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9
049. 거울과 망원경(2)
선풍기 2대와 견본용 유리창 문틀 2개를 내렸다.
거울과 망원경은 견본용을 몇 개씩 더 내렸지만, 그것도 장부에 기록하지는 않는다.
부정부패가 상당히 심각하구만.
그래도 뭐 상관없다.
“추가로 하선을 하면 신고를 해야 하고, 출항 때에 신고를 하면 와서 남은 수량을 다시 조사하여 세금을 매길 것이오.”
“네, 알겠습니다.”
태영이 대답하면서 은자 2개를 손에 쥐여 주자, 관원은 아무렇지 않게 은자를 꺼내 눈으로 확인한 뒤에 웃으면서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고개를 꾸벅한다.
최태영, 많이 타락했네.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부정과 비리는 현대 사회도 극심하다는 것을 신문과 방송에서 무수히 접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현대 사회가 그럴진대, 어두운 이 시대야 말해 무엇하리.
“숙소는 예정한 곳이 있습니까?”
해룡호를 벗어난 시박의 관원이 앞장서서 가다가 물었다.
“아니오. 우리는 명주에 처음 왔기에 전혀 모릅니다.”
“그럼, 영빈관 중에 예성관(禮成館)이라고 고려인을 위한 숙소가 있소이다. 사용료가 그다지 비싸지 않으니 거기를 사용하시겠소?”
예성관?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 가기 위해 해상에서 연결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강이 예성강이고, 그 하구에 벽란도가 있는데, 그걸 따서 지은 집인가?
“그리하겠소.”
관원이 태영 일행을 데리고 간 곳은 제법 큰 장원으로 보이는데, 대문에는 예성관(禮成館)이라는 큰 편액이 붙어 있었다.
시박의 관원이 무언가 패를 보여 주자 예성관을 지키던 병사들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비켜 주며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예성관은 홍콩의 무협 영화 같은 데서나 보았음 직한 제법 괜찮은 중국식 건물로, 역시 유리가 없으니 화선지를 창호지로 사용해서 실내가 밝게 보이도록 해 두었다.
대문 안은 큰 마당을 중심으로 네 개의 커다란 건물이 배치되어 있었다.
하나는 2겹의 처마, 그리고 또 하나는 3겹의 처마가 있는 것으로 봐서 2층과 3층 건물인 모양이었다.
2층짜리 건물에는 접객당이라고 쓴 편액이 붙어 있는데, 문을 열자 큰 탁자가 있고, 그곳을 중심으로 빙 둘러 놓인 의자의 개수가 족히 오십 개는 되어 보인다.
의자는 뒤에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을 남겨 둔 채 벽을 등지고 있고, 의자 사이사이에는 작은 탁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객실은 각 층에 있고, 상단주를 위한 객실은 3층에 있소. 1층에는 객실과 식당이 함께 있소이다.”
나머지 두 개의 건물 중에 한곳은 주방과 식자재가 있는 곳이면서 예성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란다.
또 다른 한곳은 창고인데, 상당한 면적을 가지고 있었다.
***
“대장님, 누가 찾아왔습니다. 복장을 보니 관인 같은데요.”
일부의 화물들을 내려서 창고에 넣어 두고 첫날이 지나갔는데,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나자 관복을 입은 몇 사람이 찾아왔다.
접객당 마당에서 준비를 하고 있던 김처인이 송나라 관인인 듯한 사람을 뒤에 두고 접객당 문 앞에서 문을 반쯤 열었다.
“응, 모셔 와.”
두 손을 마주 잡고 눈 있는 데까지 올리며 고개를 약간 숙이는 것이 송나라 식 인사법인 모양이다.
뭐, 어디 식이건, 그 모습 그대로 따라 했다.
“시박의 관원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현령께서 그 물건에 대해 매우 궁금해하시오. 그 물건을 들고 지금 방문해 주실 수 있소?”
“그리하죠. 잠시만 기다리시오.”
“수행 인원은 상단주를 제외하고 호위를 포함하여 여섯까지 가능하오.”
태영은 즉시 정하연, 김웅겸과 김처인, 눈이 외에 남자 병사 둘을 더 지명했다.
여군들은 모두 송나라에 들어오기 전에 남장을 하였기에 예쁜 남자로 보이기는 해도, 자세히 보면 여자인 것을 대번에 눈치챌 수 있지만,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니 상관없다.
“신 대위는 사고 생기지 않도록 주의시키고, 혹시 모르니 우리가 올 때까지 외출은 하지 말고 기다리게.”
“네, 대장님. 다녀오십시오.”
여기서는 사포에서처럼 경례하지 말라고 했는데, 구호만 붙이지 않고 경례는 그대로 한다. 하긴 오랜 기간 붙은 습관인데.
