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69
014. 고소했습니다
~삐꺽~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작은 그림자가 밖으로 나왔다.
누나다.
“어머니는?”
“주무셔. 주무시는 척하는 것 같기도 하고.”
“누나도 처음 들었어?”
“응.”
“모녀간은 모자간과는 조금 다르지 않아?”
“그렇기는 한데, 물으면 입을 다무셨고, 말을 돌리면서 자리를 피하시는 바람에…….”
“…….”
“그래도 엄마가 결혼 전에 하시던 일은 알아.”
“뭔데?”
“애널리스트.”
“증권?”
“응.”
“굉장한 엘리트였네?”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느낌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인지 몰라도, 영어도 상당히 능숙해.”
“그건 어찌 알아?”
“어떤 연예 방송에서 외국인 출연자가 말한 것을 듣고, 통역사가 통역을 해 주었는데, 출연자가 원래 말하고자 했던 의도와 해석이 달랐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
“아까운 인재가 농사를 짓고 있었던 거네.”
“오늘 들은 이야기와 대입해 보니, 그래서 외할아버지의 배신감이 더욱 컸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럴 수도 있겠다.”
“지금은 자산 운용사나 투신사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네 말대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지금도 여전히 대단한 엘리트야.”
“그렇지?”
“딸에 대한 기대가 컸겠지? 배신감도 컸을 테고.”
조금 격앙된 누나의 목소리를 듣는 그때, 태영의 머리를 스쳐 가는 한 가지.
어머니에게 일을 만들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왜 그만두신 거야?”
어머니의 전공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드리면 어떨까?
그 생각을 하면서 누나에게 물었다.
“나 때문이지. 그리고 그다음은 너 때문이고.”
“……?”
“외가와 결별했으니 나와 너를 맡길 곳이 없잖아?”
“그런가?”
부모님이 젊었을 당시에 결혼하고 임신하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던 것일까?
“그럼, 그때도 육아 휴직 같은 제도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있었다고 해도 사용은 불가능했을 거야.”
“왜?”
그런 부분에 문외한다운 단순한 질문이다.
“그게 시행한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공무원이 아닌 민간 기업에서는 여전히 육아 휴직을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워.”
“…….”
“그리고, 육아 휴직 제도가 있었다고 해도, 유아를 돌봐 주는 기관이 거의 없을 때이니까.”
그러네.
확실히 그런 부분은 누나가 더 잘 안다.
“누나 전공이 경영학 아냐?”
“맞아.”
“투신사나 자산 운용사 같은 데는 취업할 생각 안 해 봤어?”
“해 봤지. 다만 그쪽에서 나를 안 뽑아 주지.”
왜냐고 묻지 않았다.
누나가 다녔던 대학도 태영과 비슷하다.
인서울은 맞지만, 메이저 대학이 아니다.
보나 마나 이력서에서 걸러졌을 것이다.
인서울만 해도 대단하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딱 거기까지다.
“무슨 생각?”
태영이 말없이 가만히 서 있자 누나가 물었다.
“응, 어머니가 하실 만한 일이 떠올랐어.”
“그래? 뭔데?”
“아직은 구체화되지 않았으니까, 구체화되면 말해 줄게.”
“야! 뭐야? 말해 봐.”
“다음에.”
“야아~”
“그나저나 면허 안 딸 거야?”
말을 돌려야지.
그리고 머릿속에는 어머니와 관련된 일을 떠올렸다.
태영이 R존과 같은 것을 만들기 위해 벌려야 하는 일은 산업 분야다.
규모를 짐작하기 힘들 정도의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그 일에 끝없이 돈을 조달하려면 금융과 관련되는 일이 반드시 해야 한다.
***
“……여 ……역귀.”
[야이 씨, 어찌 되었는데?]역귀파 보스 이해산은 사흘 만에 겨우 전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유재구의 보좌관 심원석에게 전화를 하자마자 전화기 너머에선 짜증에 뒤이어 고함 소리부터 들려왔다.
