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3
033. 돌개몰 사건(2)
“마지막 배에 있던 왜구들이 바다로 뛰어내렸습니다.”
고함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네 명이 달구곶을 향해 헤엄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하긴 두려웠을 것이다.
사방이 훤한 바다 위라서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총소리는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그리고 그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신의 동료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겁을 먹고 도망치겠다고 생각하고 뛰어내린 것이리라.
총의 무서움을 방금 알게 된 하룻강아지들.
너희들이 이곳으로 약탈하러 올 때는 이런 일이 생길 줄을 몰랐겠지?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너희들을 피해 도망치고 울부짖으며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했겠지?
그 아우성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지만, 뜻은 알면서도 그들을 죽이고, 돼지나 닭 잡아서 제사상에 올려놓고 제를 지내듯이 어린아이를 죽여서 또 제사상에 올려놓고 제를 지내겠지?
2년 전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것을 생각하면 저것들은 인간이 아니니, 인간으로 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불쑥 치솟는다.
왜구들의 배는 육지에서 가까운 곳에 닻을 내리고 있었기에 배에서 육지까지는 불과 30여 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수영을 해서 가도 잠깐이면 가는 거리이다.
“잡아.”
탕, 타당, 탕~
정하연의 목소리가 바다 위에 울렸고 뒤이어 총소리가 들렸다.
정하연 역시 2년 전에 왜구에게 손이 묶여 끌려가던 경험이 있다.
더 큰 일이 발생하기 전에 태영이 구해 주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그 일로 인해 왜구들에게 가지는 적개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왜구 넷이 헤엄치던 모습 그대로 축 늘어졌고, 뒤이어 붉은 피가 바닷물에 먹물 번지듯 번져 나갔다.
태영이 마을로 들어섰을 때에는 마을 곳곳에 왜구들의 시신이 보였고, 마을 사람들이 대문 안에서 고개를 내밀거나, 또는 골목길에서 고개를 빼고 2중대 병사들이 왜구를 사살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들은 처음 보는 모습일 것이다.
2년 전 그때, 태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면서 왜구들을 사살했다면, 지금은 왜구들의 진압 과정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마을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신기함과 두려움이 교차하며 동시에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철없는 아이들은 왜구들을 소탕하는 병사들의 뒤를 따라 달리는 모습도 보였다.
“어디서 온 관병들이래?”
“관병은 아니고 사포의 군인이라고 하네.”
“우와, 무섭네. 그렇게 무섭게 굴던 왜구들이 꼼짝 못 하네.”
“저 사람들이 앞으로 내민 저기서 천둥소리가 나고, 천둥소리가 나면 어김없이 한 놈의 왜구가 죽어.”
총소리 사이에 자기들끼리 하는 질문과 답이 들려왔다.
태영 일행이 총을 든 채로 관아 앞으로 가는 동안 신기한 구경거리를 본 것처럼, 두려워하면서도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으아아앙~
태영의 귀에 울부짖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기에 고개를 돌려보니, 집 안마당에는 남편인 듯한 남자가 쓰러져 있고, 품에는 아이를 안은 채 산발을 하고 울부짖는 한 여인이 있었다.
어쩌면 2년 전의 율촌과 사포에 왜구가 쳐들어왔을 때의 모습과 저리도 똑같을까?
태영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곳을 바라보자 가림이와 눈이가 그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울고 있는 여인을 달랬다.
의무병 한 명이 따라 들어가서 쓰러져 있는 남자를 보더니 태영을 쳐다보고 고개를 젓는다.
죽었다는 소리다.
또 몇 명이나 죽었을까?
다친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평화롭고 한적한 어촌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고기나 잡는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이곳이 이렇게 왜구들의 침략으로 또 초토화되었다.
총소리가 그친 것으로 보아 왜구들의 소탕이 끝난 모양이었다.
“의무병, 의무병 어디 있나?”
그때, 긴급하게 뛰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병사 한 명이 목청 높여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습니다.”
태영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던 의무병이 큰 소리로 대답을 했다.
달리는 소리가 이쪽으로 향했고, 2중대 3소대장이 태영의 앞으로 숨을 헉헉거리며 달려왔다.