***
“시박의 관원에게 보고를 받고 내가 먼저 보자고 했소.”
현령이라는 사람을 소개받았는데, 약간은 비만해 보이는 몸을 가졌지만, 눈은 예리해 보인다.
현청의 접객당에는 대충 둘러봐도 현령 외에 이십여 명의 인원이 모여 앉아 있었고, 그 중에 관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다섯인데, 둘은 여자다.
제법 남쪽으로 많이 내려온지라 초여름에 지나지 않는데도 실내는 상당히 더워서 땀이 배어 나온다.
무기를 숨기느라 옷을 두껍게 입어서 그런 모양이다.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닌 듯, 가운데 앉은 현령의 뒤에는 파초 잎처럼 생긴 커다란 부채를 든 하인이 천천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데, 다른 곳에는 부채로 바람을 부치는 사람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제법 더워 보이는 옷을 입었는데도 더위를 타지 않나?
왜 저 혼자만 부채의 시원함을 맞고 있는 거야?
아무래도 비어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태영 일행에게 앉으라고 하는 자리인 모양인데, 테이블이 큰데 비해 의자는 달랑 두 개다.
여태 시박의 관원들이 했던 것처럼 인사를 하고, 태영의 옆자리에는 당연한 듯이 정하연이 함께 앉았다.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상단주께서 가지고 온 물건을 볼 수 있소?”
태영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현령이 먼저 말을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현령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만만디 아니었던가?
만만디라고 부르는 중국 사람들이 뭐 이리 성격이 급해?
“그러지요.”
뒤돌아 손짓을 하자 함께 온 병사인 윤서태가 등에 메었다가 바닥에 내려 둔 배낭에서 거울과 망원경, 그리고 쌍안경을 각각 한 개씩 꺼내 테이블 위에 얹고는 하나하나 천천히 포장을 벗겼다.
현령이 손짓을 하자, 관아의 병사 세 명이 각각 수실이 화려하게 수놓인 아름답게 장식된 보를 쟁반 같은 곳에다가 받쳐서 두 손으로 들고 그것을 가지러 왔다.
“떨어트리면 깨지는 물건입니다.”
포장을 벗겨서 각각의 받침 위에 올려 주었고, 태영의 말에 병사는 각각 하나씩 조심스럽게 들고는 현령에게 이동했다.
윤서태는 다시 각각 한 개씩을 더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태영은 먼저 거울의 포장을 벗겼다.
관인이 다시 태영에게 오려는 동작을 취하자 태영이 손으로 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지금 이것은 거울이라 합니다. 용도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물건인데, 그 용법과 용처는 동경과 같으나, 동경과 달리 흐릿하거나 울렁거림이 전혀 없이, 있는 그대로를 완전하게 보여 주는 물건이니 특히 여인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입니다.”
태영의 말에 현령이 거울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비추었다가 깜짝 놀라는 동작을 했다.
“음.”
심음이 흘렀다.
현령은 거울을 바로 옆에 앉은 여자에게 넘겼다.
생긴 것이나 복장, 행동 등에서 나이 많은 여자는 현령의 아내인 듯하고, 그 옆은 딸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거울이 여자에게 전달되자, 거울에 비쳐 보는 여자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나타났다.
눈을 가렸다가, 입을 움직여 보았다가, 다시 눈을 찡긋거려 보았다가 하는 모습이 정말 신기하기 짝이 없다.
아내와 딸은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고, 현령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태영을 바라보기를 여러 번이나 했다.
망원경이 정말 궁금했을 텐데, 거울을 보는 여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고, 망원경과 쌍안경에는 시선도 주지 않는다.
탄성도, 한숨도, 그리고 신기함도 그 많은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모습이라니, 태영이 봐도 참 재미있다.
이윽고 현령이 망원경을 손에 들었다.
“그것의 이름은 망원경이라는 것으로, 주로 군사용이기도 하고 여러 나라를 움직이며 상업을 하는 상단이나 물건을 운송하는 무리들에게 아주 효용 가치가 높은 물건입니다, 망원경과 쌍안경은 한 눈으로 보는 것과 두 눈으로 보는 차이 외에는 동일하오. 망원경은 실내에서는 제대로 볼 수가 없으니, 밖으로 나가서 지대가 높은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알려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태영의 말에 현령이 아무 말 없이 옆에 있는 병사를 불러 뭐라고 작은 말로 시킨 후에 마지막에만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 즉시 준비시켜라!”
한마디 말에 병사는 크게 대답하고 밖으로 나갔다.
“명주의 포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망루에 자리를 마련하라 일렀으니, 우리는 차 한 잔을 마신 뒤에 가 봅시다.”