“그……게…….”
[회수했어?]화를 내야 한다.
그런데 쇄골이 부러져서 숨을 쉬기도 어렵다.
소리도 지르지 못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거다.
그런데 저쪽에서 다짜고짜 고함을 지른다.
이 일을 맡을 때.
토요일 심야에 그 일을 끝내고, 일요일 오전에 연락을 주기로 했다.
그렇지만, 모두 병원에 실려 갔다.
응급 처치를 받은 후에 통화 정도라도 가능하게 된 것이 조금 전이다.
병원의 연락을 받고 인력 용역 담당 부서의 직원이 병원에 왔다.
지금, 그 직원의 전화기로 전화를 하고 있지만, 자신은 전화기를 들 수조차 없다.
직원이 자신의 귀와 입에 전화기를 대고 있다.
“씨바…… 노미…… 뭐라는 거야?”
부아가 솟아서 화를 벌컥 밀어냈다.
그 정도 작게 소리치는 데도 온몸이 울리는 통증이 확 덮쳐 온다.
이 새끼가 제대로 된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아서 일은 엉망이 되었다.
지금 자신의 꼴이나 조직원들의 꼴은 말이 아니다.
주먹의 세계도 애들에게 일을 시키려면 돈을 줘야 한다.
조직이라고 하지만 절반 이상은 각각 자신들이 하는 사업이 따로 있다.
그 애들 불러서 돈 주기로 하고 일을 시켰다.
그리고 모두가 이렇게 누워 있는데, 뭐가 어째?
[뭐?]“……야 이, 개……새야. 뭐……이라?”
움직일 수만 있다면, 의원 보좌관이고 나발이고 가서 목을 따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뭐 어째?
영화 속의 주먹 세계는 말 그대로 영화 속일 뿐, 현실과는 다르다.
이 일로 인해, 앞으로는 조직원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을 것은 자명하고, 치료비와 입원비 모두를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어쩌면 누워 있는 동안 수익 보상도 해 줘야 한다.
그런데 뭐가 어째?
***
“세 장이요?”
“……네.”
복권 사업 팀의 사람들도 깜짝 놀라서 물었다.
1등짜리 복권 3장을 내밀었으니 놀랄 일이긴 하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바로 아래쪽의 번호는 2등이다.
“같이 오신 분은요?”
갑자기 곁에 있는 태영에 대해 물었다.
“아, 남동생이에요. 오늘 하루 제 보호자로 따라왔어요.”
태영이 살짝 고개를 들고 모자 앞 챙에 손을 대면서 그렇다는 제스처를 보여 주었다.
그런데 왜 계속 미심쩍어하는 눈으로 보는 것일까?
그리고 누나와 태영의 뒤쪽에 있을 청원 경찰 쪽으로 눈길을 한 번씩 주는 것일까?
선글라스는 벗었지만, 검정색 볼캡 모자에 검정색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폭력배나 뭐 그런 것으로 보이나?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렸다.
{어떻게 1등 3장을 한꺼번에 한 사람이…….}
{그것도 모두 같은 판매점이네.}
{이거 경찰에 수사 의뢰해야 하는 거 아니야?}
{뭐로? 당첨 번호 유출로?}
{그건 말이 안 되긴 하네.}
같은 말들로 잠깐 혼란했다.
‘배가 아픈 건가? 매주 보는 일일 텐데?’
따지고 보면 당첨 번호 유출이 맞나?
저들은 배가 아픈 거 맞다.
위니의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내용이다.
위니는 지난 과거의 정보부터 앞으로 8백 년 이후까지의 수많은 자료와 정보를 가지고 있다.
복권으로 한정해 보자.
미래에 복권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는 때가 온다.
위니의 데이터베이스에는 그때까지의 모든 등수의 복권 번호를 가지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살려면, 전 세계를 돌면서 당첨금이 큰 복권 하나씩 긁으면 된다.