“충성. 긴급 사항 보고 드립니다. 만삭의 임산부 배가 갈라져 의무병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태영을 보자마자 경례를 하고는 긴급 사항의 내용을 짧게 보고했으나 병사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가자. 뛰어.”
태영은 경례를 받는 둥 마는 둥 즉시 의무병에게 소리쳤고, 몸을 움직이는 사이에 의무병은 벌써 달리고 있었다.
몇 채의 집을 지나고 대문을 들어서니, 맙소사.
배가 불러 만삭으로 보이는 임신부가 마당의 멍석 위에 누웠는데, 그 배가 마치 솥뚜껑 따듯이 동그랗게 난 칼자국을 따라 뱃가죽 피부가 갈라져 흘러 있고, 주변에는 흘러내린 내장과 낭자한 선혈로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우욱.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잔인하게 배가 난도질당한 임산부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울면서 서 있고, 그 옆쪽에는 다리에 총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왜구로 보이는 한 남자를 두 병사가 붙잡아 줄로 묶고 있었다.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는 가슴과 배에 칼을 맞은 듯 피를 흘렸지만, 아내의 어깨와 머리를 받치고 앉아 통곡을 하고 있었다.
정하연을 포함한 여군들은 그 처참한 모습에 차마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이, 아이는…… 으으.”
그 모습으로도 임산부는 아직 살아 있고, 숨이 넘어가는 목소리로 들릴 듯 말 듯한 소리이지만 아이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이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을 태영은 잘 모른다.
그런데 자신의 배가 갈라져 내장을 밖으로 쏟아 낸, 그래서 죽어 가고 있는 저 상황에서도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대장님,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그리고…….”
의무병이 여인의 옆에 꿇어앉아 여인의 상태를 보고 몸 밖으로 흘러나온 내장을 보자 고개를 저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흐응, 엉엉엉.”
남편의 울음소리가 주위를 둘러싼 온 마을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파고들듯이 태영의 가슴속으로도 파고들었다.
남편의 품에 안긴 여인의 고개가 스르르 넘어가고, 남편의 앞가슴 옷자락을 잡고 있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남편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고, 마을 사람들의 탄식과 울음소리도 흘러나왔다.
“아이를 살려라.”
태영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정신을 수습하고 목이 멘 소리로 의무병에게 말했다.
엄마의 배 속에 있는 태아는 숨을 쉬지 않지만, 엄마의 피를 통하여 산소를 공급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산모가 죽었으니 피의 흐름이 멈추기도 했고, 이미 피를 너무 흘리기도 했으니 산소를 공급받지 못할 것이기에 조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태아는 죽는다. 아니,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도는 해 봐야지.
“네. 네? 어, 어떻게?”
의무병이 무심결에 대답하다가 반문하며 태영을 쳐다보았다.
“신속하게. 엄마가 죽었으니 배 속의 아이도 곧 죽는다. 신속하게 조치해야 해.”
둘러선 모든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 정하연도 여군들도 의무병도, 다른 병사들도 모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태영을 쳐다보았다.
“시간이 없다. 아이가 살 수 있는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해 봐야지. 수술 칼 이리 내.”
태영이 그 옆에 주저앉으며 의무병에게 소리 질렀다.
“혹시, 아이가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 강제로 아이를 꺼내겠네. 고개를 저리 돌리게.”
여인의 남편인 남자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통보하듯 고함을 치고는 의무병이 건네주는 수술 칼을 잡았다.
이런 때, 죽은 임산부의 남편과 되느니 안 되니 말싸움을 할 틈이 없다.
태영은 의사도 아니고, 의료인도 아니다. 당연히 수술을 해 본 적도 없고, 그런 것을 본 적도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피가 흐르고 있지만 남산만큼 불러온 배는 아이가 자라서 자궁이 그만큼 확장된 것이다. 아이 엄마는 이미 죽었지만, 자궁은 움직이고 있고, 눈앞에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니 제왕 절개 수술하듯이 자궁을 가르면 아이가 나올 것이고, 제 명이 길면 아이는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꺼내 주지 않으면 무조건 죽는다. 또한 어른이라면 2~3분은 숨을 쉬지 않아도 상관없겠지만, 태중의 아이이기에 1분 이상 지체하면 안 될 터였다.