태영을 바라보고 하는 말이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견을 묻지도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아마도 이 인원이 앉을 수 있는 곳이 망루에 마련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잠시 후, 관병 한 명이 입구에서 뭐라고 말을 하자 현령이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가자고 했고, 걸어서 10분쯤 걸리는 곳으로 이동했다.
여자들 둘은 함께 가지 않는 것으로 봐서 용무가 끝났다는 말이다.
아마 그곳은 병사들이 아니라, 높은 관직의 관인들이 포구를 관찰하기 위한 망루인 듯, 5층 높이는 충분히 될 듯한 큰 집이었다.
가장 높은 5층으로 올라가자 확 트인 시야로 명주의 포구가 눈앞에 보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예성관으로 이동할 때 보았던 높은 건물이 이것이었던 모양이다.
태영은 현령의 옆에 서서 망원경의 용법을 설명해 주었다.
눈에 가져다 댈 부위만 가르쳐 주면 되는 것이니 설명이라고 해 봐야 간단했다.
“허어. 이거 참.”
현령의 감탄이 이어졌고 거울을 볼 때와는 달리 망원경을 눈에서 떼지 못했다.
저래 가지고서야 이 많은 사람들이 언제 다 살펴보나 싶어 태영은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 중의 한 명에게 태영이 별도로 들고 있던 망원경을 주었다.
이들이 망원경으로 명주 포구를 관찰하며 다음 사람에게 건네주어 마지막까지 가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현령은 망원경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쌍안경을 눈에 댄 채 한참이나 포구를 관찰했다.
다시 처음의 접객당으로 왔을 때에는 여자들도 없고, 거울도 함께 사라졌다. 도둑년들 같으니.
접객당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태영 일행을 제외하고는 현령과 현령의 호위 무사로 보이는 두 명이 전부였다.
그런데 거울을 돌려 달라고 해?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체해야 하는 거야?
시대가 시대이니 권력이 곧 법이다. 그리고 권력이란 곧 주먹의 힘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건, 이 시대는 주먹 센 놈이 최고인 세상 아닌가?
다시 차가 나왔고, 부채를 부치던 하인 둘도 다른 문으로 들어와 현령의 뒤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다른 물건들도 혹시 있소이까?”
“그 외에 선풍기와 유리라는 것이 있습니다만, 무게로 인하여 들고 오지 않았는데, 보시고 싶으면 오후에 그것을 가지고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선풍기는 전기가 없으니 전기 대신 페달을 밟아서 날개가 돌아가도록 하는 방법이다.
선풍기의 뒤에 달린 무거운 쇠바퀴를 손으로 살짝 돌린 뒤에 페달을 밟기 시작하면, 쇠바퀴의 무게로 인한 관성으로 페달을 살짝만 밟아도 그다지 힘들지 않고 계속적으로 돌아가며 바람을 일으킨다.
전기가 없으니 생긴 궁여지책이지만, 그래도 효과는 만점이다.
이 시대야 하인이나 노비가 버젓이 매매가 되고 있고, 그런 것들이 지극히 정상적인 시대인 데다, 바로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이 하인이니 하인이 페달을 밟아서 선풍기를 돌리면 될 일이다.
그것이 저렇게 파초 이파리같이 만들어진 것으로 부치는 것보다는 훨씬 힘도 적게 든다.
이곳 명주는 무척이나 더운 지방이니 선풍기는 어쩌면 필수적인 물건일 수도 있다.
“선풍기란 어떤 물건이오? 우리에게 보여 준 거울이나 망원경처럼 대단히 뛰어난 물건들일 것 같소만?”
“선풍기는 발로 밟으면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고, 유리는 창호지 대신 문에 부착하면, 문이 닫힌 상태에서도 밖이 환하게 보이는 물건입니다.”
설명으로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이딴 것을 설명이라고 하고 있으면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다.
“알겠소. 거울과 쌍안경의 가격은 얼마이오?”
한참을 곰곰 생각하는 척하더니 가격을 물어온다.
생각을 하면 네가 알긴 아니?
물건을 봐야 알지.
“거울은 은 1천5백 냥, 망원경은 은 2천2백 냥, 쌍안경은 은 3천5백 냥입니다.”
원래 예정보다 좀 더 세게 불렀다.
세금도 날강도 수준으로 부과하니까.
한 냥, 두 냥, 1관, 2관 하는 척관법 단위는 고려도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같이 따져 주니 도량형 때문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없어서 좋기는 하다.
이 척관법은 진나라 때 만들어졌다고 들었는데, 정말 오랜 세월 사용되었고, 18세기에 프랑스에서 미터법이 만들어졌지만,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서 척관법 대신 미터법을 쓰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으니 정말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거울은 유리를 만드는데 그 크기를 기준으로 보면 원가로 은 한 냥도 들지 않는다.