그러나 태영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고려에 남겨진 가족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R존을 만들고 R버너를 가동시켜야 한다.
그 일 이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만, 그것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니, 돈 되는 사업을 벌일 것이다.
“여기, 세금 공제 후 금액입니다.”
태영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세금 공제 후의 금액을 입금한 VIP통장을 내민다.
약간의 웅성거림과 소란스러움이 있었다.
“…….”
누나는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고, 태영을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세 배쯤 눈이 커졌다.
큰돈이지.
“이체 한도 올리는 것이 좋지 않아?”
“아, 맞다. 그래.”
태영의 말에 담당 직원에게 이체 한도를 올려 달라는 요청을 했다.
누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많았다.
은행의 투자 상품을 소개하기 위해 두 사람이 이미 대기 중이다.
그들은 아주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그런 후 상품 소개를 들었다.
누나는 생각을 좀 정리한 다음에 하겠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저기 은행원 한 명이 폰으로 마스터의 사진을 찍습니다.]그때 위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무음?”
[네, 무음입니다.]위니의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은행 직원 중 한 명의 스마트폰이 테이블 아래로 내려지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전, 1등 번호 3개 당첨과 관련해서 경찰 수사 어쩌고 말하던 사람이다.
사진을 찍는 이유?
태영이 ‘부대 증발 사건’으로 인해 언론에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왜 너만 살아왔는데’는 그대로 일반 용어처럼 되어 있다.
그렇다고 사진을 마구 찍으면 안 되지.
‘아냐.’
위니의 질문에 머릿속으로 대답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이런 것은 아무리 소소해도 태영이 직접 응징해야 한다.
응징했다는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메모리, 카메라 CCD 빠각.’
~뚜둑~
‘한 번 더.’
~똑~뚜둑~
태영이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염력으로 한 일이다.
스마트폰에서 나는 소리가 태영에게 들려왔다.
‘메모리 다시 빠각, 빠각, 빠각, 빠각, 빠각.’
~뚜둑~뚜둑~
메모리는 여러 조각으로 토막을 냈다.
저렇게 물리적 손상이 중첩해서 가해지면 살려 내지 못한다.
{전화기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거지?}
{어? 전화기가 왜 이래?}
{뭐야? 왜 아무 반응이 없어?}
같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그냥, 작은 대가일 뿐이다.
위니가 알려 준 정보이니까 확인해 보지 않아도 정확한 내용일 것이다.
저 은행원은 스마트폰을 다시 사야 한다.
자산 운용과 관련해서 은행에서는 은행에 돈을 유치하기를 원했다.
태영과 누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안녕히 가십시오.”
은행원의 인사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하, 끝났네.”
은행을 벗어나자 숨을 크게 내쉰 누나의 첫말이다.
그러고는 긴장이 풀린 듯 잠시 휘청거렸다.
“어때?”
“후~ 마구 떨리다가 조금 가라앉았어. 그래도 꿈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여전히 들고.”
“그래, 진정하고. 저 은행에 그대로 두고, 투자는 어느 정도 공부를 한 후에 생각해 봐.”
“그보다 먼저, 집을 좀 알아보러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왜 부모님, 서울로 모시게?”
“응, 엄마하고 이야기를 좀 했는데, 네 이야기를 듣고 누나도 은행에 확인을 좀 해 봤더니, 말을 머뭇거리고 대답을 하지 않더라.”
농업 지원금 대출 회수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일이 정상적인 절차가 맞느냐, 몇 번이나 물었는데, 답을 안 해.”
“답할 수 없었겠지.”
“그래, 마지막에 긴 한숨을 쉬더니, 그 말만 하더라. ‘죄송합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그것이 전부입니다.’라고.”
“담당자로서는 최대의 사과를 했네, 뭐.”
담당은 그것이 불법인 줄 아는 거다.
단지, 권력자를 통해서 자신의 상관에게 내려진 명을 거부하기 힘들었을 거다.