오로지 아이의 운에 맡길 수밖에 없지만, 시도해 보지도 않고 아이를 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도 손길을 늦출 수가 없었다.
왼손으로 내장을 밀쳐내고 오른손으로는 의무병이 건네준 수술 칼을 고쳐 잡았다.
피에 미끄러지고, 살갗에 미끄러져 잘 붙잡히지 않는 것을 억지로 손에 잡았다.
아이는 머리를 아래로 두니까, 머리 우측이라 생각되는 부분에 칼끝을 찔러 넣었다.
양수가 칼자국 사이로 터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처음 보지만, 그것이 양수일 것이라 생각되었다.
주위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신음 소리와 작은 비명 소리가 태영의 귓가에 들려왔지만, 거기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터진 자궁의 홈에 손가락을 끼워 넣고 당기면서 조심스럽게 칼끝만을 넣어 당겼다.
아이를 담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질긴 장기이지만, 힘주어서 조심스럽게 칼을 당기자 마침내 손이 충분히 들어갈 정도로 벌어졌다.
수술 칼을 의무병에게 넘기고 태영은 배 속으로 두 손을 집어넣었고, 곧이어 손에 만져지는 작은 생명을 붙잡고 천천히 당겨 냈다.
손끝에 심장 뛰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아직 살아 있다. 아주머니 한 사람 이리 와요.”
태영이 배 밖으로 나온 태아를 붙잡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하자, 나이 든 여인 하나가 재빨리 태영의 옆으로 와 아이를 붙잡으면서 역시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누가 부드러운 천하고, 따뜻한 물 좀 가져오게. 빨리.”
후다닥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를 받은 여인은 두 발을 위로 들고는 의무병에게 탯줄의 여기를 잘라라, 묶어라 소리치더니 태아의 엉덩이를 제법 세게 내리쳤다.
“엄마는 어쩔 수 없어도, 이렇게 해서라도 엄마 배 속에서 나왔으니 너는 살아야지. 이놈아.”
아이를 받았던 아주머니의 그 목소리에는 울음이 배어났지만, 아이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진심으로 느껴졌다.
“흘러나온 내장을 배 안으로 모두 넣고 꿰매라.”
태영은 의무병에게 그렇게 시켜 놓고, 엉거주춤하게 선 채로 그 여인이 하는 것만 넋을 잃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무성 영화의 한 장면인 듯이 눈앞의 모습이 흘러가고 있었다.
“으아아앙.”
아이의 울음소리.
엄마는 죽었지만, 죽은 엄마의 배 속에서 나온 아이는 산 듯했다.
마을 여인이 가져다주는, 물이 담긴 나무 그릇을 앞에 놓고 손을 씻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그놈 참 명이 긴 놈일세.
그러게 제 엄마가 죽었는데도 살아났으니 얼마나 명이 긴 건가?
늠름하네.
그나저나 저기 대장님이라 불린 분이 정말 대단해.
어찌 그 상황에서 아이라도 살리자는 말을 하고, 죽은 어미 배 속에서 아이를 꺼낸다는 말인가?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무언가 속닥이며, 아이를 씻기고 포대에 싸고 또 누군가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와 총이 부딪치는 철거덕 소리가 산발적으로 들리더니 웅성웅성하는 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충성. 달구곶에 침입한 왜구는 모두 소탕되었습니다.”
2중대 중대장인 권우석 대위가 경례를 했다.
“상황은?”
“우리 피해는 전무합니다. 왜구 서른하나를 사살하고, 부상자 열둘을 포함하여 마흔일곱을 생포하였습니다. 마을 주민 사망자와 부상자는 집계 중입니다. 이상입니다.”
“생포한 왜구들은 모두 해안가에 묶어 둬라. 부상자는 치료해 줄 필요 없다.”
“넷. 명령대로 시행하겠습니다.”
인도주의?
포로 대우?
웃기시는 소리.
지금 눈앞의 이런 모습을 보고서 그딴 생각이 드는 거야?
그리고 지금 이 시대는 고려 시대라구.
제네바 협정 같은 것도 없고, 포로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뭐 그딴 것도 없지만, 있어도 이 왜구들에게는 절대로 적용하지 않을 거라구.
