었다.
사마련주가 그런 것처럼, 이성민도 무신을 동정했다. 그는 무신의 시체를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새카만 불꽃이 일어나 무신의 시체를 집어삼켰다. 포식에 대해서도 생각했지만, 무신의 심장은 포식하고 싶지 않았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기억에 뭔가를 더하고 싶지도 않았고, 사실 지금 이성민의 무위에 무신의 무공은 필요가 없었다.
성벽의 병사들과 성문의 구경꾼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이성민을 보고 있었다.
진실을 알지 못하는 그들이 보기에는, 세상을 구하려던 무신과 월후가 잔악한 이성민에게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오해는 익숙했다.
그리고, 지금은 설명하는 것보다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먼저였다.
짓이겨진 월후의 시체에서 새하얀 빛이 새어 나왔다.
[으음…….]마령이 앓는 소리를 냈다.
신령의 빛이 이성민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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