그래서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권력의 힘이라는 것이 개짜증 나는 것이다.
“아, 두 분 복권은 천천히 찾기로 한 거야?”
“응, 맞아.”
복권 당첨금의 수령 기한은 1년이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
도로 주행 시험.
‘저 새끼는 전자 채점 시험이 아니면 떨어트려 버리는 건데.’
감독관의 중얼거림이다.
입 모양을 보고 알아들은 말이다.
멀리서 봐도 자동차 안에는 전자 채점용 태블릿 PC가 장착되어 있다.
감독관은 그것을 점검하고 있었다.
중얼거리는 말투로 봐서, 전자 채점이라서 자기가 손쓰기 어려우니 억울하다는 소리다.
‘합격해도 떨어트릴 거야?’ 하고 물어보고 싶다.
‘저런 놈에게 면허증을 주면 나라 망신이지.’
면허증 발급에 왜 나라가 망신이란 것인지.
저놈은 제가 뭘 그리 애국 충정에 온몸을 불사르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알죠?”
운전석에 앉으니 그렇게 물어온다.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알죠’라는 말 뒤에 ‘씨발’이라고 입 모양이 말하고 있었다.
감점 요인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고 주의를 주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조금 전에 혼자서 중얼거리던 그런 식의 개소리 말고.
“뭘요?”
“…….”
대답은 안 하고 반대편으로 얼굴을 돌리는데, 목울대가 잠시 꿀렁했다.
또 욕을 하는 모양이다.
이런 놈들까지 일일이 대응해서 잔인하게 돌려줄 가치는 없지만, 그래도 항의는 해야지.
“설명 안 해 주면 민원 넣을 겁니다. 이름 압니다.”
‘씨발놈.’
아주 가까이 있어서 제 나름 조심하느라 입은 오물거리는 수준이다.
말소리는 나오지 않아도 태영은 알아보았다.
‘이걸, 조져 버릴까 말까?’
태영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조져 버릴 수 있지만, 참는다.
가는 곳마다 걸리는 게 많을 텐데, 일일이 반응하고 살 수도 없다.
***
[마스터 에뒨.]“응.”
[유재구가 지효상에게 했던 부탁 기억하십니까.]주민 등록증이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그것을 받은 후에 여권을 신청하기 위해 서울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 위니가 물었다.
“약간, 보충 설명을 좀 해 줘.”
잠시 동안 위니의 보충 설명이 있었다.
“그래, 지효상이 고발장 접수했어?”
[접수하지 못했습니다.]“와이프아웃?”
[네, 누님의 이름을 타이핑하는 그 순간부터 그 컴퓨터와 그 컴퓨터의 클라우드 영역까지 모두 표시 나지 않게 와이프아웃 시켰습니다. 그리고 와이프아웃이 끝난 컴퓨터는 셧다운 시켰습니다.]“몇 대나?”
[현재는 두 대입니다.]“잘했어.”
[한 가지 더 있습니다.]“응, 말해 봐.”
[마스터를 공격했던 깡패 15명 중에 두 명이 마스터를 고소했습니다.]“고소?”
이미 10일쯤 전의 일인데, 이제 와서 고소를 해?
[네.]“죄목은 폭행이겠지?”
[네, 맞습니다.]“하.”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유재구의 사주를 받아서 태영을 폭행하려 했던 놈들이다.
역으로 얻어맞자 고소를 해?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노벨상감이다.
태영이 고려와 28세기의 세상에서 너무 오래 살다 와서 현실 적응을 못 하고 있는 걸까?
“증거 자료가 있어?”
[고소장에 적시된 내용에 상해 진단서가 첨부되어 있어서 증거로는 충분합니다.]“그날, 내 얼굴을 변경시켰었는데, 몇 번이었지?”
[5번입니다.]그 혼란한 와중에 그들 중 누군가가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청부자가 말해 준 이름이었을 텐데,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나면 어찌 반응할까?”
또 위니가 대답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