지금까지도 마음속으로 왜구들에게 수십 배로 응징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했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잔인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처참하게 응징하는지를 반드시 보여 줄 것이다.
마음속으로 한 번 더 다잡았다.
“저기 죽은 여인을 보았는가?”
2중대장인 권우석을 향해 물었다.
“네. 방금 보았습니다.”
“저기 있는 저 왜구 놈이 한 짓이다.”
온몸이 꽁꽁 묶여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왜구를 가리켰다.
태영이 임산부의 배 속에서 아이를 꺼내는 사이에 왜구를 붙잡고 있던 병사들이 묶은 모양이다.
그 왜구는 태영과 병사들을 노여움에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제가 잘못했다기보다는 틈만 생긴다면 너희들을 죽이리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느낌상으로는 달구곶으로 쳐들어온 왜구들의 리더 정도로 보였다.
“가장 고통스럽게 살아 있도록 하겠습니다.”
태영이 말하는 의미를 바로 눈치챈 권우석의 대답이다.
“그래, 그리고 마지막 처리는 마을 주민과 저 여인의 남편에게 넘겨 줘.”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관아로 가자.”
태영의 말에 권우석이 앞장섰다.
“관아의 병사들은?”
관아라고 생각되는 곳에 도착하자 권우석에게 물었다.
“딱 한 명 있습니다. 그런데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래? 부상이 심한가?”
“팔을 많이 다쳤고, 다리에도 한 칼을 맞아서 절고 있긴 하지만 심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일단 의무병에게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왜구들과 싸우고 있었나?”
“네, 우리 부대가 도착했을 때 쫓기면서도 혼자 왜구와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그놈, 참 쓸 만한 놈일세, 의무병이 아까 거기 정리하고 오려면 시간이 걸릴 거야. 그놈 어디 있나? 좀 데려와 봐.”
“네.”
권우석이 대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는 병사들과 마을 사람들 틈 사이를 보더니 사포의 병사가 아닌 관복을 입은 부상자를 부축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손짓을 했다.
“이리 데리고 와.”
달구곶의 관복을 입은, 체격이 아주 좋은 청년이 태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름이 뭔가?”
“소인, 박세인이라 하옵니다. 나리.”
“자네, 나한테 잘못한 것이 있는가?”
“아. 그, 그게…….”
태영의 질문에 대답을 더듬거리며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몰라 하는 표정과 당황이 얼굴에 묻어났다.
“일어서라. 무조건 무릎을 꿇지는 말라는 소리이다.”
태영이 주위에 선 병사들에게 눈짓하자 박세인을 부축하고 왔던 병사 둘이 일으켜 세우고 양쪽에서 팔을 잡았다.
“다친 것은 조금 후에 의무병이 오면 자세히 보기로 하고, 호장은 어디 있나?”
“아, 호, 호장나리는 피신했사옵니다.”
“가족들과 다른 가병들 데리고?”
“어, 어찌?”
박세인이 놀란 눈으로 반문하듯 말했다.
“어찌 아느냐고?”
전에 사포 호장 박한도 그랬거든. 어찌 한 고을의 수장이라는 놈들이 한결같이 제 살길만 찾는 것은 이리도 똑같은지.
지금은 장인이 된 정인구처럼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도 있고, 박한처럼 도망만 치는 놈도 있다.
그리고 신도익이나 김처인 같은 병사가 이곳 달구곶에도 있었다. 좀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박세인이 바로 그런 병사인 듯했다.
“도망간 호장 이름이 뭔가?”
“강재호 호장 나리십니다.”
“강재호는 이 시간부로 파면한다. 너를 호장으로 임명할 것인지 아닌지는 조사를 한 후에 결정하겠다.”
“네. 네?”
“그리고, 권 대위.”
태영은 박세인의 말이 끝나기 전에 권우석을 불렀다.
“네. 대장님.”
“돌개몰에 다녀올 테니까, 이곳 정리하고 왜구들은 도망치지 못하도록 해안에 묶어 둔 채 음식물을 일절 제공하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도망간 강재호와 그 가족들, 가병들이 돌아오면 모두 잡아서 옥에 가두도록 해. 만일 거부하거나 반항하면 사살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