실제로는 거의 들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인건비와 재료비 같은 것을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거기에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만들고 전기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는데, 실제 소모되는 은의 양은 아주 작은 양이 들어가는 데다, 테두리 장식을 붙여서 모두 합쳐 봐야 사실상 은 한 냥이 원가이다. 그래서 정상적이라면 은 세 냥쯤 받으면 맞다.
망원경은 은 두 냥이 원가인 셈이고, 쌍안경은 다섯 냥 정도 될 것이다.
그러나 원가 따져 가며 거기에 인건비 추가하고 이윤을 추가하여 가격을 정해서 파는 것은 경쟁도 있고, 누구나 만들 수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곧 현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의 졸병 한 놈이 거울을 세 개나 잡수셨단다. 너는 알고 있니?
그리고 네 마누라랑 딸년이 거울을 날름했단다. 혹시 그것도 알고 있니?
아무튼, 눈이 돌아갈 만큼 비싸긴 하지. 상당히 세게 불렀으니.
이 시대의 유리는 보석에 준하는 수준인데, 그것을 이렇게 평평하고 크게 만들어서 거울로 만들었으니, 비싸게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
거기다가 발전기의 기름도 거의 다 떨어져 당분간 거울 만드는 것은 자제를 해야 하지만, 만드는 공정으로 보면 거울이 망원경보다 더 까다롭다.
다시 예성관으로 돌아 왔을 때에는 거울 1개와 망원경 1개가 돌아오지 못했다.
고려 시대나 현대나 관원이란 것들은 다 그런가?
타국 땅에 왔으니 구경을 하도록 병사들을 밖으로 내보냈지만, 반드시 절반은 영빈관에 남아 있도록 했고, 술에 취하거나 시비를 붙지 말도록 신신당부를 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텃세가 있는데, 타국 땅에 왔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거 아닌가?
***
예성관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일을 보는 사람들에게 타국의 상인들이 많이 묵는 객점을 소개받아 시내로 나가자, 이제 어두워지기 시작한 명주의 번화가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전깃불이 아닌 호롱불과 촛불, 간혹 관솔불처럼 보이는 것이 있을 정도인데, 이렇게 밝게 할 수도 있구나 싶다.
수많은 사람들이 식당과 주점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고, 줄지어 문을 열어 둔 점포에는 손님들이 있는 곳도 있고, 점포 밖으로 나와서 호객을 하는 호객꾼도 있었다.
태영을 선두로 함께 외출한 병사들이 무리를 지어 태영의 뒤를 졸졸 따르면서 보나마나 눈이 화등잔만 해져서 구경을 하고 있을 것이다.
“대단하군요. 모두가 무역을 위해 타국에서 온 사람들은 아니겠죠?”
정하연의 눈이 동그란 채로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가 물어왔다.
“원래 이곳 사람들도 있겠지 뭐. 이런 곳은 본 적이 없지 다들?”
“네, 그런데 대장님은 마치 이런 곳을 이전에 본 것처럼 말하십니다.”
“그럼, 나는 이보다 더한 곳도 봤지.”
명동이나 강남에 나가 봐라. 너희의 눈이 돌아갈 정도로 화려한 지금 이곳은, 시골 촌구석 축에도 끼지 못한단다.
사포 같은 시골에서야 이런 것조차도 볼 일이 없지만, 도시화된 현대의 밤거리가 얼마나 휘황찬란한지 아니?
아무리 설명해 줘도 모르겠지.
“How many?”
그때, 한쪽에서 영어가 들려왔다.
기껏 두 음절에 지나지 않지만.
우와, 이거 몇 년 만에 들어 보는 영어냐?
태영이 그쪽으로 눈을 돌리자 모자 밖으로 노랑머리가 흘러내린 외국인이 보였다.
보아하니 각종 도자기 그릇과 접시 등을 파는 상점에서 물건을 사려고 하는 것 같은데,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손짓 발짓까지 해 가면서 무언가 이야기를 한다.
태영이 눈으로 대충 훑어보니 제법 고급품들로 보인다.
옆에서 지켜보는데, 서로 간에 말이 통하지 않으니 손짓과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려고 무지하게 애를 쓰는데도 서로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
“Can I help you?”
답답한 김에 한마디 했다.
영어를 하도 안 써서 ‘May I help you.’를 써야 할지 ‘Can I help you.’를 써야 할지 잠시 망설였지만, 어차피 뭔 상관이랴.
불쑥 나타난 태영의 영어에 송나라 상인도, 영어를 쓰던 사람도 행동을 중단하고 태영을 보았다.
영어를 써 본 지가 하도 오래 되어서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입안에서 뱅뱅 도는 단어로 조합을 했다.